도덕경 제39장에 ‘불욕록록여옥不欲琭琭如玉 락락여석落落如石’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옥처럼 빛나려 하지 말고 돌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전후 문장을 살펴보면 귀함은 천함을 뿌리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터로 삼는다는 ‘고귀이천위본故貴以賤爲本 고이하위기高以下爲基’를 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치환과 구상은 한 편의 시로써 이를 실천한 시인이었습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유치환(1908~1967)의 시 <바위> 전문 -
이웃집 소녀가/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무렵/하루는 나를 보고/-할아버지는 유명하다면서?/그러길래/유명이 무엇인데?/하였더니/몰라!/란다. 그래 나는/그거 안좋은 거야!/하고 말해주었다//올해 그 애는 여중 2학년이 되어서/교과서에 실린 내 시를 배우게 됐는데/자기가 그 작자를 잘 안다고 그랬단다./그래서 뭐라고 그랬니?/하고 물었더니/그저 보통 할아버진데, 어찌보면 그 모습이 혼자 노는 소년 같아!/라고 했단다.//나는 그 대답이 너무 흐뭇해서/잘 했어! 고마워!/라고 칭찬을 해 주고는/그날 종일이 유쾌했다.
- 구상(1919~2004) 시 <혼자 논다> 전문 -
을사년乙巳年을 맞이하여 《표현》에 마음을 보내주시는 문우님들과 함께 온 누리에 꽃눈 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첫댓글
그림자도 얼어 있던
추위 지나니
흙에서보다 먼저
봄바람꽃이 절로 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