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카페 창가에 늘어져있기를 자주 하였다. 커피가 식든지 말든지 얼음이 녹아 맹물이 되든 말든 몇 시간이고 늘어져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낙서도 하고 사람도 보았다.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었음에도 그 시간은 얼마 안 되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옆 테이블의, 건너편 테이블의, 흡연실 옆 테이블의 남녀 한 쌍을 보다보면 나는 그들을 항상, 서로에게 도시락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휴대 가능하고 보기 좋고, 어디서든 발간 입술에 입을 맞추고 손가락을 지분거리고 목덜미의 냄새를 맡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스치고 엉덩이를 쓰다듬을 수 있는, 그러다가 텅 비어 버리면 버리거나, 다시 곱게 채워 넣는, 그런 도시락 같다고 생각하였다. 가지고 있으면 그 무게가 무겁지만 기대되고 설레면서도, 다 먹고 치우고 나면 그 빈자리가 허전하면서도 다시금 그립고, 그러면서도 빈 그 자리가 만족스럽다. 같은 인간으로서 잔인한 비유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하는 생각이니까, 치부하며 씁쓸하게 생각을 삼켰다.
도시락이란 것이 가게에서 포장된 음식을 사가거나 손질되지 않은 재료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싸본 적이 없고, 초등학교 밸런타인데이 때 홀라당 태워 쓰레기통에 들어간 가나 초콜릿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항상 호의에 의해 얻어먹고 선물 받아먹고, 사서 먹었다. 내게 그 구조는 당연한 것이었다. 요리에 재능이 없거나, 취사도구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하찮은 핑계였다. 그 기저에 깔린, 관계의 상위에 위치해있다는 자만심과 자부심은 절박함이 없어 주기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하였고, 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가 도시락을 싸왔다. 평소와 다르게 그날 데이트 행선지의 입장료는 내가 부담하기로 하였고, 몇 만원의 수족관 입장료를 내가 내는 대신 그녀는 몇 만원의 가치를 충분히 해 보이는 도시락을 싸왔다. 파프리카나 양파가 들어가지 않고, 치즈가 잔뜩 들어가서 실이 죽죽 늘어나는 두꺼운 계란말이와, 소스부터 손수 만든 스파게티나, 4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모양의 소시지 같은, 내 어린아이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 3단 도시락 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족관에 들어서기 전 근처 의자에 앉아서 둘이 함께 도시락 통을 비우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눌어붙은 식은 치즈 덩어리까지 싹싹 떼어먹는 나를 그녀는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조금 과하다싶지만 모처럼의 사치스러운 포만감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공공장소임에도 그녀에게 계속 입을 맞추었다.
모처럼의 수족관은 한여름이어서 그런지, 잘 갖추어진 냉방시설에도 불구하고 높은 습도와 진한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동선의 채 절반도 가지 않았지만 나는 점점 과한 배부름에 속이 울렁였고, 괴상한 냄새와 축축한 비린내는 더부룩한 속과 두통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나였어도 새벽같이 일어나 몇 시간을 걸려 요리한 그녀의 정성을 변기통에 처박고 싶지 않았기에,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참으며 애써 괜찮은 척, 그녀의 손을 잡고 커다란 가오리를, 희뿌연 눈의 폐어를, 거대한 정어리 떼를 손가락질하며 감탄하였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뿌리치고 근처 화장실로 달려갔고, 그녀의 가방을 든 채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그녀를 찾아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긴 머리채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변기에 얼굴을 마주하고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토기가 일어났지만 가까스로 참으면서 늘어진 머리카락을 등 뒤로 모아 잡아주었다.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녀가 불쌍했고, 나도 토악질이 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도 10여분 이상 그 상황은 계속되었고, 축 늘어진 그녀는 내가 사온 탄산음료를 손에 쥐고 치즈가 상했었나봐, 하고 작게 읊조렸다. 왜 자기가 만든 거 먹고 자기가 토해, 나는 괜찮은데, 여전히 치밀어 오르는 토기는 그래도 아까보다는 괜찮아져서, 내 위장은 상한 치즈도 소화시키는 강력한 위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다독였다.
미안해, 그녀가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미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나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못되고 오만하게 받아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정성과 노력을 인정해주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인 척, 그래서 그 점이 내 사랑스러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잘못된 것을 주는 것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정에 의존한 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감수해야 마땅한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정에 의존하여 받아내지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고, 가릴 수 도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주든 받든 간에, 모두 같은 것이며,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말 풍 선 :) 에세이보다 이거 오늘의 한마디 쓰는게 더 어렵네요. 애인이 싸 준 도시락 먹고 토해본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