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예나’와 ‘벨라 루나’
어제는 2021년 신축년의 마지막 섣달 보름날. 아름답고도 슬픈 달님의 얼굴을 보았다. 농경문화에서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다. 둥글둥글 풍만한 달을 보며 풍작을 빌고 개인의 소망을 보태는 달맞이는 수천 년 된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이다. 서양에서 달은 부정적이다.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 ‘luna’를 어원으로 하는 형용사 ‘lunatic’은 ‘미친, 정신이 이상한’이라는 뜻이다. 광기까지는 아니라도 달이 뜨는 밤은 분명 낮과는 다른 에너지를 빚는다. ‘나’와 아무 관련 없이 돌아가는 낮의 시간과 달리, 달과 함께인 순간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몽상과 휴식, 치유와 생성의 시간이다.
남미 사막에 산다는 늑대 여인 ‘로바’에 관한 전설을 들은 적 있다. 그녀는 만물의 뼈를 모아 그 뼈들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일을 한다. 어둠이 깔린 달빛 아래 모닥불을 피워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서다. 사막, 달빛, 노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홀로 서서 그 영혼을 불러내려면 달의 에너지가 필요한 걸까. 달이 뜬 밤은 해가 있는 낮의 원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인다.
달에 관한 이야기도, 달을 노래한 음악도 세상에 차고 넘치지만 두 곡이 떠오른다. 하나는 멕시코 3인조 밴드 로스 트레스 디아만테스Los Tres Diamantes가 부른 라틴음악의 고전 ‘루나 예나Luna Llena(滿月)’, 또 하나는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의 ‘벨라 루나Bella Luna’다. 1964년 발표된 ‘루나 예나’가 애수 어린 분위기와 애상적인 선율로 마음을 파고드는 곡이라면, 2005년에 나온 ‘벨라 루나’는 아름다움(‘bella’는 아름답다는 뜻)을 달에 빗댄 내용과 경쾌한 리듬으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곡이다.
애조 띤 휘파람 소리 때문인지 ‘루나 예나’를 들을 때면 달빛만 비추는 넓은 황야의 쓸쓸하고 아련한 풍경이 어른거린다. 국내서는 1960년대 말 ‘블루벨즈’나 ‘정시스터즈’ 같은 중창단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멋진 제목으로 번안(원곡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랫말)해 부르기도 했다. 연인에게 바치는 맛깔난 세레나데로 모자람이 없는 ‘벨라 루나’는 노래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창법과 기타 연주가 기가 막힌다.
시간의 격차가 40여 년이나 되기 때문일까. 달을 품었지만, 이 두 곡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는 말이 있다. 달은 천 개가 넘는 수많은 강에 비친다. 달을 보는 눈, 달에 비친 마음처럼 달을 노래하는 음악 역시 수천, 수만 갈래일 수밖에 없다. 다만, 언제나 변함없는 건 달이다. 늘 어머니같이 너른 품이요 꺼지지 않는 희망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달을 닮은 환한 등불 하나 달아주는 날들이 새해엔 더 많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