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풍경
- 대천 해변
차용국
바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떠도는 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던 손톱달마저 사라진 밤하늘에서 별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원양의 어둠 저편에서 등대는 쉼 없이 섬광을 쏘아 보냈으나 기진한 불빛은 해변에 닿지 않았다. 흐릿한 신호는 멀어서 해석할 수 없었고, 어둠의 수면을 핥으며 달려드는 파도 소리는 잡음이 심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다에 관한 나의 지식과 경험은 영세해서 등대가 안내하는 믿음직한 행로를 읽어낼 수 없었다. 저 어두운 바닷물 속 어딘가에서 진영의 깃발 아래 오랜 관념이 똬리를 틀고 숨어있을 것이었다. 그 은신처는 교묘하고 견고해서 둔한 나는 볼 수 없었고 접근할 수 없었다. 시야가 좁고 생각이 얇아 늘 빈곤한 나의 언어는 계통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나는 바닷물과 모래가 만나는 경계에서 오래 서 있었다. 파도는 은밀하게 경계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불쑥 하얀 대가리를 치켜세우고 달려들었다. 겁 많은 나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경계에 남아있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어쨌든 밥벌이라도 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젊은 날의 가난한 삶의 배경은 꿈과 이념의 가치를 꽂을만한 터조차 허락받지 못한 벼랑에 걸려있었다고, 그렇게 절박했다고, 젊은 자아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결국 파도는 경계를 넘지 못했다. 파도의 기세는 맹렬했으나 사선의 언저리에서 모래에 코를 처박고 바스라졌다. 발끝에서 소멸하는 파도의 잔해는 한바탕 헛것의 허세와 허풍이 지나간 흔적처럼 허허로웠다. 나의 오랜 삶의 행로에 던적스럽게 얽힌 관계와 여물지 못한 생각과 허약한 언어의 파편들이 오랜 그물코에 박제되어있었다.
바다는 적막했으나 해변의 거리는 찬란했다. 형형색색의 불빛은 밝고 강렬했다. 불빛은 제각각 조개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상승하는 가스불에 부풀어 올라 가랑이를 쩍 벌리고 보글거리는 조개 냄새는 욕망의 상층으로 다급하게 치솟는 것이었다. 그 유혹의 전파력은 매혹적이어서 깊어가는 밤의 시침에도 아랑곳없이 해변으로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식당마다 빼곡한 젊은이들이 조개구이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해맑고, 그들의 언어는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해변의 식당가와 해변으로 입구를 튼 골목을 서성거렸다. 나는 불빛에 빛나는 조개 간판을 실없이 읽으며 킥킥거렸다. 빨간빛 ‘더킹조개’는 덩치가 크고, 파란빛 ‘삼선조개’는 야무질 것이었다. ‘청해조개’는 조개연구소라는 부제를 달았으니 학구열이 뜨거울 듯싶고, ‘진주조개’는 귀할 테니 비쌀 듯했다. ‘모아조개’도 무한리필이다. 어! 그러고 보니 ‘참참조개’, ‘소문난조개’, ‘파레브조개’, ‘해녀조개’, ‘팔팔조개’, ‘사랑조개’…… 다 무한리필이란다. 나는 해변을 빼곡히 채우고도 넘쳐나는 크고 작은 조개 불빛의 기호를 읽기에도 벅찼다.
바다에서 소리를 찾지 못한 나는 조개 냄새에 배인 불빛에 육화된 젊은이들의 말을 더듬더듬 들으며 당황했다. 그들의 언어는 조각처럼 갈라져 떠도는 듯했으나 퍼즐처럼 합해지면서 거침없는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개 냄새에 취한 그들의 소리는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았다. 절실하고 허기진 내 젊은 날의 소리와는 결과 리듬이 달랐다. 활기차고 해맑은 젊은 소리였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제자리를 찾은 청춘들의 소리였다.
그는 현란한 불빛을 둘러보며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했다. 코로나 방역 조치가 풀려 돈이 돌아가니 어부들도 일할 힘이 난다고 했다. 그의 언어는 그을린 목덜미에서 울려 나오는 햇빛 냄새와 생선 냄새의 혼합물 같았다. 검고 비릿한 날것의 소리였는데, 굵은 힘줄이 튀어나온 그의 손등처럼 투박해서 낯설었지만 건강했다. 젊은 날 노동운동을 했고 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정치에 뜻을 두었던 그가 사십의 문턱을 넘긴 어느 날 홀연히 서울을 떠나 어부가 되었는데, 그 사연을 묻자 몸으로 부딪치고 말하며 살고 싶어서,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은유나 함축의 언어로 말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토막잠에서 깨어난 새벽 바다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다에 나온 어선은 많아서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작은 배들이 해안선을 따라 제자리를 지키며 떠 있었다. 모래밭에 나온 갈매기도 많아서 다 셀 수 없었다. 갈매기는 날지 않았다. 떼 지어 모래밭에 웅크리고 끼룩거렸다. 배는 출정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 기다림이었다. 제때가 되면 그만큼 저절로 여물어가는 사실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삶의 풍경은 조급하지 않았다.
구름을 제치고 해가 나오자 바다는 해변에서 멀어져갔고, 그만큼 배도 제자리에서 저절로 멀어져갔다. 밀려난 바다의 거리만큼 해변은 넓이를 더하며 펼쳐지고 있었는데, 갈매기는 그 거리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멀어 보였으나 바다와 해변은 늘 눈 한번 질끈 감고 뜨면 붙어있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썰물을 타고 원양으로 나아가면, 바다는 해안선을 거두어들이며 물러선다. 물러난 바다 위에는 또 작은 배가 뜨고 어부들의 삶과 언어가 있다. 썰물에 배를 띄우고, 밀물을 타고 돌아오는 반복의 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인 것인지, 그것이 순리라면 고된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나는 육화되지 않고 꾸역꾸역 쌓이기만 하는 생각과 관념의 언어를 끌어모아 바다에 던져버렸다.
갈매기는 바다가 비워준 거리만큼 갯벌로 나아갔다. 이윽고 사람들이 갯벌로 나아갔다. 아침 바다 등 굽은 해변은 사람과 갈매기가 몸을 움직이며 주고받는 삶의 언어로 분주했다.
※ 차용국
-산문집 『그 소리를 듣고 싶다』, 『흔들릴 때면 경춘선을 타라』
-시집 『호감-다 사랑이다』,『사랑만은 제자리』,『삶은 다 경이롭다』, 『삶의 빛을 찾아』
-논문 『다문화사회의 한국군의 과제와 역할에 관한 연구』
첫댓글 눈호강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