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흩뿌리고 지나간 가을비가 멀어지고
어둑한 하늘이 드러났다.
낮 기온 20도의 온난한 날씨.
구례에서 여기 반야재까지는 98km 거리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반이면 이곳에 닿는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걸어
여기까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잊힌 선대 묘가
이곳 반야재에 적지 않다.
계선문은 한자로 ‘열다’를 의미하는 ‘啓’와
‘선하다’를 의미하는
‘善’ 자가 결합한 단어다.
‘선함을 여는 문’
또는
‘선한 길을 여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이 문을 들어서는 자 마땅히
자세를 낮출 일이다.
萬枝同根이라 하지 않았던가.
만 가지 갈래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그러니 오늘은 목소리를 낮출 일이다.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언쟁하지 말라는 말이다.
10시를 목표로
앞서거나 뒤이어 들어와선
먼저 이름을 올리는 일부터
하게 된다
이를 ‘시도기時到記’라 부른다
문자 그대로 풀이 하자면
‘때에 도착한 사실을 적어놓은 기록’
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구례에서 왔고
오늘 시제의 주인 되신 창령공의 21세손임을
밝혀 적었다
이름 두 자만 올려도 될 일이다.
同名異人이 있으므로
그것도 漢字로.
이렇게 22명인데
누구 안 올린 일가분 있습니까?
재실의 대청에는 제물이 차려진다
肉炙은 초헌례 때
肝炙은 아헌례 때
魚炙은 종헌례 때
헌관이 올리기에 자리를 비워둔다
정기총회에 앞서
초헌관에서 종헌관까지
執事分房이 이루어지고
집례 道範
大祝 貞淳
이렇게 분방이 끝났다
집사가 메 뚜껑을 열고 正箸를 하고 나면
대축은 헌관 좌측에서 동쪽을 보고 앉아
축문을 읊는다
維 歲次 甲辰 拾月 己巳 朔 拾五日 癸卯 17世孫 대건
敢昭告于
顯 16代祖考 知昌寜縣事 贈領議政公府君
顯 16代祖妣 貞敬夫人 載寧李氏之位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齋 不勝感慕
謹以淸酌 庶羞祗薦 歲事 尙 饗
이렇게
창령공 한 차례
維 歲次 甲辰 拾月 己巳 朔 拾五日 癸卯 17世孫 대용
敢昭告于
顯 15祖考 逸執義 贈吏曹判書 守軒先生 府君
顯 15代祖妣 贈 貞敬夫人 光山金氏之位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齋 不勝感慕
謹以淸酌 庶羞祗薦 歲事 尙 饗
집의공 守軒선생 한 차례
이어
좌찬성, 감역공, 생원공 형제 세 분을 한 번에
維 歲次 甲辰 拾月 己巳 朔 拾五日 癸卯 16世孫 석중
敢昭告于
顯 15祖考 別提副司果贈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 府君
顯 15代祖妣 贈 貞敬夫人 星州呂氏之位
顯 15祖考 監役公 府君
顯 15代祖妣 端人 全義李氏之位
顯 15祖考 生員公 府君
顯 15代祖妣 宜人 金氏之位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齋 不勝感慕
謹以淸酌 庶羞祗薦 歲事 尙 饗
그리고 文簡公 木溪선생을 끝으로
維 歲次 甲辰 拾月 己巳 朔 拾五日 癸卯 17世孫 종순
敢昭告于
顯 16祖考 大匡輔國崇祿大夫 吏曹判書兩館大提學
議政府左贊成菁川君 文簡公木溪先生 府君
顯 16代祖妣 貞敬夫人 陽川崔氏
貞敬夫人 朴氏之位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齋 不勝感慕
謹以淸酌 庶羞祗薦 歲事 尙 饗
한 시간에 걸친 시제가 12시까지
재실에서 이어진다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을
홀기笏記라 한다.
初獻官詣盥洗位盥水拭水
이름하여
초헌관예관세위 관수식수
이렇게 홀기를 보며 집례가 읊는 데
꼭 한자말로 해야 정성이 극진하다 할건지
언제까지
維 歲次라고 읊조려야 하는 지.
있는 사진도 치워야 할 이 나이
그런데
기념 촬영의 시간이 왔다.
儒巾을 두르고 있는 이런 사진도
몇 년이겠는가.
평상복으로 이 자리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온다.
지금은 조선의 시간이 아니다.
따로 설단에다 제물을 차렸다
17대조 潭할아버지
16대조 壽海할아버지 앞에
이런 고유문을 올렸다
潭자, 할아버지 사후 500여 년이 흐른
2024년 11월 15일
18세손 종순이
후손 大鉉이 돌을 깎아 만든 제단비 앞에 엎드려
삼가 술을 올리오니 歆饗하여 주소서
아들이 야무지지 못하여 선산을 찾지도 않아
이곳에 음택을 마련해 있음에도
어느 음택이 할아버지 음택인지도 모르는 자리에 서서
향을 사루고 술을 올립니다
東으로 西로 흩어지듯 살아가는 바람에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 일가들 속에
곤궁하게 살아가는 후손 昌大케 해주시고
臥病 중인 자 보듬어 주시며
재물복 건강을 祝手합니다.
오늘 여기 진주 석중 구례 英淳 貞淳
광주 선배가 함께 와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한
정성 지극한 추모의 情을 담아갑니다
이 모두를 함께 잔에 담아
삼가 종순 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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