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손진숙
어릴 적 한여름이면 할머니께서는 온종일 부채를 들고 사셨다. 웅크린 할머니 모습과도 닮은 둥글부채였다.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장날 아버지께서 농약을 사면 농약사에서 준 홍보용이었다, 할머니는 더위만 쫓은 게 아니라 세월의 무상함과 무료하고 적적함도 부채로 달래고 날렸지 싶다.
여름이 종적을 감추고 있다. 언제 무더위가 있었느냐는 듯 서늘하다. 창밖 나뭇잎들은 바람과 맞장구치며 신명난 춤사위다. 저 바람결을 따라 율동하는 나뭇가지들처럼 내 손길에 의해 강하게 또는 약하게 나풀대던 부채. 지금 탁상 위에서 날개를 접은 나비같이, 입을 앙다문 꽃봉오리같이 꼼짝달싹도 않고 있다.
접부채를 펼쳐본다. 내 얼굴을 포옥 가릴 정도의 크기다. 그 배의 크기도 있다. 부챗살을 헤아린다. 22개, 28개, 38개 모두 짝수다. 홀로 남겨지기보다는 짝을 맞추는 게 정한 이치인가.
우리나라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있다. 단오는 아니지만 여름 무렵에 받은 쥘부채가 셋 있다.
하나는, 십여 년 전 J시에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주신 무형문화재 10-4호 합죽선(合竹扇)이다. 내 책상머리 책꽂이에 얹어 두었다. 선생님의 개결하신 체취인 양, 숨결인 양 느껴진다.
또 하나도 그즈음이었다. 내 수필 쓰기가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답답하던 차에 시립도서관 현대시조 창작교실에 다니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작품 전시회를 연다기에 겨우 형식만 흉내 낸 시조 한 수를 제출했다. 강사는 그것을 부채에다 손수 붓글씨로 써서 전시해 놓았다. 시조 쓰기 역시 바람이 통하지 않아 발을 끊은 지금, 그때 습작품이 유일하게 남아 부채에 담겨 있다. 강사가 기울인 정성도 제목 ‘못’처럼 톡톡 박혀 있다.
계수회는 수필문우회에서 발간하는 수필 잡지를 통해 등단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계수 회원들은 계간지가 나올 때마다 책에 실린 회원들의 작품을 가지고 합평회를 연다. 거리는 멀지만, 마음은 가깝게 닿아서 불가피한 일이 없으면 참석한다. 한 회원은 부지런하고 재능이 다양하여 비즈 반지를 만들어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지난여름에는 내게 동양화 그림물감으로 그린 향비선(香飛扇)을 건넸다. 붉은 모란이 초록과 검은 잎에 싸이고 흰 여백이 두루 감싸 조화를 이루었다. ‘만물이 조화로워야 최상의 미’ 임을 생각하며 애써 붓을 놀렸으리라. 서·화에 탁월한 재주가 있어 부채에다 쓰고 그려서 선물할 수 있다면 주는 이의 정성이 받는 이에게 오롯이 전해지니 교분을 쌓는 데 안성맞춤일 것이다.
요즈음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삼국지를 즐겨 본다. 내 보기에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제갈공명이다. 제갈량은 언제나 깃털부채를 손에 들고 있다. 아내 황 씨가 부채를 선물한 데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화를 부르는 일이 우리들 일상에서도 얼마나 잦았던가. 관우와 장비도 일정 부분 오만과 분노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대업을 완성하는 데도 지장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빌려온 것은 제갈량의 때를 기다린 지혜라기보다 그의 손에 들린 백우선에서 풀려나왔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부채는 쓰임에 따라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쥐었다 폈다 하면서 흔드는 부채가 있고, 무희가 춤을 출 때 휘감고 어르며 살랑대는 부채가 있고, 소리꾼이 손에 쥐고 목청을 높일 때 치켜들며 좌악 펴는 부채가 있다. 옛적 선비의 손에도 항용 부채가 들려 있었다. 엄동설한에 사랑하는 기생에게 부채를 보냈다는 선비 이야기도 전한다. 한겨울에도 끄지 못한 가슴속 불을 부채는 식혀주었는지 모르겠다.
부채는 신체 일부나 다름없다. 머리와 가슴의 정기가 팔을 통해 손에 쥔 부채로 이어진다. 손으로 흐른 기력이 바깥의 기운과 합해져 도로 몸 안에 전달된다. 신체를 유지하는 안과 자연을 운행하는 밖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역할을 부채는 충실히 수행한다.
창밖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탁상 위에 놓인 부채에 고요히 안긴다. 부채는 언젠가 쓰일 때를 기다리며 갈피마다 바람을 저장하고 있으리라.
《계간수필》 2019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