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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통한 韓日親善交流日誌
-왜 힘들게 마라톤을 하는가?-
주위의 동료•지인들이 아직도 마라톤을 하느냐고들 물으며 건강을 염려 해준다. 참 고맙다. 그렇다. 마라톤은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조깅하듯이 천천히 달리면 달릴수 있다. 아직 청춘인데 금년(2011년)에도 풀코스마라톤을 뛰어야지 하는 야망으로 5년전의 마라톤일지를 되살펴 본다.
2007년 4월 오사카 간사히공항에서
兵庫縣 芦屋(아시야)마라톤대회 출전전
일본에서의 한일교류의 밤 행사
'돌아와요 부산항'을 한글과 일본어로 부르며 |
1.태극마크를 가슴에 안고 일본열도를 달린다.
오사카 간사히공항에서의 해후와 관광
2006년 4월 7일(금) 3박4일 일정으로 일본의 아시야(芦屋)국제마라톤대회참가와 한일친선교류를 위하여 일본의 간사히(關西)공항에 내렸다. 공항출구에는 일산호수마라톤클럽 일행 18명을 환영하는 프랑카드를 든 일본 아마가사키마라톤클럽(尼崎走會)회원들이 보인다. 서로들 껴안고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그 동안 안녕하셨냐는 말을 한국말과 일본말로 서로 주고 받으며 한동안 파안대소로 정담을 나누고 있다. 2003년 11월에 우리측 회원 12명이 일본 니시노미야(西宮)국제하프마라톤대회참가를 시작으로 2005년 4월에는 일본측 회원 11명이 일산호수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두차례의 인연을 맺었기에 서로가 반기고 있다.
기쁨과 흥분의 시간이 지나고 일본측이 제공한 차량편으로 우리측의 수하물을 오사카의 호텔까지 운반토록 하고 후카타(沈田)일본회장 등 마중나온 일본측 회원과 같이 난가이(南海)라피트전철로 오사카난바(難波)로 들어가니 이미 해는 저물고 배가 고파온다. 모두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식사부터 먼저 하자고 한다.
예약도 없이 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맥주며 사케(일본정종)를 달콤한 안주를 겻들여서 즐겁게 먹고 마신다. 일본의 비싼 물가와 환율에도 겁도 없이 엄청나게 마신다. 한국인의 기질에 못지 않게 일본측도 마찬가지다. 일본측과 혜여지고 호텔에 향하는 도중 일부 회원은 오사카의 유명한 금룡(金龍)라면을 또 한번 먹어보자고 한다. 금룡라면에는 김치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숙취에도 안성마춤이다.
그 다음 날 4월 8일(토)은 아침 8시 전세버스로 나라(奈良)호류지(法隆寺)와 도다이지(東大寺)를 관광한다. 안내자 없이 본인이 통역 겸 안내자 역활을 한다. 4월의 벚꽃향기에 춘색만끽의 관광객으로 고속도로는 주차장이고 사찰경내는 초만원이다. 관광지로 변한 사찰경내의 관광객의 모습들도 좋은 관광이다.
그 날도 먹고 마시는 기쁨은 어제와 여전하다. 특히 오늘 새벽 그로몬(黑門)시장에서 산 생마구로(참치)를 안주삼은 관광버스안의 소주맛은 일품이다. 호텔의 저녁식사가 부족했는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슬슬 술이 고픈가 보다. 술마실 곳을 찾는다.
내일의 마라톤을 염려해서 호텔 근처 골목길의 이쟈까야(居酒屋)에 가서 맥주며 사케를 목구멍아래까지만 마시기로 약속하고 호텔을 나선다. 모두가 마라톤으로 다진 체력이라 주량이 보통 사람을 월등히 초월하는 것 같다. 그래도 11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돌아온다.
활짝 핀 벚꽃길에 화이팅이 넘친다
9일(일) 아침 7시 아침 일찍 마라톤유니폼의 일행은 오사카의 한규(阪急)전철을 타고 아시야(芦屋)나가하마(長浜)공원의 마라톤 현장에 도착한다. 기온은 16도 습도는 50%정도 잔잔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고 만개한 벚꽃 향기가 콧끝을 즐겁게 하는 아주 좋은 날씨다.
국제마라톤대회라고 하지만 길가의 아담하고 깨긋한 주택과 골목이 잘 어울리는 자그만한 도시에서 열리는 펀런마라톤대회다. 록고산(六甲山)에서 흘러내리는 아시야가와(芦屋川)천변에는 벚꽃과 개나리들이 줄비하고 세토나이가이(瀨戶內海)해변에는 젊은이들의 요트타는 모습이 장관이다.
한꺼번에 달려 나온 5700여명의 마라토너들이 형형색색의 유니폼으로 질주한다. 길거리에 응원나온 주민들은 태극기가 새겨진 유니폼의 우리들을 금새 알아차리고 '간바레' '화이팅'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도 한손을 치켜들며 '감사합니다' '아리가도우'라고 응답을 건낸다. 한류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인식이 10여년전 보다 판이하게 좋아졌다. 한국과는 다르게 응원나온 주민들이 많아서 좋다.
이것도 관광상품이며 국격이다. 외국의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 주로의 주변경치도 즐기면서 펀런으로 달린다. 보스톤마라톤, 동경마라톤, 북경마라톤대회참가자도 거의 펀런으로 달리면서 관광마라톤을 한다. 노장과 여성마라토너들이 젊은 이들 못지 않게 달리는 것도 우리와 다르다. 우리 일행은 천천히 달려도 하프코스(21.795Km)를 거의 1시간 50분대 내외로 골인한다.
골인하자마자 벚꽃나무 아래의 넓은 비닐자리 위에 미리 준비해 둔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추기며 도시락으로 점심식사겸 피로를 푼다. 한국에서는 돼지고기-김치안주에 막걸리, 떡 등 푸짐하게 마시고 먹는데 일본은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 같다. 서로들 기념사진도 찍고 마라톤 이야기를 안주삼아 맥주를 건배하며 또 한바탕 이야기 꽃이 핀다. 이렇게 늦게 까지 먹고 마시고 나면 이제 온천을 간다.
현장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록고산(六甲山)산록의 관광지 타가라츠카(寶塚)의 천연온천에서 마라톤과 숙취의 피로를 녹인다. 회원 중에는 중년이 넘은 때미리여성을 보고 신기한 듯 몸을 맡긴다. 한국에서 전수된 목욕문화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좋게 평가받을 문화관광상품인지는 의문이다.
'한일친선교류의 밤' 행사와 홈스테이
온천목욕으로 말쑥하게 단장한 일행은 '한일친선교류의 밤' 행사장에 입장한다.
환영프랑카드가 걸려있는 50여평의 넓은 홀에는 50여명의 일본마라톤회원이 이미 도착하여 우리일행을 기다린다. 태극기와 일장기가 탁자위에 꽂혀있고 우리일행을 위한 통역도 준비되어 있다. 양국 대표의 환영사와 답사, 참여회원 소개, 선물교환, 건배와 만찬등 순서대로 진행된다.
우리측 선물은 김치, 김, 소주, 인삼류등이다. 일본측의 선물은 사케(일본정종), 과자류, 마른안주류, 녹차등이다. 오랜 친구같이 '건배' '간빠이' '위하여' '화이팅'을 번갈아 가며 외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지는 가운데 앉은 자리와 사람을 바꿔가며 먹고 마신다. 약 2시간이 지났지만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이 시간이 지나면 2인 일조가 되어 미리 정해진 홈스테이가정으로 가야 한다. 10시가 넘어서야 '돌아와요 부산항'과 '아리랑' 합창으로 석별의 공동인사말로 대신하고 행사장을 나서고 바로 각자 홈스테이가정으로 안내된다. 홈스테이 가정의 나이와 직업, 사가족현황, 한글등 외국어구사능력, 주택규모, 애완동물유무 등 이미 상세하게 소개되여서 이에 걸맞게 짝을 맞춘다. 홈스테이 가정에서도 간단한 개인 선물을 교환한다.
밤 늦은 시간인데도 정성껏 차려진 술상으로 밤 늦게까지 마시며 즐긴다. 통역을 둔 가정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도 그저 술잔이 왔다갔다하다가 보면 눈과 손동작으로 다 통역이 되는가 보다. 손님을 맞이하는 가정에서는 일본의 전통적인 친절과 정성을 기우린다.
침구준비는 물론 심지어서는 다다미(壘)를 새것으로 교체한 가정도 있고 방에 있는 가구를 정리해서 침실을 넓게 꾸미기도 하고 비교적 비좁은 욕조에 이르기 까지 청결하게 정돈한다. 이렇게 홈스테이를 통해서 비교적 협소한 가옥구조에 알맞게 꾸며진 공간활용의 지혜며 전통적인 다다미침실과 청결하고 정돈된 가정의 모습 그리고 집주위의 골목길도 현장체험으로 느껴 본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받은 정성껏 포장된 선물도 주로 사케(일본정종)과 녹차, 과자, 쯔게모노(일본식 반찬)등이다. 이렇게 하루 밤의 인연으로 또 한번 한국에서 만날것을 약속한다. 다음날 10일(월) 아침 그 곳 전철역(西宮)에서 홈스테이 가족들과 작별하면서 한일친선교류행사는 종료된다.
이별의 순간을 아쉬워 하며 눈물짓는 여성회원들의 장면은 아직도 감명깊게 뇌리를 스친다. 기적같이 만났다가 기적같이 혜여지는 짧은 해후를 아쉬워하는 심리현상이 눈물을 적시게 하는 것 같다. 전철에 오른 회원들은 서로들 홈스테이밤의 이야기를 속삭거린다. 참 기분이 좋다.
이와같은 한일친선교류행사는 2009년 10월 11일 인천대교개통기념마라톤대회를 계기로 11명의 일본회원이 3박4일 일정으로 내한하여 제4차 한일친선교류행사를 가졌다. 우리측도 일본측에 못지않게 한국적인 친절과 정성이 담아 손님대접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의 제5차 한일친선교류행사를 기대해 본다. 이것도 마라톤을 통한 민간외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져본다.
2009년 10월 11일 한국에서의 한일교류의 밤 행사
2 '왜 힘들게 마라톤을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저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마라톤을 시작한지도 어언 10여년이 지났다. 마라톤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은 '왜 힘든 마라톤을 하는가?' 라고 의아하게 또 염려스러워들 한다. 참 고맙다.
그러나 1997년 4월 오사카공보관 5년의 근무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와 정좌하기도 전에 1997년 여당의 대선패배에 이은 1998년 3월 정권교체와 동시에 무보직으로 일년을 보냈다. 1997년도 '올해의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되어 받은 황조근정훈장도 보람없이 1급 승진이나 산하단체임원취임도 못하고 1999년 3월 33년의 청춘을 바친 공직을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강제퇴출(?)된 후 일산으로 이사한다.
3식(食)의 신세로 퇴직자끼리 만나면 생소주에 신세타령이란 허송세월의 연속이다. 혹 골프나 가면 옛 동료들을 만나서 하루는 즐겁지만 퇴출당한 무능력한 가장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단상으로 이를 중단하고 오래 전부터 해 오던 등산을 한다. 등산로 외길에서 고개숙인 중장년 남성들이 보이면 눈길을 피한다.
어깨가 늘어진 남성의 뒷 모습은 패전포로와 같이 가련해 보인다. 4월 중순 12일간의 고양국제꽃박람회 일본어통역봉사활동을 마친 다음 일산호수 주위를 뛰기 시작한다. 5Km→10Km를 시작으로 10월의 하프마라톤(21.795Km)대회에 참가한 경험으로 이제 겁도 없이 풀코스(42.195Km)마라톤대회에 도전한다.
처음 시도한 풀코스마라톤을 회상해 본다. 2000년 가을의 마라톤대회다. 젊은 마라토너들과 하프지점을 경쾌하게 열심히 잘 달렸으나 35Km지점에 도달하니 예상대로 다리에 쥐가 나고 가슴이 조여드는 극한투쟁의 경지에 처해진다. 여간 큰 고통이 아니다. 왜 이런 고통스런 마라톤을 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갑자기 실직자가 된 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중도에 포기할수 없다. 골인지점이 가까워 질수록 만감이 교차된다. 활기잃은 아빠를 위로하며 미국유학길을 떠난 아들, '정선생님 계시냐'는 옛 근무처의 어느직원의 전화를 받고 충격받은 딸, 공(公)서방 가장을 애써 위로하며 더욱 과묵해진 아내 등 가족의 모습이 떠 오른다.
이 못난 아빠와 가장의 서러움을 씻어 버릴려면 완주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있는 힘을 소진해 가며 드디어 골인점을 통과한다. 골인지점의 동호인들이 클럽의 최연장자를 박수 갈채를 보낸다. 한손을 치켜흔들며 고맙다고 응답한다. 4시간 20여분의 첫 완주의 쾌감과 피로를 잊고 가슴속 깊숙히 맺힌 설음에 울먹인다.
풀코스완주 기념메달을 목에 걸면서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훔친다. 그 후로 4시간 5분→4시간→3시간 52분으로 기록을 단축하면서 풀코스만 15회 뛰였다. 이제 '나 홀로 청년'이란 가식과 노욕을 버리고 건강을 위하여 뛴다. 과부하된 자동차의 오바이트현상을 항상 명심하면서 계속 달리고 있다.
이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은 각각 미국 미조리대학교와 서울 모대학교의 교직에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약탈정치(?)의 희생양이 된 동 시대의 동료.후배들에게도 동병상린의 위로말씀을 전한다. 끝까지 읽어 주신 회원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