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면 혹한이 계속되고 굵은 눈발이 몰아쳐야 정상이다. 찬바람 한두 번 지나가고 눈발이 실오라기처럼 날린다면 이미 정상적인 겨울이 아니다. 요즘 겨울은 겨울답지 못하다. 남북극의 극지를 뒤덮고 있는 얼음덩어리가 녹아내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유례없는 이상기온으로 눈 없는 겨울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때는 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한 겨울, 찬바람 휘몰아치고 퍼붓는 눈발이 무서우리만큼 온 동네가 겨울의 폭압에 짓눌려 있었던 때였다. 동네가 산간지대에 놓여있어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시절이라면 흔히 겪는 한겨울의 풍경이다. 들판에 쌓인 눈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동네 한 가운데를 휘돌아나가는 도랑가에 시든 풀들이 창날 같은 고드름을 매달고 눈발을 한짐 지고 잇는 뒷산의 소나무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끔 눈발을 털어낼 무렵, 몇 명의 아이들이 토끼 사양을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툼한 옷을 껴입고 털신이나 장화로 중무장을 했다. 한 겨울 할 일이 없는 날은 그래도 토기 사냥이 제일이다.
눈 덮인 산을 뛰어다니다 보면 춥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즐거움이 묻어났다. 여럿이 단합한다면 토끼가 아니라 맹수라도 때려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물론 짐승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콩 속에 집어놓은 싸이나를 쪼아 먹고 날개 쭉 퍼뜨리고 죽어있는 꿩을 보는 순간 무지한 살생 앞에서 반성할 때도 있었지만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싸이나를 먹고 죽은 꿩이 어디 한두 마리인가. 들판이나 눈 녹은 솔숲에는 싸이나를 넣은 콩들이 뿌려져 있어 그것을 쪼아 먹고 죽은 꿩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더구나 공기총을 메고 사냥개를 앞세운 사냥꾼들도 많이 돌아다녀 그만큼 꿩들이 수난을 당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푸드득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꿩을 공기총으로 정 조준하여 바닥에 떨어뜨릴 때의 통쾌함이 괜히 내 마음 속까지 전해져서 짜릿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방법은 여간 잔인한 것이 아니다. 싸이나를 넣은 콩들을 뿌리거나 사냥총으로 꿩을 잡는 방법은 모두가 집단 살상이다. 집단 살상은 생태계의 파괴나 다름없다. 짐승을 잡더라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좇아야지 출구까지 꽉 막아놓고 짐승을 잡는 방법은 얼마나 잔인한가.
그것에 비하면 지붕의 추녀를 훑어 참새를 잡는 방법은 더 인간적이다. 한겨울 지붕위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면 동네 형들과 몰려다니며 추녀를 훑었다. 어둠을 타고 남의 담장을 뛰어넘어야 하는 두려움은 있었다. 허술한 사립문이지만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나 고양이 걸음으로 담장을 뛰어 넘어야 했다. 찬바람 휘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참새는 추녀 속에다 둥지를 트는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따스함을 유지해주는 짚의 특성상 새들은 지붕 속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새를 잡으려면 일일이 추녀 속에 손을 넣고 후레쉬를 비쳐 확인을 했다. 그러면 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이 어미와 고물고물 살을 맞대고 짹짹 거리며 울어댈 때도 있었다.
밝은 후레쉬 불빛 때문에 어미는 날아가지도 못하고 새끼들과 더 깊숙이 살을 맞대고 고개를 파묻었다. 가끔씩 울어대는 새끼들의 짹짹거리는 울음소리가 별빛 물든 밤하늘을 구슬프게 적셔주었지만 새를 훑는 발길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겁이 많은 아이들은 추녀 속에 선뜻 손을 집어넣지 못했다. 짚풀이 추녀를 쳐들고 있는 구멍 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를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혹시나 뱀을 만날까 두려웠다. 뱀이 먼저 추녀 속에 들어가 참새 알을 훔쳐 먹거나 또아리 틀고 있어 운이 없으면 뱀에게 물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둠을 타고 새 잡는 일은 자연히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토끼 사냥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토끼 사냥은 눈 덮인 산을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였다.
토끼 몰이를 하러 간 곳은 동네 뒷산이었다. 세종날 언덕배기에서 왼쪽 산 능선 길로 방향을 틀면 밭들을 평화롭게 가슴에 않고 있는 낮은 산자락이 펼쳐졌다. 그곳이 토끼를 추적할 수 있는 장소였다.
며칠 동안 눈이 참 기세 좋게 쏟아진 것 같았다. 키 작은 잡목들만 모여 있는 산자락은 완전 눈밭이었다. 키 작은 솔숲과 잡목들 그리고 풀덤불이 무겁게 폭설을 뒤집어쓰고 세찬 바람결 따라 어지럽게 눈발을 날리고 있었다. 토끼를 잡는 데는 대열을 이뤄 훑어 내려가는 것이 제격이다. 산 능선에서 밭들이 접해있는 아래쪽 산자락이 추적 지대다.
토끼를 발견하지 못한 막역한 추적이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혹시 토끼가 걸려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솟아올랐다. 토끼가 있을만한 곳은 잡목 숲 아래 아늑한 곳이다. 솔잎이 깔려있고 고인 햇살이 따스해서 토끼들이 마음 놓고 단잠을 잘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손에손에 길 다란 막대기 하나씩을 잡고 토끼가 숨을 만한 곳을 훑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동안 훑고 내려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대가 낮은 산이라 토끼가 살지 않는 모양이었다. 민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토끼가 숨어 있을 리 만무했다. 눈이 녹은 잡목 아래도 막대기로 휘저어보고 풀덤불도 툭툭 치며 내려갔다.
얼마가 내려왔을까. 바로 그때였다. 토끼 한 놈이 풀쩍 풀쩍 뛰어가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고함이 쏟아졌다.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는 날렵한 토끼의 줄행랑도 소용없었다. 속 터질 만큼 느렸다. 아이들이 한가하게 부르던 동요속의 산토끼가 아니다. 깡총깡총 뛰면서 낮은 산 능선을 귀엽게 뛰어가던 그런 산토끼가 아니다. 오직 살벌한 추적만 있는 곳, 그러나 눈에 푹푹 빠지면서도 토끼는 이리저리 잘도 피해 다녔다. 대열을 이룬 아이들의 다리 사이를 귀신같이 빠져나갔다.
대열이 좁아졌다 풀어졌다 하는 사이, 토끼도 힘이 쭉 빠졌는지 꼼짝없이 아이들 손에 잡히고 말았다. 누군가 개선장군처럼 토끼의 귀를 잡고 허공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하염없이 눈발을 퍼붓다가 뚝 그친 하늘은 투명유리 같은 하늘을 가볍게 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