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점소이

8. 점소이 영춘은 퀭한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이틀 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쑥 들어간 눈알을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태호 제일의 구두쇠 영춘이 손님보다 더 간절히 찾고 있던 것은 바로 더럽고 치사한 까마귀 떼와 잔인하고 무식한 늑대새끼들이었다.평소라면 활개를 치고 다녀야 할 흑오파와 혈랑조의 모습이 뚝 끊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하촌 상인들의 얼굴에는 은근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뜯어가는 건 둘째 치고라도, 위아래도 없이 설쳐대는 꼴을 며칠이라도 안 보게 되니 십년 체증이 내려가는 것을 느끼고들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들 중 단 한사람 영춘만은 예외였다. 영춘은 도리어 이 상황이 몹시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우이가 흑오파에 끌려갔다 온 다음날부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 우이가 돌아오면서 했던 말이 자꾸 영춘의 귀를 간지럽혔다.‘흑오파를 그만 둔데요.’그런 영춘의 고민을 알기나 하는지, 우이는 전보다 더 쾌활해졌다. 게다가 그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부터 주정꾼들의 난동도 많이 줄어들었다.이상하게 그가 달래면 다들 순한 양이 되었고, 그의 등에 편안히 잠들어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모두들 그에게 술꾼 달래는 비책이 숨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그런 점에서 그는 영춘객잔의 복덩어리임에 틀림없는데, 문제는 흑오파와 혈랑조였다.“왜 나타나지 않는 거냐구!”차라리 어느 쪽이든 들이닥쳐서 부수고 돈을 내 놓으라고 난리를 피우는 편이 더 마음 편할 영춘이었다.영춘이 연신 한숨만 내뱉고 있을 그때 아평이 숨이 목구멍까지 차서 헉헉거리며 달려 들어왔다.“무슨 일이냐?”그 모습에 간이 철렁해진 영춘이 벌떡 일어났다. 아평은 숨을 고르느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흑오파가, 흑오파가, 헉헉…”흑오파란 말에 애가 탄 영춘이 아평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이놈아, 빨리 얘기를 해봐.”“춘화루의 앵앵이한테 들은 애긴데요, 흑오파와 혈랑조가 크게 싸움이 붙었데요.”“그게 정말이냐?”“이제 곧 서로 큰 전쟁을 벌일 거라는 소문이 자자해요.”영춘은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왜 놈들이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영춘객잔이나 우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휴.”안도의 한숨과 함께 영춘의 표정이 밝아졌다.기왕 싸움이 벌어질 바에 크게 싸워 양쪽 모두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것은 이곳 하촌 상인들의 공통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아평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소문들을 열심히 영춘에게 종알거리고 있을 때, 우이는 주방 안에서 아연의 핀잔을 듣고 있었다.“호피첨초(虎皮尖椒)는 센 불에 익혀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야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고추에 생기는 무늬가 뚜렷해 진다구요.”아연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작정을 한 듯 그를 본격적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며칠 전부터 우이는 요리를 배워 보겠다고 나섰고, 숙수인 달오는 아연 이외에는 절대 제자를 받지 않겠다며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그러나 우이는 하루 종일 달오를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결국 천하제일의 숙수는 달오라는 말에, 달오는 자신의 귀가 얼마나 얇은지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우이의 주방출입을 허락했던 것이다.결국 그의 요리강습은 아연에게 맡겨졌다.“도대체 요리를 배우려는 목적이 뭐예요?”아연의 말에 우이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냥 재미로 배워 보려는 거라면 꿈 깨세요. 요리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저도 못 참아요.”“그런 건 아냐.”“그럼 뭣 때문이죠?”“네 꿈이 뭐라고 했지?”우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연은 당황했다.“그건 왜 묻죠?”“훌륭한 숙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지? 그래서 이런 객잔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그런데요?”“그래서 한 번 해보고 싶었지.”아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앞으로 부인(婦人)이 될 사람의 일이니까.”그 말에 순간 아연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그, 그게 무슨…”아연은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몰라 더듬거리며 물었다.그 모습을 우이가 웃으며 보고 있었다.“…진심인가요?”“물론, 농담이지.”순간 아연의 두 눈에 번개가 일었고, 그녀가 휘두른 철냄비를 피해 우이가 주방 밖으로 달아나며 말했다.“그 성질을 죽이면 생각해보지.”아연은 가슴이 콩닥거렸다.비록 장난처럼 말했지만, 부인이란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그들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보고 있던 천하제일의 숙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이제 떠날 때가 된 건가?”그것은 어디 한 곳 오갈 데 없는 불혹(不惑)의 노총각, 달오의 허망한 메아리였다.  * * *  때론 귀를 막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할 때가 있다.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세상의 이야기들은 간혹 행복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바로 요즘의 우이가 그러했다. 요즘같이 행복한 때라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살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결국 귀머거리가 아닌 것이 원망스럽기만 한, 오늘 같은 날도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신임맹주가 암습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나?”우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발등에 못이라도 박힌 듯, 딱 멈춰 섰다. “들었네.”우이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두 명의 표사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마도 표행(?行)이 끝나고, 한 잔 하러 온 표사들인 것 같았다.“다행히 맹주는 무사하다고 들었네.”우이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콧수염을 기른 표사의 말에, 덩치 큰 표사는 큰 대접의 술을 한 번에 마시고는 격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간도 큰 놈들이지. 감히 무림맹주를 해치려 들다니.”“마교 놈들의 짓이 틀림없어.”“그렇겠지. 그들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르겠는가?”“참, 자넨 이번 무림대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콧수염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고, 덩치는 또 다시 한 대접의 술을 들이켰다.“생각하고 말고 할 게 어딨겠나? 정사(正邪)가 함께 하는 무림대회라니? 꿈같은 이야기지.”“허나 성사만 된다면 바야흐로 강호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지 않겠나?”두 표사의 대화는 무림대회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에서, 마교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로, 다시 이번 표행길에 만났던 녹림도로 이어지다가 결국 음담패설(淫談悖說)로 끝이 났다.그 긴 시간동안 우이는 말없이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었다.소향의 시원한 미소가 떠올랐다.단순하지만 속은 한없이 여린 철무의 각진 얼굴도 떠올랐다.자신을 큰 형처럼 따르던 매화조와 국화조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새로 들어와 말썽을 피우던 신입대원들과는 변변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모두들 다 잘 있지? 모두 무사한 거지?’하지만 우이는 자신이 이러한 안부를 물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에게 있어 도망자였으니까.“누구게?”우이의 두 눈을 작지만 거친 손이 감아왔다.여기저기 칼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가 느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그녀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손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우이가 혓바닥을 내밀어 새끼손가락을 빨았다.아연이 기겁을 하며 우이에게서 떨어졌다.“악, 무슨 짓이예요?”“그냥 무슨 맛인가 보려 했지.”“색마(色魔)!”아연이 눈을 치켜뜨며 짐짓 화를 내는 표정을 지었지만, 오히려 귀엽게만 보였다.주방으로 들어 온 아연은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폈다.두 눈을 가렸을 때, 그의 눈이 젖어 있었던 것을 그녀는 느꼈었다.손바닥을 자신의 볼에 대었다.우이의 눈물이 느껴졌다. * * * 요 며칠 사이 복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아평이었다. 평소의 그 입심 좋고, 쾌활했던 복대가 요즘 들어 통 말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는 멍하니 딴 생각을 하기 일쑤였고, 덕분에 그의 일까지 아평이 도맡아 해야 했다.그러나 아평은 불평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복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며칠 전에는 복대가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일을 나왔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텐데, 도통 복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평이 아연에게 그런 복대의 이야기를 꺼낸 건, 이제 객잔이 좀 한가해진 신시(申侍)무렵이었다.아연은 새로운 요리를 전수해달라고 아침 내내 주방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우이에게 결국 새우말이 요리인 단권하인(蛋捲蝦仁)의 양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던 중 이었다“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요.”“무슨 일인지 감도 안 오고?”“네. 말을 안 해줘요.”“그래, 알았다. 내가 나중에 따로 물어볼게.”“그럼 부탁해요. 누나.”아연의 말에 아평의 표정이 밝아졌다.아평이 객잔에서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이 바로 아연이었다. 아연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비록 여자였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무슨 일이든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연이었기에 분명 복대의 고민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아평이었다.아평이 나가자, 옆에서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이가 아연에게 말했다.“복대일, 내게 맡기면 안 될까?”아연은 우이의 말이 의외였지만, 저런 말을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할 때면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요즘 들어 아연은 우이에게서 새로운 면들을 하나 둘씩 발견하고 있었다. 첫째로 우이는 생각보다 진지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근래에 자신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객쩍은 소리도 아끼지 않는 그였지만, 결국 그의 본질은 ‘진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연은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쉽게 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또 자신이 바뀌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들까지 제어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둘째는 그의 과거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대충 둘러대며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연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과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게다가 우이는 객잔을 찾는 무림인들의 대화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 없는 척 해도 그의 귀는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가 있었다. 특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무림맹이나 무림맹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는 거의 넋을 잃었다.우이의 과거는 무림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 보는 아연이었다. 복대의 일을 맡겠다는 우이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테니 잘 처리해 달라는 고갯짓이었다. 우이가 아연에게 복대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우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복대를 보았던 것이다. 아마 복대의 지금 변화는 틀림없이 그것과 관련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 * * 복대는 이를 악물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지는 못했다.눈앞이 흐릿해졌다. 눈물을 흘리면 더 비참해 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 겨우 열 일 곱이 된 소년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결국 복대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지만, 주위에 서서 그를 지켜보는 누구도 그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지 않았다.도리어 따가운 멸시의 눈초리만이 상처 입은 복대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하고 있었다.“돌아가. 여긴 너 같은 놈이 올 때가 아냐.”조금 전, 강호의 유명한 협객이 되기 위해 다섯 살 때부터 연마한 화륜각(火輪脚)으로 하촌의 건방진 점소이를 때려눕힌 왕팔(王八)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복대가 배를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섰다.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파왔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있어 달라 사정해도 더 이상 있기 싫은 곳이었다.그 모습을 복대 또래의 청년 예닐곱이 비웃으며 보고 있었다.“음식이나 열심히 날라라.”“분수를 알아야지.”“언제 한번 놀러갈게.”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멸시의 말이 새끼를 쳤다.모두들 한 마디씩 던졌다.한 마디 한마디가 복대의 마음에 비수가 되서 꽂혔다.복대가 <창룡무관(蒼龍武館)>이라 쓰여진 현판아래까지 간신히 걸어 나왔고, 드디어 이 더러운 곳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그가 꽈당 하고 쓰러졌다면, 창룡무관의 문은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시끄럽게 닫혔다. 너 따위에게는 다시는 열리지 않겠다는 듯이. 얼굴에 차가운 흙이 느껴졌다.복대는 그것이 시원하다고 느껴졌다.왕팔에게 맞은 곳이 불이 나듯 화끈거렸고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이렇게 태어났나 하는 원망이 들었다.복대가 이곳 창룡무관을 찾은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이곳은 태호에서 가장 큰 무관 중 하나였고,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복대가 언제나 벼르고 벼르던 곳이었다.복대가 그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이유도 여기 있었고, 어린 아평이 혈랑조에 맞서 달려 나갈 때, 오줌을 지리며 꼼짝 못했던 그가 수치심을 참으며 떠올린 곳도 여기였다.그는 점소이로 사는 것도, 겁쟁이로 남는 것도 모두 싫었다.그의 꿈은 강호를 종횡하는 무인이 되는 것이었다.복대에게 강호란 자신의 신분을 탈출해 새로운 꿈을 이룰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창룡무관이었다.한 달 수업료는 복대가 육 개월을 꼬박 음식을 날라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도 복대는 아깝지 않았다.열심히 무공을 배워서 중원표국(中原?局)의 표사시험을 치르리라 마음먹었다.지난 몇 년 동안 아껴둔 돈이라면, 이곳에서 일 년은 배울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이를 악물고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처음 그가 찾아 갔을 때, 무술사범(武術師範) 만오(萬五)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육 개월 치 수업료를 선불로 내라고 했다. 그 못마땅한 눈빛은 같이 무공을 배우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왜 그들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무공을 배운다는 마음에 복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온 목적은 친구를 사귀러 온 것이 아니라, 무공을 배우러 온 것이니까.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복대의 모습에 그들의 눈매가 더 사나워졌다.며칠 전 실전훈련을 하자던 동료들에게 된통 곤욕을 치뤘다. 그러나 그 정도는 참을 만 했다. 그럴수록 복대는 더욱 열심히 수련을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그들은 더욱 못마땅하게 여겼다.그리고 오늘, 그들 중 유난히 자신을 싫어한 왕팔에게 호되게 당하고 결국 이렇게 쫓겨난 것이다.관주(館主)와 사범의 눈을 피해, 훈련 비무를 빌미로 이루어진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관주와 사범이 있었다 해도 눈감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복대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니까.그리고 그들이 왜 그토록 자신을 미워했는지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그는 이곳 창룡무관에서도 점소이 복대였던 것이다.이곳에서 무공을 배울 때만큼은 무인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 들었던 그였다. 그러나 복대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모두들 그를 점소이 복대로 여겼고, 자신의 제자가, 동기가 점소이인 것이 그들은 못마땅했던 것이다.점소이 짓을 해서 번 돈으로 자신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려는 그가 싫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복대의 노력은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억지스런 신분상승욕구에 불과했던 것이다.한 번 점소이는 영원한 점소이에 불과한 것이다.복대는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뿐 아니라 실제로 복대는 죽어가고 있었다.아무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몇 마디 수군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그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그런 그를 누군가 번쩍 안아들었다.그는 복대를 안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복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을 감싸 안은 따뜻한 품이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이었다.…영춘객잔은 요즘 눈물의 객잔이었다. * * * 한줄기 햇볕이 들어와 복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따스함에 복대가 살며시 눈을 떴다.복대는 자신이 낯선 방에 홀로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본능적으로 손이 배로 내려갔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혔던 통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어떻게 된 일일까?’복대는 자신이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안았던 것을 기억했다. 여기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방일 것이다.그러나 왠지 낯이 익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복대는 이곳이 우이의 방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복대가 방문을 나섰다.우이는 마당 한 옆의 장작더미위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깨어났어?”우이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형님이 절 데려오신 건가요?”“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감사합니다.”“…뭘.”우이가 멋쩍게 웃었다.복대는 무엇인가 더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그런 복대를 보며 우이가 손을 내밀었다.“여기 괜찮네.”장작더미 위로 올라오라는 소리였다.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고작 자기 옆으로 오라는 부탁을 거절하기도 우스웠다.복대가 장작더미 위로 올라왔다.남자끼리 무슨 청승이겠냐 마는, 그래도 이곳도 높은 곳이라고 제법 내려다보는 맛이 있었다.“왜 무공을 배우고 싶니?”우이의 질문에 복대가 피식하고 웃었다.혈랑파의 난동 때 눈물을 질질 짜던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왜 무공을 배우려는지 묻는단 말인가?“울지 않기 위해서입니다.”우이를 염두에 둔 소리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한 것인지 몰랐지만, 그 말에 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무공을 배우면 울지 않게 될까?”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진 우이가 불과 몇 일전만 해도 천하제일의 울보가 되었었다.강하다는 것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까?우이는 사실 복대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 역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둘 사이에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참, 누가 절 치료해 줬나요?”“의원이 다녀갔다.”물론 의원도 다녀갔다. ‘이런 간단한 상처 때문에 사람을 오고가게 했냐’ 면서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달려가서 의원을 재촉했던 아평의 볼을 꼬집었다.잘 먹고 며칠 쉬면 낫는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그러나 만약 그 전에 우이가 자신의 공력을 사용해서 복대의 막힌 혈도(穴道)를 뚫고, 그의 손상된 기(氣)를 다독여 주지 않았다 해도 아평의 볼은 역시 의원에게 꼬집혔을 것이다.‘이렇게 위독한 상태인데 왜 이제 기별했냐고.’그리고 치료를 받았다 해도 평생을 휴유증에 시달리면서 병자(病者)로써 살아야 했을 것이다.당시 복대의 상태는 그만큼 좋지 않았던 것이다.그간의 사정을 알리 없는 복대였다.복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개처럼 얻어맞고 쫓겨났다. 단지 점소이란 이유만으로.“무공을 배우고 싶으냐?”우이가 그런 복대를 보며 물었다.복대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렸다. 우이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만간에 이 소년에게 무공을 가르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부의 그 흩날리던 수염처럼, 새하얀 구름은 무심히 흘러가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