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삽교천 방조제의 모습
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 기고문
박정희 대통령과 `삽교천방조제`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
"여기 섰으면 조국의 숨결 귀에 들리고 바라볼수록 벅찬 감격을 누를 길 없다. 다만 여기서 잊지 못하는 슬픈 기억은 지난해(1979년) 10월 26일 삽교호 준공식에 故박정희 대통령이 즐거이 참석하고 귀경한 그 날 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불행한 최후를 마쳤지만 그의 공적은 길이 빛날 것이다."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 비문*노산 이은상글 여초 김응현 씀)
삽교천(揷橋川)방조제는 우리나라 중서부 해안 일대인 충남 아산시, 당진, 홍성, 예산군에 걸친 24,574ha를 가뭄과 홍수 피해 없는 전천후 낙토로 개발하기 위한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축조된 제방이다. 삽교천방조제가 특히 유명해진 것은 故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이곳 방조제 준공식장에서 돌아온 그 날 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운명을 달리함으로써 이곳 연설이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前 이 지역은 광대한 평야의 농경지와 구릉지대, 간석지 등을 두고도 뚜렷한 용수원을 확보할 수 없는 지형적 여건으로 인해 한*수해가 되풀이되던 지역이었다. 특히 삽교천 하구로 밀려드는 해수의 영향으로 연안의 수많은 농경지가 염해와 홍수피해를 입었으며 농경지 확장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방치되고 있던 불모의 땅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간척사업을 통한 식량자급 및 공업개발기반의 확충이 시급한 당면과제임을 직시하고 OECD차관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5월 19일 기본계획 확정승인 후 사업을 시행토록 지시했다.
이 공사는 원래 1976년 9월 착공예정이었으나 입찰시 대안검토로 지연되어 1976년 12월 착공되었는데 1977년 1월~3월에 이상한파로 작업이 불가능하여 사실상 1977년 4월 15일부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외에도 산림법의 강화로 각종 토석재 채취장의 인허가가 곤란하고 해외건설 취업으로 기능공이 부족하여 공정이 지연되는 여건 하에서 공사가 추진되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1978년 4월 최종 물막이를 오히려 1개월 앞당겨 3월 20일에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주요시설인 삽교천방조제는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바다와 삽교천을 가로막는 방조제로서 국내에서 ‘대호 방조제’, ‘영산강 하구언’ 다음으로 세 번째로 긴 3,360m로서 공사비 186억 원을 들여 1979년 10월 26일 준공되었다.
삽교천방조제의 준공으로 8천 4백만 톤의 물이 확보되어 4개 군 22개 읍, 면의 농토가 수해, 한해, 염해를 막을 수 있게 되어 많은 양의 쌀을 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진과 서울간의 거리를 100리 단축하게 되었다.
`삽교호농업기반공사`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박기화(46)씨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당진이 방조제의 완공으로 말미암아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농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 뒤 “대산 공단, 동부제강, 삼성종합과학, 오일뱅크, 당진화력발전소 등 주요산업시설들이 모두 이곳을 통해 용수를 공급받고 있어 방조제가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79년 10월 26일 삽교호 준공식에 참석해 한글로 ‘삽교호’라는 휘호까지 쓰며 방조제위를 당당히 걸어가며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던 박정희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 지역 어른들은 대통령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사후 이 지역 주민들은 `박정희대통령추모회`를 조직해 매년 10월 26일 삽교호 관광지 기념탑 광장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1979년10월26일 저녁 김재규의 총에 운명을 달리했던 그 날 박정희 대통령은 허리 부분을 수선해 늘린 바지와 해진 혁대, 고물 세이코 시계 그리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핀을 꽂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후, 미국의 CIA가 작성한 보고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독단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반면 카리스마와 서민적 이미지를 함께 갖춘 인물이다. 직관력과 통찰력을 겸비하면서 추진력이 강했던 인물이었다. 남한의 실질적 발전은 그로 인해 비롯되었고….(중략) 그의 일반적 생활은 청렴하기 그지없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프로필>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육군성 장관 공로 훈장(AAM) 수여 現 미래한국신문 기자
출처=http://www.futurepolitics.co.kr/Board/PDS/View.asp?TableName=Security&Num=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