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결선생은 낭산 아래에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해서 옷을 백번 기워 입어서 메추라기를 걸어놓은 것 같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그를 ‘동리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중략)한 해가 장차 저물어감에 이웃 마을에서 곡식을 찧거늘 그의 아내가 절구질하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곡식이 있어서 그것을 절구질 하거늘 나만 홀로 없으니 무엇으로써 한 해를 보낼까?” 하니,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대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 있는 것이고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그것이 오더라도 막을 것이 없고 그것이 가더라도 쫓아가지 못하니 당신은 어찌 상심하오? 내가 당신을 위해서 거문고로 절구공이 소리를 내어 당신을 위로해 주겠소!”하고, 이에 거문고를 연주해서 방아소리를 내었다. 세상에 그 소리가 전해져서 그 곡의 이름을 대악(碓樂:방아타령)이라 하였다.
百結先生, 居狼山下, 家極貧, 衣百結若懸鶉, 時人, 號爲東里百結先生.…歲將暮, 隣里舂粟, 其妻聞杵聲曰, 人皆有粟舂之, 我獨無焉, 何以卒歲. 先生, 仰天嘆曰, 夫死生有命, 富貴在天, 其來也, 不可拒, 其往也, 不可追, 汝何傷乎. 吾爲汝, 作杵聲以慰之, 乃鼓琴作杵聲. 世傳之, 名爲
출처 : ≪삼국사기(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1075-1151)
백결선생
신라 자비왕 때의 거문고의 명인(?-?)이다. 평생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예술에 전념하였으며, 빈처(貧妻)를 위하여 <대악(碓樂)>이라는 곡조를 남겼다.
백결선생은 거문고 연주로 가난을 넘어서는 지고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高麗) 중기(中期) 인종(仁宗) 때 왕명(王命)에 따라 1145년 김부식(金富軾)이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등 삼국(三國) 시대(時代)의 古記(고기), 유적(遺蹟), 혹은 중국(中國) 역사(歷史)에서 뽑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본떠 쓴 현존(現存)한 유일(唯一)의 정사(正史)이다. 50권 10책. 본기 28권(고구려(高句麗) 10권, 백제(百濟) 6권, 신라(新羅)ㆍ통일신라(統一新羅) 12권), 志(지) 9권, 표 3권, 열전 10권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