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양기(陽氣)의 탈함(脫陷)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창양(瘡瘍)에서 양기(陽氣)의 탈함(脫陷)은 극벌(剋伐)의 제(劑)로 인하거나 농혈(膿血)이 대설(大泄)하므로 인하거나 토사(吐瀉)한 후로 인하거나 잘못된 입방(入房)으로 인한다.
대체로 궤(潰)한 후나 노(勞)한 후에 원기(元氣)가 휴손(虧損)하면 혹 몽유(夢遺) 정탈(精脫)하거나 맥삭(脈數) 변혈(便血)하거나 외사(外邪)가 허(虛)를 승(乘)하여 입(入)하니 발열(發熱) 두통(頭痛)하고 소변(小便)이 임삽(淋澁)하거나 목적(目赤) 번천(煩喘) 기단(氣短) 두훈(頭暈) 체권(體倦) 열갈(熱渴) 의욕음수(意欲飮水) 투수(投水) 신열(身熱) 증한(憎寒) 오의(惡衣) 양수척족(揚手擲足) 요배반장(腰背反張) 정성(鄭聲) 자한(自汗)하고 맥(脈)이 부(浮) 홍(洪) 대(大)하니, 이는 무근(無根) 허화(虛火)의 가열(假熱)의 증(證)이다.
만약 외한(畏寒) 두통(頭痛) 해역(咳逆) 구토(嘔吐) 이외(耳聵) 목몽(目矇) 사본자유(小便自遺) 사리(瀉利) 장명(腸鳴) 이급(裏急) 복통(腹痛) 옥경단축(玉莖短縮) 치아부통(齒牙浮痛) 지체마비(肢體麻痺) 냉한시출(冷汗時出) 혹 궐냉(厥冷) 신통(身痛) 교설(咬舌) 교순(嚙脣) 설본강경(舌本强硬) 애역(呃逆) 천촉(喘促)하고 맥(脈)이 미(微) 침(沈) 세(細)하면 이는 양기(陽氣)가 탈함(脫陷)한 진한(眞寒)의 증(證)이다.
이들은 위(危)한 후(候)이니 맥증(脈證)을 막론(:無論)하고 단지 1~2가지만 보여도 급히 삼부탕(蔘附湯)을 쓰고 혹 탁리소독산(托裏消毒散)에서 연교(連翹) 백지(白芷) 금은화(金銀花)의 3가미 약미(:味)는 거(去)하고 급히 육계(肉桂) 부자(附子)를 가한 대제(大劑)로 보(補)하여야 하니, 대부분 다시 생(生)할 수 있다." 하였다.
내한(內翰: 한림학사) 양고호(楊皐湖)가 초여름(:孟夏 음력 4월)에 배저(背疽)를 환(患)하였다. 극벌(剋伐)하는 제(劑)를 복용하기를 10여일 하니 만종(漫腫)하고 견경(堅硬)하며 중(重)하여 돌을 진 듯 하였다.
격산구(隔蒜灸)를 50여 장(壯)하니 배(背)가 경(輕)하게 되었다. 육군자탕(六君子湯)에 사인(砂仁)을 가한 것으로 2제(劑)를 하니 연말(涎沫)이 용출(涌出)하고 음식(飮食)이 더욱 소(少)하게 되니, 이는 비허(脾虛)하고 양기(陽氣)가 탈함(脫陷)한 것이다. 온보(溫補)하는 제(劑)로 쓰니, 도리어 구(嘔) 불식(不食)하였다. 다시 앞의 약(藥)을 대제(大劑)로 작(作)하고 부자(附子) 건강(乾薑) 육계(肉桂)를 가하였으나 또한 불응(不應)하였다. 결국 인삼(人蔘) 황기(黃芪) 각 1근(斤) 당귀(當歸) 백출(白朮) 진피(陳皮) 각 반 근(斤) 부자(附子) 1량(兩)을 달여 복용하여 3일에 다하니, 유연(流涎)이 갑자기 지(止)하고 부육(腐肉)이 갑자기 궤(潰)하며 음식(飮食)이 갑자기 진(進)한다. 다시 건강(乾薑) 육계(肉桂) 등의 약(藥)으로 탁리(托裏) 건비(健脾)하니 부(腐)가 탈(脫)하고 창(瘡)이 낫게 되었다.
소참(少參) 사남호(史南湖)의 아내가 여름에 저(疽)를 앓으니, 기발(起發)하지 않고 맥(脈)이 대(大)하면서 무력(無力)하며 발열(發熱) 작갈(作渴) 자한(自汗) 도한(盜汗)하였다.
인삼(人蔘) 황기(黃芪)의 대보(大補)하는 제(劑)로 하였으니, 수족(手足)이 역냉(逆冷)하고 대변(大便)이 부실(不實)하며 천촉(喘促)하고 시(時)로 구(嘔)하며 맥(脈)이 세미(細微)하여 안(按)하면 없는 것 같고 오직 태충(太衝)은 절(絶)하지 않았다. 거듭 인삼(人蔘) 황기(黃芪) 백출(白朮) 당귀(當歸) 복령(茯苓) 진피(陳皮)를 계(計)하여 1근 정도 하고 부자(附子) 5전(錢)을 가하여 수(水)로 달이고 2종(鍾)이 되도록 하였으니, 1복(服)하자 제증(諸證)이 모두 퇴(退)하고 맥식(脈息)이 갑자기 복(復)하였다. 다음 날에 창(瘡)이 기(起)하면서 궤(潰)하였으니, 거듭 앞의 약(藥)을 사용하였다. 4제(劑)를 한 후에 탁리(托裏)하는 약(藥)을 날로 쓰면서 조리(調理)하니 2개월 정도에 나았느니라.
어떤 부인(婦人)이 계묘년(癸卯年) 겨울에 물(物)을 실(失)하여 노(怒)를 발(發)하더니 결분(缺盆) 내(內)가 미종(微腫)하고, 갑진년(甲辰年) 봄에 그 크기가 엎은 사발(:碗)만 하고 좌(左)의 견갑(肩胛)도 종(腫)하며 육색(肉色)은 여고(如故)하였다.
혹자가 침(針)을 하니 선혈(鮮血)이 3완(碗) 정도 출(出)하고 복통(腹痛)하여 추(錐)로 찌르는 것 같으며 설사(泄瀉)가 부지(不止)하고 사지(四肢)가 역냉(逆冷)하며 구토(嘔吐) 오한(惡寒)하고 혹 시(時)로 발열(發熱)하여 절식(絶食)한지 이미 7일이었다. 그 맥(脈)은 홍대(洪大)하고 시(時)로 혹 미세(微細)하였다. 이는 양기(陽氣)가 탈함(脫陷)한 것이었다.
육군자탕(六君子湯)에 포강(炮薑) 3전(錢) 부자(附子) 2전(錢)을 가한 것을 써서 조(早)에 복용하니 오(午)에 이르러도 불응(不應)하였다. 다시 제(劑)에 부자(附子) 5전(錢)을 가한 것으로 하니 숙수(熟睡)하고는 제증(諸證)의 60~70%가 갑자기 퇴(退)하는 것을 느끼고 희죽(稀粥)을 진(進)하였다. 다시 4제(劑)하니 제증(諸證)이 모두 퇴(退)하고 음식(飮食)이 여고(如故)하며 결분(缺盆)이 비로소 통(痛)하였다. 침(針)을 하니 청농(淸膿) 2완(碗) 정도가 출(出)하면서 제증(諸證)이 다시 이르니, 이는 허(虛)가 극(極)한 것이었니라. 이에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에 건강(乾薑) 육계(肉桂) 부자(附子) 각 1전(錢)을 가한 것으로 3제(劑)하니 안(安)하였다. 이 후에 건강(乾薑) 부자(附子)를 각 5분(分)으로 감(減)하고 귀비탕(歸脾湯)을 겸하여 복용하니 50제(劑) 정도에 나았느니라.
(이상은 모두 설안(薛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