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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참아버님의 섭리적 준비시절
1절 자연과 더불어 보낸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하며 얻은 교훈
참아버님께서는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18년간 고향인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주변 20~30리 안팎을 활동 무대로 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는 중요한 기간이었다. 참아버님께서는 궁금증과 호기심과 탐구 열의가 남달랐으며, 전형적인 농촌 환경 가운데서 다채롭고 다양한 정서와 자질을 함양하셨다. 특히 새나 곤충들을 통해 어미들의 새끼 사랑을 관찰하면서 인간 사랑의 이치를 확인하는 등 모든 사물이 참아버님께는 정서적인 친구가 되고 교재가 되었다.
1 자라는 데 있어서 정서적으로 많은 교재를 남겨 주는 곳이 고향입니다. 산을 바라볼 때에도 잊을 수 없는 정서적인 그물이 쳐져 있습니다. 또 개울을 본 때에도 그렇습니다. 개울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살고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전부 배움의 재료로 활용할 때에는 자기가 크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을 공급받는 데에 잊을 수 없는 기본적인 교재가 되는 것입니다. 산하에 있는 동물과 식물, 자연계의 모든 것을 교재로 삼아 자기가 내적으로 자라는 데 있어서 풍요로움을 갖추어 주는 많은 재료를 남기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187-294, 1989.02.12)
2 내가 사는 땅, 내가 보고 있는 주변의 마을과 산등성이, 산 너머의 지역까지 보겠다고 생각하면 어디든지 가 보았습니다. 나는 어릴 때 그랬습니다. 거기에 저수지가 있으면 저수지에 있는 물고기라는 물고기는 다 잡아 보았습니다. 안 잡아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훤하게 압니다. 가재는 물론이고 물고기도 많이 있는 곳이 어디고, 산짐승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조사했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으로 갈 때 어디에 가면 잘 잡힌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271-259, 1995.08.28)
3 나는 매일같이 산에 다녔지 평지에서 보내지 않았습니다. 산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산에 가면 꽃도 많고, 새들도 많고, 산짐승도 많고, 박물관처럼 없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자연에서 배워 만든 것이 많습니다.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나는 보름달이 뜨게 되면 잠을 집에서 안 자려고 했습니다. 솔밭에 갑니다. 내가 자란 거기에는 늑대도 있고 호랑이도 있었습니다. 달밤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큰 소나무 아래에는 솔잎이 많고 풀도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비가 오더라도 거기에 앉거나 누워도 젖지 않습니다.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그런 데 가서 밝은 달을 보게 되면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바람에 큰 나무가 흔들리면 오색 가지 빛깔로 반사됩니다. 거기에 취합니다. 이상은 것은 나무와 나무끼리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사람 말소리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통일원리가 그러한 자연 가운데 다 있는 것이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562-165, 2007.05.06)
4 나는 자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앉아 있다가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큰 나무에 기대 자연 가운데서 낮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물을 뜯어 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서적인 인간으로서 자랄 수 있는 기본적인 교재를 나한테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천에 있는 나무가 다 같은 나무라도 모양 모양이 인상에 남습니다.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추억이 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나의 교재,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87-295, 1989.02.12)
5 우리 동네에 찾아오는 철새를 내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것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철새는 새끼를 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에서 새끼를 칠 것인가, 어째서 여기에 나타났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새가 나타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주변에 둥지가 있든가, 물을 먹으러 왔든가 두 가지일 것입니다. 물을 먹는데 좋은 물을 먹어야 하니까 좋은 물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샘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샘을 찾아봐서 좋은 샘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샘물을 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샘을 찾아서 2주일쯤 지켜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물을 먹으러 올테이까 매일같이 아침부터 가서 지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새를 발견했습니다.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새들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180-245, 1988.08.22)
6 고향에 개울이 있는데 내가 거기에 사는 물고기라는 물고기는 다 잡아 보았습니다. 미꾸라지도 있고, 뱀장어도 있고 별의별 오만 가지 담수고기가 있는데 그것들을 다 잡아 보았습니다. 이들 고기를 큰 못이 있었다면 거기에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집에서도 물고기를 기르는데, 그때 그럴 수 있는 못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는 철이 없으니까 물구덩이를 파서 잡아넣었습니다. 물고기는 어느 물에서나 다 사는 줄 알았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니 물고기가 다 죽어 버렸습니다. 그 사정도 모르고 ‘정성들여서 널 살려 주려고 하는데 왜 죽었느냐?’라며 슬퍼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나는 정적인 사람입니다. 죽은 물고기를 보고도 ‘야, 네 엄마가 울겠구나. 내가 울어줄게.’라고 하면서 혼자 울었습니다. (184-294, 1989.02.12)
7 내가 뱀장어를 잡는 데 있어서 챔피언이었습니다. 바다가 우리 집에서 20여 리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갔다 왔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쪼끔눈이’라고 불렸는데 쪼끔눈이가 뱀장어를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잡아서 찜을 해 가지고 돼지를 먹이고 소를 먹인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손님이 와서 뱀장어 얘기를 하면 나는 준비하라고 말을 해놓고 뱀장어를 잡으러 뛰쳐나갑니다. 식사 때에 맞춰서 뱀장어를 잡아다가 손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그랬습니다. 뱀장어탕, 뱀장어찜을 먹겠다고 타령하다가 실컷 먹게 되는 것입니다. (615-148, 2009.08.22)
8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미물의 동물까지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주인의 자격을 갖추게 될 때에는 당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강아지도 사람의 사랑을 원하고, 참새도 사람의 원하고, 거미도 사람의 사랑을 원합니다. 전부 주인의 사랑을 받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새를 잡는 데에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새라는 새는 못 잡아 본 것이 없습니다. 철새들도 못 잡으면 밤잠을 못 잤습니다. 철부지였을 때에는 그랬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그 새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샘을 파 주었습니다. 내가 정성을 들여 샘을 파놓으면 새가 와서 물을 먹더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면 그것을 먹고,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더라도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173-027, 1988.02.01)
9 동물들도 봄이 되면 다 사랑의 짝을 찾아 헤맵니다. 새들도 그렇고, 곤충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이 되어 곤충이 우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그 우는 소리는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배고파 우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짝을 만나고 싶어서 우는 소리입니다. 신호가 간단합니다. 배가 고프니 친구와 같이 무엇을 먹으러 가자. 그다음엔 좋은 상대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곤충을 참 많이 잡아 보았습니다. 또 안 잡아 본 동물이 없습니다. 살쾡이로부터 너구리, 토끼를 비롯해 다 잡아 보았습니다. 그것은 흥미진진합니다. 그것들이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다 짝이 있었습니다. 전부 쌍쌍입니다. 곤충세계 조류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140-296, 1986.02.14)
10 나는 잣나무를 사랑합니다. 잣나무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리기 때문입니다. 또 잣은 아무나 까먹지 못합니다. 돌멩이를 가지고 깨야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까면 된다 하는 그 방법을 알아 가지고 까더라도 정확히 때려야 껍질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아무나 못 까먹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심더라도 얼어 터져야 순이 납니다. 정반대되는 때에 심습니다. 봄철에 심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심어야 됩니다. 얼어야 됩니다. 본질을 들었다 놓더라도 그 본질의 소성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 환경과 여건에 지배받지 않고 반대로 환경 전체를 폭발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봄을 맞이하여 싹이 나와서 잣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엽송입니다. 이것은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하나의 중앙선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잣나무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나무는 아주 잘 자랍니다. 똑바로 올라갑니다. 뿌리도 똑바르고 순도 똑바로 올라갑니다. (178-119, 1988.06.01)
자립생활의 훈련
참아버님께서는 어린 시절 논갈이, 밭갈이, 모내기, 김매기 등 시골 농사일을 두로 경험하셨다. 특히 벼 콩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잘 키우는 비결, 밭에 거름을 뿌리는 일, 산에서 나뭇잎 긁는 일 등을 익히면서 소년기를 보내셨다. 그리고 양말이나 옷이나 모자도 손수 짜서 사용하는 등 자립생활에 강한 면모를 보이셨다.
11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옷을 모두 벗어젖히고 앞장서서 일을 합니다. 형님 누나들과 경쟁해도 언제나 앞서 나갔습니다. 농촌에서 왕과 같은 승리적 농군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는 그 농사꾼 세계에서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떤 땅에 콩을 심어야 하고 팥을 심어야 하는지를 훤하게 다 압니다. 땅을 척 보고 ‘여기는 고구마가 잘되는데 왜 이것을 심었어요?’라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알아?’라고 합니다. 다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내가 농촌에 가면 농군 중의 농군입니다. 어촌에 가도 그렇습니다. 배도 만들고 참치를 잡는 시스템도 개발했습니다. (220-333, 1991.10.20)
12 나는 양말을 직접 짜서 신고 옷도 직접 만들어 입었습니다. 추워지면 모자도 만들어 씁니다. 우리 누나들한테 뜨개질을 내가 가르쳐 줬습니다. 여러분도 뜻을 위해서는 혼자 살 준비도 해야 됩니다. 팬티 같은 것도 통 광목을 갖다 놓고 본을 떠서 만들어 입으면 딱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버선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야야. 버선을 장난삼아 만드는 줄 알았는데 발에 잘 맞는구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것을 전부 연구해 둬야 합니다. 옷도 떠서 입을 줄 알아야 되고, 양말이나 모자도 만들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혼자 살아도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22-271, 1991.11.03)
13 요즘에 내가 그리운 음식이 있습니다. 내가 안 먹어 본 요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유명하다는 요리는 다 먹어 봤지만, 지금도 제일 그리운 요리가 뭐냐? 옛날에 시골에서는 5월 감자고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감자만 먹다가 보리를 수확해새 보리쌀로 밥을 해먹는 것입니다. 보리쌀도 요즘의 납작보리쌀이 아니고 통보리쌀입니다. 그 통보리쌀을 물에 불렸다가 밥을 하게 되면 숟가락으로 꽉꽉 눌러서 떠도 알알이 삐져 나갑니다. 그것을 고추장으로 비벼서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것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다른 것으로 비비면 맛이 없습니다. 얼큰한 고추장으로 비벼서 불그스름한 것을 한 입 집어 넣으면 이 사이로 자꾸 나옵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우물우물 먹던 것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212-180, 1991.01.06)
14 시골에 가면 참 재미있고도 멋진 일이 많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재료를 수습해서 앞날에 큰 집을 지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농촌에 가면 농사지을 줄도 알고, 바닷가에 가면 어부가 되어 물고기를 잡을 줄도 아는 것입니다. 나는 투망질을 하더라도 새벽에 나갑니다. 이왕 할 바에는 기록을 낸다는 신념으로 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첫닭이 울 때에 나가서 별이 뜰 때까지 그 일을 하고 돌아옵니다. 나는 언제나 세계에서 무엇이든지 꼴찌는 안 된다는 주의입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절대 안 지는 것입니다. 내가 정성들이는 데도 그렇습니다. (050-303, 1971.11.08)
눈물과 정이 많은 소년
참아버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으셨다. 지극히 정이 많고 동정심 많은 소년이었다. 새나 물고기를 잡아 집에서 기르다가 죽으면 어미의 입장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애틋한 동심의 정을 발로하셨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사람과 맞서 싸우기도 하셨다. 밥 굶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부모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다 주셨고, 출산을 했는데도 양식이 없는 집에는 미역과 쌀을 가져다 주기도 하셨다. 명절 때 새 옷도 갖춰입지 못한 어려운 처지의 친구들을 위해서도 깊은 온정을 베푸셨다.
15 여섯 살을 지나 일곱 살이 되면 철이 들 때입니다. 학교에 다닐 나이 때에는 동네 아주머니의 배가 얼마만큼 부르면 언제쯤 아기를 낳을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 대해 조사해서 쌀이 없으면 한 달 전부터 쌀을 갖다 주었습니다. 임신한 아주머니 댁에 미역이 없으면 미역을 사다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못사는 사람들이 모든 비밀을 나한테 다 보고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어떻게 하든지 간에 가을이 되면 밤이라도 따서 나눠 줘야 되고, 옥수수라도 따다가 그 집에 갖다 줘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러한 훈련을 했기 때문에 세계 사람을 다 먹여 살리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431-107, 2004.01.12)
16 옛날에 동네에서 우리 집이 잘살았습니다. 동네에 못 먹고 못사는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조밥이나 보리밥을 싸 와서 먹으면 바꿔 가지고 먹으면 먹었지 그것을 보고 내 밥을 그냥 못 먹었습니다. 또 친국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갈 돈이 없을 때에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개 집 우리 동무 어머니 아버지가 병원에 가게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나이 열한 살쯤 됐을 때 쌀 대두 한 말을 팔아서 누구를 도와주겠다고 아버지한테 선포를 했습니다. 그래 놓고 아버지 몰래 쌀을 한 말을 짊어지고 20리 길을 걸어갔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그것을 새끼줄이나 무슨 줄로 묶어서 메고 가야 할 텐데 그냥 메고 가니까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수없이 헉헉거렸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일생 동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뜻을 위해서 갈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한 것입니다. (058-082, 1972.06.06)
17 나는 겨울에 떨면서 지나가는 거지를 보게 되면 밥을 못 먹고 잠을 못잤습니다.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그 거지를 안방에 데려다가 잘 먹여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네에서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밤잠을 못 잤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내어 주기도 했습니다. (056-035, 1972.05.10)
18 나는 떡을 좋아했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떡을 해 달라고 하면 농사도 지어야 되고 아들딸 시집 장가도 보내려면 옷감도 만들어야 되고 하니 바쁘다며 안 해줍니다. 쉴 새 없이 바쁜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자꾸 먹을 것을 해 달라고 하니까 쉬운 것, 팥법벅떡이나 시루떡 같은 것을 합니다. 큰 시루에다 떡을 해놓게 되면 그것이 사흘도 못 갑니다. 전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동네에 대한 걱정이 있으면 잠을 못 잡니다.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늘이 그러한 심정을 지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동네에 못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잘살게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것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같이 알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성이 그래야 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므로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그 울타리에 기대어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056-035, 1972.05.10)
19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수백 통의 양봉을 했습니다. 양봉을 하게 되면 원판대기를 딱 붙여 놓는데, 그렇게 해놓으면 거기에 벌들이 둥지를 틀어서 꿀을 저장할 곳을 만듭니다. 집은 스스로 만듭니다. 그 원판이 비쌉니다. 그것을 캐비닛 같은 데에 쌓아 놓는데 그것을 찾아서 전부 짓이깁니다. 시골에 가게 되면 기름이 없어서 불을 못 켜는 집이 있습니다. 그런 집에 석유는 못 주더라도 촛불이라도 켜라고 하며 그것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부 짓이겨서 일일이 배급을 주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돈으로 얼마 하는지 내가 철부지였으니까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혼쭐이 났습니다. 혼쭐이 났지만 절대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안 합니다. 아버지가 중간쯤 가다가 끝내더라는 것입니다. (163-159, 1987.05.01)
20 한 장애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눈이 안 보이고 부인은 신체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가 동네에서 모범적인 부부였습니다. 언제나 부인이 절뚝거리면서도 지팡이를 짚고 남편을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입도 틀어졌고 오만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그 부인을 남편이 미인 이상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어디 가서 살 데가 없으니까 반드시 우리 방앗간을 찾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적만 있기 때문에 내가 이불도 갖다 주고 담요도 갖다 주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슬퍼서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420-211, 2003.10.11)
21 나도 여러분같이 발랄하고 희망에 벅찬 청춘시대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 뜻을 알기 전부터 불쌍한 사람의 친국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사는 사람한테 관심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이 있더라도 잘살고 드센 집 아이들과는 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네에서 밥을 못 먹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내가 잠을 안 자고라고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고 모든 사람의 친구 이상의 길을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17-018, 1982.01.30)
불요불굴의 성격과 예견 능력
참아버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집요하게 한길을 파고드는 성격과 악착같은 승부근성의 소유자였다. 옳다고 판단하면 절대 미루거나 기다리지 않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셨다. 이렇듯 어린 시절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완성해야 될 참부모로서의 자질과 품성을 기르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참아버님은 어린 시절부터 인근 사람들의 병고와 재난을 예견하는 등 특별한 영적 감별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다.
22 어머니 아버지, 동네 전부가 나를 믿고 있었습니다. 문씨 가문의 무섭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씨름이든 권투든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3등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1등을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1등 하는 사람의 두 배, 세 배 노력하는데 왜 1등을 못합니까?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인생문제 종교문제의 근본, 뿌리를 파서 뒤집은 것입니다. 성격이 한번 손을 대면 끝나기 전에는 밥 먹는 것, 잠자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탕감복귀에 제일 필요한 성격입니다. (319-112, 2000.03.17)
23 나는 울기 시작하면 한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명이 ‘하루울이’였습니다. 하루 종일 울고 나야 그치기 때문에 하루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또 우는 것도 가만히 앉아서 울지 않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나와 가지고 구경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해서는 자던 사람들까지 깨게끔 울었습니다. 큰일 난 것처럼 계속 울었습니다. 목이 붓고 쉬게 되어서 나중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울어도 가만히 앉아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훌떡훌떡 뛰면서 상처가 나서 살이 터져 피투성이가 되게 하면 울었습니다. 그만하면 내가 어떤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가만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한번 한다고 결심하면 죽기 전에는 놓지 않습니다. (050-297, 1971.11.08)
24 나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건강하기 때문에 활동 반경이 보통 사람의 3배는 되었습니다. 눈이 내리게 되면 잠을 안 잡니다. 밤에 족제비 사냥을 나가는 것입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지독한 사람입니다. 벌써 10대를 넘어서는 어머니 아버지를 조종했습니다. 그만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잘못했다가는 걸려 들어가는데 그 뿌리에 어머니 아버지가 항복 안 하고는 안 되었습니다. 나는 뼈가 부러져도 양보를 안 합니다. 죽어도 양보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를 하라고 하는데도 대답을 안 합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잘못했다고 대답을 합니까? (136-132, 1985.12.22)
25 나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악착같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내가 싸워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으면 석 달, 넉 달 동안 잠을 못 잔 사람입니다. 그렇게 악착같은 사나이입니다. 무섭다면 누구보다 무서운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절대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져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해서 꼭 이기지 질 것은 생각도 안 합니다. 벌써 질 것, 이길 것을 다 압니다. 내가 손대는 날에는 죽기 아니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056-284, 1972.05.18)
26 나는 성격이 굉장히 급한 사람입니다. 욕을 한마디 먹더라도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누구한테 한 대 맞게 되면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또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런 기질과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슨 운동을 해도 내가 이기고 만다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머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 나에게 비참한 경지, 이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경지가 몇 십번, 몇 백번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창피하다면 그 이상 창피할 수 없는 경지가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극복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불같은 성격이 있을 터인데, 성격대로 한번 하게 되면 세계를 전부 쓸어버릴 수 있는 입장에 있는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꿋꿋이 참으셨기 때문에 세상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065-328, 1973.03.04)
27 내가 젊어서는 내 나이 또래와 씨름을 해서 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 동네의 나보다 세 살 더 먹은 사람과 씨름해서 내가 한번 졌습니다. 시골에서 산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봄철이 되어 물이 올랐을 때 껍질을 벗기면 소나무 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집니다. 그래서 봄철에 물이 오를 때 자꾸 휘면 껍질이 떨어지니 그것을 쭉 벗기는데, 이것이 질깁니다. 이 아카시아나무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너를 내가 깔고 앉기 전에는 밥을 안 먹는다!’이래 가지고 6개월 만에 그를 타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139-052, 1986.01.26)
28 내가 여덟 살 때부터 누님, 사돈의 팔촌, 동네방네 사람들까지 시집 장가갈 때 사진을 보고 결혼을 많이 시켰습니다. 어렸을 때에도 내가 ‘오늘 비가 온다.’고 하면 비가 왔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이내에 이 동네에서 사람이 하나 죽는다.’고 하면 죽었습니다. 그러한 일화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려는 사람이 나한테 상대 될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야야야, 이것 좀 봐 다오. 좋겠니, 나쁘겠니?’라고 묻습니다. 척 보고 ‘나빠.’라고 하면 반드시 나쁜 것입니다. 보는 것도 오래 안 봅니다. 보고서 ‘좋아.’라고 하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13-236, 1981.05.08)
29 내가 우리 동네에서는 오산집 작은아이로 통했습니다. 눈이 작았기 때문에 동네에서 ‘오산집 쪼끔눈이’라고 하면 나인 줄 압니다. 눈이 얼마나 작은지 어머니가 나를 낳고 눈이 없다고 하면서 한참 들여다봤다는 것입니다. 눈을 벌려 보니까 깜빡깜박 해서 안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먼 데를 볼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까지 해부해서 논리적으로 해부학을 만든 사나이입니다. 이런 가치를 알게 되면 세계가 나만 따라 다니려고 할 것입니다. 나를 찾아보려는 행렬이 현해탄을 건너 태평양 복판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204- 089, 1990.07.01)
30 내가 소도 볼 줄 압니다. 판매장에서 소를 보고 ‘저 소 나쁘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 소는 못 파는 것입니다. 소는 목덜미가 잘 생겨야 되고, 앞발이 잘생겨야 되고, 뒷모습이 잘 생겨야 되고, 허리가 잘생겨야 됩니다. 이 네 가지가 잘생겨야 좋은 소입니다. 옛날에 아버지가 소를 사러 가면 내가 따라가서 감정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모르는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니까 ‘너 그거 어떻게 알아?’라고 했습니다. 나는 벌써 복중에서부터 배워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0-138, 1982.10.05)
31 내가 옛날 어린 시절에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떤 느낌이 오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이렇다.’라고 생각될 때, 그것이 진짜 맞는지 안 맞는지 따라가면서 타진해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이 이랬지요?’라고 물어봅니다. 그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벌써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런 사람이지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알지요?’라며 놀랍니다. 틀림없이 맞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저 방에 누가 있느냐, 좋은 일을 하고 있느냐 나쁜 일을 하고 있느냐, 좋은 사람이 살고 있느냐 나쁜 사람이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040-298, 197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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