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6
더워지면 열리고 추워지면 닫히고
겨울이 되면 창문을 열어놓기 어렵다. 찬공기가 유입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내온도가 내려가면 그만큼 난방비가 더 들기 마련이다. 반면 여름날 열대야가 지속될 때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게 되지만 새벽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다시 창문을 닫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또다시 더워지면서 창문을 열게 된다. 번거로움의 연속이다. 실내 온도가 더워지면 저절로 창문이 열리고 추워지면 저절로 닫히는 똑똑한 창문은 없을까.
일정온도 넘나들면 햇볕 조절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창문 기술이 최근 선보였다.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것은 아니지만 창문의 색깔을 통해 온도를 조절하는 이른바 스마트 윈도(Smart Window)다. 스마트 윈도는 여름철 맑은 날에는 창문을 어둡게 해서 실내에 들어오는 볕을 차단함으로써 냉방 효과를 거두고, 겨울철 흐린 날에는 창문을 투명하게 해서 실내온도를 높이고 방 안을 밝게 한다. 햇빛이 너무 밝으면 창문 색을 어둡게 만들어 선팅 효과가 나고, 어두우면 색깔을 밝게 바꿔 빛이 많이 들어오게 하는 원리이다. 한마디로 바깥 기온에 따라 빛과 열을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차단해 창문의 색깔이 변한다는 얘기다. 이를 이용하면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탁월한 보온 효과를 낼 수 있다.
▲ 미국 콜로라도주 골든의 국가재생에너지연구실(NREL) 사무실에 설치된 레이븐브릭사의 스마트 윈도. / ⓒ 레이븐브릭사 홈페이지
스마트 윈도 기술을 개발한 곳은 미국의 나노기술 기업인 레이븐브릭(RavenBrick). 이 기업이 개발한 스마트 윈도의 기본 원리는 나노기술을 적용한 ‘상(相)변화 물질(PCM·Phase-change material)’을 통해 태양열을 제어하는 것이다. 상변화 물질은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하다가 온도가 높아지면 액체로 변하면서 열을 흡수한다.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로 변하면서 열을 발산한다. 이를 나노입자 등의 재료를 사용해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하면 태양열 온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창문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PCM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처음으로 우주복 등에 활용한 ‘에너지 조절 잠열’ 소재이다. 잠열(潛熱)이란 물질이 얼어서 녹을 때 또는 액체에서 기체로 바뀔 때 흡수·방출하는 열이다. 물의 경우 섭씨 0℃ 얼음에서 물로 바뀔 때 1g당 80㎈(335J)의 잠열을 흡수하는데, 이것은 같은 양의 섭씨 0℃의 물을 80℃까지 올릴 때 필요한 열량과 같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다. 고체에서 액체로 녹거나 반대로 얼 때 발생하는 이러한 열을 원하는 목적에 맞춰 손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보통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셀(cell)에 충전해 사용한다.
스마트 윈도의 상세한 구조는 이렇다. 가장 바깥 유리를 통과한 태양열은 그 안쪽에 있는 열 반사 필터(Thermoreflective Filter)를 지난다. 필터 다음은 얇은 공기층이 형성되도록 공간을 둔다. 그 다음 자외선 차단 유리를 통과한 햇볕이 상변화 물질을 지난다. 이 특수 소재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온도 편차를 능동적으로 조절해 온도를 일정하게 맞춘다. 고체에서 액체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면서 주변 온도를 저온으로 오랜 시간 유지한다. 즉 자체적으로 주위의 열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출하는 것이다.
버튼 하나로 투명·불투명 조절
▲ 스마트 윈도에 적용되는 상 변화 물질(PCM).
스마트 윈도는 버튼 하나로 유리창을 투명하게 하거나 또는 불투명하게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특히 햇빛의 투과율을 자유롭게 조절함으로써 난방·냉방·조명과 관련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이러한 똑똑한 창문이 상용화될 경우 당연히 차세대 제품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레이븐브릭이 개발한 스마트 윈도의 에너지 제어 기술은 공짜로 제공되는 태양열을 적절하게 이용해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무공해 저탄소로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데도 의미가 크다. 또 PCM은 실내외 어디서든 찬물에 담그면 30초 만에 수시로 꽁꽁 냉각되는 기능을 갖고 있어 얼음팩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자동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계속 문을 닫고 산다면 실내의 환기는 어떻게 될까. 또 황사나 폭우가 심해 창문을 열 수 없는 날, 실내 공기는 어떻게 바꿀까. 이 문제 또한 걱정 없다. 스마트 윈도는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환기가 된다.
스마트 윈도는 창틀 안에 필터가 내장돼 있어 깨끗한 공기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이물질이나 빗물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집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자동 환기가 이뤄진다. 창틀의 필터를 통해 집안과 바깥 공기가 순환된다. 한마디로 공기청정기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이는 외벽이 유리로 이뤄진 아파트나 환기가 어려운 주상복합건물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여름철 냉방 손실과 겨울철 난방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문의 변신은 진화 중
이 밖에 18㎏의 TNT(폭발성의 화학물질인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를 15m 앞에서 터뜨려도 견딜 수 있어 군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방폭창(防爆窓)’, 창문틀에 특수장치를 달아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도 밖에서는 열 수 없도록 한 ‘안전 창’ 등이 개발된 상태이다. 방폭창은 외부 폭발에 의한 폭압이나 돌풍으로부터 실내 인원의 신체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작된 특수 창호이다. 두 장의 유리 사이에 특수처리를 해 폭발 시 유리조각이 창문으로부터 1m 이내에 잔류하거나 이보다 먼 거리로 튀는 것을 막는 고도의 기술이다.
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창문의 진화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세계는 다양한 창문을 연구 중이다. 무의식중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이 들어도 집안의 산소량을 감지하여 산소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열리는 창문이 나노기술을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런 창문은 한여름 밤 무심코 잠든 많은 이들의 생명을 지켜줄 듯하다.
또 밤 열두 시가 되면 스르륵 닫혔다가 다시 아침 일곱 시가 되면 스르륵 열리는, 시간에 맞춰 자동 개폐되는 창문도 등장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열에 반응해 자동으로 활짝 열려지는 기능도 추가된다.
현재 세계의 창문시장은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저에너지 소비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어떤 물질을 통해 창문의 카멜레온 변신이 이뤄질지 자못 궁금하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