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무거동에서 신장개업한 곳에서 쭈구미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좋은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파, 다음날 저녁모임으로 번개팅을 했다. 그러나 저녁 6시도 안되어서 도착했는데 식당측에서 오늘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음식이 떨어졌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일이.....,
할 수 없이 생선구이집으로 약속 장소를 변경한다. 예약하진 못했지만 조금 이른 저녁시간(18:10)인지라 자리가 있다. 다행이다. 앉자마자 생선구이에 소주를 시킨다. 생선구이는 칼치, 고등어, 가자미, 이면수, 빨간고기로 다양하고 맛도 좋다. 자갈치시장 생선구이집보다 맛이 나은 것 같다. 밑반찬도 정갈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한 잔까지 곁들이니 얼마나 신나고 좋은 일이겠는가.
아 기분 좋다. 목 젖을 간지르며 넘어가는 한 잔의 소리가 예술이다. 점점 알딸딸해진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태화강 고수부지로 향한다. 태화강 대숲에서 남량축제를 한다고 하니 저녁산책을 겸해 한바퀴 돌기로 했다.
"귀신의 집"은 입장권이 매진되어 구경하지 못하고, 광장에서 진행중인 이벤트행사만 구경한다.
귀신체험 행사하는 곳에서 귀신용 소복을 입어본다.
모자까지 쓰고 "으-엉" 큰소리로 소리쳐보아도, 무섭기는 커녕 애교만점의 아줌씨만 변함없이 보일 뿐이다.
코리아 디저트란 설빙도 맛본다. 최근 중국에서 짝퉁 설빙이 등장했다고 해선지 맛이 더 좋았다.
오늘같은 날만 계속 있게 하소서 (2015.8.15)
<두번째>
오늘은 번개팅은 아니다. 이미 4일 전에 점심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식사 후 일정에 대해선 결정된 일이 없기에 번개팅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오늘 점심은 양산 소재지에 있는 남도밥상이다. 소재지가 양산으로 되어 있지만 울산과 부산간의 국도에 있다. 오래된 집이지만 네비에는 안 나온다. 그래도 한창제지 바로 옆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게장보쌈인데 게장이 무한리필이다. 간장게장은 물론 양념게장도 맛이 있다. 전 판을 한번 이상씩 리필을 하고나니(밥도 두그릇 추가했음) 나중에 일어서지지 않아, 한참동안 용을 쓰고난 뒤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런데 큰일이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또 먹고싶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북구 송정호수공원으로 향한다. 울산대학교 앞을 지날 때는 소낙비가 거세게 내리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왔더니 이렇게 하늘이 맑다.
처음 송정이라해서 부산 해운대 방향인줄 알았는데 울산 북구다. 정확한 명칭은 울산 북구 송정 박상진 호수공원이다. 왜 이렇게 긴 이름을 붙였을까. 오는 길에 박상진 생가를 보긴했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게 홍보에 나을썽싶다, 아래 보이는대로 지금은 산업로배면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라서 주차하기도 진입하기도 다소 힘이들지만, 어떻게 알고 오는지 저렇게 많은 차들이 들어와 있다.
박상진(朴尙鎭) .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고헌(固軒). 울산 출신. 승지 박시규(朴時奎)의 아들로, 큰아버지인 교리 박시룡(朴時龍)에게 입양되었다.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19세 되던 1902년부터는, 의병장 출신으로 서울 평리원판사로 있던 허위(許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 양정의숙(養正義塾) 전문부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전공해,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되었으나, 사퇴하고 독립운동에 나섰다니 대단한 수재였던 모양이다.
1912년 대구에 상덕태상회(商德泰商會)를 설립해 독립운동의 연락본부로 삼았다. 1915년 1월 안일암(安逸庵: 현재 대구의 安逸寺)에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의 인사와 합작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으로 취임하였다.
대한광복회는 전국과 만주 각지에 조직을 가지는, 1910년대 국내 최대의 독립군 단체로 성장하였다. 그는 곳곳에 곡물상을 설립해 연락거점으로 삼고, 일제 타도를 추진하는 행동강령으로 비밀·폭동·암살·명령을 시달하였다.
박상진이 이끄는 대한광복회는 이념에 있어서는 근대 국민국가의 공화주의를, 방략에 있어서는 무장 혁명노선을 표방하였다.
친일부호 처단을 여러차례 계획하였다. 1917년 11월에는 칠곡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하였고, 1918년 1월에는 충남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를 그리고 전남 보성군의 양재학, 낙안군의 서도현을 처단하였다. 영화
<암살>의 한 장면과 같았다.
그러나 이종국(李鍾國)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1918년초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되고 동료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아 순국했다. 1960년 울산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천안에는 광복회기공비가 건립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17년 만주부사령으로 파견되는 백마 김좌진 장군을 위한 전별연에서 읊은 전별시이다.
가을 깃든 압록강 너머
그대를 보내매,
쾌이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주내,
칼집 속의 용천검 빛 북두성에
이르겠네,
이른 시일 내 공을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그 곧은 언약 만큼이나 튼튼하게 만들어진 제방 옆에 서 본다.
환한 미소가 더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다.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에 다행히 남자로 태어났건만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에 가려하니 청산이 비웃고 녹수가 찡그리네" 이 시는 독립 운동을 하다 일본에 체포돼 사형 판결을 받은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쓴 옥중 절명시다.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경술국치로 조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편안한 부귀영화의 길을 포기하고, 그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을 걷는, 진한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얼마전 <암살>이라는 영화를 본 터라, 느낌은 더 진하다.
이 곳은 구 송정저수지를 환경친화적으로 개발하여 시민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곳으로, 박상진의사 벽화, 미로 물정원 등 송정못을 중심으로 한바퀴를 재미있게 돌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공원 전체를 한바퀴 도는데는 총 3.6km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수에 비친 또 다른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 하듯, 한평생 함께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닮아가고 있다.
삶이란 폭풍우처럼 거셀 때도 있었지만, 품에 안기다보면 이렇듯 수줍은듯 몸을 비틀게되는 간드러진 시간도 있었다.
행복이란 기운은 때를 정해놓지 않고, 아무 때나 이렇게 우리들 가슴팍에 파고드는 것이다.
하늘은 소낙비라도 한차례 내릴 기세로 빗방울이 들지만, 아랑곳않고 가져온 과자와 포도를 먹는다.
조금 내려오니 공연장이다. 날씨만 맑았어도 제대로된 노래 한 곡쯤 불렀을텐데, 대충 폼만 잡아본다.
취한듯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호수 위를 걷는다.
솔향을 품은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한가득 배부르게 마시니, 마음이 저절로 흐믓해진다.
공원 산책길 중간 중간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잠시 쉬는 막간을 이용하여, 화려한 공작새 꼬리도 붙여본다.
상하관계 또는 갑을관계가 되면 싫어도 머리 숙일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숙이지 않으면 당장 내 머리가 부딛힌다.
소원샘이다. 우물바닥에 글자들이 놓여져 있다. 처음 보여지는 글자로 만들어진 단어가 소원대로 이뤄진다기에 열심히 희망의 단어를 조립해본다.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은 가져왔지만 웬지 우산을 펼치고 싶지 않다. 조용한 오후의 호수가 내리는 비를 옴 몸으로 맞이하듯, 나도 그냥 그대로 비를 맞고싶다.
박상진 의사의 호(고헌)를 딴 고헌정(固軒亭)이다, 바닥은 요철형태로 만들어져 미끄럼 방지효과가 있고, 구멍이 뚫려있어 통풍도 자유로와 정자 안이 쾌적하다. 그리고 밖을 쳐다보노라면, 호수 위로 스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물결에, 내가 았는 정자가 배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난다. 절로 웃음지게 하는 멋진 곳이다.
이 멋진 곳을 안내해 준 안형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비도 묘하게 우리가 움직이기만 하면 그냥 뚝 그치니 이 또한 감사드릴 일이다.
조금 더 걸어나오니 선상파티라도 할 수 있는 멋진 휴식처가 나온다. 며칠 전(9/1)에 문을 연 휴게쉼터가 호수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곳이다.
저수지 물이 월류하여 넘치는 제방 위로도 목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만나는 행운이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늘 이 호수공원과의 만남은 뜻밖의 행운이다. 로또같은 재물만 행운이 아니다. 멋진 곳에서 마주하는 건강한 산책 또한,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행복의 행운인 것이다. 호수 전체를 배경으로 서서 행운을 한번 더 가슴에 담아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문수산(울산대 뒤) 입구로 가서 잔치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했으니 저녁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따라 신나게 먹는다. 물론 막걸리에 파전도 곁들여서.....,(2015.9.5)
또 다른 번개팅을 기대하면서, 두 번의 번개팅 이야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