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432 //고자도 안식일을 지키면 영원한 이름을 받게 된다는 예언의 의미는?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사 56:3~5)
'고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리스는 성경에서 '시' 혹은 '관'으로 번역된다. 그들은 주로 왕의 지척에 거하며 주요 직무를 수행하던 왕궁의 고급 관리이다(에 1:10, 12, 15; 단 1:3).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지위와 상관없이 다만 생식 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킨다. 신명기 법에 따르면 이들은 총회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신 23:1)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그들은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3절)는 권고와 약속을 받는다. 하나님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4절)하리라 약속하신다. 고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희소식이 될 이 약속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기념물과 영원한 이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을 가리켜 마른 나무라고 하지 말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한탄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성 기능이 회복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런 약속의 근거로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풀어 가려면 이 본문에서 '고자'가 왜 언급되었는지부터 과악하여야 한다. 이 본문에서 '고자'는 2절의 '사람'과 6절의 '이방인'과 같은 맥락에서 언급된다. 그것을 표로 살펴보면 확연하다.
사람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2절)고자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4절)이방인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6절)
이 본문에 언급된 '고자'는 '이방인'과 함께 율법의 제약을 받는 이로 언급되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언급된 것은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제약 때문이다. 본문은 메시아 시대는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던 율법의 제약이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메시아 왕국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인종적인 조건이나 고자라는 육체적인 조건에 의한 제약은 사라지고 오직 안식일을 지키며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는 누구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 본문에서 먼저 '사람'을 언급한 다음 사실상 같은 내용을 반복하며 '고자'와 '이방인'을 언급한 것은 그들 모두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고자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면 그들이 받게 될 축복이 무엇인가? 바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 곧 "영원한 이름"(5절)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자식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상에서의 궁극적 행복은 자신의 성(姓)과 기업을 물려줄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었다. 후손을 남길 수 없는 히브리인 고자는 이름이 지워지고 기업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사실상 이방인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방인이든 고자이든 그와 연합한 자들은 자녀보다 더 좋은 것 곧 “기념물과 영원한 이름"(5절)을 받는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이기는 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흰 돌 위에 기록한 "새 이름"(계 2:17)과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계 3:5)할 이름과 통한다. 이 약속의 초청에는 오직 의와 진리에 대한 순종만이 중요하다. 이방인이냐 아니냐 신체적 결함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이 약속은 결코 그들의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방인이 하나님과 연합한다고 하여 히브리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래서 본문은 그들을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3절).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6절)이라고 부른다. 이방인은 원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엡 2:12)인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같은 축복이 주어진다. 고자도 같다. 그들이 여호와와 연합한다고 하여 고자의 신체적 결함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고자이지만 아무런 제약과 차별 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다.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는 말은 그에게 생식 기능이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고자이기에 받는 제약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총회에서 배제되었던 이들이 '어떤 조건으로 이런 축복에 참여하게 되는가? 본문에 묘사된 모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고(2, 4, 6절), (2)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고(2절), (3) 여호와께 연합하고(3, 6절), (4) 여호와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고(4절), (5)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잡고(4, 6절), (6)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6절), (7) 여호와의 종이(6절) 되는 것이다. '연합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와는 성소 봉사를 책임진 레위의 어근이다. 이것은 그 직무가 이제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것을 시사한다.
이 여러 사항 중 단 하나의 구체적인 요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이다. 그 하나가 바로 안식일이다. 이 본문에서 '안식일'은 이방인이 참하나님을 섬기는 언약의 관계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표징으로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안식일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날은 인간이 하나님을 그들의 창조주와 구속주로 인정하는 증거요 그들이 그분께 즐겨 순종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창조주이며 모두를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였기에 그들 모두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이방인과 고자에 대해 언급하는 이 장이 사실은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을 향한 권고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1절의 "정의를 지키며 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신다. 그렇기에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에게 '정의'와 '공의'를 지키도록 요청한다. 여호와의 약속인 메시아 시대의 도래가 가까울수록 이스라엘도 더 신실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결코 그들만을 구원하고 축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을 통하여 세계 만민에게 구원의 복을 나누기 위함이다. 그러하였기에 축복의 통로가 된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