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전 예배 중단과 신앙 부흥: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게 배우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에스겔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교회를 제대로 못 가시니까 정말 이상하시죠? 저도 이게 웬일인가 싶고, 언제 끝나나 싶으면서 이상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영적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정신을 바짝 차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 역사에서 바벨론 포로 사건은 설명하기 어려운 대충격의 사건입니다. 유대 백성들의 정신과 삶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신학적 대재앙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면서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도 변화됩니다. 전에는 "성전에 계신 하나님" 하다가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다니엘서를 보면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어려움 속에서 깊이 살펴보면 그런 변화된 내용들이 나타납니다.
바로 그것이 어제 첫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인류 역사를 내다보는 다니엘의 계시입니다. 포로 된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뜻을 정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예절을 잘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타협 없이 동일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허락하셨습니다. 마침내 세계 역사와 구속사의 큰 흐름을 확인하게 된 아름다운 계시가 포로기에 다니엘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성전이 무너지고 예배가 중단됐던 그 시절에 다니엘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다니엘서를 통해 세계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다니엘과 비슷한 연령대의 또 다른 젊은이 에스겔이 바로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간 그 사건을 통해 놀라운 비전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새로운 비전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시대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한 말씀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성경 자체에서 "성경을 연구한다"라는 표현이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에스라의 사역과 함께 언급됩니다. 또한 그 이후 포로 귀환 공동체에 의해 제2성전이라 불리는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됩니다. 이 네 가지 사실은 성전 예배가 중단된 상황을 오히려 영적 각성과 신앙 부흥으로 되돌리는 전환의 기회로 만든 포로 공동체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죄 이후 예배의 중심은 성소였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법궤는 사라졌으며 제사장들은 포로가 되니 신앙적 공황 상태에서 그들은 더 깊은 신학적, 신앙적 세계로 들어갑니다.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에스겔을 중심으로 그 모습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다섯세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달 초다섯세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겔 1:1~3)
에스겔 1장 1~3절에 나타나 있는 몇 구절 속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첫 표현인 "서른째 해"가 과연 뭘까요? 이 서른째 해가 뭔지에 대한 해석이 무려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중에서 개연성 있는 증거를 가지고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1장 1~2절에 보니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에스겔이 포로가 된 시기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째입니다. 여호야긴은 언제 사로잡혔을까요?
열왕기하 24장 10~16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의 2차 침공 때 여호야긴 왕과 지도자들,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비천한 자 외에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제 우리는 느부갓네살이 1차 침공을 했을 때가 여호야김 왕 3년(B.C. 605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2차 침공은 B.C. 597년으로, 여호야긴 왕과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3차 침공인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에스겔 1장 1절의 "서른째 해"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에스겔의 나이가 30세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25세에 포로로 잡혀와 5년이 지난 30세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1차 포로 때 18세이던 다니엘이 잡혀가고, 17세이던 에스겔이 그 장면을 목도한 후, 8년 뒤 25세의 나이로 2차 포로가 되어 잡혀온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 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그로부터 6년 뒤인 36세 때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포로지에 있던 동포들을 향한 경고와, 멸망 후 끌려온 동포들을 향한 위로와 회복의 기별로 나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 출신입니다. 에스겔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다'입니다. 민수기 기록에 따르면 레위인이 제사장 봉사를 시작하던 나이가 30세입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 봉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25세에 바벨론으로 끌려온 것입니다. 올림픽을 위해 수년간 연습했는데 참가를 못 하게 된 선수처럼 깊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와 5년이 지난 시점에 있던 '그발 강 가'는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일종의 게토(Ghetto)였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현장이자, 바벨론 사람들이 "너희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온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조롱하던 현장이었습니다. (시 137:1~3)
바로 그 절망과 조롱의 현장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납니다. 네 생물과 바퀴 달린 보좌의 비전이 에스겔에게 주어집니다. 가장 비참한 장소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가장 영광스러운 현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에스겔의 봉사는 예루살렘 멸망 전 제1기 봉사와, 멸망 후 제2기 봉사로 나뉘며 총 봉사 기간은 약 22년입니다. 제1기 기별은 "곧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거역시와 거짓 예언에 빠져 있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는 냉혹한 기별이었습니다. 이후 실제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제2기 기별을 통해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과 40~48장의 '새 성전 비전'을 제시하며 희망을 선포합니다.
에스겔서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1~32장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이고, 33~48장은 여호와의 영광이 돌아오는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은 말로 하는 설교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토판에 예루살렘을 그리고 에워싸는 행동, 좌우로 누워 죄악을 담당하는 행동, 머리카락을 깎아 셋으로 나누는 행동, 아내가 죽어도 슬퍼하거나 울지 않는 행동 등을 통해 기별을 전했습니다. 포로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말보다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기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전과 관련하여 에스겔 11장 16절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성전이 모든 것이었던 시대에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소라는 공간적 개념을 넘어, 당신 자신이 친히 백성들의 성소가 되어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성전 건물이 무너졌다고 낙심하지 마라. 너희가 성전에 오는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냐? 내가 곧 너희의 성소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21장 22절의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닌, 하나님 임재 자체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중 예배가 제약받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의 성소가 되겠다"고 하신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에 가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을 성전으로 모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은 영적 생기를 잃어버린 포로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를 이루고, 메시아(다윗 왕)를 통해 영원한 언약과 회복을 이루실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에스겔 40~48장의 새 성전 환상에서는 떠나갔던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해 다시 성전으로 들어옵니다. 성전 문문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살리며, 강 양쪽에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는 환상을 봅니다. 이 환상은 창세기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및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 생명수 강가와 연결됩니다.
에스겔서에 무려 70번가량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매여 계신 분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지에도 계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맨 마지막 구절은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고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좌절의 현장이었던 그발 강 가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모이기 힘든 우리의 일상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말이 아닌 행동과 삶으로 기별을 전하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핵심 요약 정리
에스겔의 부르심과 배경
제사장 가문 출신의 에스겔은 25세에 2차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와, 레위인의 공식 봉사 연령인 30세에 그발 강 가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비참한 포로지(그발 강 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 환상을 보며, 절망의 장소가 영광의 현장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기별의 두 축 (경고와 회복)
제1기 사역 (멸망 전): "곧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헛된 희망을 경계하고, 예루살렘의 죄악과 완전한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제2기 사역 (멸망 후): 절망에 빠진 동포들에게 마른 뼈 환상(겔 37장)과 새 성전 비전(겔 40~48장)을 통해 영적 생기와 메시아를 통한 완전한 회복의 소망을 제시했습니다.
행동 설교와 삶의 기별
"내가 너희에게 성소가 되리라" (공간을 넘어선 하나님)
성전이 파괴된 무성전 시대에 하나님은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겔 11:16)고 약속하셨습니다.
성전이라는 물리적 건물보다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가 본질임을 알려주셨으며, 이는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 비전과 연결됩니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에스겔서에 70여 회 나오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선언처럼,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고난과 포로의 현장인 바벨론에도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에스겔서의 최종 결론인 '여호와 삼마'처럼, 예배당에 모이기 어려운 시기일수록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삶으로 신앙을 증명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