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한복음 12장, 비교적 긴 장이니까요 요한 내용을 좀 살펴보고요. 12장이 이제 요한복음의 제1부를 마무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제 13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요한복음 1장부터 12장 전체를 정리하고 요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2차시에 함께 다뤄보도록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자, 요한복음 12장 1절부터 8절에는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잠깐 말씀드렸던 소위 그 향유 옥합 사건이 있지요. 그 사건을 지난주에 다뤘습니다만 조금 더 보완하고 나머지 내용들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2장 1절 유월절 전에, 사실 이 12장부터요 각각의 장이 언급하고 있는 그 시간 세팅, 시간 정보에 대해서 이제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절을 보세요. 12장 12절에 보면 '그 이튿날에는' 그러잖아요. 역시 시간 정보가 제공되어 있지요. 그다음에 13장 1절을 보세요. 13장 1절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지금 12장부터 뭔가 유월절을 중심으로 해서 타임 세팅(시간 배경)을 제공해 주면서 요한복음이 기록됩니다.
자, 제가 요한복음 강의를 시작하면서 요한복음이 크게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했었지요. 요한복음 1장 1절로 18절까지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이고,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12장 마지막 절까지가 '표적의 책'이라 불린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요한복음 1장부터 12장까지가 제1부이고, 요한복음 13장 이후부터가 요한복음의 제2부인데요. 사실 요한복음 13장부터 이름하여 우리가 패션 위크(Passion Week), 수난 주간이라 부르잖아요. 그 수난 주간이 시작을 합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여러분에게 의문이 생길 수 있어요. 분명히 12장 1절에서 '유월절 엿새 전에' 이렇게 해서 12장 1절부터 유월절을 중심으로 이미 시간 세팅이 시작이 되는데, 왜 12장과 13장을 구분해서 12장은 요한복음 제1부의 끝부분에 해당되고 요한복음 13장부터 제2부, 저 '영광의 책'이 시작된다고 말하느냐? 제가 '영광의 책'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드리지 않고 단어만 그렇게 본문을 찾아서 설명해 드리는 것으로 대신했었지요.
여기 12장부터 타임 세팅이 이미 유월절 중심으로 기록이 되는데 왜 12장과 13장을 이렇게 구분하느냐? 이 12장 끝에 가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걸 선명하게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은 마칩니다. 대중을 위한 사역이 요한복음 12장에서 끝나요. 그리고 13장부터는 더 이상 대중 전체를 위한 예수님의 사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부터 내용 자체가 완전히 시간적인 국면은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말로 12장에서 시작되지만, 예수님의 사역 기록으로 보면 13장부터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앞두고 설교하시는 장면, 특별히 요한복음 13장, 14장, 15장, 16장까지를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다락방에서 하신 예수님의 설교가 13장, 14장, 15장, 16장 이렇게 진행되기 때문에 대중을 향한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12장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13장부터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설교와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걸 암시해 주는 내용이 이제 12장 1절에 십자가 설교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 하시는 마지막 공적 사역 시점이 12장 1절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 여러분 유월절이 무슨 요일이었어요? 금요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 그날이 실제로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시간이거든요. 예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면 유월절 엿새 전이면 이때가 언제겠습니까? 역산하시면 돼요. 역산하시면 그 금요일로부터 바로 전인 안식일 저녁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토요일 저녁이죠. 정확히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안식 후 첫날이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계산하는 요일 방식으로 하면 토요일 저녁, 요한복음 12장 1절부터 11절 만찬 전에 그 향유 옥합을 깨는 일이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이고요. 그다음에 일요일이 되겠죠. 그 일요일에 일어난 일이 요한복음 12장 12절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입니다.
그다음에 장소가 어디입니까? 12장 1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베다니라는 공간을 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12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베다니에서 안식일 저녁에 있었던 일이고, 12장 12절을 보시면 '그 이튿날에는' 그러지요. 이게 뭐예요? 유월절 엿새 전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이 되는 거지요. 그 이튿날 12장 12절부터 시작해서 19절까지가 우리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입니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거의 마무리하는 대사건입니다.
그런 시간 세팅을 이해하신 맥락에서 12장 1절부터 8절을 살펴보면, 지난주에 살펴봤듯이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어요. 예루살렘 입성 다음에 다시 물러나시는 곳이 어딘지 미리 살펴보면 12장 36절에 예루살렘 입성 후 어딘가에 가서 숨으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 숨으신 곳이 베다니입니다. 그래서 베다니라는 장소를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베다니에서 나사로도 손님으로 왔는데요. 12장 1절을 봅니다.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여기 12장 1절에 나사로를 굳이 언급한 사실은 바로 앞장인 11장의 나사로를 살려낸 사건과 12장 기사를 뗄 수 없다는 논리적 연결을 해주는 내용이지요. 11장에서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12장에서 사건을 시작하면서 '나사로를 살린 바로 그 베다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12장은 11장과 연결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12장을 13장에 갖다 붙이지 않고 11장 뒤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은 바로 이 나사로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미리 살펴보겠습니다. 9절입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라' 이렇게 해서 9절, 10절까지 읽어보면 계속해서 나사로 이야기예요. 그래서 12장 기사는 11장과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사로라는 이름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일이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유명한 장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2절을 먼저 보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이 잔치에 참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잔치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대접하는 사람들은 상황을 잘 모르니까 잔치를 준비했어요. 예수께서 잔치 대접을 받으시면서도 그분의 마음이 온전히 즐거울 수 없었던 까닭은 7절을 보면 나오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예수께서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라고 표현하시잖아요. 무슨 뜻입니까? 예수 자신이 이미 당신의 죽으심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이지요.
마리아가 와서 향유 옥합을 깨뜨렸을 때 유다가 비난을 시작했고 마태복음에 보면 제자들도 동조를 합니다. 마리아가 비난의 표적이 되었을 때 예수께서 마리아를 옹호하시며 하신 말씀이 '나를 위해 장례를 준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답 속에서 우리 주님의 심정을 먼저 읽어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을 비난하는 유다에 대해 요한복음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4절을 보시죠.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노동자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300데나리온은 안식일을 제외한 거의 1년 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린 사건에 대해 '낭비' 혹은 '허비'라는 시각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리아를 옹호하시며 밝히신 유다의 진짜 동기가 6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의 설명(Explanation)이죠. 요한은 유다의 동기를 이렇게 선명하게 밝혀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리고 7절 본문을 잘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마리아가 나의 장례를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나르드(Nard) 향유는 아주 비싸고 팔레스타인에서는 나지 않는 동방에서 수입한 귀한 물품입니다. 장례를 위해 간직해 두었던 것을 지금 내 장례를 위해 쓴 것이니, 그 여인이 한 일을 문제 삼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뜻입니다. 향유를 이미 붓고 있는데 왜 '간직하게 하라'고 하셨을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 전에 예수님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주님은 죄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기에 심적 부담이 대단히 크신 상황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인성적 관점에서 주님이 괴로운 심정을 안고 계실 때, 마리아가 와서 향유 옥합을 깨뜨린 일은 주님께 굉장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늘 주님께 구하기만 하던 사람들과 달리, 구원을 위해 희생을 앞둔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이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9절입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여기서 '무리의 정체성'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9절에 등장하는 무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나사로의 부활을 직접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일곱 번째 표적의 결정적 증거인 나사로를 아예 제거하려고 시도합니다. 증거가 없어서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증거 자체를 말살하려는 완고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2장 12절부터 19절까지는 예루살렘 입성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따르면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인파가 약 27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군중이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칩니다. 그러나 대중이 기대한 왕은 평화의 왕이 아니라 로마를 물리칠 정치적 왕이었습니다.
14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어미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끌고 오게 하셨는데, 예수께서 타신 것은 바로 '어린 나귀(새끼 나귀)'였습니다. 말은 전사가 타는 전쟁과 지배의 상징이지만, 나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또한 사사기 10장 등에 나타나듯 고대 사회에서 나귀는 존귀한 신분(왕자, 지도자)이 타는 짐승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고귀한 왕이시되 겸손과 평화, 순결함으로 오시는 왕임을 나타내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이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을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16절,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요한복음에서 '영광을 얻으셨다'는 표현은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17절과 18절에 나오는 무리는 성격이 다릅니다. 17절의 무리는 나사로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증언한 무리이고, 18절의 무리는 그 증언을 듣고 예수를 맞으러 나온 명절의 군중입니다. 군중이 예수를 따르자 바리새인들은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며 두려워합니다.
20절부터 35절까지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기록입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온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를 뵙고자 빌립을 찾아옵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둘 다 헬라식 이름을 가졌기에 헬라인들이 접근하기 편했을 것입니다. 헬라인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23절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방인이 주님을 찾는 이 시점이 바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님은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한 알의 밀알로 압축하여 설명하십니다. 25절에서는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자가 참된 영생을 얻을 것임을 말씀하시며, 26절에서 '섬김, 따름, 함께 거함'이라는 제자도의 본질을 가르치십니다.
27절,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연상시키는 이 고백은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의 실재적인 고통과 고뇌, 그리고 사명에 대한 순종을 보여줍니다. 28절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자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이미'는 예수님의 침례와 변화산 사건 때를 가리키며, '또다시'는 앞으로 감당하실 십자가 사역을 통한 영광을 뜻합니다.
34절에서 무리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다 했는데 왜 인자가 들려야(죽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고난받는 종(사 53장)으로서의 메시아를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논쟁 대신 35-36절에서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권면하신 후 몸을 숨기십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은 마무리됩니다.
37절부터 50절은 '표적의 책(1~12장)' 전체에 대한 결론입니다. 그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53:1, 사 6:10)의 성취였습니다. 관리 중에도 믿는 자가 있었으나 출교를 두려워하여 드러내지 못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42-43절). 44절부터 50절은 요한복음 서론(1:1-18)의 주제를 반복하며 예수께서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생의 말씀을 전하셨음을 엄숙히 선포하며 1부를 끝맺습니다.
요한복음 1~12장 7대 표적 및 강연 핵심 요약
표적의 본질과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