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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신학토론회 – 강의 녹취록(편집본)
발제 1: 세대주의가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발제자: 박래광 목사(순복음경동교회)
https://youtu.be/u3iToPEGbD4?feature=shared
https://youtu.be/DNEhqyCdBcA?feature=shared
제가 2023년 7월 9일, 순복음경동교회 담임목사 취임을 해서 첫 번째 그 지방회에 제가 참 참석하고 1년만에 또 이렇게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 자리에 또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뭐 어디서 가르치거나 또 학위가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 총무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을 때, 제가 여태까지 살아서 했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누가 시키면 무조건 ‘네, 하겠습니다!’ 라도 응답했기 때문에 그 순종의 마음으로 왔습니다. 많이 부족할 텐데요, 조금 이제 경청해 주시고… 또 제가 첫 번째 주자여서 편한 게 우리 뒤에 계신 훌륭한 목사님들이 또 나중에 잘 정리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부담 없이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 주제는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입니다. 그래서 세대주의를 정리하고 세대주의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들, 이 영향력들을 우리 목사님께서 어떻게 이것을 활용할지에 대한 이런 부분들인데요, 서론을 읽기 전에 칼 라너라는 신학자는 미래를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역사적인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 가는 미래는요, 인류의 역사가 축적되어면서 점점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이런 역사적 미래가 있고 또 하나는 절대적 미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시는 하나님께서 이룩하는 그 미래입니다. 이런 부분을 몰트만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개념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종말이라는 이러한 미래에 대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제 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종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오늘 이 세대주의를 좀 그런 관점에서도 한번 좀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론의 첫 번째 3 페이지입니다. 조금만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세대주의는 기독교 신학의 한 해석학적 접근법으로 성경을 이 특정한 시간적 세대로 나누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세대주의 출발이 19세기에 시작됐습니다. 19세기라면 아주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 전의 시대로서 다가올 2000년의 세대가 도대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굉장한 의구심과 또 불안함과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이런 생각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이 19 세기 때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에 굉장히 보편화되는 이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유주의적 신학에 대한 좀 반발 작용으로서 조금 더 근본적이고 또 성경적이고 문자적인 이러한 해석학적 접근법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해서 이 세대주의의 이런 배경들이 시작되지 않았나 저는 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경 해석은 당시 냉전 시대라는 세계 정세와 맞물려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형태의 부흥성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중공과 소련 혹은 이후와 아랍으로 대변되는 이런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 반공 사상과 예수님의 재림의 긴박성을 상기하면서 일종의 두려움 속에서 열심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주의가 한국에 와서 어떤 식으로 이렇게 믹서가 됐는가? 그니까 성경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런 현상들을 연결하는 겁니다. 종말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연결하면서 우리에게 굉장한 어떤 이런 뭐랄까요… 흥미를 주면서도 또 굉장히 또 긴박한 이런 재림의 긴박성을 알게 되고 또 두려움도 알게 되면서 이러한 것들을 부흥성회를 인도하셨던 강사 목사님들이 적절하게 이런 것들을 굉장히 잘 활용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계시록의 내용은 성도들의 위로와 소망으로 다가와야 되는데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촉구하게 되면서 그 메신저에게 더 주목하게 되는… 그러니까 성경이 얘기하는 종말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메신저가 이 시대를 해석하는 것에 더 많이 중점을 두게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대주에 대한 정의인데요,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세계 경영에는 현저하게 다른 세대가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일종의 성경 해석 체계입니다. 그 시작은 영국의 다비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는데 이 다비는 성경을 특히 요한계시록 때에 예언된 사건들을 특정 연대와 연결시키는 이제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을 시간을 설정하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구약은 4천년이고 신약은 2천년 그리고 천년왕국은 천년이니 다 합쳐서 7천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이제 2천년 밀레니엄 시대가 가까이 오면 천년 왕국이 오니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올거다 라고 하면서 이런 재림의 긴박성을 강조했습니다.
밑에 3번 각주에 보면, 세대주의에 대에서 간략하게 구분한 것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고 한 문단 밑으로 가면… 또 영국에서는 다비고 미국에서는 그러한 다비의 사상이 스코필드에 와서 굉장히 확장되거든요. 스코필드는 킹제임스 버전 성경에 각주를 단 스코필드 레퍼런스 성경에서 이런 세대주의적 개념들을 각주로 달고 설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코필드에 따르면 세대란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특정한 계시에 대한 순종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는 일정한 기간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에릭 사우어는 일곱 세대의 구분 이렇게 정리합니다. 무죄 세대, 양심 세대, 인간 정부 세대, 약속 세대, 율법 세대, 은혜 세대, 그리고 왕국 세대입니다. 페이지 5페이지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세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하시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그 사실을 구원과 관련시켜서 설명하고 있는 것, 저는 이것을 세대주의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세대주의 특징으로 넘어가면 세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문자적 성경 해석입니다. 세대주의자의 가장 중요한 세 인물은, 첫 번째는 다비일 수 있고요 두 번째가 스코필드, 세 번째가 이제 찰스 라일리라 사람인데요, 이 찰스 라일리는 뭐라고 하냐면,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여 성경을 왜곡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성경 해석의 원리를 문자적이고 통상적이고 간결한 해석 원리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엔 역사도 있고 비유도 있고 굉장히이 해석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문자적으로 통상적으로 간명하게 해석해야 된다는 이 하나의 틀을 만들어 낸 것이 또이 찰스 라일리가 정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을 문자적으로 취급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제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있었던 자유주의 신학, 이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해서 미국에서는 이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는 좀 근본주의적인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런 근본적인 운동과 같이 뿌리를 같이 하면서 이 세대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이 같이 성장하게 되는 여기서 좀 이게 함께 이게 뭐랄까요… 서로 세대주의자도 근본주의자 안에 들어와 있는 이런 상황이라서 어 오히려 이 세대주의적 영향력이 미국 사회에서 굉장히 확대되어 있는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요… 6페이지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입니다. 세대 주의자인 라일리는, 세대주의의 필수 요건은 바로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두 종류라는 것이 세대주의의 중추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교회라고 불리는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백성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주려고 가져왔으나 그들이 그를 거부하였습니다. 실패한 거죠.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기 때문에 한쪽에 제쳐 놓임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세대를 계시하셨다 이런 주장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이제 기존에 있는 이 세대주의자들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굉장히 큰 관심이 됐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제 휴거에 대한 부분인데요. 세대주의자들은 재림에 대한 해석을 그리스도의 순간적 재림의 단회성으로 말하지 않고 공중에서 한번 재림이 있고 그 다음에 지상에서 또 내려오는 이중 재림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6페이지에 7페이지 넘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첫 단계는 공중 재림 즉 초월하는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재림하시기 모든 죽은 신자들은 부활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살아 있는 성도는 변화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휴거된다는 것입니다. 즉 공중에서 휴거된 백성과 그리스도께서 만나 7년간 어린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나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세대주의적 전철 연설에 근거가 되었고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춘 지상 천년 왕국의 해석이 19세기 중년부터 일어나서 보수적인 기독교들과 대환란 천년 왕국은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 봅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환난을 겪지 않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교회 시대의 정점은 휴거이고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을 공중에서 만나 천국으로 데려가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것이 세대주의의 주장이고 이것이 세대주의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세 번째, 이제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력입니다. 세대주의는 주로 19세기 영국의 신학자 존 넬슨 다비에 의해서 체계화되었고 이후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와 같은 신학교를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이곳 출신들이 한국 개신교 선교사가 되어서 한국 개신교 초기부터 신앙의 뿌리를 형성하였고 또 민족의 수난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이런 영향력이 있는 거죠. 그니까 19세기가 밀레니엄 세계를 준비하고 굉장히 혼란한 이런 시대에 이 신학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이 신학이 넘어올 때 우리 한국은 일제 치하와 또 6.25라는 전쟁 민족의 큰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종말이 굉장히 개인적으로 이렇게 접근되었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집단적이고 어떤 역사적으로 임하는 거였다면 이 재림이 지연되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종말이 개인적 종말로 전환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개인적 종말로 여겨졌던 이 종말에 대한 개념이 19세기에 와서 이제 2000년대가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 2000년대가 이제 끝날 거라고 생각하죠. 역사가 종말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런 역사적인이 종말론에 대한 개념들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세대주의와 연결이 됐다 제가 이렇게 좀 설명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만약에 이런 일제 치하라는 이런 민족의 큰 위가 없었다면 이런 세대주의의 뿌리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역사의 위기가 결국은 이런 신학적인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신학적인 것들이 메시지화 되었고 그것들을 굉장히 순수하게 우리 한국 성도들이 받아들였다는 거죠.
첫 번째 긍정적인 영향력은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에 대한 순수한 신뢰입니다. 미국에서 이러한 세대주의자가 이런 근본주의적인 토양 가운데서 성장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한국도 이런 성경의 중심적인 이런 세대주의적 요소들을 보수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성경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이러한 순수한 신앙, 이런 성경 중심적인 신앙 이런 체계들을 한국교회 성도들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력입니다. 그 초기 선교사들이 이런 세대주의적 배경 속에서 이러한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 문자적 해석을 굉장히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로 긍정적인 영향력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재림에 대한 기대와 종말론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요사이 종말론에 대한 관심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 기껏해봤자 이단 시비할 때 정도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종말을 다루면 이단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이런 이단시비가 아닌 경우 아니면 신학적 논쟁이 아닌 경우에는 일반 사람들이 이런 종말에 대한 부분들을 잘 다루기가 어려웠는데 이런 세대주의적 이런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었던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이런 주님의 오심에 대한 어떤 임박한 재림에 대한 그 기대 그런 것들이 오늘날 현재로서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삶이 돼야 된다라는 이런 종말론적인 신앙 생활로서의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었다라는 부분들이 두 번째로 저는 두 번째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고요, 또 이것은 오순절인 신학의 배경에서도 우리 오순절 신학에서 중요한 것이, 임박한 이런 종말 의식이든 이런 종말 의식에서 세계 선교라는 이런 복음의 확장을 강조했던 교단적 배경에서 본다면, 이런 재림에 대한 기대와 종말론적인 신앙생활은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이런 긍정적인 요소를 희석시키고 한국 교회에 굉장한 혼란과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이런 세대주의적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시한부 종말론이 발생한 것입니다. 앞서서 다비가 인류의 역사를 7천년으로 보았는데요. 그는 19세기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2000년이 되면 예수님은 오실 것이라는 이런 예수님의 재림을 카운트하고 무리하게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짜를 설정하게 되거든요. 이것이 세대주의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 조용기 목사님도 EU의 통합을 세대주의적으로 해석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적그리스도다 라고 이해하셨습니다. 이런 게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시면서 이런 세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신 부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조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저는 좀 그렇게 제안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뭐 다미 선교회라는 그리고 이제 저희 교회, 순복음경동교회는 이문동에 있는데 그 바로 앞에 제7일안식교의 본부가 있거든요. 이런 제7일안식교와 같은 이런 무리들이 이런 무리한 시도, 종말의 날짜를 정해주는 이런 시한부 종말론에 의해서 발생된 어떤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굉장히 혼란하고 이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이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얘기하는 것이 교회가 굉장히 분위기가 어려워진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을 살아야 되는데 오시는 그 주님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약간은 조금 약해진 이런 부분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지나친 내세 지향적 신앙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사회 참여의 결의 문제 점을 갖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는 자유주의자들과 불신자들로부터 사회에 대한 참여 및 이런 윤리 의식이 결여된다는 그런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교회의 근본적인 신앙의 문제로서 과정이 결여된 지나친 목표 의식과 이것을 가르친 선교사들의 문제가 있음을 이상근 교수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대주의 사상 가운데 지상의 천년 왕국의 강조와 환란 이전의 교회 휴거 사상은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과 목표를 흐리게 만들었고 복음이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러한 사상들은 신학자들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게 하고 피안의 세계에만 갈망하는 허구적인 신앙으로 이끌었고 내세 편집적인 신앙 양상을 뛰게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재림이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를 맞아 영접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처럼 슬퍼해서 안 됩니다. 시간과 시기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11 페이지로 넘기겠습니다. 중간 부분 읽겠습니다.)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한 세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재 목회 현장에서 세대주의에 대한 바른 정립이 없다면 세대주의가 아니면서 세대주의자가 될 수 있고 세대주의를 가르치면서 세대 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목회 현장에서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 방법과 용어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신중을 귀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종말은 부인할 수 없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날과 그 시에 대할 함구령을 내린 이상 우리가 그날을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선악과 일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종말을 고대하며 오늘을 놓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설교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이상입니다.
발제 원고:
https://cafe.daum.net/kagmidseoul/bLls/17
월례회와 토론회 사진
https://youtu.be/xzwp_97PhDk?feature=shared
토론회 소개
https://cafe.daum.net/kagmidseoul/XHq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