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너무나 큰 아가가 있다. 큰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둘째가 중3,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자녀 셋을 둔 불혹을 훨씬 넘긴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언제나 나에겐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일 뿐이다.
직장을 다니는 우리 아가는 직장 내에서나 밖에서나 여러 가지 어려움과 괴로움도 많을 터이지만 언제나 명랑한 그의 표정엔
항상 사랑이 넘치고 삶의 환희와 희망을 일깨우게 해 준다.
쪼들리는 집안 생활과 분분한 가족들의 의견 대립을 이리저리 마무리 하면서 중간 조종자로서의 충분한 역활을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측은한 가여움에 마음이 아프다. 저도 인간일진대 그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다 묻어두고 웃는 그 모습 뒤안길로 영혼의 눈물 삼킴을 훔쳐보면서 저렇게 장성한 아가의 영혼에 매료되어 나 자신이 무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의 변변치 못함을 손가락질 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남편의 그 순진함을 세상이 알아주기는커녕 이용만 당하고 있으나 때가 오면 그도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얻을 것이란 긍정의 기다림은, 조급함이 전혀 없고 이상할 정도로 여유 만만해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 작년인가? 이웃집 친구가 입던 옷을 얻어와서 자신이 입어보고 몸에 꼭 맞는다고 만족한 모습으로 활짝 웃던 모습은 나를 두고두고 가슴 아프게 한다.
시집와서 지금까지 옷다운 옷 한 벌 사 주지 못한 시아비가 되고 보니 아들의 못 남은 아비의 못남 때문이라는 자책과 함께 아가에 대한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다. 15년 전 아들이 아가와 연애하던 시절, 친정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질 위기에 있을 때, 자그만 메모지에다 나의 마음을 담아서 선물과 함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아들을 통해 보낸 그 일로 인하여 아가의 마음에 결심이 굳어지고 친정 부모님께 당당히 결혼을 선포하는 용감성의 기폭제가 됐었다고 몇 년 후에 아가로부터 추억담을 들었을 때는 나도 가슴 뿌듯함과 행복함을 맛보았지! 우리 아가 시집올 때는 어느 사람보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굳게 마음 다짐을 했으나 심한 폭풍과 거친 파도가 몰아칠 때면 풍랑 속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미약함의 번거로움 속에서 눈만 감고 있었지! 남편에 대한 불만들,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 들은 시아비로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음을 한탄 하면서 나 혼자만으로는 아가의 행복을 지켜 준다는 것이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더욱 많음을 알았을 때의 허탈한 가슴속은 된서리 맞은 호박잎이 되어버린다. 퇴근길이면 시아비 좋아하는 것들을 사 와서 아무도 모르게 방에다 놓고 가는 효성스럽고 그 착한 마음에 늘 고마워하고 감동했지! 자상하고 섬세한 성격은 아니지만 되도록 밝게 보이려 노력하고 억지웃음이라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가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지나 성스럽게까지 나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곤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비'라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에겐 보물처럼 귀중하고 다시없는 사람 이기에 아가 생각만 하면
항상 마음 속에선 사랑의 물결이 일렁인다.
이렇도록 착하고 아름다운 아가를 보내주신 그 분께 은혜의 감사와 아가의 행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무시로 드리면서 밝은 태양 빛처럼 항상 쾌청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