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산(鳴聲山) 산행기
공식적인 연휴의 첫날.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의 아침. 43번국도 북향 철원방향 도로 위에는 고향을 찾아가는 차들로 붐비고 있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을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맞으려는 우리네 특유의 정서는 아직도 퇴색되지 않은 모양이다. 길옆으로는 아직 추수를 하지 않은 벼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바람은 알싸하니 시원했다. 차창을 내리고 피우는 담배 맛이 더없이 좋았다.
“ 거기도 더덕은 있을 거여. 잉?”
옆에 앉은 그의 말투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고향을 벗어나 살았지만 아직도 그 고장 특유의 억양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작년에 맛 본 더덕을 찾아 길을 나섰다. 작년에는 이미 더덕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찾아가서 다행히 더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올 해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길을 나선 것이다.
43번 국도에서 벗어나 산정호수방향으로 들어서자 길옆으로 코스모스가 가을 햇살을 받아 하늘거리고 있었고, 가로수로 심은 단풍나무에서는 이제 막 붉게 단풍들이 물들고 있었다. 늘상 느끼는 마음이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마음은 늘 차보다 앞서 목적지에 가 있다. 마음이 차를 재촉하고 있었다. 아직 새벽안개가 남아있는 좁은 길을 마음이 차를 몰고 있었다.
산정호수(山頂湖水)주차장을 지나 꼬불꼬불한 길을 더 달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주차장 반대편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물이 많아 호수면 위로 연결된 다리를 걷는 맛이 좋아서 일부러 왔는데 물이 많이 줄어들어 그 운치는 맛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찬 커피를 한잔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저편에 이 친구가 찾았던 그 무엇이 있었다.
“할매, 요 근방에 더덕 나는 데 있지라? 좀 갈쳐 주랑께요.”
그가 찾은 것은 주차장 한쪽에 좌판을 깔고 고사리, 느릅나무, 산쵸열매 등을 팔고 있는 지역 주민이었던 것이다. 나이 든 할머니는 혹 개시라도 해줄지 모르겠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이 친구의 질문에 연신 말대답을 하는데, 묻는 말이 서 말이면 대답은 닷 되나 될 꺼나. 영 동문으로 나간 질문은 서문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 읎어. 더덕이 아무데나 나나, 있으면 내가 먼저 가서 다 캐 왔을 꺼여.”
할머니의 대답이 영 시원찮은 이 친구, 급기야 위장병에 좋다고 훈수 놓는 내 입바림에 속아 느릅나무를 개시해 준다. 그래도 할머니의 대답은 통발 빠지는 미꾸라지가 덜 미울 정도다.
“ 혹여 옛날에사 많았지. 그치만 자네거튼 외지 사람들이 와서 웬캉 다 뽑아가 부러서 씨가 말라 버린 겨.”
겨우 이 친구 팔소매를 잡아당겨서 포기를 시키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억새꽃이나 보고가자며 다시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점에서 포천이동막걸리 두통과 김밥 두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도 길가에서 파는 동동주 한잔을 마시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뇌하수체와 해골과 두피가 그야말로 따로국밥으로다 서로 밀어내며 골이 이리 흔들 저리 빙 하며 정신이 오락가락 한 것이 어젯밤에 마신 양주를 아직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길가에서 마신 동동주 한잔이 이놈의 대갈통의 삼파전을 완전히 해소시켜 버렸던 것이다. 아니면 동동주를 따라주던 그 처녀의 상큼한 말솜씨에 내가 뿅가서 대가리의 삼단분리를 못 느끼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만.......
“ 아가씨, 이 술이 뭘로 맹근 술이다요?”
“저, 조껍데,,,,... 아니 조의 껍데기로 만들었어요.”
분명 종이박스를 손바닥만하게 오려서 ‘조껍데기동동주 1잔 1,000원’이라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항아리목에다가 턱 걸어놨는걸 봤으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는 중년들이여. 그대들은 분명 응큼한 아저씨들이 분명할지니.......
등산로는 편안한 오솔길로 명절 밑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붐볐다. 우리네 명절 문화가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오누이나 모녀지간, 때로는 형제로 보이는 중년들도 섞여 있기도 하고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나는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가끔 인사를 나누며 올라갔다. 그런데 그 인사가 좀 까다로웠던 모양이다.
“ 어이 친구, 왜 골라가며 인사를 하는겨?”
이 친구의 질문에 나는 무심코 대답했는데 그게 정작 무심코 한 변명 같은 대답이 아니었다.
“난 차림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인사를 안 혀. 그건 산에 대한 모독이랑께.”
대답을 해 놓고 보니 정작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평상복에 운동화만 신고 오르는 사람. 심지어 짧은 치마를 입고 올라오는 젊은 아가씨 앞에서는 오히려 두툼한 등산화를 신은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계곡을 옆으로 끼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등산길을 한 참이나 오르며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고, 애인에게 문자도 날리고, 서로 공유하는 친구들의 안부도 물으며 단란한 산행을 하고 있었다.
“ 어이, 저기 좀 봐라이. 쥑이잖여? 아주 함지박이다. 키도 크고......”
이 친구. 앞서 가는 어느 젊은 여자를 훔쳐보고 침 흘리는 소리를 한다. 이어지는 나의 맞장구,
“ 그려. 허벅지가 내 두 배는 되것다이. 웬만해서는 견뎌내기 힘들겠는디?
옆에 남자가 남편일까? 그렇담. 쪼까 걱정이다이. 남자가 벨로 씨지 못할 것같지 않냐?“
“ 그려, 그랑께 오늘 것은 날. 산에나 온 거지 뭐.”
우리는 그렇게 쉰소리를 섞어가며 가을날의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길가에는 벌써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고, 이 친구는 짬 날 때마다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 엄니가 도토리묵을 잘 쒀야. 이거 주어서 엄니한티 도토리묵 쒀 달라캐야것다”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어깨가 부딛칠 정도로 붐비는 가운데 ‘등룡폭포’까지 올라왔다. 폭포는 높이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바위 위에서 시작되는 모양인데 가물어서 떨어지는 물은 없고 그 아래 소(沼)에도 물이 말라가고 있었다. 이름이 말해주듯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는 안내판은 더 읽을 필요도 없었다. 길을 재촉하는 내게 이 친구는 함지박을 기다리잔다. 아직 함지박이 도착하지 않았다는데, 이강쇠라는 별명답게 절간에서 새우젓이라도 얻어먹을 인사다.
그렇게 함지박 쫒을라, 도토리 주을라, 가다, 서다, 오가는 사람들 사주관상 헐뜯을라 재미지게 오르다보니 어느덧 억새꽃이 만발로 피었다는 억새밭까지 오르게 되었다. 부드러운 양털 같은 억새가 만발한 억새밭이 온 산천에 펼쳐졌다는 표현은 좀 과장되고, 규모로는 밀양의 화왕산에 미치지 못하고, 합천의 황매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밭 정도밖에 안되지만 세 군데를 다 보지 못한 이들은 그저 함성뿐이로다.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을 찍는다, 부산한 이들 사이로 빠져나와 팔각정까지 올라 온 우리는 허탈해져 버렸다. 왜? 거기에도 막걸리와 컵라면과 커피를 팔고 있었으니........
미쳐 챙겨오지 못한 종이컵을 넉살좋은 이 친구가 중간에 얻어 온 덕분에 우리는 지고 온 막걸리 두 통과 김밥 두 줄을 정확하게 하나씩 나눠 먹고 마시며 시원한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며 익어가는 가을과 추석을 생각했다. 주변에는 친구나 가족끼리 올라온 등산객들이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었고, 우리는 옆자리의 사발면에서 나는 냄새로 안주를 대신했고, 배낭을 뒤져 꼬불쳐둔 헤이즐넛 커피 두봉다리로 그 젊은것들을 곯려주었다.
다시 삼각봉까지 2.7km를 오르기로 하고 등산화를 꿰매었다. 오후의 햇살은 따갑지 않았고 능선 길을 가며 보이는 발아래 산천은 아름답기만 했다. 산 위에는 벌써 단풍이 절정에 다다라 낙엽이 지기 시작했으며, 멀리 내려 보이는 산정호수는 손을 뻗어 한 잔 퍼 마실 것 같이 맑고 가까이 보였다. 달래, 둥글레, 등을 캐 보이며 아직도 더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친구는 길가의 철조망이 못내 아쉬워했다. 여기는 등산로 곳곳에 ‘군사격장이 인접해 있으니 등산로를 벗어나지 마시오.’라는 위협적인 경고문이 보이고, 철조망이 가는 곳곳에 둘러쳐져 있어서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삼각봉(해발 905M)에 오르니 바람이 제법 힘차게 부는데, 북쪽으로 내려 보이는 철원지방 산천은 온통 민둥산에 벌건 황토흙빛이었다. 거기다 곳곳에 전찻길, 포격자리들로 산야가 온통 흙먼지 속에 싸여 있었다. 아직도 우리는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라는 것이 실감났고, 이 아름다운 산천이 인간들의 욕망과 체제에 의해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로 남아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렸다. 이번 문학기행발제가 조정래의 소설 ‘인간연습’인데 그 발제의 단초를 여기 이 장면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망설였다. 내쳐 명성산 정상까지 오르느냐, 아니면 여기서 다시 되돌아 하산하느냐로 잠시 갈등했지만, 곧 명성산 정상까지 오르는 걸로 결정했다. 함지박이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다는 것이 오로지 이유였다. 때로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단순한 이유로 결정하는 것도 결코 우둔한 행동은 아니리라. 명성산 정상까지 2.0km 보통으로 가자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겠지만, 우리는 오로지 함지박의 그 뒷모습에 넋이 나가 경주견(犬)처럼 눈앞에 보이는 먹이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삐죽이 튀어나온 바위틈 사이로 능선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이 턱에 받히도록 속도를 내서 오르다보니 어느덧 명성산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정상에는 하얀 비석에 .鳴聲山(해발 924m)'라고 쓰여 있었다. 분명 숨이 차게 올라왔는데 겨우 20m밖에 더 오르지 못한 것이다. 명성산은 옛날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쫒기다 숨을 곳을 찾아 여기로 들어와 끝까지 버티다가 최후를 맞이하자 그를 따르던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슬퍼하여 울음소리가 온 산천에 끊이지 않았다 하여 일명 ‘울음산’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는데, 아마도 산이 전체적으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바람소리나 메아리가 더 크게 울려 퍼져서 그렇지 않나 싶다.
우리는 이제 하산 길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먼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 그것은 내가 반대했다. 내가 즐기는 산행에서는 되돌아 내려가는 길이 제일 싫증나고 힘들었기에 반대. 둘째는 ‘궁예계곡’쪽으로 에둘러 내려가는 길. 이 길은 길이 가파르지 않고, 궁예계곡의 단풍과 풍경이 좋다고는 하나 너무 빙 둘러 내려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우리는 최단코스인 ‘산안고개’로 내려가기로 했다. 길은 가파르고 힘들지만 거리상 제일 짧은 코스(3km)였기 때문이다.
길은 가파르고 바위투성이었지만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하여 내려왔다. 내려오는 중간 중간에 이 친구는 여전히 도토리를 줍는 것에 정신이 없었고, 늦은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인적이 없는 산속은 맑고 청량했다.1시간여를 내려오니 ‘산안고개’에 도착하고, 다시 걸어서 주차장까지 도착하니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까지 이 친구는 끝내 아쉬워했다.
“ 아니, 함지박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겨?”
상당산성(山城)에서
산성(山城)을 오른다. 石城의 척추는 돌처럼 굳어있다.
늙은 어깨의 푸른 동맥이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날것같은데,
산성은 세월의 육중한 무게를 머리에 이고, 산 아래 초야를 헤치고 몰려든
수백, 수천 바람같은 시간 앞에 돌처럼 버티고 있었다.
성을 넘어서 이승에 살고자했던 눈 부릅뜬 호성(號聲)이 혈관속에 숨어 풀이 되어 자라고 있다.
흙이 되고자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푸른 산맥의 침대 위에 산성의 척추가 힘겹게 누워,
그 피부 겹겹이 살결같은 돌담 속을 타고 흐르는 산성의 정맥은,
이제 망루를 가운데 홀로 두고, 흙이 되고자 스스로의 옷을 벗는가 보다.
산성 돌담앞에 바람이 긴 행군을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선것이 어디 바람 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