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썩을 놈
“망할 놈의 영감탱이, 디질려면 혼자 곱게 디지지
웬 냄새는 이리 사방에 싸질러 놨디야.”
순심은 안방과 거실에 있는 살림살이들과 장롱 속의 의류들, 심지어는 가구와 이부자리마다 코를
박고 킁킁이며 주절대면서 천도제 때 불사를 유품들을 챙긴다.
“못 잊능기여.”
“미친년, 니가 내 속 알겄냐.”
순심은 딸내미와 함께 떠나간 서방의 초우제와
삼우제를 오늘 오전에 모두 끝냈다. 참으로 야속한 영감탱이라 하더라도 서방은 서방인지라 못 저버리고 이른바 삼악도(三惡道)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 싶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평소 외로움을 몹시 탄 고인의 유언대로 산소를 집에 잇대어
있는 뒷동산 양지바른 나지막한 곳에 써서 별로
밖에 나갈 일 없이 초우제와 삼우제 기간을 집구석에서 보냈다. 중놈들이 고인의 영정을 예 갖춰
제대로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잿밥이 예상보다
적었던지 목탁 소리가 힘이 없고 염불 소리도
축 처져서 뭔 소린지 모르게 웅얼거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염병할 중놈들-. 남의 속도 모르고-. 요즘 세상
말세라 염불쟁이, 찬송쟁이, 다 똑같당께. 돈만
밝히제.”
순심은 먹는 것은 하루에 한두 끼 먹다 남은 찬
음식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잠도 주로 앉은 자세로 졸거나 쪼그리고 자는 쪽잠이었다. 어쩌다 두 다리 펴고 깊은 잠에 빠진다
싶으면 영락없이 영감탱이가 설핏 나타나 주둥일 귀에 대고 애면글면 앓는 소리를 해쌌는 바람에 퍼뜩 잠을 날리곤 했다.
“아밴 우째 알았다요?”
“니 아밴 풍각쟁이였제.”
순심의 집은 읍내에서 시오리 떨어진 외진 시골이다. 낮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서 교통수단이라고는 아침 일찍 재 너머 읍내에서 왔다가
곧 돌아가서 정오 무렵과 저녁 6시경에 왕복하는 화물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마을버스뿐인 오지다. 순심은 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지붕이 기와이고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한옥에서 태어났다. 순심은 외딴 오지에 살면서도 조상 대대로 양반 집안이라고 내세우며
꼴난 허세를 떠는 부친 밑에서 외동딸로 세상을 맛보기 시작했다. 순심의 부친은 체격이 왜소하고 깡마른 외골수였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서당에서
글공부 좀 했다고 늘 의관을 갖추고 생활했다. 날씨가 더울 땐 모시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저고리 위에 삼베 조끼 차림으로 나다녔다. 추울
땐 양복을 입었으며, 더 추울 때는 양복 위에 솜으로 누빈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중절모를 쓴 모습으로 잔망스럽게 다녔다. 그는 한가한
날에는 곰방대를 오른손에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는 바람에 ‘좁쌀 영감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아배요, 학교 좀 보내주시요.”
“계집년이 핵교 댕긴댑시고 제멋대로 나댕기면 워따 써먹을 것이여-.”
좁쌀 영감탱이의 곰방대가 허공을 휘저으면 그것이 집안의 법이다. 순심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고, 아버지로부터 한문과 언문을 배웠다.
아버지의 한학 수준도 사회 근대화와 문화 격변기 속에서 스스로 쓰러져가는 지방향교인 서당에서 제대로 된 스승 없이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수준이라 남을 가르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명심보감을 펴놓고는 몇 자 가르치다 말고, 아녀자의 몸가짐이 어때야 한다는 둥
충효와 예절이 어떻다는 둥 사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순심은 속으로 돌담 안에 기약 없이 갇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집안의 큰 농사는 두어 명 마름에 맡겨서 순심은 집안 살림과 텃밭 가꾸는 일 이외에는 허구한 날 돌담 밖 하늘만 쳐다보는 신세였다.
“하나뿐인 딸내미 처녀 귀신 되겄소.”
“못난 년. 콧구멍에 헛바람 들면 니 어멍 꼴난다.”
“어매가 뭔 죄가 있다요. 아배가 쫓아냈다메. 나도 소문 다 들었어라.”
“어떤 빠진 괴머리 같은 것들이 씨부렁대싼다냐! 니 어맨 헛바람 나서 제 발로 뛰쳐나간 기여.”
“아배가 이 돌담 안에 가다농께 글 안하요.”
“나가 팔도를 다 후벼봤담-.”
아버지는 말을 하다 말고 미련을 되씹듯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곰방대에 담배를 말아 피우며 하늘의 빈 공간 속에 담배 연기만 뭉텅뭉텅 채운다.
순심의 어머니는 순심을 낳고, 산후 우울증에 빠져서 시름시름 앓는데도 남편이란 자가 눈치도 없이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다가 늦은 나이에 계집애
낳고 헛치레 한다며 얼음같이 찬 얼굴로 꼬잘스럽게 굴자 남편이 없는 사이에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 소문을 쫓아다녔으나 끝내 못
찾고 체념하고는 순심을 혼자 키웠다. 뒷소문에는 어머니가 자살했다고도 하고, 공장에 다니다가 같은 직원과 눈이 맞아 조용히 숨어 산다고도 했다.
“풍각쟁이?”
“코와 볼에 빨간 칠하고 눈을 동그랗게 그린 분장을 지우면 통통하니 재잘스럽게 잘생긴 얼굴에다가 노래도 맛깔스럽게 잘하고 입담도 뛰어났제.”
“짐작은 했지라. 근데 왜 아재가 내 아배라고 진작 말 안했능기여?”
“그건 니 아배도 마찬가징기여. 어차피 오래 못 살 팔자라 말하면 속만 더 상하제. 그냥 속으로 느끼며 사는 게 속 편한 게여-.”
순심은 딸내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 년에 한두 번 볼 처지면서 새삼스럽게 변한 집안 환경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주위 환경에 초연해서 대학원도 가고 본인이 원하면 유학도 가서 나처럼 살지 말고 영원히 이 돌담을 벗어나기를 원했다.
“니는 공부 많이 해서 나같이 살지 말고, 좋은 신랑 만나 이곳을 멀리 벗어나그라.”
“왜 그란기여? 이젠 마을 한가운데로 큰 신작로도 나고, 살만하잖소. 나도 어매처럼 나이 들어 이곳에 살지 모르오.”
“미친년, 속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는 이곳에 못산다. 대학가기 전에는 그리 벗어나겠다고 틈만 나면 씨불여 쌓고선, 어미 때문이면 그랄
필요 없다. 이제 난 이곳에서 혼자 살아도 엄청 속 편하고, 게다가 니 할배와 아배가 잠들어 있능께 함께 살다 이곳에서 죽을란다.”
거지 복장에 피에로 분장을 한 풍각쟁이 사내가 마을에 나타났다. 춘삼월이 막 지나 들과 산에 봄꽃들이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꽃내음 풍길
즈음해서 등에 큰북을 지고 북채와 발뒤꿈치를 줄로 연결해서 발을 옮길 때마다 북소리를 내면서 엿장수 가위를 현란하게 돌려쳐서 가위 소리와
북소리의 합주를 울리며 나타났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사내는 가위로 엿을 쳐서 팔기도 하고, 홍삼 즙을 선전하며 접시도 돌리고 구성진 노래와 만담을 섞어가며 인생들의 희로애락도 함께 팔았다.
순심은 처음 보는 마당놀이에 넋을 빼고 구경하다가 파장에 이르자 아쉬웠다.
“아재요, 내일도 온당가요?”
“아니다. 내일은 읍내 장날이라 게 간다.”
순심은 다음 날 아침에 읍내에 장 보러 간다며 핑계를 대고 마을버스를 타고 가서 장터에서 엿장수 풍각쟁이의 공연을 보고 또 봤다. 속이 뻥
뚫리고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첫차 타고 갔음 낮차로 와야제. 죙일 뭣하다 인자 오능기여!”
“장터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늦었지라.”
“니년이 니 어미 닮아 콧구멍에 바람 들랑거리는 화냥년 같어야. 내일부턴 절대 문밖엔 못 나갈 것이여.”
“아배요, 이 돌담 안에 죙일 있음 숨맥혀 죽소.”
“양반집 규수는 처신이 다소곳해야 하능기여. 니 나이가 금년에 몇이여? 열여섯이면 이젠 몸단속할 처녀라. 명심혀.”
“나 다 안당. 돈 주고 산 분참봉(分參奉)이 양반 같소.”
“이런 쳐죽일 년! 시레기 잡것들 신소린 귓구멍에 채우고선-.”
아버지는 곰방대를 쳐들고 부들부들 떨며 내려칠 듯 노려봤다. 순심은 야밤에 장독대를 타고 돌담을 넘었다. 읍내를 향해 하염없이 걸었다.
다시는 집에 안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풍각쟁이를 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조선 팔도 다 싸돌아봤다! 건달, 한량, 오입쟁이, 사기꾼, 협잡꾼, 욕쟁이-, 무식한 놈 똘만이, 덜 배운 놈 허풍쟁이, 배운 놈
겁쟁이-, 꽃 피고 새 우는 여의도 윤중로에 잡것들 모다 모여 꼴값 떠는 바람에 초췌한 인생들 가쁜 짬 나들이는 뒷전이고 세상 시끄럽소.
어얼씨구씨구 잘-한다. 저얼씨구씨구 잘-한다. 한판 놀아봅세. 나도야- 너도야 한판 헛돌아봅세.”
순심은 마을을 떠난 지 1년여 만에 풍각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