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예약.
김견남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내가 정했고, 예약도 내가 맡았다. 장소는 해안도로에 있는 00 장어집으로, 저녁 7시에 9인분 예약을 미리 해놨기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이 묻는다.
"몇 분이세요?"
"예. 오늘 7시 예약한 팀인데요."
그런데 주인의 얼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늘 예약 손님은 없는데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오후 4시쯤에 예약 확인 전화까지 받았는데, 예약이 안 되어 있다니. 설마 내가 보령이 아닌 다른 곳에 잘못 예약한 건가? 그렇다면 꼼짝없이 장어값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당장 예약이 안 되어 있어 친구들이 저녁을 못 먹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약을 잘못한 내가 물어내야 할 장어값 계산이 먼저였다. 참 이기적이다.
그때 주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동대동에 같은 이름의 다른 집이 있는 것 같은데, 확인 전화까지 받으셨다면 여기는 아닌 것 같아요. 전화 받았던 번호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빠르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다행히도 동대동에 있는 장어집이 맞단다. 아~ 다행이다. 이미 이쪽으로 오고 있는 친구들에게 바뀐 주소를 알려주고 나도 그곳으로 향했다.
이제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해안도로에 있는 장어집은 전에 몇 번 가봤던 곳이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처음 가보는 이곳은 혹시라도 분위기가 안 좋거나 음식 맛이 없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도착한 그곳은 동대동 번화가 한복판이었다.
대천보다 더 시골인 서천에서 온 친구들에겐 조용하고 외진 곳보다 일단 눈 요깃거리로 좋았다. 주변의 화려한 불빛과 북적이는 거리 자체가 새로운 볼거리였다. 장어집 외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따뜻한 불빛에 친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부도 빈티지하면서 아담하고, 복잡하면서도 통기타와 잘 어울릴 듯한 정감 있는 분위기였다.
미리 세팅된 깔끔한 상차림에 친구들은 연신 엄지 척을 했다. 잘못 예약한 덕분에 오히려 더 멋진 저녁이 된 셈이다. 이게 바로 전화위복이 아닐까.
차를 가져와서 술은 안 마실 생각이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다 보니 결국 소맥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 대리운전이라는 것도 있지. 이런 날은 마셔줘야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때 재경이가 일요일에 영규네 밭으로 마늘을 심으러 간다고 말했다. 나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집으로 와서 생각해 보니 토요일에 연골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한다는 걸 깜빡했다. 주사를 맞으면 쪼그리고 앉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걸 어쩌나.
지금 와서 재경이에게 못 간다고 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걱정이다. 매년 영규에게 농산물을 얻어먹고 있는데 영규한테도 미안해서 고민이 크다. 그래도 주사 맞고 마늘밭에 가는 건 무리가 될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친구들이라면 이해 해주겠지.
다음이라는 기회도 있으니 지금은 내 몸을 먼저 챙기는 게 옳다. 고민 끝에 나는 재경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재경이는 오히려 나를 더 걱정해 주었다. 다행이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첫댓글 동창들과 좋은 시간이었네요
상호가 같은게 체인점인가? 아무튼 기분 좋은 시간에 일잔 술이 술술 넘어갔겠네유~~
ㅋㅋᆢ술이 술술~~~
그래도 자중하면서 먹었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