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운전중이었고,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동안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우리의 몸은 차 안에서 꿀렁하고 요동쳤다(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어린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히지 않아도, 어른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워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다).
- 그녀를 숭배하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 주위로, 그전까지 마구 흩어져 있던 자신감과 권위의 조각들이 한꺼번에 일렬로 줄을 서는 것 같았다.
- 그러다 순식간에 웃음소리는 사라졌고-- 마치 길을 걷다가 구멍에 쑥 빠지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는 그날, 그 모든 감각들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역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정전과 비바람과 천둥소리를 뚫고 자신에게 도달한 안도감과 해방감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그 당시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불장난을 하며 느꼈던 그 아연실색할 만큼의 쾌감과 과민할 정도의 선명한 감정들, 분명히 실체를 가지고 있었던 그 감각들(불장난과 관련된 그 모든 기승전결!)이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허상? 아니다. 허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삶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호들갑스럽게 기대했던 순간들이 그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 그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누구도 가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그 세계는 터무니없이 치명적이고 통렬하면서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서 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생각은 시간이 흐른 후에 착각, 기만, 허상에 불과하다는 판명이 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