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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또한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넘쳐 흐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시는 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셔서 하나님과 화평케 하시고 우리 서로를 화평케 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 하나님의 화목이 우리 안에 임했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과의 화목이 뭔지 아십니까? 이것은 에덴으로의 회복입니다. 에덴에서 떠나갔던 쫓겨나야만 했던 아담과 하와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화목 제물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니 이것만큼 큰 사랑은 없는 것이죠.
여러분 이 마음을 담아서 우리 좌우 계신 분 앞에 계신 분들과 인사할 때 오늘은 평강을 전하십시오. 샬롬 이렇게 인사할까요?
샬롬 샬롬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면 점심 식사 후에 선산에 있는 춤새마을로 이동해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이 말씀을 중심으로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주제로 1박 2일 수양회를 합니다. 가사하지만 사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혹 오늘 못 가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다 가셨으면 했는데 상황도 여의치 않고 그래서 못 가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오늘 오전에 이 말씀을 같이 나누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제 안에 부어져서 오늘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제는 화목입니다. 화목 여기에서 화자를 이렇게 한문으로 보면 서로 뜻이 맞아 사이가 좋은 상태라고 이야기 뜻이 맞아서 좋은 상태 이것이 바로 화자의 의미이고 이 화목을 정의할 때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강조하는 화목은 무엇일까요? 제가 앞에서 설명을 드렸듯이 일반적으로 화목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주제라는 것이죠. 사실 준비하면서 이 주제를 놓고 제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너희끼리라는 이 표현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가 않은 거래요. 끼리끼리라는 말 있잖아요 그 표현이 사실 자주 쓰이긴 하지만 좋은 의미로 쓰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 제 그냥 개인적인 소견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지만 끼리끼리라는 말이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 너희끼리라는 이 표현이 제 마음에 들어오지가 않는 거예요. 너희끼리만 딱 떠올려보면 여러분 굉장히 배타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편협해 보이고 이런 느낌들이 좋지가 않아서 이걸 하지 말고 다르게 할까라고 고민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말을 표현했단 말이죠. 그래서 그 마음에 그래 너희끼리 화목하라를 그냥 사용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편지 말미에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이 아주 중요한 권면을 끝자락에 해 주었을까요? 본문을 통해서 다양한 각도로 한번 생각하고 나눠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이 권면해준 화목을 이루게 될 때, 여러분의 개인의 신앙의 성장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화목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개인의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이 되시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기초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이 권면은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에게 주시는 권면이었다라는 거예요. 오늘 읽은 본문 앞에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5장 1절에서 11절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 그리고 재림을 앞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이제 복음을 듣고 주님이 오신다는 그 재림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던 이 백성들에게 재림의 시기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를 기약하면서 항상 깨어 있어야 된다.
왜? 그날은 도적같이 찾아오기 때문에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하고 준비해야 된다는 말씀으로 생활을 적용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올바른 삶을 살도록 권면해 주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렇게 재림을 소망하면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이 공동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주신 권면인데 그렇다면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5장 9절 앞에 보면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5장 9절 같이 읽어보실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즉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죠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재림 소망을 가지고 삽니까?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그 확신 속에서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구원으로 인하여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에게 주신 메시지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화목을 바탕으로 우리가 서로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죠.
우리는 세상에서 화목을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화목과 다르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이라는 기초 아래서 서로 화목해 나아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잖아요. 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갈라졌던 인생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다는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 보시면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내가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내용이 있어요. 고린도후서 5장 20절인데 예수님 대신해서 권면한 메시지입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복된 일이다
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지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드리는 이 예배 우리가 찬송과 기도를 드릴 때에도 마찬가지고 십자가의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예배 시간이 되었으니 순서에 따라 종을 울리고 찬송을 하고 주기도문을 하고 그래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능력을 힘입어서 보좌 앞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자리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화목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자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복된 시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잖아요. 히브리서 10장 19절, 20절 말씀 읽어보실까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수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오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하늘에서부터 아래로 휘장이 찢어지면서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큰 길이 열렸다는 것 하나님께서 지성소로 임재하셨는데 그곳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지성소로 들어갈 때에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런데 어디나 계시는 그곳이 지성서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죠. 어디나 계시지만 내가 지성서로 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지성소는 어떻게 갑니까?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화목의 길이다. 여러분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다 말씀하신 예수의 피로 힘입어서 보좌 그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이제 서로 화목해야 되는데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에게 오늘 사도바울은 너희끼리 화목하라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편지를 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여러분 진짜 화목하게 지냈다면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 성도 안에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지만 그들 안에 화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에게 화목하라 말한 것이죠.
물론 여기에서 기록한 너희끼리라는 것은 명확하지가 않지만 우리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2절, 13절에 보시면 그 대상이요. 성도들의 영적 지도자와 함께 화목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어요. 여러분 사실 영적 지도자와 허목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기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영적 지도자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할 권세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이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선포되어지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잘 흘러가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가 올바라야 된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담임 목회자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지옥 같은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 안에 생명이 풍성함이 있을지라도 그 말씀이 전혀 와닿지가 않게 됩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해 주신 제사장들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그 축복도요 흘러가지가 않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받을 삶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전하는 자와 연합하고 화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씀이요 내 안에서 튕겨져 나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를 표적으로 하는 설교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경향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을 향해서 영적 지도자와 화목해야 된다라는 것을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지도자와 화목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지도자와 어떻게 화목할 것인가? 오늘 12절, 13절에는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영적 지도자와 화목하기 위해서 영적 지도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잘 알아라고 이야기합니다. 12절 말씀 우리 같이 읽어보실까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형제들아 너희가 알고
이것이 권면이죠 그럼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영적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세 가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잘 알고 수용해야 된다는 거예요. 첫 번째는 수고입니다.
여러분, 영적 지도자가 성도들을 위해서 해야 할 수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맡겨진 성도들이 영적 기갈에 빠지지 않도록 오히려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수고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죠.
농부가 수확하는 날을 꿈꾸면서 씨를 뿌리고 떼를 따라 물을 주고 걸음도 주고 또한 영양제도 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때를 따라 말씀을 뿌려야 하고요 때를 따라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도 해주어야 되고요.
신방, 성경 공부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함께 그들의 삶이 성숙될 수 있도록, 혹여나 병충해로 인해서 시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며 그들을 위해서 축복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일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영적 지도자가 왜 그렇게 영적 성장을 위해서 이것 좀 합시다 저것 좀 합시다고 하는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으셔. 여러분 하고 싶은 게 많아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로 훈련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죠.
여러분 중에는 종종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목사님 너무 바쁘셔서 제가 뭐가 바쁩니까? 여러분들을 위해서 바빠야 정상인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바쁜 것이 그것이 훨씬 더 정상적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기도 부탁을 못한대요. 바쁘셔서 뭘 저한테 부탁을 하실 거예요.
여러분들의 삶에 문제가 있고 고민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기도할 것이 있는데 목사님 바쁘셔서 제가 그걸 못하겠네요. 여러분 제가 바빠도 되니까 저에게 기도 요청도 하시고 여러분 때를 따라 필요하면 신방 요천도 하시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에게 부족한 부분들이 성숙되고 성장될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그러한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 수고가 결국 목회자와 성도의 화목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두 번째 영적 지도자는 다스리는 일을 허락해 주었다는 거예요. 특별히 앞에서 수식해주는 표현이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라고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영적 지도자는 세상 지도자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죠. 이것은 인간의 권위가 아닌, 인간이 세워진 권위도 아닌 바로 주 안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러한 권위로 성도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권위를 내세울 필요도 없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여러분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지도자에게 주님이 허락하신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래서 결국에는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영적 지도자를 보면서 뭘 하겠어요 실망밖에 할 게 없는 거예요.
여러분 저의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볼 때 얼마나 부족한 것이 많겠어요. 여러분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적 지도자를 바라볼 때 주의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고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로 바라보게 된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고 실망하는 것들만 바라보게 된다면 결국에는요 여러분 생명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여러분이 주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지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라도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영적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의 말씀을 듣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영적 지도자들은 권하는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허물이나 잘못에 대해서 책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 기초가 말씀에 있다는 것, 성도로 하여금 선한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혹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서 감으로 빠져갈 때에 건하여서 그것이 반복 실수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분명 말씀에 기초하여서 권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필요성이 있어서 권면을 해도 별 반응을 하지가 않아요. 그러면 그다음에 이 권면을 또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지도자는 말씀에 기초하여서 여러분들을 권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때로 권면이 주어질 때 외면하지 마시고 왜 그런가 왜 그렇게 권면을 했을까 깊이 말씀 앞에 삶을 들여다보셔서 성숙하게 성장해 가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는 가장 귀히 여기라 그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13절입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그들의 역사 여기에서 언급하는 그들은 영적 지도자를 이야기합니다. 즉 영적 지도자가 행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죠. 화목을 위해서 영적 지도자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에 우리 성도님들이 그것을 귀히 여기고 한마음이 될 때야 화목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화목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화목을 위해 무언가 추진할 때 그 마음을 함께하고 그것에 대해서 귀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때로는 영적 지도자가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옳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한 부족한 면이 있다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로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아브라함도 그의 삶에는 실수가 있었고, 모세도 다윗도 그들의 삶 속에는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적 지도자로 세웠기 때문에 귀김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이 주제 아래 성도와 목회자와의 관계가 화목해야 됨을 먼저 깊이 깨달으시고, 저와 화목하기 위해서 저도 노력하고 우리 성도님도 노력하는 은혜가 있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성도 간의 화목이 필요한 것이죠. 여기에서 너희끼리라는 것은 영적 지도자와도 이야기가 되지만 성도 안에 화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화목은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독교 공동체는 화목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이 문제로 논쟁할 때에 화목의 교훈을 주시게 되는데, 그 논쟁 끝부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소금은 좋은 곳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자신을 녹여서 짠맛을 내게 됩니다. 자신이 희생이죠. 즉 그 희생을 통해서 화목이라는 것을 만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니가 높니 내가 높니 서로 경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하나님과 하나됨과 같이 성도 간에 화목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화목을 위해 감당해야 할 것을 14절, 15절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14절을 읽어보실까요?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먼저 보니까 게으른 자가 있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권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게으른 자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할 바를 지키지 않고 무질서 상태로 만드는 자들 당시에 이단 사상가들이 있었잖아요. 이단을 교포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거죠. 그들을 권기하라 책망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공동체 안에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이 있다면 성도 간에 권면할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모여서 교회를 험담하고 성도를 험담하고 그러한 일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성도가 서로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주신 지혜로 사랑을 나누는 그러한 자리가 있어야 되는 것이죠. 누군가 성도를 험eka하는데 그 옆에서 맞장구 치면서 맞아 맞아 그 사람은 그래 이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가끔 식당에 가면 낮에 제가 식당에 가잖아요. 그러면 대부분 남성들은 별로 없고 여성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몰라요. 식당에 가면 여성들이 이렇게 있는데 어느 무리는 이렇게 보면 권사님이라든지 집사님이라든지 이렇게 티가 나요. 교회 이야기를 하는데 누굴 자꾸 이야기하는데 제 귀에 거슬리는 거예요. 그러면 제 귀에 거슬리면 믿지 않는 사람이 그 옆에서 들을 때 어떻겠어요? 저와 여러분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험담하고 교회에 안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건설적이고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더 세워질까를 나누며 그렇게 세워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부족해서 또한 심판의 두려움이 있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자들, 그 마음이 약한 자들 그들을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라. 그것이 성도 간의 아름다운 화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넌 왜 아직 구원의 확신도 없어라고 핀잔 주고 그들의 마음을 더 다운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위로해 주는 것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연약해서 자꾸 넘어지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러한 분들이 잘 설 수 있도록, 내가 조금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잘 설 수 있도록 옆에서 낙담하지 않도록 세워주는 것 이것이 화목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다.
네 번째,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골로새서 3장 12절 이하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내는 띄니라.
여기 보니까 오래 참음에 옷 입고 그 위에 뭘 더하라는 거예요. 사랑을 더해라 온전하게 매는 띠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화목의 띠를 띠게 되는 것이죠. 귀한 성도님들 간의 화목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누구를 대하든지 사랑으로 오래 참는 자들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사랑으로 참고 견디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장에 보면 그렇잖아요. 사랑은 오래 참고 마지막에 견디는 게 참고 견디는 게 사랑인 것이죠. 마지막 15절을 읽습니다. 마지막 권면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대부분 사람들은요 받은 대로 응수하기를 원해요.
그래서 니가 나 한 대 쳤어 가만 안 두겠어 나도 한 대 칠 거야.
이게 인간의 기본 마음이에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연약합니다. 그래서 내가 선을 베푸는 자들에게 선으로 내가 악을 베푼다고 말할 수 없죠. 나에게 악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악으로 다가가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대느라 이게 예수의 복음이죠 속옷을 달라 하며 바지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가지면 그 강제로 오리로 가자 하면 십리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마음 그리고 이것 떠와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구원의 회복을 통해서 인간 창조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에덴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그 모습대로 회복되어지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선한 모습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0절에 말씀하자 같이 읽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한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지으셨다. 때로는 우리에게 악으로 다가와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걸러서 선으로 배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화목해야 돼요. 성도와 목회자가 화목해야 되고, 성도와 성도 간의 화목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 신은 교회가 이 화목을 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가끔 교회의 분란에 대해서 뉴스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속상하죠 마음이 아프죠 교회가 서로 화목해야 되는데 곤란이 있고 아픔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 가운데 드러나고 만약에 우리 안에 화목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희끼리 먼저 화목해라.
여러분 우리가 화목해야 세상과도 화목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복음의 연결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우리 성도 간의 화목이 되어서 세상과 화목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