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년12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상담 및 교리 진행 ★
<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 ★공(空)은 충만하다★ 253~288p
<.명상이란 무엇인가?(2)-실존적 사실을 보고 행동한다.>260~266p
▷ 일 시 : 불기2568(2024)년12월16일 (월) 오후1:00~4:00
▷ 장 소 : 서울구치소 소법당
지도법사: 보광-조철주
동 참: 이병기 포교사, 김은현 계장
2024년11월18일(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정기 자매 상담 및 교리를 진행하였다.
-----------------------------
삼귀의와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상담 후 생활법문 및 교리를 전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회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나무석가모니불,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
*오늘은 필리핀에서 귀국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이병기포교사,
정년 퇴직하고 여주에서 근무 중인 김은현 계장이 비번임에도 쉬지않고 함께 함으로 반갑고, 감사한 가운데, 귀한 만남의 시간이 되었다.
★ 교리내용: 선지식 라즈니쉬 오쇼의 가르침( 반야심경 The Heart Sutra) 중
★공(空)은 충만하다★ 253~288p <.명상이란 무엇인가? (2)- 실존적 사실을 보고 행동한다.>260~266p
----------------------------------------------------------------------------------------------------------------------------
▶명상은 있는 그대로의 실존적 사실을 보고 행동한다.
➤그대의 삶을 관찰해 보라.
그대가 결론을 통해 행동 할 때에는 상황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한다.
가령 그대가 어떤 사람을 보고 반했다고 하자,
아주 훌륭하고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의 눈빛과 분위기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저는 유태인입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대는 기독교인이다.
즉시 거리감이 생긴다.
이제 이 남자는 순수하지도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대는 유태인에 대해 특정한 관념을 갖고 있다.
또는 그가 기독교인이고 그대가 유태인이라고 하자.
그대는 기독교에 대해 특정한 관념을 갖고 있다. 261
과거에 기독교가 유태인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들이 유태인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그대는 그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상황이 돌변한다.
이것은 단정과 편견에서 나온 반응이다. 이 사람을 직접 본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그대가 생각하는 유태인과 다를지도 모른다.
모든 유태인은 저마다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힌두교인도 그렇고 모하메드 교인도 그렇다.
개인마다 다르다.
편견을 통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특정한 법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분류의 대상이 아니다.
그대가 백 명의 공산주의자에게 속고 나서 백 한 명째의 공산주의자를 만났다 해도
공산주의자는 사람을 잘 속인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대 마음속의 카테고리 (category)를 믿지 말라.
이 백 한 번째 사람은 다를지도 모른다. 단 두 사람도 똑같지 않다.
단정적 결론을 통해 행동한다면 그것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다.
현재를 직시하라.
그리고 엄연한 사실과 실체를 왜곡시키는 어떠한 관념도 허용하지 말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 그 봄(觀)을 통해 행동하라.
이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하루 중 특정한 시간에 행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삶의 매 순간 속에서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걷고, 잠자고, 앉고, 말하고, 듣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명상은 일종의 분위기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릴랙스 된 사람은 언제나 명상 안에 있다.
끊임없이 과거를 버려 나가는 사람은 언제나 명상적인 상태 속에 있다.
결코 단정적 결론을 통해 행동하지 말라.
그 결론은 그대의 세뇌화, 편견, 욕망, 두려움 등등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것은 그대라는 에고의 집합체다!
'그대'는 그대의 과거를 의미한다. 그대의 과거 경험이 곧 '그대'다.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262
과거가 현재를 좌우하도록 하지 말라.
죽음이 삶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바로 이것이 명상이다.
요컨대 명상 안에는 나'가 없다.
죽은 자가 산자를 지배하지 않는다.
명상은 그대의 삶에 전혀 다른 특성을 부여한다.
이때 그대는 힌두교인, 모하메드교인, 인도인, 독일인으로 살지 않는다.
그저 '의식(consciousness)으로 살아간다.
순간 속에 살아갈 때, 거기에 끼어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대의 몰입(attention)은 전체적이다.
거기에는
산만함이 없다. 산만함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오는 것이다.
몰입이 전체적이면 행동 또한 전체적이다. 그 행동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대를 자유스럽게 놔둘 뿐 결코 새장 속에 가두지 않는다.
이것이 붓다의 궁극적인 경지다.
이것이 그가 '열반'이라고 부른 것이다.
▶'열반'은 자유를 뜻한다.
걸림이 없는 절대적인 자유가 열반이다. 열반의 경지에서 그대는 활짝 열린 하늘이 된다.
경계선도 없이 무한한 하늘이다. 그저 거기에 존재할 뿐이다.
그대의 안과 밖을 막론하고 사방을 무(無)가 감싼다.
무(無)는 명상적인 의식 상태가 나타내는 기능이다.
그 무(無)안에 축복이 있다. 그 무(無) 자체가 축복이다.
이제, 경전을 보자.
그러므로 오, 사리푸트라,
보디사트바가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사념의 장막없이 안주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무득(得) 때문이니라.
사념의 장막이 없으므로
그는 두려움이 없으며
전도(顚倒)된 마음을 극복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열반(涅槃)에 이르니라. 263
이 '그러므로'라는 말은 붓다가 사리푸트라의 무(無)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리푸트라의 에너지는 릴랙스 되어서 더 이상 혼란 속에 있지 않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붓다의 말을 듣고 있다.
그는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붓다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활짝 열린 채 그 자리에 현존하고 있다. 붓다는 이것을 안다.
이 '그러므로'라는 말은 사리푸트라의 실존이 전개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붓다는 사리푸트라라는 이 꽃잎이 피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사리푸트라를 더 깊은 차원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사리푸트라는 활짝 열려 있다.
이 '그러므로'라는 말은 논리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존을 나타내는 말이다.
붓다를 들여다보면서 사리푸트리는 꽃잎처럼 열리고 있다.
또한
붓다는 사리푸트라를 들여다보면서
그를 피안(彼岸)의 세계로 더 멀리 데리고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깊고 높은 차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오, 사리푸트라,
보디사트바가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사념의 장막없이 안주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무득(無得) 때문이니라.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명상하라.
집중하거나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라는 말이다.
귀 기울여 듣고 관조하라.
※무득(無得, non-attainmentness) attainment ① 도달, 달성. ② (노력하여 얻은) 기능, 재간, 예능; (보통 pl.) 학식, 재능, 조예(skill) |
그러나
이 말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지는 말라.
이 말들은 사유(思惟)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차원에서 사유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그것은 그의 무득(無得, non-attainmentness) 때문이니라. 264
명상은 달성되는(attain) 것이 아니다.
명상에는 어떠한 동기(motive)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달성하고자 할 때 그대는 동기를 통해 달성한다.
그대는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당장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명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지금 이 순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명상 외에 아무것도 없다.
왜 그런가? 돈을 원한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에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을 벌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한다.
천천히 이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빠른 길도 있는데, 그것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대는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느린 방법이든 빠른 방법이든 시간이 요구된다. 시간이 필수조건이다.
시간이 없다면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바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이웃집을 털거나 옆에 앉은 사람을 소매치기하려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이 필수적이다. 유명 인사가 되려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정치적으로 막강한 인물이 되려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즉시 얻을 수 있는 것은 명상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명상은 그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이미 거기에 존재한다.
다만 그대가 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명상이라는 권리는 아직 행사되지 않았을 뿐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대는 지금 당장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단 한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무득無得) 때문이니라. 265
열반(涅槃)이란
완벽하게 개화(開花)된 명상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신(神)이란 명상의 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난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은 달성되는 게 아니다. 이런 것은 그대의 본질이며 실체다.
아무리 오랜 생동안 그냥 지나치고 무시해왔다 해도 이 본질을 잃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본질은 언제나 그대 안에 존재한다.
눈을 감고 그 본질을 들여다보는 날 그대는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대는 바로 이런 지복(至福, blessing)을 찾아 왔지만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바로 이 평안(security)을 구하고 있었다.
이 평안은 무(無)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대는 돈에서, 은행 구좌에서 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는 결코 평안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그대의 삶에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외부에 있는 것은 불안정하다.
어떻게 불안정한 것이 그대의 삶을 안정되게 해 주겠는가?
정부가 그대의 삶을 안전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정부권력 자체가 불안정하다.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은행이 그대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은행이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산(bankrup)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bank)인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그대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또는 사랑하는 남자가 그대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한다.
그는 느닷없이 죽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안전장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대는 더 불안해진다.
그대는 은행이 파산할까 봐 두려워한다.
만일 은행에 아무 구좌도 없다면 은행이 파산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러나
구좌를 갖고 있으면 걱정이 된다. 266
이렇게 되면 그대는 '이 은행이 파산할지도 모른다' 는 또 하나의 불안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제 그대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외부적인 것을 믿고 의지하면 더 많은 불안이 야기된다.
이것이 부유한 사람일수록 불안해지는 이유이다.
나는 가난을 옹호하지 않는다.
이것을 명심하라. 지금 나는 가난해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신성하지 않다. 나는 가난한 사람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 불안이 있다.
물론, 부자에게도 불안이 있다.
부자의 불안은 좀더 복잡하고 가난한 사람의 불안은 단순하다.
하지만 불안이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지금 나는 가난에 무엇인가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영성(spirituality)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부유함도 영성과 무관하다.
가난과 부유함은 영성과 별개의 문제다.
가난한 자 또한 부자 못지않게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가난한 자가 마차를 갖고 있다면 부자는 캐딜락 승용차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마차는 캐딜락 승용차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것이다.
둘 다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부자는 은행 잔고가 든든하고,
가난한 자는 빈 지갑만 갖고 있거나 푼돈밖에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 차이도 없다.
둘 다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똑같다.
=============================================================================================END
★-원문출처:오쇼라즈니쉬 강의(손민규 옮김)『반야심경』초판2쇄;서울:태일출판사,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