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운곡 조 이 무
축구!!
2006년 초여름
독일 월드컵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특히 한국인이
한국 축구 100년사를 더듬거리면서 흥분한다.
처음이라며
그리고 단군이라는 신성시 하는 조상도 호출하고
오천 년 역사도 다시 구인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언론인들만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중요성을 당연하게
자기들의 전유물처럼 만지작거리며 호도한다.
그들은 항상 시대를 회귀하면서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결과에 따라 활용도가 상반되는
각기 다른 형태의 사용법으로 상생을 도모하기도 하여
적절하게 구실삼아, 잡다한 수식어를 붙여준다.
우리의 관심사가 분단된 통일이나 경제적인 불평등의 해소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각자의 욕구가 바램 등
이러한 해결보다 축구로서의 결과 때문에
존재하는 중요한 관심사가
지속 가능한 미래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방향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사회적 갈등이 변화할 수 있다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자리를 함께하는 공익 방송 매체들도 여한 없이 흔들어주어
흥건히 들어오는 도체가 형성되듯이
그 공간에 빨려들어 흡수되는 것은 나도 역시 한국인 이므로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짐짖 고개를 돌려본다
아니 더 심한는지도 모른다
남다르게 스포츠에 심한 갈증을 느끼는 자이고
여러 방면의 경기에 매몰되는 이유는 스포츠의 가치관이
특히 유럽 축구에 반응하는 밀도는 거세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는 것은 차마 감탄할 지경에 이른다
경기할 시간이 다가오면 각 매채은 장단을 맞추어,
마치 태고의 비문에 적혀 있는 신비로움을 알리려는지
수삼일 전부터 매스컴들은 서로 비교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자기들이 최고라며 시청자들을 상대로 난리를 부리지만
문면들을 보면 결국 대동소이하여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데에 약간의
혼란이 가중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방송국마다 전문가의 예측은
마치 무속인들이 보이지 않는 미래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처럼
서로 장담하고 자기의 방송을 시청해야만 된다는 필수 불가결의
예상 문제를 풀 듯이 예측하고 호응을 촉구한다
애,어른은 당연한 것이고 그동안 축구에 관심은커녕 못마땅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TV 시청으로 마음 상하던 여자들도
요즘 들어서 더 적극적이고 관심의 대상이다
그날이 오면은 가슴 졸이면서 TV 앞에 서성거리는 것은 다반사고
연신 시계를 보며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처럼 초조해한다
며칠 전에 아프리카의 토고와 1차전을 하였는데 선전하였고
결과물도 괜찮았다 백중세여서 그런지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관전하여
긴박감이 더했다 토고하고 승리한 후에 연이어 세계 최강이라는
프랑스와도 대등한 경기로 비겨서 그런지 사람들은 한 층 고무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축구 경기를 보았거나 아니면 사람들한테 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무승부로 비겨서 사람들이 더욱이 고무되어 있다
4년 전 2002년도 한일 월드컵을 상상하며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그리고,,, 그래서,,, 세계 4강의 실력이라면서
누구에겐가 성질을 내면서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은 나름대로 분석하여 서로가 평론의 고지에 도달하는 달콤함을 맛본다
역시 한국 축구는 일취월장하여 세계 최고의 반열에 대한민국은 축구
강국이라는 적잖은 자부심이 솟구쳐 덩달아 가슴 열어 보인다.
우뚝,,
요즘에 불어오는 축구 열풍에 비하여 한반도는 장마에 몸살을 격으며 다른 체감에
격랑을 맛보고 있다. 6월 중순인데도 태풍의 영향으로 인하여 밤에는 심한 요동을 치고
한랭전선이 밀려오는지 약간 쌀쌀하고, 수일째 천둥이며 번개가 요란하게 울리어
장대비의 요란한 소리에 밤잠을 설쳐서 그런지 생활 습관이
자신도 모으는 사이에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계절을 탓해본다
스산한 기온은 아침저녁으로 변죽 대어 날씨에 뒤척이며 내일을 향해
불암산 기습의 찬바람도 수목원이 농익어 성숙한 바람도 한몫하고 있어
그리하여 겨울옷을 찾아 입을 수박에 없다.
오늘은 새벽이 되어서야 비가그처 밤잠을 설치게하더니
밤새 내린비도 부족했더지 아침부터 초여름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대지를 적셔주고 있다
이곳 왕숙천 주변에는 풍족한 물이며 공기도 상당히 좋다
불암산도 지척인데다 광능내 수목원도 한목하여 흠잡을데 없는 청정 지역이다
물론 왕숙천 상류에서 흐르는 물도 상당한 수준으로 주말이면
망우리 중화동 사람들이 자주 찾곤 한다
그래서 농업을 주로하는 농경 사회라고 할수있으며
서울이 또한 지근 거리라서 경공업 이라든가
창고업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있어 외부인들과 원주민들과도
잘 어울리며 생활하기는 괜찬은 지역이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하여 밭 이랑에는 잡풀들이 가득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
요즈음 잡 풀들은 하루에 20~30 정도 자라는 것은 보통이라서
풀 제거하는것도 일과중의 일과여서 농민들 한테는 반가울 리가 없다
듣기로는 미국에서 들어오 플이라고 하지만 에전에 우리가 보던 조그마한 국산은 아니지만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가끔은 겁이나기도 한다
도저히 감당할수 없기에 나는 호미를 들고 밭머리를 향하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밭을 서성이는것이 분명하여 관심을 두고 보았는데 눈에 익은 사람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는 처음보는 사람이고 부인처럼 보이는 여자분과 함께
불편한 듯이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얼핏 보기에는 농사꾼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어색해보이고
아니면 나처럼 사업인가 뭔가 하다 딸랑 망해서 잠시동안 도피하러 온것인가하는
동병상련이 마음 속에서 응얼거린다.
나이도 나와 비슷해 보이고 성장과정도 시골 촌놈처럼 수더분해 보였는데
담배를 연신 빨고잇다.
깡마른 체구에 볼테기는 약간 파였지만 호감이가는 얼굴형이다.
나를보자 피우던 담배를 끄고 여자분과함께 허리숙여 인사를한다.
나도 이곳에 온지가 벌써 3개월정도 된다.
처음으로 사람냄새 맞아본다.
아버지도 손님이 반가운 눈치다.
그 사람은 처음과 달리 긴장을 풀고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내가 상상한것과
엇비슷하여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기에서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 토지를 임대를 하였다고 한다.
300여평 정도에 시설을 하려는데 자재값 과 인건비가 궁금 한듯하여 찻아 왔다고한다.
나는 우리집에 사용하지 않는 자재가 많이 있으므로
우선 공사를 하기로하고 통 성명을 했다. 이름은 신명재이고
나이는 나보다 한살어렸지만 친구하기로 악수 한번하고 근20여년을
형제같은 친구처럼 지냈다
.항상 우리는 저녁6시쯤 막걸리를 마신다.
대락적으로 거의매일 명재네집 옆에잇는 비닐하우스 식당.
영원 불멸의 우리만의 아지트 주인도 동연배라 허물없이 지내는편이고
사연이 많으신 분이다. 안주는 거의 공짜로 먹으면서 보통 막걸리 값만 낸다.
그리고 약간의 봉사료는 지불한다
장소는 허름해도 점심 시간이 되면 식사 할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일찍 줄을 서야만 간신이 밥을 먹을수 있다
음식 솜씨는 괜찬은 편이라 주변 언저리에 입소문이 난모양이다.
잘하는 음식으로는 갈치조림이 별미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술은 팔지않은 전형적인 시골밥집 이다.
우리는 농사지을 비닐하우스와 기거할 움막을 30평정도 지었다 그리고
자기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불을 때는 구들장을 고집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아궁이를 만들어보고 부뚜막을 만들어 가마솥을 올려 놓으니
어느정도 형태가 만들어젖다
이곳에는 나무가 이다
건너편 불암산 기슥에도 페사된 나무가 꽤 많아서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대로 장작을 쌓아놓으니 나무만 심으면 시골집처럼,
숲길속의 운치가 감도는 휴식처 충분해보엿다
막걸리로 고사를 지내어 무사무탈할 것을 빌어도 본다
여기 주변에는 거의가 비닐하우스 에서 엽채류를 생산한다
인근 농산물시장에다 위탁 판매하는 비니하우스 밀집지역이다
불암산 올라가면 농민들의 움직임은 북극의 에스키모인의
이글루처럼 한가하게 보여진다 저희 아버지와 동생도 농업인이다
노력에 비해 결실이 미홉하다
예나 지금이나 농민의 하루일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명재가 이사를 하였다
근사한 책장에는 통신에 관한 전문서적들이 가보처럼 놓여있고
시집이며 단편집도 앙상하게 보인다
그리고 책상위에는 상당분량의 원고지도 잇다
글을 쓰셨나봅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나하고 취미가 비숫하여 안도하지만 그후로 여러번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 자존심 때무에 진전이 없다
명재는 아쉬운데로 옆에있는 박스공장에서 일을하고
퇴근 무렵 내가 그쪽으로 운동삼아서 한40여분 남짖간다
저녁에는 막걸리로 하루의 점철된 번뇌와 사투를한다
이곳에는 아버지가 30여년전 농지를 구입하여 정착하셨다
지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지주는 지주다 나는
그곳에 창고처럼 만들어 볼성사나운 모습으로 사업을 한다
폭망한 이삭줍기를 하며 근근이 버텨보지만 그래도 성중이보다
수입이 조금많아 막걸리는 주로 내가 사주는 편이다
왕숙천에 자리잡고 알콩달콩 세월을 허비한지도 강산이 한번쯤 변한듯하다
성중이보다 내가 수개월 먼저 이곳에 왔다
물론 부모님과 동생이 이곳에 살기에 자주왔다 어찌보면 타향이라기 보다는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다 그런면에서 명재 보다는 수월하게 적응하고
아버지 동생 이름팔며 산다
초가을 날씨인데도 아침공기가 꽤나 움추려 진다
마음이 추운 것이다 배추 밭에서 속이 꽉찬놈으로 한가구 하고
무도뽑아 화물차에 실었다 성중이가 사는 아지메 식당
[우리만의 아지트]에 주면서 겉절이좀 부탁하니 식당하는 아줌니 좋아한다
친구가 최고랑겨 오늘은
명재네 겨울 땔감하러 불암산으로 가는 날이다
막걸리 2통하고 겉절이를 농업용 1톤 화물차에 던저놓고 시동을 걸어본다
엔진소리가 청량해보이고 기름타는 냄새도 상큼하다
식당하는 아줌니도 한손에 빗자루를 손에쥐고 흔들어준다
창문으로 보여지는 사람들은 거의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에 익숙하다
장화에 새마을 모자 삽자루를 어께에 메고 분주하다
그중에는 아버지도 벌서 한잔 하신 모양새다
뒤따르는 어머니는 불만섞인 모습이다
벌거숭이 불암산에는 등산객들로 산중물에 형형색색 물결친다
생동감을 주어 잘어울리는 이다
소나무 참나무등 태풍에 쓰러진 보기에도 아까운 재목들이 쓰러저 있어 안타까웠다
마냥 즐겁지 않음을 뒤로하고 집을 향한다
작은놈은 자르고 큰놈은 독끼로 조겨놓아 겨울에 군불 때고
군고구마 냄새도 아른 거린다 자주가는 우리 아지트에도 장작을 꽤 주었다
행복이란 별거여 인심 써가면서 웃어 보는거지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지근거리 식당 아주메도 명재를 향해 미소 지어본다
식당 아주메는 남편과는 사별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하고 더 친했는데 요즘은 입장이 바뀌었다 자기는
고향이 경북영양 이고 명재는 청송이라 청양고추를 연상 시키면서
천생연분 이라는 것을 애둘러서 말해본다
나는 심통이나서 알았응게 고마혀 심통을 부려보지만 잡을수 없는 것이 사람마음
나는 식당 아주메를 좋아한다
이상형이다 조그만 체구에 억척스럽고 다부지고 강한모습,
친구처럼 대하는 여자모습 여자로 보이는 친구모습
인연이 아니면 인연찻아 떠나야지 단념한다
행복하길 바라오 명재는 신중하다 아이들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취중에 많은 대화를 한다
자기는 노년에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고싶다고 여러번 말을한다
물론 여자애기도 한다 많은 대화를한다
내가 보기에도 한3년은 버탈겨 하고 큰소리 처본다 화
내가 보기에도 한3년은 버탈겨 하고 큰소리 처본다 화답하는 식당아지메
오늘 막걸리는 내가 한턱 낼겨 강하게 말하면서 기분이 좋아보인다
명재는 부인과는 수년전에 이별을 했다
자세이는 알수없으나 경제적인 문제와 환경등 적응하기가 조금은 힘들었을 거다
자존심 강한 명재는 부인에 대한 미련이 전혀없는 둣하다 슬하에는 자식이 한명있어 자주온다 고등학생인데 나 하고도 친하다
지금은 군에서 제대하여 교정직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 왕숙천 주변은 3기 신도시로 되어있어 터전을 하게
강제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재네 집은 무허가 건물 이라서 단돈10원도 줄수가 없다고한다
15년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사 비용도 줄수없다고 하여 명제와 함께
여러번 대책위원 이라는 데를 찼아갔다
특별법 이라면서 헌법위에 군림하는 특별법으로 호도하는 주민대표
힘이없는 사람들 고개를 떨군다
누구를 위한 주택 개발인지 암흑이 따로없다
한국이 선진국 이라면서 떠들어 댄다 LH행정은 정반대다
우리 아지트도 무허가다 힘없는자 특별법에 삶의 방향과 정든터전을 두고 떠난다
명재와 식당 아지메도 이곳을 떠난다
다람쥐 체바퀴처럼. 나는 물려주신 토지를 보상 받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콩 한쪽도 나누려 누가 말했나 야속하기만 하다
진정한 우정은 나에게는 사치스런 싸구려 골동품 이라면서 이밤도 아쉬움에 밤을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