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소박하면서도 순정적 이미지 살려
김 송 배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현대시의 구도를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의 구성과 다원적인 언어의 조합으로 시 창작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대적으로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그만큼 생활의 범주도 넓어졌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변천은 우리들의 정서에도 사유(思惟)의 확대를 요구하고 표현의 기법도 다변적인 상황으로 시의 경향이 변모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신인상 응모작품 중 예선을 거쳐 넘어온 것은 대체로 평범한 일상과 정서에서 도출한 소박하면서도 순정적 이미지가 담긴 서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강소산의 「사랑 이야기」외 5편과 김기식의 「파도」외 9편 그리고 전희애의 「어머니」외 10편이 결선에서 최종적으로 심의하게 되었다. 모두가 아직 언어 조탁(彫琢)과 시적 구성에서 부족하다는 결론이었으나 신인상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측정하는 것이라는 종내의 관점에 따라서 당선작을 선정하기로 하고 강소산의 「풍경」「그림」「옥수수」와 김기식의「파도」「봄」「늦가을」그리고 전희애의「월출산」「사공」「소나무」를 천하기로 한다. 이와 같이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모두 순수한 내면의식에서 아직 성숙하게 전개되지 못하는 시법을 지적했지만, 순박한 서정의 정감을 높이 사게 했다. 그러나 모두가 언어의 조합에서 ‘처럼’이나 ‘같은’ 조사를 많이 삽입하여 문장을 완성함으로써 직유법의 약점이 시문장의 활력을 감소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사유의 확대가 미흡해서 주제를 창출하는 저력이 아직 일반적인 상념을 배제하지 못하는 보편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누구나 초기의 습작기에는 주변에 산재한 사물과의 친근을 통해서 주관적인 가치관을 투영하는 시법을 강조하지만,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시간과 공간 개념의 융합을 통한 이미지의 창출을 위한 체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당선이 전부가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성실한 자세와 인내를 가미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진하기를 바라면서 축하를 보낸다.
(당선 작품)
풍경
강 소 산
나는 깊은 산사의 풍경이면 좋소 이름 모를 산새 소리에도 몸을 떨겠소
해탈한 비구니의 늙은 젖가슴 안에 어쩌다 남아있을 물기도 찾아보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정령이 되어 떠도는 혼령들의 한많은 넋두리도 들어 주리다
속세의 눈물도 차마 미워 할 수 없는 고운 소리로 우는 풍광 그런 노래라면 더욱 좋겠소. --------------
그림
강 소 산
풍성한 햇살이 철죽을 피워 냈었지 지붕 위에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
개구리같은 아이들이 펄쩍 펄쩍 뛰고 언덕 위 들길은 하늘까지 이어지고 있었지
보리 익는 마을 장다리꽃이 눈처럼 덮힌 동구 밖 넘쳐나는 햇볕 안고 뒹구는 진달래 꽃무더기
길은 멀어 강아지 눈빛조차 아득한데 샘터 부서지는 물살에 연둣빛 푸성귀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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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강 소 산
무쇠 솥 웅근한 여열은 식지 않는 정이여서
주름진 할머니 무명베 치마폭에 감추인 달콤함이 구슬로 꼭꼭 박혀
옛 이야기 마다 모락모락 정을 피우며 꿈길에서만 들리던 하모니카 소리 -------------------------
봄
김 기 식
싸늘하게 말라버린 산야에 태양이 열을 불어주면 봄 정령들의 속삭임에 온갖 생명들이 조용히 꿈틀대며 죽었던 호흡으로 깨어날 준비를 한다.
흰 포말을 토하면서 죽어가는 오염된 하천에도 생명의 숨길을 막아버린 아스팔트에도 몸부림과 아우성을 치면서 대 이을 새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어느덧 대기의 열기가 더해지면 나무와 풀들은 정열에 겨워 만개(滿開)한 꽃들로 수정(受精)을 하고 벌 나비들은 열정에 취하여 춤추며 노래한다. ---------------
늦가을
김기식
안개 낀 새벽 철로둑 옆 비에 젖은 낙엽은 떨어져 바람따라 뒹굴고 벌거벗은 나무는 찬바람이 매서워 울고 있다.
얼룩덜룩 시들은 갈색 옷 입은 산들은 안개에 쌓여 뿌연 형체만 보이고 가까이 보이는 호수에는 물새들이 한가롭게 졸고 있다.
추수 끝낸 논펄엔 물 고여 을씨년스러운데 경춘선 새벽 기차는 조는 듯 여유롭기만 하다. -----------
파도
김 기 식
영겁의 세월동안 수없이 밀려왔다 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온 신(神)들의 이야기
만물의 영육(靈肉)이 녹아 든 바다의 배설물들을 토해 내기위한 흰 분말들의 절규
먼 바다의 동화같은 아름답고 무서운 전설들을 싣고 와 어떤 때는 조용히 속삭이듯 어떤 때는 무서운 함성으로 이야기 한다.
지금도, 지상의 온갖 흥망성쇠와 치열한 생존경쟁들에 무심한 듯 해신(海神)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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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전 희 애
마음이 머무는 곳
높은 정각 기왓장은 세월의 무게를 못이겨 벌어진 틈사이에서 꽃밭 가꾼다
보름달이 놀다간 그날 야생화 꽃씨는 훨훨 날아 이사를 했나봐
수승한 보리심이 위에서 아래서도 인적드문 사찰은 나이가 들어 흉가같은 허술한 건물이다
삼매경 그림자 행자스님 하루를 보내는데 월줄산 무위사 백위 관세음보살 바람타고 사뿐히 들어오신다
마음이 가부좌하는 곳. -------
사공
전 희 애
적막이 흐르는 밤 바다도 잠이 들었나 멀리서 깜박이는 말없는 등대
불빛으로 날아드는 괭이 갈매기 하루가 가네
하늘을 지붕 삼고 수평선 항해하는 뱃사공
항구마다 그리움 뱃길에 싣고 아침이 밝아오네 사공의 노래 ---------
소나무
전 희 애
말없이 선(禪)에 잠긴 깊은 겨울산 우람하게 자리한 토종 적소나무
때로는 외로워 보일 때도 때로는 고고해 보일 때도
봄이 오면 송화가루 강에 풀어주고 그윽한 솔향기에 눈 감아 버리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불을 삼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목욕을 하고 바람 부는 날이면 오고가는 나그네 그 향기에 취하는 길손이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