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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익산향토문화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귀희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 제주 답사
일정 : 2010년 1월 29일 익산에서 10시 00분 출발 → 군산 11시 20분 군산출발. 1월 31일 14시 15분 제주도출발 → 16시 군산도착.
숙소 :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옆 삼양제넥스 콘도.
답사 첫날 : 12시 10분 제주도 도착→ 점심(고등어조림)→ 항목유적지 → 한림공원(쌍용굴 천연기념물 제236호)→ 추사 적거지(공사로 차 안에서) → 올레길(주상절리 7코스)→ 서복기념관→ 저녁(회 정식)→ 숙소이동 → 천지연폭포 야경 자유 관람.
둘째 날 : 아침(해장국 8시 30분)→ 제주민속촌 박물관→ 정방폭포→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점심(갈치조림)→ 선녀와 나무꾼→ 만장굴 → 저녁(오분자기 해물탕)→ 숙소→ 자유 시간.
세쨋 날 : 아침(해장국 8시 30분)→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민속촌 박물관→ 제주목관아 → 삼양동 선사유적지→ 점심(한식)→ 14시 15분 제주출발→ 16시 군산도착.
우린 시청 앞에 기대와 흥분된 가슴을 안고 하나, 둘씩 모여 행복한 마음으로출발하였다. 겨울 날씨 답지않게 따뜻한 날씨도 우리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준다. 회원이 아니신 멋진 분이 참석하셨는데, 그분은 회장님의 선배이시며 전주에서해금강관광 사업을 하시는 김인귀사장님께서 우리의 가이드로 참석하셨단다. 정말 고맙고 우리에게 행운의 기회였다. 그분으로 인해 모든 답사가 막힘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돌아오는 날까지 즐겁고,멋진 답사를 마쳤다. 사장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나마스테’
우리는 12시 20분 공항에 도착 김사장님의 친구, 제주도에서 사업하시는 박사장님을 만나 식당을 소개받아 제주도 고등어조림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첫 코스 항몽유적지로 출발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김사장님의 배려로 20명이 큰 관광버스로 답사를 편하게 하게 되었다.
제주항몽유적지[濟州抗蒙遺蹟址] 사적 제396호
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인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의 유서 깊은 유적지. 면적은 1,135,476㎡이다. 1270년(원종 11) 2월 고려 조정이 몽골의 침입으로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김통정을 총수로 한 삼별초가 고려의 김방경과 몽골의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 1273년 전원이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다. 해발 190∼215m 지점에 있는 항파두리 토성은 1271년 여몽연합군에 대항하던 삼별초군이 완도에 용장성을 쌓고 주둔하며 활동하다가 여몽연합군에게 패배하고, 같은 해 9월에 제주특별자치도로 들어와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한 것이다. 본래 토성(높이 5m, 너비3.4m)으로 총길이 6km에 이르는 외성을 쌓고 안에 다시 석성으로 800m의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이었으며, 각종 방어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
1274년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게 패배하여 성이 함락되었는데, 그후 근대까지 방치되어 있다가 1976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듬해에 성곽 일부를 보수한 것을 비롯해 현재까지 10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토성 1km를 복원하고 순의비·순의문·《항몽유적기록화》(7폭) 등을 시설하여 국난극복의 교육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유적에 김통정의 전설이 얽힌 곳으로서, 김통정이 토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바위에 파였고 그곳에서 샘이 솟아나게 되었다는 ‘장수물’이 있는데, ‘장수발자국’이라고도 하며 여기서 나오는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약수로 알려지고 있다. 또 삼별초 군사들이 과녘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을 비롯해 고려 고분, 돌쩌귀, 구시물, 옹성물, 연못지, 파군봉 등이 있다.
◈ 장수물 : 김통정 장군이 몸을 날렸다가 떨어진 지점에 발자국처럼 파여 그 곳에서 샘이 솟는다고 전해지는 약수물 ◈ 구시물 : 성밖 서민 및 병사들의 음료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물 ◈ 옹성물 :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웅거할 때 김통정 장군을 위시하여 귀족계급들이 음료수로 사용했던 샘물 ◈ 살맞은 돌 : 극락봉에서 삼별초군이 궁술연마시 표적으로 사용했던 대형암석으로 40여년까지도 이 돌에는 화살촉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 돌쩌귀 : 삼별초군이 항파두리 내서의 문을 쇠로 만들어 달면서 이용했던 밑틀로 추정되는 사대성문 주춧돌 ◈ 기록화 : 7점 ◈ 유 물 : 기와편, 도자기류, 주춧돌, 절구통 등 51점
한림공원[翰林公園]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공원. 창업자 송봉규가 1971년 협재리 바닷가의 황무지 모래밭을 사들여 야자수와 관상수를 심어 가꾼 사설 공원이다. 1981년 공원 내에 매몰되었던 협재동굴의 출구를 뚫고 쌍용동굴을 발굴하여 두 동굴을 연결한 뒤 1983년 10월 공개하였다. 1986년에는 아열대식물원을 준공하고 1987년 재암민속마을, 1996년 수석전시관, 1997년 제주석분재원을 잇달아 개원하였다.
아열대식물원에는 제주도 자생식물과 워싱턴야자, 관엽식물, 종려나무, 키위, 제주감귤, 선인장 등 2천여 종의 아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다. 제주석분재원에는 기암괴석과 소나무·모과나무 등의 분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야외휴양시설 등도 갖추었다.
협재굴은 약 250만 년 전에 한라산 일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성된 용암동굴로서, 황금굴·쌍용굴·소천굴과 함께 용암동굴지대를 이루어 1971년 9월 30일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이들 동굴에는 용암동굴에는 생기지 않는 석회질 종유석과 석순 등이 자라고 있어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의 특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실라비올라케아
제7코스 올레길과 주상절리[柱狀節理] 제주도기념물 제50호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절리 화산암(火山岩) 암맥이나 용암(熔岩), 용결응회암(熔結凝灰岩) 등에서 생긴다. 절리(joint)는 암석의 틈새기나 파단면(破斷面)으로서, 거기 따라가면서 일그러짐(변위)이 없거나 또는 거의 일그러짐이 인정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면(面)에 평행한 일그러짐이 있는 것을 단층(斷層)이라고 한다. 화강암이나 두꺼운 괴상사암(塊狀砂岩) 등과 같은 균질의 암석의 경우에는 일그러짐을 인정할 실마리가 없기 때문에 절리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절리에는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서 판상(板狀)절리와 주상절리가 있는데, 주상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장주상(長柱狀:긴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한다. 화산암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에서 보인다. 제주도 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유명한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이다
생성과정 : 삼각형이나 육각, 칠각형의 기둥이 형성되는 이유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하여 마그마의 표면이 급속도로 식어서 굳죠. 그러면 내부의 마그마는 외부의 온도 하강으로 굳어진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지고 그것은 수직방향으로 갈라져 생긴다. 기둥 형태의 모양을 나타내게 된다. 온도가 낮아지면 마그마 성분이 수축작용을 하게 되며 이때의 힘의 균형으로 거의 정육각형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중문 앞바다로 흘러내려 1㎞에 이르는 해안가에 빚어놓은 제주의 숨어있는 비경중 하나다. 신이 빚은 듯 정교하게 쌓여 있는 검붉은 육각형 돌기둥.
외돌개
외돌개를 지리학적 용어로 시스텍(sea stack)이라고 한다. 시스텍은 해식애(파도의 물리적 힘에 의해 만들어진 절벽)가 후퇴하면서 차별침식으로 경암부(단단한 바위 부분)가 남아 바위섬이 되는 지형을 말한다.
높이는 20m로 삼매봉 남쪽 기슭에 있으며, 올레길을 걷다보면 만난다.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 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생하고 있다. 오르기에는 너무 위험한 기암절벽의 형태이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장군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들은 고려에서 중국 명(明)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목호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 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할망바위로도 불린다.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르방을 외치며 통곡하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서귀포정방폭포[西歸浦正房瀑布] 명승 제43호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동 동쪽 바닷가에 있는 명승지. 서복기념관에서 약150m 떨어져 있다. 한라산 남쪽 기슭에 발달한 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이다. 여름에 멀리서 바라보면 더욱 멋지다고 하여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고도 하며 혹은 '정방관폭(正房觀瀑)'이라고도 한다. 이익태의 《지영록(知瀛錄)》(1695)에는 '경노연(驚鷺淵)'이라 하였다.
천지연폭포·천제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 중의 하나이며, 제주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폭포 높이 23m, 너비 10m 정도 되고 보호면적은 10,529㎡이다. 폭포 양쪽에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이 발달하였고 노송이 우거져 있다.
기원전 중국 진시황의 명으로 영주산(한라산)에 산다는 신선을 찾아 왔던 서복(서불)이라는 사람이 폭포의 경치에 반하여 폭포 절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뜻의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고, 이 때문에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폭포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바닷가에는 큰 동굴이 있다는데 우리는 그곳까지는 가지 못했다. 동굴 안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석불좌상이 있다.
서복기념관
서복기념관은 진시황제의 불로초를 구하러 온 중국의 서복(서불)이 정방폭포에 와서 불로초를 구하고 서쪽으로 돌아간다(서귀)는 말과 함께 정방폭포에 서불과지라는 글을 썼다. 서불과지는 서불이 다녀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 보고, 마당에 핀 매화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천지연폭포[天地淵瀑布] 천연기념물 제27호
제주 서귀포시 천지동에 있는 폭포. 이곳은 우리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모든 회원들은 저녁야경을 보려 내려갔지만 몇몇은 이른 아침에 가기로 했다. 길이 22m, 너비 12m(물이 많을 때), 못의 깊이 20m. 조면질(粗面質)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에서 세찬 옥수가 떨어지는 경승지이다. 폭포 일대는 뛰어난 계곡미로도 제주에서 손꼽히는 곳인데, 이 계곡에는 아열대성·난대성의 각종 상록수와 양치식물 등이 밀생하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
특히 이곳에 자생하는 아열대성 상록수인 담팔수(膽八樹) 몇 그루는, 이곳이 담팔수의 북한계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희귀시되어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밖에도 가시딸기·송엽란(松葉蘭) 같은 희귀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어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보호되고 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폭포 아래 물속 깊은 곳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무태장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열대어의 북한계지가 또한 이곳이라는 사실이 중요시되어 천지연폭포는 ‘제주도 무태장어 서식지’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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