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에서는 ‘오행(五行)의 화(禍)’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며, ‘오미(五味)의 화(禍)’에 이은 두 번째 재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오미(五味)의 화(禍)’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화(禍)를 변(變)이라고도 표현한다.
부도지 제5장의 내용이다.
백소씨 족의 지소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런 일이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보금자리(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귀에서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하여)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보금자리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 열매였다. 지소씨는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의 힘 때문이었다.
곧 보금자리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도다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하도다. 이 어찌 도(道)이리오! 포도의 힘이로다.”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먹으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모든 종족에 포도를 먹은 자가 많았다.
부도지 제6장의 내용이다.
백소씨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금지하고 지키니, 이는 금지하지 아니하더라도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률(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추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를 덮고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은 뱀의 독과 같이 되어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와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피와 살이 탁해지고 심기가 혹독해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달 속에 있는 모래(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 없었으며, 만물을 생성하는 원기(胎精)가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되었다.
사람의 수명이 조숙하여 그 죽음이 변하여 바뀌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미(五味)의 화(禍)’란 포도를 먹고 천성을 잃어 마고성을 떠나게 되는 인류의 재앙을 말한다.
위의 글과 다음에 나오는 글들을 요약하면 성경에 나오는 내용과 흡사하다.
원래는 땅에서 나는 지유(地乳[땅에서 솟아나는 젖], 성경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를 먹고 살았는데, 지유가 부족하여 포도(성경에서는 선악과, 사과)를 먹었더니 취했다. 그래서 이빨이 생기고 침은 뱀의 독(성경은 이브를 유혹하는 뱀)과 같아지고, 천성을 잃고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성경은 선악을 알게 됨) 마고성을 나온다(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남).
이에 버금가는 재앙이 ‘오행(五行)의 화(禍)’란 것이다
이것도 부도지 제17장에 나오는 내용을 먼저 살펴 본다.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났는데, 일차로 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내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 서, 북의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역(曆)을 만들고 천부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간세상의 두 번째 큰 변이었다.
이 후에도 오행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오며, 논리를 내세워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오행의 화에 대한 것은 위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하므로 다른 글은 생략한다. 부도지는 신라시대에 쓰여 졌는데 이미 이 시기에도 천부경의 참뜻은 사라지고 부분적인 내용만 파편처럼 떠 돌고 있다. 꼭 현재 천부경을 가지고 숫자 놀음이나 하는 사람들과 진배없다.
금문신고를 보면 중국이 시조로 받드는 신농씨 이후부터 권력 투쟁은 끝없이 진행된다. 요순시대의 역사도 피로 얼룩져 있다. 공자가 요순시대를 태평성대를 누린 이상국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우리역사를 왜곡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와 다르지 않다.
위에 나오는 내용을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오미(五味)의 화(禍)로 인하여 사람들은 마고성을 나와서 세계 각 지로 흩어지게 되는데 정통성을 부여 받은 나라가 환웅천황이 세운 환국(桓國)이다. 한단고기에서는 환국을 12연방국가이며, 그 영역이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당(唐) 지방을 다스리던 도요(陶堯)가 반기를 든 것이다. 도요(陶堯)는 중국의 요(堯)임금을 가리키며,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오제(五帝)의 한 명이다.
도요(陶堯)가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9주의 땅에 금을 긋고 나라를 세우는 명분이 오행(五行) 이론이며, 이것이 발전하여 현재의 오행설(五行說)이 된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거북의 등에 글이 새겨져 있다는 둥 우리가 역사에서 자주 보아오는 신의 계시를 내세운 것이다
참고로 중국의 시조가 되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삼황(三皇)은 중국에서도 정체가 없다.
천부경에 나오는 삼극(三極)을 일컫는데 이를 삼신(三神)으로 해석하여 푼 것이다. 그래서 삼황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太皇)이라고 하였다. 이후에는 이를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으로 적고 있다<상서대전 尙書大傳>.
기타 중국 역사에 나오는 삼황을 살펴보면 복희, 신농, 축융(祝融)<백호통 白虎通>, 복희, 여와(女媧),신농<춘추운과추 春秋運科樞>, 복희, 신농, 황제(黃帝)<상서 尙書> 등이다. 신농씨와 복희씨는 확실히 중국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
중국의 오제(五帝)는 다음과 같다.
이도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황제(黃帝), 전욱(顓頊), 곡(嚳), 요(堯), 순(舜)<대대례기(大戴禮記)>으로 본다. 이 외에도 태호(太皥 : 복희), 염제(炎帝:신농), 황제, 소호(少皥), 전욱(顓頊)<예기 禮記>, 황제, 전욱,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사기>, 소호, 전욱, 고신(高辛:제곡), 당요, 우순<상서> 등 설이 다양하다.
이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이 말하는 삼황오제가 사실은 환국에서 파생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역사적인 시기(국가)에 따라서 그들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차용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오행(五行)이 천부경과 대립되는 이론인 이유를 설명한다.
천부경은 만물이 평등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만물을 생성하는 토수화풍(土水火風)의 기운이 조화롭게 작용하여 만물과 생명이 생겨난다는 사상이다. 환웅이 나라를 세울 때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교화시켜 스스로 복종하게 하였지 무력으로 이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펼치러 오면서 대학살을 저지른다면 말이 안 된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면서 등 뒤에 칼을 숨기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요(堯)가 들고 나온 오행(五行)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오행설(五行說)이 아니다. 이는 시간이 흘러 사상(思想)으로 정립되면서 생겨난 이론이다. 요(堯)의 오행을 쉽게 설명하면 토(土)를 중앙에 놓고 나머지 목화금수(木火金水)를 밖에 배치한 것이다. 즉 자신이 오행의 중심인 토(土)이므로 왕(王)이 되겠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부도지의 내용을 해설하면 중앙의 5가 주변 변방의 다른 모든 수를 제압한다는 것이다. 소위 이내제외(以內制外)의 중오설(中五說, 중앙이 5라는 설)을 제창하여 평등사상을 뒤엎고 지배사상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요의 지배사상은 중국 역사에 피 바람을 몰고 와서 끝내는 수많은 생명을 자유와 평등이 없는 도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또, 이러한 사상은 배타적인 중국의 중화(中華)사상의 근거가 된다. 그들이 천하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選民)의식을 나타내며, 그 외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구분하는 오만을 저지른다.
요의 사상은 바로 그의 후대에서도 빛을 발하여(?) 피 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역사의 한 단편을 요약해서 적는다.
요는 사촌인 5대왕 지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6대왕으로 즉위하여 스스로를 천군(天君)이라 칭한다. 집권 후 외삼촌이자 장인인 곤을 우산 땅으로 귀양 보내버린다. 또, 순의 형 오희마저 유주로 귀양 보낸 후 순을 자신의 제위를 이을 공공으로 택한다. 요는 아버지 제곡 고신의 명령을 받아 저이 중여를 죽인다. 이후 7대 임금에 오른 순은 8대 임금인 우에게 쫓겨 계림의 숲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우는 집권과 동시에 그때까지 사직신으로 모시던 신농의 아들 희화를 밀쳐내고 아버지 고신을 ‘하느심 신(神)’보다 격상시킨 귀(鬼)자를 만들어 신농에 버금가는 천자로 받들어 모신다. 천부경 해설에서 신(神)의 어원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하느님보다 높은 귀신(鬼神)은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으로 전락해 버린다. 중국은 역사뿐만 아니라 언어의 본래 의미마저도 왜곡한다.
천부경 해설에서 언급한 신(神)의 변천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중국(지나)에서 최초의 신은 신농(神農)씨이며, 그의 이름이 ‘丨’ , 한자(漢子)로 ‘뜷을 곤(丨)’이다. 중국 섬서성 서안에 있는 황제릉 자료관에 전시된 흙으로 구운 남근상 앞에 陶祖(도조-도자기로 만든 조상)라고 써 놓았으나 중국인들은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도자기로 만든 좆’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본다. 씨를 뿌린 연장이므로 조상이라는 뜻이며, 조(祖)라는 발음도 비슷한다. ‘丨(곤)’은 ‘祖(조)’를 뜻하며, 이를 다른 한자로 自持(자지-스스로 가진 것)라고 쓰는데 중국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도 우리말 좆이 변한 자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만 보아도 한자는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이며, 이것이 중국(지나)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한자의 어원이 녹도문(鹿圖文)인 것이다(녹도문 천부경 해석 참조). 그럼 신농(神農)씨의 이름과 그 뜻인 ‘뚫다’도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변해서 신(申)이 되며, 현재의 신(神)으로 변하게 된다. 한마디로 ‘중국인의 조상(신)은 ○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신(申)은 하느님 신이다(神也)… ‘확(절구) 구(臼)’를 좇아서 스스로 가진 것이다(從臼 自持也)라고 하였으며, 또 환할 신, 아홉째 지지 신”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구(臼)는 여자의 음문을 가리킨다.
오행(五行) 사상이 천부경과 대립되는 사상인 이유이다.
현재의 음양(陰陽)오행설(五行說)도 허무맹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원래 음양오행설이란 없다. 오행설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 음양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먼저 음양설(陰陽說)을 살펴 본다.
이는 이원론(二元論)에 해당하며, 사전적 의미로 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의 통일성이나 단일성을 부인하고, 대립하는 두 가지 것을 현실의 기본 규칙으로 삼는 관념론적인 세계관을 말한다. 예컨대 정신과 물질, 오성(悟性)과 감성(感性), 본체(本體)와 현상(現象) 등을 서로 환원될 수 없는 원리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사전적인 의미가 가장 명료하게 그 본래의 뜻을 밝히고 있다. 천부경의 조화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역에서 보면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가 생기며, 양의에서 사상(四象)이 생기며, 사상에서 팔괘(八卦)가 나온다. 이에 토를 달아서 태극은 심(心)이며, 양의는 심신(心身)이며, 사상은 사심신물(事心身物)이라고 한다. 사상은 다시 팔괘로 되고 이는 결국 64괘(卦)로 발전한다.
쉽게 양의는 양(陽)과 음(陰)을 말한다. 이것을 다시 나누니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이 되며, 이를 사람에게 비유하니 이제마가 말하는 사상(四象)체질이 된다.
팔괘는 환국의 태호 복희씨가 만들었으니 환역(桓易)이라 해야 되는데 주역(周易)으로 변했다.
주역(周易)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사전에서 찾아보자.
고대의 귀갑(龜甲)이나 수골(獸骨)에 의한 점(占)은 그것들을 불에 구웠을 때 생긴 금(線)을 판단의 재료로 하여 길흉을 점치는 일변 서죽을 써서 길흉을 점치는 방법이 주(周)나라 때에 행해졌다. 이러한 점(占)의 말이나 점법의 정신을 해설한 것이 역경(易經)이다. 주(周) 대의 점서(占書)라는 데서 주역(周易)이라고도 호칭한다.
(중략)
그런 말을 신비화시키고 권위를 부여하려고 괘사(卦辭)는 주의 문왕(文王)이 지었고 효사(爻辭)는 주공이 지었고 10익(十翼)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괘사나 효사는 점(占) 전문가들 사이에서 생겨 고정된 것으로, 특정한 작자를 생각할 수는 없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오늘날은 이들이 동주(東周)의 후기에서 기원전 403년 이후 전국시대 사이에 체제가 갖추어졌다고 간주한다.
아주 쉽게 점쟁이들이나 보고 쓰는 것이 주역(周易)이란 것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친다고 하는데 그 정확성은 알 수 없다.
다음은 한의학의 근본이 된다는 오행설(五行說)의 근본을 살펴본다.
앞서 오행(五行)이 천부경과 대립되는 이론이라는 것은 설명하였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토수화풍(土水火風)이란 기운은 만물을 창조하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요소를 말한다. 이것을 요와 그 후예들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고 말하므로 토(土)에는 이미 목(木)과 금(金)이 포함되는 데 왜 따로 구분하여 분리하느냐고 반박하는 대목이 나오며, 또한 수리적인 이유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에 수리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은 다들 이해하는 내용이다.
부도지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애석하게도 이미 천부(天府)의 뜻이 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결국 고조선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부터 ‘오행의 화(禍)’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앞선 선인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우리민족에게도 대재앙으로 닥치게 된 것이다.
이제 오행(五行) 사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현재의 오행사상은 춘추전국 시대에 나오게 된다. 요에서 나온 오행(五行)이론이 사상으로 발전되어 정립되는 시기가 이 시대이다.
처음에는 민용오재(民用五財)라 하여 사람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순서로 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순서로 되어 있었다.
이후에 국가의 흥망을 설명하면서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의 이론이 추가되어 현재의 오행설로 자리잡게 된다. 아주 쉽게 왼 쪽의 그림을 보면 된다.
먼저 상생(相生)을 설명한다. 나무(木)를 태우면 불(火)이 나고, 타고(火)나면 재(土)가 남고, 땅(土)에서 금속(金)을 캐며, 금속(金)이 녹으면 액체(水)가 되고, 물(水)을 부으면 나무(木)가 산다. 그림에 표시된 상생이란 그 뒤에 오는 것을 살린다는 의미이다.
상극(相剋)이란 도끼(金)로 나무(木)를 베고, 나무(木)는 흙(土)의 기운을 소진하고, 흙(土)은 물(水)을 없애고, 물(水)은 불(火)을 끄고, 불(火)은 쇠(金)를 녹인다. 즉, 반대의 극성으로 앞에 것의 기운을 꺾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기운을 말한다고 하지만 쉽게 이해가 안되거나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세 치 혀로 왕을 설득하여 밥술이나 얻어 먹거나 전쟁을 일으키게 충동질하는 말이다. 오행설의 시작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뒤에 가면 다음과 같은 한의학 이론이나 철학으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