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진리(영, 생명의 빛) 안에서 영이 된 나는 말씀이 육(사르크스)이 됨이다.
2) 종교인들은 위대하고 성스러운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나. 본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푸뉴마 호 데오스 카이 투스 프로스쿠눈타스 아우톤~)
1) 진리(영, 생명의 빛) 안에서 영이 된 나는 말씀이 육(사르크스)이 됨이다.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푸뉴마티 앞에 관사가 없다) 영이 된 나다. 말씀이 육체(사르크스)가 됨이다. (알리데이 앞에 관사가 없다) : 진리가 된 나(그리스도가 된 나)다. 영(하나님) 앞에 그리고 알레데이아(진리인 그리스도) 앞에 엔 전치사가 있다. 영과 진리가 하나다. 엔 전치사는 속에서 하나로 있어서 분리될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재해석하면 ”그 하나님은 영(관사 없음)이시다. 그를 ‘프로스퀴눈타스(경외, 공경)’하는 자들은 영(관사 없음)과 진리(관사 없음)가 되어서 ‘프로스퀴네인(경외 공경)’하라.
‘프로스퀴눈타스’를 경외, 공경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언어의 한계다. 하나님은 모든 언어를 초월하신 분이다. 그래서 번역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되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지, 대상에게 예배드리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번역된 성경은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누가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겠는가? 깨달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2) 종교인들은 위대하고 성스러운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종교인들은 위대하고 성스러운 하나님을 감히 죄 많은 인간 안으로 들어와, 하나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이단으로 규정하고 정죄하기 때문에 이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대상화다. 대상이 된 하나님(큰 용)은 다른 하나님으로 옛 뱀이며 마귀다(계 12:9, 20:2) 이처럼 종교성이 있는 종교인들이나 학자들이 성경을 번역하거나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지금 번역된 모든 성경(기록)은 폐기하고 새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아니다. 나(예수 차원)의 근원을 올바로 아(찾)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온전히 깨닫지 못하여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노력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심) 하셨으므로 순간순간 내면을 향해 들여다보고 분석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언젠가는 예수 차원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 너머에서 끊임없이 생명의 그 빛(그리스도)이 마음(휘장)으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몸 밖(세상의 감각적 욕망)을 향해 있으면 마음 너머의 지성소로부터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이 생명의 빛을 알 길이 없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