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어느 누구라도 진리를 자기 생각으로 알아듣거나 표현할 수 없다.
2) ‘파로이미아’는 비밀한 말씀이지만, 파라볼레(비유)가 임해야 몸과 마음을 초월하게 된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속한 영역이 아닌 우리 마음 너머의 베레쉬트(근본)다.
4)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옥토 밭으로 개간함이다.
5) 모든 성경 말씀은 ‘마샬(비유)’인 그리스도 예수(생명의 빛)가 임해야 깨달음이 온다.
나. 본론
1) 어느 누구라도 진리를 자기 생각으로 알아듣거나 표현할 수 없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5:30)”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아주 쉬운 내용으로 들리지만, 실제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 의미가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는 깨달은 자 이거나 깨달음에 가까이 와 있는 자다. 이 말씀은 하늘의 말씀이다. 어떠한 인생도 자기 생각으로는 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때 모르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2) ‘파로이미아’는 비밀한 말씀이지만, 파라볼레(비유)가 임해야 몸과 마음을 초월하게 된다.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을 주라.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가게 하라(마 5:41)”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마 24:17)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인생들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뜻으로 모두 파로이미아로 된 하나님의 비밀한 말씀이다. 이 내용을 정확히 알았다면 그는 파라볼레가 임한 곧 몸과 마음을 초월한 하나님과 하나 된 자다. 문자적으로 ‘도적질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면 인생들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내용도 아니며, 남의 물건을 부러워하는 내용도 아니다. ‘간음하지 말라’ 자기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하는 내용이 아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속한 영역이 아닌 우리 마음 너머의 베레쉬트(근본)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이 세상에 속한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 너머 하늘로부터 나왔다.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종교 행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하루 20시간을 기도한다고 해도 여전히 귀머거리요 장님이다. 이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그처럼 가혹하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연구하는 구약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이처럼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연구하고 설교하는 내용도 거의 대부분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단 한 부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초월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면 몸과 마음을 초월한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었다면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으로 번역한 그 여인(귀네)처럼 생명의 빛 안으로 끌려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밤에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서 꿈꾸는 마음도 지켜보게 된다. 꿈꾸는 마음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마샬)’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히다)’을 발표하리니(시 78:2)” 하였고, 마태 사도는 이 말씀을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파라볼레)’를 말하고 창세로부터(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감추인 것(크룹토)’을 드러내리라(마 13:35)” 하였다. 마태는 구약의 히다를 “감추인 것”으로 의역하였으며, 내면에서 파라볼레를 만나 말씀을 열게 되었다. 파로이미아 곧 크룹토는 파라볼레를 만나야 열리게 된다.
4)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옥토 밭으로 개간함이다.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를 통해서 크룹토(감추인 것)를 드러내었다.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말씀(호 로고스)의 씨를 뿌리기 위해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경작함이다. 반드시 마음 밭을 개간하고 경작해야 하는 힘든 고난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여 그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으로 하나 되기 위함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을 낳음이다. 각자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아 몸 된 성전 안의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내가 하늘의 제사장이 되어서 바쳐야 하고 내가 하늘의 왕으로서 이 아들(십일조)을 받아야 한다.
생명의 십일조는 반드시 내가 드리고 내가 받아야 한다. 하나 됨이다. 그러나 세상 종교에서는 돈 십일조 곧 십일조와 헌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히다를 알려면 반드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파라볼레가 임해야 풀어낼 수 있다. 머리로 푸는 것이 아니다. 파라볼레는 지성소로부터 나오는 그 생명의 빛이다. 마태 사도뿐 아니라 모든 사도가 이 비사와 비유의 핵심을 마가의 다락방 사건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 예수로부터 고침을 받은 많은 아들이 이 실상을 열두 제자들보다 먼저 알았다.
그러나 이 히다와 마샬을 열었던 자는 극히 드물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성경을 읽는 유대인이나 학자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은 이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 현재 원어를 한다고 하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실상을 자신 안에서 알게 된다면 더는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다. 모든 종교 행위에서 떠나 내면으로 돌이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된 참 아들이기 때문이다.
5) 모든 성경 말씀은 ‘마샬(비유)’인 그리스도 예수(생명의 빛)가 임해야 깨달음이 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이 히다와 마샬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을 모르고 있다. 모든 성경 말씀은 마샬인 예수 그리스도가 임해야 알 수 있다. 이들은 구약을 자신들이 역사서로 보며 또한 전통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유대인 자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선민으로 여기고 있다. 이외의 모든 족속은 이방인 곧 짐승으로 보는 이유다. 성경 말씀에 이 짐승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과의 전쟁을 그리고 있다. 하나라도 살려두면 죄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려두지 말고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어떤 족속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러나 구약은 히다로 되어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여 주셨다. 선지자들은 모두 이 히다를 자신 안으로 오신 예수(마샬)를 통하여 알게 된 실제 사건이다. 이론이 아니다. 생명의 빛이 임하여 알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역사적인 내용으로 보고 있다. 이천 년 전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들 모두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시대의 종교인들(목회자와 신학자들) 또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말과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목사나 학자의 직함을 당장 버리게 될 것이며, 그들의 문서들 또한 가치가 없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들을 소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직위들과 학문이 그동안 자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적인 모든 종교적 행위 때문에 자신 안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