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기행 /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의 보고
흑해와 지중해를 가르고 앉아 일찍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이 만났던 터키 - 터키는 실로 장구한 세월, 현대 문명에 끝없는 영감을 주었던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합니다.
이 땅을 무대로 피어났던 하티스, 히트이트, 이오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 등은 유럽사 뿐 아니라 세계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스쳐간 역사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터키의 독특한 문화적 풍요를 누렸습니다. 다양성과 복잡성으로 대표되는 터키 문화의 특성은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이, 또한 유럽과 아시아적 요소가 뒤섞인 결과입니다.
양국 간 비자 면제협정(3개월 이내)이 체결되고 아시아나항공이 이스탄불을 주2회 취항하게 된 것은 1997년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대립으로 진통을 겪었던 5개 국제선 신항로 취항이 스칸디나비아와 중국 해남도 취항은 대한항공으로, 이스탄불과 인도 뉴델리는 아시아나항공으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터키는 정기 노선이 신설되자마자 금세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나라 TOP 10에 올랐습니다. 반취는 한국여행인클럽의 일원으로 그 해 10월 3일∼8일 이스탄불을 찾았고, 5년 뒤에는 소설가 40명을 이끌고 터기 7박 8일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첫 방문으로 터키를 여행하기에 4박 5일은 짧았습니다. 이스탄불만 본다면 괜찮겠지만, 바람을 안고가기 때문에 비행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곳을 가서 한 도시만 보고 온다는 것은 사실 본전이 생각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방문 때는 형편상 더 이상의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해서 아주 알차게 짰다는 프로그램이 터키 제일의 미항 이즈밀을 보고, 국내선을 이용, 파묵칼레까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지 순례는 다음 기회로 미뤘던 것입니다.
이스탄불은 터키 최대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아주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도시를 가른 보스포루스는 예부터 동양과 서양을 갈랐던 해협입니다. 실크로드 종착점의 하나였다는 데서 짐작하듯 이스탄불은,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있어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종교적 상업적 또는 군사적으로 늘 세계사의 초점이 되어왔습니다.
유럽 문명의 발상지라는 헤드라인은 이스탄불 8천년 역사를 집약한 말입니다. 이 땅에는 기원전 6천년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기록에 나타나는 것도 BC 1900년 경 앗시리아 상인입니다.
이스탄불 최초의 이름인 비잔티움은 그리스인 비잣(Byzas)이 이곳에 거주지를 만들면서 붙여졌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보스포루스해협(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해협)을 오가는 모든 것을 관장했습니다.
서기 330년에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65년 뒤인 395년 로마제국이 분열하자 콘스탄티노플은 다시 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되어 1400년 가까이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1453년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족은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꾸고 역시 수도로 삼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힘이 약해지면서 그리스와 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하는 등 쇠퇴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는 지구촌의 대 변혁기였습니다. 수천 년 동안 지켜오던 풍습이며 생활방식이 과학 발달에 힘입어 편리한 쪽으로 급속하게 변화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쇄국정책을 폈거나 정체성을 띤 국가들은 과거의 영화로움에도 불구하고 모두 뒤처지고 말았다. 이스탄불은 그 대표적인 도시하였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중요한 때 왕조가 쇠퇴한 터키는,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여 패배하면서 영토 분할의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22년 군인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외교와 전략으로 난국을 타파, 23년 로잔조약에 의해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고, 앙카라를 수도로 터키공화국이 발족, 근대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 된 M.K.아타튀르크는 놀라운 지도력으로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이룩하였으며, 가정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Pease at Home. Pease in the Worl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국 터키를 평화와 안정으로 이끌었다. 이스탄불의 관문 아타튀르크국제공항은 국부(國父)인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스탄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흔히 이십 여 가지를 꼽습니다. 그런데 짧은 여행일정 상 그 중 다섯 개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볼까요? 실로 이스탄불은 그런 고민을 안겨 주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경험상 이럴 때는 욕심 부리지 말고 관광가이드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상징적이고 보편적이고 집약적인 것을 피곤하지 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톱 카피 궁전과 ▲천오백 년 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교회 아야 소피아 ▲아라비아 메카의 사원과 비견될 만큼 웅장한 블루 모스크 ▲그리고 크루즈를 이용하여 보스포루스 해협을 횡단하면서 돌마바체 궁전을 보며 이국의 정취를 한껏 느꼈습니다. 그리고 구시가지를 산책했습니다. 산책이라지만 사실은 기웃거림에 불과했었는데, 관광명소가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만 제대로 둘러보는데도 이삼 일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탄불의 다양함은 서쪽의 유럽지구와 동쪽의 아시아지구로 크게 나뉘고, 유럽지구는 다시 북쪽의 신시가지와 남쪽의 구시가지로 나뉘는데, 신시가지가 고급 주택가 중심인 반면 구시가지는 주요 관광지와 호텔 상가 등 주요 기관이 있는 것이어서 구시가지 관광이 곧 이스탄불 관광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톱카피 궁전은 오스만 투르크 시대 400년간 대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술탄)의 궁전으로 권력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이기도 한데 건물 자체도 온갖 보물로 치장된 복합구조물이지만 각 나라에서 보내온 보물 도자기 의복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어 볼만했습니다. 궁전 안에는 술탄의 여인들이 살았던, 푸른색 타일로 꾸며진 방이 있는 건물 하렘이 있는데, 호화로왔던 흔적이 무굴왕조 샤자한과 무무타즈 마할이 부귀를 누렸던 라호르성(파키스탄)의 거울궁전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톱카피 궁전 옆에 있습니다. 톱카피 옆에 아야 수피아가 아니라 아야 소피아 옆에 톱카피 궁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고, 서기 537년에 건축되었으니 가장 오래된 교회입니다. 로마의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이 교회가 완성되자 "솔로몬 왕이여, 드디어 내가 그대를 능가했노라"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900년간 기독교 교회로 쓰이다가 이슬람에 정복된 이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 점입니다. 이슬람이 들어앉으면서 교회 내부의 성화는 모두 회칠로 덮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회벽을 모두 벗겨내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들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 있습니다.
블루모스크는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권세와 의지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입니다. 원래 메카와 같이 일곱 개의 기둥을 세운 세계 최대의 사원을 지으려 했으나 메카를 능가할 수는 없어 여섯 개의 기둥으로 양해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기둥과 돔 벽을 명암이 각각 다른 청색타일만으로 장식하여 블루 모스크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모스크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히 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부연하지 않아도 모두 지키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탄불에는 로마 못지않게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물 저장소를 볼 수 꼽을 수 있습니다. 아야 소피아와 대각선을 이루고 있는데 커다란 돌로 만든 환기통이 우뚝 솟아 있어 쉽게 눈에 띱니다. 지하로 들어가면 수많은 기둥과 기둥을 비추는 조명이 물에 반사되어 신비스런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기둥도 볼만했습니다. 눈물방울 모양의 기둥과 메두사 얼굴을 조각해 놓은 기둥은 그중 독특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의 쇼핑도 - 눈요기일지언정 -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겠지요. 물 저장소에서 멀지않은 곳에 그랜드 바자르(시장)가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으로 이스탄불의 모든 물건이 다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것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사원이 있습니다. 사원은 종교적 집회의 장소로 쓰일 때 외에는 만남과 휴식의 장소로 이용됩니다. 이스탄불 대학 옆에 있는 베아짓 사원에 가면 이스탄불의 내일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 광장도 있어 산책 나온 시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원 앞이란 금요일이 되면 기도하러 오는 사람과 물건을 팔러 오는 행상인들로 크게 복잡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짧은 일정의 첫 여향에서 우리가 택한 유일한 여행지는 파묵칼레였습니다. 근래 비행기 추락 사고가 도처에서 잦아 작은 비행기가 틀림없을 우리보다 후진국 국내선을 타는 게 걱정스럽다는 일행이 있었는데 이스탄불에서 파묵깔레까지 가는 비행기는 에어버스였습니다. 파묵칼레는 자연석 사이로 솟아나는 온천수로 유명한 로마시대부터의 휴양지였습니다.
터키의 성지
터키에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빌라델비아, 사데, 라오디게아 등 성서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초대 교회 일곱 곳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신흥 종교로서 세력을 넓히기 위해 대도시 일곱 곳에 초대 교회를 세웠으나,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개인의 집이나 비밀스런 장소에서 집회를 가졌기 때문에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현재의 에페스)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요한과 루가의 무덤 유적과 성모 마리아 가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서머나(현재의 이즈미르)에는 사도 바울이 세운 초대 교회의 감독 폴리카르포스의 기념 교회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버가모는 기원전 3세기에 버가모 왕국이 있던 곳으로, 제우스 신전과 디오니소스 신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일했던 종합 병원 아스클레피온 등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초대 교회 외에 또 다른 기독교의 성지로는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카파도키아의 지하 교회와 동굴 교회가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성지는 아리랏산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노아 시대에 큰 재앙을 내리게 되고… 그 재앙을 내릴 때 하나님 말씀으로 방주(배)가 만들어지고, 그 배가 대홍수를 견디면서 닿았던 곳이 아리랏산으로 터키에 있습니다.
터키는 장미꽃이 많은 나라입니다.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 오일은 화상치료제로 쓰입니다. 얼굴이 화끈거릴 때 장미 오일을 바르면 빨리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있을 때 장미 오일을 뿌리면서 다니기도 합니다.
클레오파트라 미용제로 알려져 있는 장미 오일은 비타민이 많고 피부 미백과 진정 효과가 있어 금값보다 비쌉니다. 10ml에 20만 원 정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30만원을 홋가합니다.
장미 오일을 짤 수 있는 장미 품종은 으스파라타입니다. 장미 오일은 저녁때만 써야 합니다. 낮에 쓰면 미백효과가 있어 멜라닌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장미 오일은 스킨과 로션을 바른 후 그 위에 덧발라주는데, 스킨과 로션과 영양크림에 2~3 방울을 섞어 바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