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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사제동행 ㅡ
김대룡 교수와 함께
박정윤/ 경영학과
5월 초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명예교수회 편집위원장 김정숙 교수로부터 전화가 있었다. 원고청탁을 하시겠거니 했는데 예감대로 맞았다. 영남대 재직 시에 제자와 함께 한 내용을 글로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미국 도버시에 소재하는 델라웨어 주립대(Delaware State University) 경영학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대룡(DaeRyong David Kim) 교수이다.
유학 결심을 한 계기
한국외환은행에서 7년간 근무한 후에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로 발령받아 기업 재무관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2학기였다. 이 당시에는 재무관리만 강의한 것이 아니라 학과의 필요에 따라 마케팅, 국제경영학 등도 강의하였다. 초기에는 강의 교재로 영어원서를 많이 사용했다. 미국에서 MBA 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가끔 은행에서 어떻게 유학하러 가게 되었는지도 얘기를 하곤 했다.
교수로 부임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에 미국에서 유학하던 제자로부터 손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제법 긴 편지였다. 자기소개와 함께 기업 재무관리(corporate finance) 수업시간에 미국에서 유학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도전이 되어 자신도 Iowa State University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MBA 과정을 수학해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편지를 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답장을 써서 보냈다. 유학할 때 겪었던 어려웠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일요일에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다. 한국에서는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았지만, 미국 유학 시에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제자로부터 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내가 얘기한 대로 교회에 한동안 출석을 했는데 마음에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또 답신을 보냈다.
“나도 처음 교회에 출석했을 때 예배 시간에 졸기도 하고 감동이 없었지만 계속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은혜를 받게 되었으니 계속 교회에 다녀보길 바란다.”
텍사스 롱뷰에서 제자 가족과 첫 만남
1988년 초에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물가가 많이 올라 있었고, 특히 집값이 많이 올라서 집을 바로 매입할 수 없었다. 전셋집에 살고 있다 보니 빈곤감이 느껴졌다. 주택도 매입하고 넉넉하게 살기 위해서는 받는 월급을 모아서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주택마련을 위해 아파트 청약예금을 들었다. 또 다른 하나는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식투자를 했다. 가지고 있던 돈뿐만 아니라 빚을 얻어서까지 투자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당시 어느 학교에 5천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에 대해서는 이자와 함께 원금도 상환해야 하는데 갑자기 재무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편 15절) 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새벽기도까지 나가며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어느 날 로마서 13장 8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 당시에 욕심을 내어 투자목적으로 사둔 복합상가가 팔리게 되면 다시는 빚지지 않고 살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라 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기도하던 중 며칠이 되지 않아 매수자가 나타났고 가격도 괜찮아 바로 팔아버렸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빚을 일시에 갚아버렸다. 그날부터 마음이 평안해지고 잠도 잘 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은 빚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이 주제에 관한 연구를 하기로 하였다.
1994년 1월 텍사스주 롱뷰 시에 소재하는 르터너 대학(LeTourneau University)에 방문 교수로 가게 되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빚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이지만 또한 여행도 하고 싶었다. 마침 제자가 미시시피 대학교(University of Mississippi)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라 연락을 하였다. 제자 가족이 봄방학을 맞아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스트 텍사스를 4박 5일 일정으로 같이 여행을 하였다. 오스틴에 소재하는 텍사스 대학교를 둘러보았다. 또한, 아름다운 샌 안토니오를 방문하여 멕시코 음식을 맛보고 밤에는 샌 안토니오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에서 배를 타고 야경을 즐기면서 낭만적인 시간도 보냈다. 이밖에도 휴스턴 나사, 항구도시 겔버스틴을 차례로 방문하여 두 가족이 휴가를 마음껏 즐긴 추억이 있다.
여행을 마치고 르터너 대학의 L 교수와 함께 제자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자고 제안했다. L 교수는 작은 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법 오랫동안 제자와 그의 부인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제자 가족을 위해 제법 오랜 시간 중보기도를 하였다.
제자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나…. 하지만 그때가 언제일까?’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부부가 얘기를 나누며 운전하는 도중에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경계 부분의 한 산등성이를 막 올랐을 때 맞은편 파랗게 맑은 하늘에 하얗고 비율이 정확한 십자가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앞에 다가왔다고 한다. 그들은 순간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경외감으로 잠시 차를 세우고 아무 말 없이 넋 놓고 보고 있었다고 한다.
후에 제자가 이런 글을 카톡으로 보낸 적이 있다.
“우리 부부가 너무 예수님 영접을 망설이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누구를 통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믿고 학교로 돌아간 뒤 바로 부부가 물로 세례를 받았다.”
여름 방학 때 우리 가족이 다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는 단순히 자연경관만 구경할 것이 아니라 이전에 신앙생활을 함께 하였다가 지금은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때도 미시시피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자 가정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하고 방문하였다. 멤피스에 소재하는 엘비스 프레슬리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여 관람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부가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세례를 받았으니 박사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하며 기도를 해주고 다음 방문지를 향하여 떠났다.
교통사고 때 병원을 찾아준 제자 가족
르터너 대학에서 두 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한 논문은 “기독인 경영 기업과 일반기업의 자본구조 전략의 차이에 관한 실증적 분석: 성경적 접근”이며 이 논문은 1998년에 한국재무관리학회의 재무관리논총에 게재되었다. 또 다른 논문은 “성경적 차입 및 대출 원리”이다. 이 논문은 1996년도 통합연구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어느덧 연말이 되어 귀국할 준비를 하였다. 1995년 1월에 귀국하기 위해 항공권도 샀다. 그런데 1994년 12월 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가 났다. 우리 차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반 트럭과 정면충돌을 하였다. 차는 종이쪽지가 구겨지듯 완전히 망가졌다. 아내가 완전히 찌그러진 차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하지만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어서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판단되어 헬리콥터로 교회가 있는 타일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필자는 뒷좌석에서 졸고 있다가 충격으로 인해 문밖으로 튕겨 나가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움푹 파인 홈에 떨어졌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급 담당자들은 아직 의식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운 롱뷰 시에 있는 굿 셰퍼드 병원(Good Shepherd Hospital)에 입원시켰다. 사고 소식은 지역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다고 한다.
저녁 늦게 병원에 도착한 L 교수는 나의 생명이 위태로운 것을 직감하고 세 가지를 물었다. “사고 소식을 한국 가족에게 알릴까요?”
“알리지 마세요.”
“우리가 정리해야 할 것을 알려 주세요.”
“자동차 보험 관계와 항공권을 취소해주세요.”
“사모님은 괜찮습니다. 사모님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사고 당시에 여러 곳의 뼈가 부러졌다. 또한, 폐가 부러진 갈빗대에 찔려 구멍 난 타이어처럼 바람이 빠져 호흡을 하기 힘들 정도여서 말할 기력이 없었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언과 같은 말을 전하기로 하였다.
“잠언 3장 5절과 6절.” 이 말을 마치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우리 부부의 사고 소식을 듣고 놀란 제자 부부는 미시시피를 떠나 텍사스의 굿 셰퍼드 병원으로 찾아왔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상태를 최근 카톡으로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교수님이 코마 상태로 누워 계신 것을 보고 돌아왔어요. 그러나 곧 깨어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때 집사람이 방문하기 전에 수놓았던 예수의 기도 액자를 드리고 왔는데, 집사람이 두 개를 똑같이 수 놓고 똑같은 액자로 만들어 이 중 하나는 집에 걸어두고 있습니다.”
제자 부인이 선물한 겟세마네 기도 액자는 지금도 우리 집 벽에 걸려 있다. 주님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기 직전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던 모습을 수놓은 것이다. 기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장 42절)
겟세마네 기도는 주님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의 기도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장 44절)
이 글을 쓰면서 제자 부부가 생명이 위독한 교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뜨겁게 기도해준 제자 부부와 많은 성도의 기도 덕분에 사경을 헤매던 나는 생명을 되찾았다. 입원한 지 만 4개월 만에 누운 채로 퇴원을 하였다.
7월 말에 제자 부부가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이 무렵 하나님이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실지 모른다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한 고민을 제자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저는 교수님이 계속 교수로 있으면서 저와 같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복음도 전하시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두 번의 만남
멀리 떨어져 사는 제자를 1년에 두 번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연구년을 보내는 동안 제자 가족을 두 번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부차트 가든(The Butchart Gardens)을 함께 여행
2004년 가을 학기에는 캐나다 랭리에 소재하는 Trinity Western University에서 방문 교수로 1년을 보냈다. 이때는 주로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잠언을 중심으로 가계재무관리(생활재무관리) 원리를 찾는 연구도 하였다.
이 무렵 제자는 울산대학교 교수로 수년간 재직하다가 사직하고, 뜻이 있어서 델라웨어 주립대의 교수로 근무하게 되었다, 2005년 봄에 김 교수는 밴쿠버에서 개최되는 학회가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며칠을 체류하였다. 이때 두 가족이 빅토리아섬에 있는 부차트 가든을 함께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부차트 가든은 한때 석회석 채석장이었다. 제니 부차트((Jennie Butchart)는 남편 로버트가 운영하는 시멘트 공장 때문에 생긴 채석장을 바라보았다. 채굴된 땅은 황량하고 석회 흙먼지가 날렸다. 그녀는 말과 수레로 흙을 옮겼고 버려진 땅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1904년 부차트 가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도록 단계적으로 여러 종류의 정원을 만들어 지금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우리 두 가족은 선큰 정원(Sunken Garden), 장미정원, 일본 정원, 이탈리아 정원, 지중해 정원 등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기쁨의 탄성을 연발하였다. 제자 교수는 지금도 부차트 정원은 에덴동산이 연상될 정도로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정원이 세계 4대 정원에 속한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제자의 권사 취임식에 참석
어느 날 제자가 2005년 7월에 교회에서 권사로 임직을 받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여건이 된다면 한번 방문해주면 좋겠다고 초대를 해주었다. 침례교의 권사 직분은 장로교단의 장로에 해당하는 중요한 직분이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하고 시간을 내어 참석하기 위해 항공권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믿음의 제자가 교회 권사로 취임하는 일을 축하해주고 교제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밴쿠버 공항을 출발하여 토론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하니 제자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는 도버시 자택에 이를 때까지 델라웨어 주의 주산물과 특성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델라웨어는 면적이나 인구로 보면 작은 주이나 미국의 최초 13개 주 가운데 하나로 미국 연방의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 회사를 가리키며 “교수님 저 오른쪽에 보이는 회사가 바로 뒤퐁 본사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델라웨어에 본사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 주 정부에서 세금혜택을 어떻게 주고 있는지도 설명해주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하자 제자 부인이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았다.
임직 예배를 드리는 동안 진한 감동이 있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제자가 크리스천이 된 것도 기쁜 일이지만 교회 지도자로 세움을 받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장로는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도의 본이 되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녀들로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이다. 또한, 그는 직장과 사회에서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울란바토르 한국로고스경영학회 국제학회에서 발표
2018년 여름 우리 부부와 제자 부부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3박 4일 동안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7월 4일에는 울란바토르에 소재하는 UFE (University of Finance and Economics)에서 한국로고스경영학회 국제학회가 개최되었다. 한국로고스경영학회는 신앙과 경영학을 통합하여 연구하는 학회로 2002년에 조직되었다. 김대룡 교수는 이 국제학회에서 ‘4차 혁명의 시대에 몽골의 나아갈 방향’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였다.
필자는 이 학회에서 “Introducing A Biblical Theory of the Blessed Rich in Mongolia”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행복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몽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국민이 모두 행복한 부자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발표를 하였다.
우리 두 부부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학회 참석 외에도 게르에서 1박을 하며 몽골의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제법 먼 길을 승마하며 유목민의 삶을 맛보기도 하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칭기즈칸 동상을 구경하기도 하였는데 이 동상은 중국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항상 중국을 잊지 말고 경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에는 몽골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는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원고를 마무리하며
이제 원고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수업시간에 얘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나서 교수가 된 제자 이야기를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적어보았다. 울산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할 때는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어 좋아했지만, 갑자기 델라웨어 주립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 가족이 여러 차례 함께 만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자 교수와 가족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교수님, 감사합니다. 종교란 살아가는 의미와 죽은 다음의 세계를 확고히 보여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그걸 제자에게 명확히 이야기하실 수 있고, 또 그것을 따른 제자이고 보니, 전공도 같은 분야인데다가..... 함께 살아가시게 된 것 같습니다. 무척 부러운 만남입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극복하고 일어나셔서 반갑습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두번 받으신 거네요!!!!! 의식을 잃기 직전에 하셨다는 잠언 3장 5-6절 제가 여기다 붙여놓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모셔라. 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김교수님
이러한 원고를 쓰는 것이 논문을 작성하는 것보다 더 힘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작성하면서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교수님: 옥고를 읽으면서
교통사고로 부상당하신 일과 기독교의 신앙으로 제자를 인도하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 교수님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을 읽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셔서 그림과 서예 등 새로운 활동에 매진하는 일로 인하여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수님, '삶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에 힘이 납니다. 사실, 교수님들 바쁘신 줄 알면서 원고 청탁드리기가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때로는 꼭 빚진 돈 달라는 것같이 떼쓰면서...... 그런데, 읽으시는 분들이 자신의 따뜻한 기억이 생각났다고 하시거나, 쓰신 분들이 지난 일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면 정말 힘이 납니다. 인터넷이나 어느날 종이책 독자들도 그렇겠지라고 믿으면서요. 감사합니다.
"빚진 돈 달라는 것 같이 떼쓰면서"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이번 편집위원장은 적기에 좋은 주제로 명예교수회 회원들에게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 것 같습니다. 후속 작업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