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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학명
버드나무과 |
Salix caprea |
호랑버들은 ‘호랑이의 버들’이란 뜻이다. 겨울눈이 붉은빛으로 뚜렷하고 약간 광채가 나므로 ‘호랑이 눈 같다’고 하여 호랑버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호랑버들은 다른 버들 종류와 마찬가지로 자람 터는 습기가 많은 곳이다. 저수지의 상류나 물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으며, 고도가 높은 산속의 작은 늪지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대체로 버들이라고 하면 좁고 긴 잎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호랑버들은 아기 손바닥만 한 긴 타원형의 잎이 달려 있어서 얼핏 보면 황철나무 등 사시나무 종류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버들 종류로서는 가장 큰 잎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호랑버들에 얽힌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크고 작은 저수지가 유난히 많은 대구 근교에 살았다. 저수지 위쪽의 얕은 물속에는 주로 갯버들이 자라고, 옆 둑에는 제법 굵은 호랑버들 몇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호랑버들 나무 밑은 어린아이들의 아지트였다.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여름날의 물놀이와 잠자리 잡기로 세월을 보냈다. 사투리로 ‘철갱이’이라는 왕잠자리를 잡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버들가지를 O자형으로 휘어 안에다 실로 촘촘한 그물망을 떠 잠자리채를 만들고, 우선 수컷을 꼬여낼 수 있는 암컷 한 마리를 잡는 일이 급선무다. 암컷의 앞발 두 개를 실로 묶어 한 발쯤 늘어뜨리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빙글빙글 돌린다. 그러면 정열이 넘쳐나는 수컷들이 암컷의 미모(?)에 반하여 금세 달려온다. 사랑의 밀어도 나누지 않고 불문곡직 덤벼들어 잠깐 정신이 몽롱할 때 왼손으로 눌러 암컷에서 떼어낸다.
그러나 암컷은 체력이 약해 금방 지치므로 수컷을 여장(女裝) 시키기도 했다. 잠자리의 꽁지와 날개 사이에 달린 약간 굵은 생식기 부분에 호박꽃의 노란 꽃술을 정성껏 발라주고, 꽁지에는 고운 황토 흙을 얇게 입힌다. 눈치 빠르고 분별 있는 녀석은 바로 알아채지만 사랑에 눈이 먼 멍청한 녀석들은 ‘얼씨구나!’ 하고 우선 덤비고 본다. 한마디로 암수 구별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여자를 밝히다가 신세를 망치는 것이다. 이렇게 잡힌 왕잠자리 수컷은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날개를 떼어내고 닭장에 던져주어 씨암탉이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보게 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바로 호랑버들 밑의 어린 시절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듯하다. 이런 추억들이 오늘까지 내가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호랑버들은 키 6미터 정도에 지름이 한 뼘에 이르는 크기까지 자랄 수 있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뒷면에는 짧은 털이 하얗게 덮여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이른 봄에 핀다. 특히 수꽃은 활짝 피었을 때는 거의 황금색을 나타내어 다른 어떤 꽃보다 돋보인다. 또한 마른 열매는 하얀 솜털에 쌓여 날아다닌다.
최근 산림과학원은 폐광된 금속광산의 흙을 나무로 정화하는 실험을 했다. 소나무, 물푸레나무, 아까시나무, 신나무, 그리고 호랑버들을 심어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중금속을 흡수하는 식물을 찾아냈다. 이 나무들 중 호랑버들 잎에서 카드뮴과 아연 함량이 가장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카드뮴의 경우, 다른 수종의 다섯 배, 아연의 경우 10~40배의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또 다섯 종의 버드나무 종류로 실험한 결과에서도 호랑버들이 카드뮴을 가장 많이 흡수하였으며, 아연도 카드뮴과 마찬가지로 호랑버들이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한다. 흡수량은 뿌리가 가장 많고 잎, 줄기 순서였다. 이런 결과는 몇 번의 현지 확인 실험을 거쳐야 하지만, 공해물질을 나무를 심어 손쉽고 값싸게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호랑버들이 물가의 평범한 버들 나무가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