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정몽주는 나약하고 겁 많은 공양왕을 설득, 이성계 일당을 완전히 제거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전하, 기회는 지금입니다. 절호의 때를 놓치면 대신 우리가 그들에게 죽게 됩니다. 어서 결단을 내리셔서 이성계를 단숨에 제거해야 하옵니다.” “경의 말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든 병권이 이성계와 그 심복에게 있지 않소. 자칫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터인데.......”임금은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바로 그때에 이방원 일파는 이미 피바람을 일으킬 거사를 서두르고 있었다. 공양왕은 망설이다가 끝내는 회피하였다.
정몽주: ‘아아, 드디어 고려의 5백 년 사직이 이것으로 끝나는가! 나는 끝까지 충절로서 고려와 운명을 함께 하리라!’ 정몽주는 하늘을 올려보고 탄식하면서 비장하게 죽을 각오를 하였다. 실로 숨막히는, 운명의 결정적인 순간은 시시각각 다가 오고 있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방원과 조영규 일당이 자기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변중량(卞仲亮)은 그 정보를 입수하고 정몽주에게 넌지시 귀띔해 주었다. “시중대감께서는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이방원이 조영규 일당을 무장시켜 대감의 목숨을 노린다 하옵니다.”
정몽주: 허허, 염려 말게. 내 이미 회생 불가능한 고려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하였네. 무릇 하늘이 사람을 내실 때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지워주는 것이라네. 나는 내 역할을 회피할 생각이 없네.“ 정몽주는 아침 일찍이 목욕 재계하고 조상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에 절을 하고 장차 자신의 결심을 고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침을 건성으로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인: 대감, 요즘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각별히 몸조심하시지요.
정몽주: 부인, 인명은 재천이라지 않소. 충효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어찌 불의와 야합할 수 있겠소.
부인: 어머님께서는 요즈음 노환으로 앓아 누우신 데다가 꿈자리가 사납다고 하시옵니다.
정몽주: 어머님께 지금 가서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소. 부인, 만약 내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오. 침착하게 대처하시길 바라오. 정몽주는 어머님이 누워 계신 방으로 가서 우선 큰절을 올렸다. “어머님, 소자가 요즘 나라 일 때문에 제대로 문후 여쭙지 못해 죄송하옵니다.”병석에 누워 있던 노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백발에 노쇠했지만 정숙한 위엄은 여전했다.
요즈음 듣자니 나라 꼴이 어지럽다더구나. 권력 싸움에 혈안이라던데 그런 데 얽히지 않도록 조심하게. 내가 이런 시조를 한 수 지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네. 자네에게 당부하고 싶은 뜻이 담겨 있으니 항시 품에 지니도록 하게나.
정몽주: 어머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어디 달리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지요?
모친: 나는 괜찮네. 항시 어미의 뜻을 저버리지 말게. 충효는 우리 집안의 자랑이 아닌가. 정몽주: 어머님, 그럼 누워 계시지요. 사람을 부르고 싶으시면 설렁줄을 흔드십시오. 모친: 어서 다녀오시게. 이것이 어머니와 부인에게 한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되었다. 정몽주는 어머니가 써주신 시조를 펴보았다. 연로해서도 자식을 훈계하고 타이르는, 따뜻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담겨 있었다. 이 시를 백로가라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흰빛을 샘낼까 염려스럽구나)
청간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위 시조 내용에서 백로는 정몽주를 뜻한다. 이 글을 읽고 정몽주는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왈칵 목이 메었다. “아아, 어머님, 어머님의 뜻을 좇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하소서. 소자는....소자는 저 혼자 흰빛을 지키고자 몸을 사릴 수 없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가서 고려를 위해 수혈을 하듯이 순절의 피를 뿌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시조가 적힌 종이에 정몽주의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글씨가 번졌다. 정몽주는 병문안을 핑계삼아 스스로 범의 소굴인 이성계의 집을 찾아갔다. 이성계와 정몽주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자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을 불렀다.
“방원아, 내가 중상을 입어 이렇게 누워 있으니 네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정시중대감을 대작하여 조금도 누가 없도록 하라. 어서......”
정몽주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정몽주와 이방원의 대작이 시작되었다. 이방원은 장차 자기들의 뜻을 펴자면 정몽주가 가장 문제였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정적이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법이다. 이방원은 우선 정몽주를 설득하고 회유한 후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먼저 이방원이 정몽주의 의사를 떠보고자 시조를 읋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하여가(何如歌)’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려보세
자신의 의중을 떠보려는 것임을 정몽주가 알아차리고 즉시 맞받아 한 수의 혈시(血詩)를 비장하게 토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충절의 대명사인‘단심가(丹心歌)’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와 이방원은 갈길이 서로 달랐다. 이미 두 사람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집을 나와서 술맛 좋기로 소문난 성여완(成如完)의 집을 찾아갔다. 그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마침 그는 출타중이었다. 그래서 곁에 있던 녹사 김경조(金慶祚)에게 주막으로 가자고 말하였다.
정몽주: 아직은 취하지 않았다. 나와 한잔 더하고 가자꾸나. 주막으로 이끄는 정몽주를 보고 “시중대감께선 오늘은 웬 일로 그렇게 마시려 드시는지요?”라고 하자, 정몽주: 어서 마시세, 그 동안 정들었는데........ 정몽주는 주막에서 손수 술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 정몽주: 자 오늘은 자네도 한잔 들게. 김경조는 정몽주의 잔을 처음으로 받아 마셨다. 주막에서 나오자 정몽주는 말에 거꾸로 올랐다. 이때 녹사 김경조가 말했다.
녹사 김경조: 시중대감, 왜 말을 거꾸로 타십니까요? 소인은 대감께서 이토록 약주를 과하게 드신 것을 처음 대하옵니다. 정몽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데 어떻게 말을 바로 타겠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 이제 곧 자객이 나를 덮칠 것이다. 그 꼴을 보기 싫어서이다. 자네는 어시 나를 떠나라. 함께 가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니까......
김경조; 대감께서 화를 당하시는데 혼자 살라고 소인더러 떠나라니오. 말도 안 됩니다. 죽어도 같이 죽겠습니다. 녹사 김경조는 눈물을 흘리며 정몽주가 탄 말고삐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정몽주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핏빛 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아, 5백 년 종묘 사직이 이제 곧 저 노을처럼 스러지고 말겠구나! 탄식하는 그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정몽주와 김경조가 선지교(選地橋)에 이르렀을 때였다. 숨어서 기다리던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조영규가 자객 7-8명을 거느리고 불쭉 길을 가로막았다.
“게 섰거라!” 정몽주는 힐끗 쳐다본 후 김경조에게 일렀다. “녹사, 어서 달아나거라!” 정몽주는 태연했다. 녹사는 자객들이 달려들자 정몽주를 몸으로 막고자 껴안았다. “미안하지만 죽여야겠소.”정몽주는 대성일갈하였다. “이성계가 시키더냐? 이놈, 나라를 훔치려느냐”“아니오, 그러나 대감은 우리의 방해물이오.”조영규가 눈짓을 하자 자객들은 일시에 쇠뭉치와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만고의 충의지사 정몽주는 의로운 피를 쏟으며 두개골이 깨어져 비장한 최후를 마쳤다. 그의 죽음은 곧 고려의 맥박이 끊어지는 것이었다.
녹사 김경조도 의리를 지키고 죽어갔다. 이날을 바로 공양왕 4년 4월 4일이었다. 고려의 사직을 떠받치던 마지막 기둥은 그렇게 쓰러졌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자객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정몽주, 그와 함께 죽어간 김경조, 그는 그 무렵 결혼한 지 불과 여섯 달 만이었다. 그의 부인 양씨는 남편이 죽음을 전해듣고 기함하였다. 얼마 만에 다시 깨어나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앞마당의 복숭아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당시 임신 6개월의 몸이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