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15장 샤마담이 미르다드를 방주에서 추방하려고 애쓰다
스승이 말을 마치자마자, 장로 샤마담의 뚱뚱한 몸이 독수리 둥지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마치 그 몸으로 독수리 둥지에서 나오는 빛과 공기를 막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입구에 있는 그 인물이 방금 스승께서 말씀하셨던 두명의 대악마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장로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턱수염은 빳빳이 곤두섰다. 그는 스승에게 다가가 스승의 팔을 거머쥐었다. 분명 스승을 억지로 끌어내리려는 기도였다.
샤마담이 말했다.
"당신의 올바르지 못한 정신에서 토해낸 기분 나쁜 구토물을 이제야 겨우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입에서는 독(毒)이 뿜어져 나온다. 당신의 존재는 불길함의 징조다. 장로로서 명령을 하노니, 이 방주에서 지금 당장 나가라."
스승은 몸이 약했지만, 굳건히 평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마치 스승이 거인이고 샤마담이 어린아이인 것 같았다. 스승이 샤마담을 바라보면서 말할 때의 평정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불러들일 힘을 갖고 있는 자만이 내쫓을 힘을 갖고 있다. 샤마담, 그대는 나를 불러들였는가?"
샤마담이 대답했다.
"당신의 사악함에 마음이 움직여 당신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대의 사악함에 움직인 것은 나의 사랑이다. 샤마담. 그리고 보라. 나는 나의 사랑과 더불어 이곳에 있다. 그러나 그대는 어쨌든 이곳에도 없고 저곳에도 없다. 그대의 그림자만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내가 온 것은 모든 그림자를 모아 태양 아래서 싹 태워 버리기 위해서다."
샤마담이 말했다.
"당신의 숨이 공기를 더럽히기 전부터 나는 방주의 장로였다. 당신의 올바르지 못한 혀로 어째서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미르다드가 말했다.
"이 산들이 생기기 전부터 나는 존재했다. 이 산들이 무너져 티끌이 된 후까지도 나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나는 방주이며 재단이며 불꽃이다. 내가 지켜 주지 않는 한, 그대는 폭풍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 자신을 내게 희생물로 바치지 않는한 '죽음'의 숱한 도살자들이 갖고 있는 예리한 칼날한테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그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름다운 불꽃이 그대를 다 태워 버리지 않는한, 그대는 지옥의 무자비한 불꽃의 연료가 될 것이다."
샤마담이 말했다.
"모두 들었는가, 듣지 못했는가? 나를 도와다오, 동행자들이여, 신성을 모독하는 이 사기꾼을 벼랑으로 추방하자."
샤마담은 다시 스승에게 달려가 스승의 팔을 잡아 끌려고 하였다. 그러나 스승은 태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행자들 역시 움찔했을 뿐 움직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화난 듯한 정적이 잠시 흐른뒤, 샤마담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난 이 방주의 장로다. 내겐 신이 주신 권위가 있다'고 자기 혼자 투덜대면서 독수리 둥지에서 도망치듯이 나갔다.
스승은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모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샤마담은 우리의 스승을 모욕했습니다. 그를 어찌해야 좋을 까요, 스승님? 명령만 내리시면, 우리는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샤마담을 위해 기도하라. 나의 동행자들이여, 그것이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모든 것이다. 그의 눈에 드리운 베일이 벗겨지고, 그의 그림자가 없어지도록 기도하라.
선을 끌어당기기 쉽듯이 악을 끌어당기기도 쉽다. 사랑에 가락을 맞추기 쉽듯이 증오에 가락을 맞추기도 쉽다.
무궁한 공간으로부터, 마음의 광대함으로부터 세계에 대한 축복을 끌어내라. 세계에 대한 축복은 그 무엇이든 그대에게도 축복이 될 테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행복을 기원하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행복은 그대의 행복이 될 테니까.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행은 그대의 불행이 될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존재'라는 무한의 사다리 속에서 움직이는 가로대[橫木]가 아니던가? '자유'의 성역에 오르고 싶은 자는 무조건 타인의 어깨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신의 어깨를 타인이 올라가기 위한 가로대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샤마담도 그대라는 존재에게 하나의 가로목이 아니던가? 그대는 자신의 사다리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하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모든 가로대에 주의를 기울이며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키도록 하라.
샤마담은 그대의 삶에서 하나의 초석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대들 역시 샤마담을 비롯한 온갖 생명의 살아 있는 건물의 초석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건물이 흠집 하나 없기를 바란다면, 샤마담이 결점 없는 돌이 되도록 만들라.
또한 그대를 초석으로 쓰는 자가 흠집 없이 삶을 쌓아 올릴 수 있도록 그대 자신의 결점을 없애라.
그대에게 눈이 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앞을 보는 모든 눈은 지상에 있든, 천상에 있든, 지하에 있든 그대 눈의 연장이다. 그대 이웃의 시야가 뚜렷하면, 그대의 사야도 그만큼 뚜렷하다. 그대 이웃의 시야가 뿌여면 그대의 시야도 그만큼 뿌옇다.
저마다 장님인 탓에 그대는 한 쌍의 눈을 잃고 있다. 그 눈이 빛을 잃지 않으면 그대의 시력은 그만큼 보강될 것이다. 좀더 뚜렷이 볼수 있도록, 이웃의 시력을 보호하는 데 유의하라.
이웃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길을---혹 그대의 문 자체를---막지 않도록 그대 자신의 시력을 보호하는 데 유의하라.
자모라는 샤마담이 나를 모욕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샤마담의 무지가 나의 이해를 교란시킬수 있겠는가?
혼탁한 시냇물은 다른 시냇물을 간단히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혼탁한 시냇물이 어떻게 바다를 흐리게 할 수 있겠는가? 바다는 기쁘게 진흙을 받아들여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고, 맑은물은 새냇물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한 뼘의 땅이라면 더럽히거나 황폐화 시킬 수 있다. 아마 전십 리의 땅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대지 전체를 더럽히거나 황폐화시킬수 있겠는가?
대지는 인간이나 동물의 오물을 모두 받아들여서, 넘칠 정도의 달콤한 과실과 향기로운 꽃들, 곡식이나 초목으로 되돌려 준다.
칼은 분명 고기를 벨 수 있다. 그러나 아주 튼튼한 팔로 제 아무리 날카로운 칼날로 벤다 해도 공기를 벨 수 있겠는가?
모욕을 주거나 모욕당하는 것은 맹목적이고 탐욕스런 무지에서 생긴 비천하고 편협한 자존심, 이 자존심 때문에 인간은 모욕을 받으면 모욕으로 보복하고, 오물을 받으면 오물 세례로 되갚는다.
자존심에 사로잡히고 자아도취 된 이 세계는 그대 머리 위에 해로움을 산처럼 쌓아 올릴 것이다. 이 세계는 너덜너덜한 법률, 악취를 풍기는 신조(信條), 곰팡내 나는 명예 등 피에 굶주린 사냥개로 하여금 그대에게 덤벼들라고 부추길 것이다.
이 세계는 그대를 질서의 적대자요 혼돈과 파멸의 사자(使者)라 선고하고, 그대의 길에 덫을 설치하고, 그대의 침상을 가시덤불로 덮을 것이다. 세계는 그대의 귀에 저주를 퍼붓고, 그대의 얼굴에 경멸의 침을 뱉을 것이다.
그대 마음에 공포가 깃들게 하지 말라.
바다처럼 넓고 깊어지라.
저주 외에는 주는 것이 없는 자에게도 저주를 축복으로 되돌려 주라.
대지처럼 관대하고 평정해지라.
그리고 사람들 마음의 불순함을 순수한 건강과 아름다움으로 바꾸라.
그리고, 공기처럼 자유롭고 유연해지라.
그대를 해치려 하는 칼은 얼마 안 있어 녹슬어 썩을 것이다. 그대를 해치려 하는 팔은 마침내 피로에 지쳐 멈출 것이다.
이 세계는 그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를 감싸안을 수 없다.
따라서 세계는 으르렁거리면서 그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대는 이 세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감싸안을 수 있다.
따라서 그대는 세계의 분노를 부드러움으로 가라앉히고, 그 속의 상처를 사랑 가득한 '이해'로써 진정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이해'가 그날을 부를 것이다.
이렇게 나는 노아에게 가르쳤다.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가르친다."
여기서 일곱 사람은 침묵 속에서 해산했다. 스승이 '이렇게 나는 노아에게 가르쳤다 '라는 말로 끝맺을 때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