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려장(靑藜杖)
인생의 삶을 짚으라는 신호 같다.
내 손에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 하나가 쥐어졌다.
명아주 줄기를 잘 말려 정성껏 깎아 만든 청려장이다.
예부터 나라에서 장수한 노인에게 하사했다는 이 푸른 지팡이가, 오늘은
여든여덟 미수(米壽)를 맞은 내 삶의 문 앞에 조용히 놓였다.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은 약해졌다는 고백이 아니라, 오래 걸어왔다는 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로만 걷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 생의 무게를 함께 나눌 벗이 생긴 셈이다. 손바닥에 닿는 매끄러운 감촉은 마치 “여기까지 잘 왔다” 고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문득 서대문 농협중앙회 강당의 환한 불빛 아래 서 있던 나를 떠올렸다. 농협퇴직동인회에서 마련해 준 합동 미수연 잔치.
단상 아래로 마주한 후배들의 얼굴은 한 결같이 싱그러웠고, 그 눈빛에는 예의와 존경, 그리고 따뜻한 정이 배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30년 몸담았던 농협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내 삶의 절반을 키워준 고향이었음을.
30년 청춘을 바쳤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던 날, 사무실 문을 나서며 느꼈던 허전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 내 역할이 끝났다는 막막함이 발걸음을 붙잡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늘 그렇듯, 유수처럼 흘러갔다. 퇴직 후 또 다른 30년.
나는 다시 사회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글을 쓰며 사람을 만나고, 하루하루를
줄기차게 살아왔다.
돌아보니 직장 안의 30년과 직장 밖의 30년이 나란히 서서 내 인생을 지탱하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노년을 지탱해 준 가장 단단한 지팡이였다.
수필가로 등단한 뒤, 나는 매일 문장 앞에 앉아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젊은 날의 성취와 실패, 현장에서 흘린 땀, 인간 사회에서 배운 인내와 배려가
글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자,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새로 발견하는 이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은 조금씩 비어가고 있었다.
함께 웃고 울던 동갑내기 친구들 중 절반 가까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이별은 늘 갑작스럽고 아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남겨진 시간은 덤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사색하며 쉬지 않고 걷는다.
테니스 코트에서 흘리는 땀은 아직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 주고, 동료들과 나누는 웃음은 하루를 다시 젊게 만든다.
몸은 청춘 같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현역이라 생각한다.
이제 내 손에 쥐어진 청려장은 단순한 노인의 지팡이가 아니다.
그것은 60년 세월을 성실히 살아온 한 ‘농협인’ 의 증표이며, 여전히 삶을 배우고 기록하겠다는 한 문인의 다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은 길 또한 허투루 딛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청려장을 들고 강당을 나서는 길,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아직 다 쓰지 못한 문장이 있고,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으며,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하루가 있다.
여든여덟, 미수의 고개에서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푸르고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