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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마하연론』 정리
1. 머리말
『석론』의 본문 해석을 풀이하기 앞서 논서의 저자가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논을 저술한 연유를 먼저 알아본 후에 본문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대승기신론』 《해동소》를 비교하게 되면 거의 비슷한 구성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가장 독특한 부분인
《수행신심분》에서 다라니 염송수행을 병행하는 부분은 『금광명최승왕경』과의 관계는 다라니 수행을 중요시한다는 부분이다.
1> 『마하연론(摩訶衍論)』을 저술한 저자의 필연적 인연과 목적은 다섯까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⓵ 부처님의 열반의 본체인 법신은 매우 깊고 깨침의 경지는 미묘하기 때문에 혹여 바르게 배우지 못하고 올바른 수행을 익히지 못한 자는 그릇되고 삿된 수행에 빠질 수 있다. 그 깨달음의 경지는 중생이 생각 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⓶ 頓入門: 수행이 깊고 영리한 경지와 어리석고 우둔한 경지의 중생 모두에게 신속하게 깨침의 경지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는 것이며, 漸進位: 처음부터 점차로 닦아 나아가는 올라가는 지위를 보여서 깊고 현묘한 경계로 들어가게 해 주기 위함이다.
⓷ 삼독으로 인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매우 커서 그러한 은혜에 작게 나마 보답하기 위함이다.
⓸ 다가올 미래의 어리석은 중생들이 수많은 쟁론을 일으켜 이 논의 훌륭한 종지를 훼손할 것을 미리 살펴서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⓹ 마명보살을 통해서 친히 직접 듣고 받자왔기 때문이다.
2> 『마하연론』이 소의로 삼는 경은 모두 백 가지 경전이 있다. 하지만 『기신론』과 『석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전은 『능가경(楞伽經)』 (25회인용)이다. 소의경전 100부 가운데 현존하거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27종류이다. 『석론』에서는 위에 언급한 소의경전 100부 외에도 많은 경전과 논서를 인용하여 『기신론』을 설명한다. 대략 127개의 經論을 190회 정도 인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100부 주에 실재로 찾을 수 있는 27종의 경전
三者: 金剛三昧經。四者: 諸法無行經。八者: 自性自體經。九者: 大乘同性經。十一者: 果圓滿經。十九者: 維摩詰經。
二十二者: 無始經。二十四者: 輪轉經。二十八者: 賢聖經。二十九者: 隱密經。三十者: 華嚴經。三十一者: 大品經。
三十六者: 佛性經。三十八者: 楞伽經。三十九者: 本業經。四十一者: 歸本經。四十二者: 真修經。四十三者: 八德經。
四十五者: 緣起經。四十六者: 一體經。十八者: 大海經。四十九者: 無相經。七十一者: 夫人經。七十二者: 法門經。
七十五者: 總持經。七十六者: 不動經。九十八者: 修行道地經。
4> 입의분(立義分)의 33법문(有法 能起 摩訶衍<대승의체> 信根: 마하연의 믿음에 근분을 능히 일으키는 법이 있다.)
: 믿음은 십신(十信)위를 이르며 확고하게 수행정진하는 마음이며, 뿌리는 초발심주에서 법운지까지 이르며
대승의 수행법을 낳고 자라게하는 것이다.
※소입법(所入法): 능입의 법에 좋은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이다.<前重八法, 後重八法>
※능입문(能入門): 글과 말로 펼치는 이치에 잘 부합하여 능히 들어가는 것이다. <前重八門, 後重八門>
※불이(不二)의 마하연: 모든 것이 하나로 평등하고 청정하며 무량한 공덕을 갖춘다. 견고하고 불변한 실재적 청정함 을 내포하고 있어서 지극히 신묘하고 홀로 존귀하여서 범부 중생의 근기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결국은 청정법신을 의미한다.
■마하연(摩訶衍): 전체를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법(法)과 뜻[義]이다.
※법이란 중생심(衆生心)을 말한다. 이 중생심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을 포괄하므로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마하연의 뜻[義]을
드러낸다. 이 심의 진여상[心眞如相]이 마하연의 체(體)를 나타내며, 이 심의 생멸인연상[心生滅因緣相]이 마하연의 자체(自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뜻[義]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체대(體大)니, 일체법의 진여는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대(相大)니, 여래장(如來藏)은 무량한 성품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용대(用大)니,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인과를 내기 때문이다.
⓵소입(所入)의 법이 되는 열여섯 가지 본법(本法)이 여덟 가지 마하연의 법은 능입(能入)을 두고 건립한 명칭이다.
마하연이 열여섯 가지가 되는 이유는 근본 마하연에서 각각 여덟 가지가 벌어지기 때문이며,
일심법계(一心法界)와 삼대의(三大義)에서 각각 두 가지씩 벌어지기 때문이다.
※ 근본 마하연의 8가지: 前重八法
1, 일체일심마하연(一體一心摩訶衍),
2, 삼자일심마하연(三自一心摩訶衍),
3, 무량무변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마하연(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摩訶衍),
4, 적정무잡일미평등부증불감체대마하연(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摩訶衍),
5, 여래장공덕상대마하연(如來藏功德相大摩訶衍),
6, 구족성공덕상대마하연(具足性功德相大摩訶衍),
7, 능생일체세간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世間因果用大摩訶衍),
8,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出世間善因果用大摩訶衍)
※後重八法
1, 일체일심마하연(一體摩訶衍),
2, 삼자일심마하연(三自摩訶衍),
3, 무량무변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마하연(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摩訶衍),
4, 적정무잡일미평등부증불감체대마하연(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摩訶衍),
5, 여래장공덕상대마하연(如來藏功德摩訶衍),
6, 구족성공덕상대마하연(具足性功德摩訶衍),
7, 능생일체세간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世間因果摩訶衍),
8,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出世間善因果摩訶衍)
⓶열여섯 가지 능입문(能入門)
※前重八門
1, 일체일심마하연(一體一心門),
2, 삼자일심마하연(三自一心門),
3, 무량무변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마하연(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門),
4, 적정무잡일미평등부증불감체대마하연(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門),
5, 여래장공덕상대마하연(如來藏功德相大門),
6, 구족성공덕상대마하연(具足性功德相大門),
7, 능생일체세간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世間因果用大門),
8,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出世間善因果用大門)
※後重八門
1, 일체일심마하연(一體門),
2, 삼자일심마하연(三自)門,
3, 무량무변제법차별부증불감체대마하연(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門),
4, 적정무잡일미평등부증불감체대마하연(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門),
5, 여래장공덕상대마하연(如來藏功德門),
6, 구족성공덕상대마하연(具足性功德門),
7, 능생일체세간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世間因果門),
8, 능생일체출세간선인과용대마하연(能生一切出世間善因果門)
⓷불이(不二)의 마하연
⓵믿음의 10가지의 뜻:
一者:澄淨義。믿음이 심성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
二者:決定義。심성을 순수하게 하여 확고한 지위에 이르게 한다.
三者:歡喜義。마음을 기쁘게 한다.
四者:無厭義。힘들거나 지치게하지 않는다.
五者:隨喜義。다른 사람의 훌륭한 행위를 닮으려고 한다.
六者:尊重義。수행공덕이 있는 사람을 닮으려한다.
七者:隨順義。보고 들은 모든 법을 훌륭하게 실천하게 해준다.
八者:讚歎義。다른이가 수승한 수행을 하면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九者:不壞義。오직 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놓치지 않게 한다. 十者:愛樂義。사무량심의 마음을 성취한다.
⓶뿌리의 10가지의 뜻:
一者:下轉義。교만함을 없애준다. 二者:隱密義。깊고 깊은 이치를 잘 설명한다.
三者:出生義。무수한 공덕을 낳고 자라게 한다. 四者:堅固義。잘 붙잡고 있어서 소실되지 않게 한다.
五者:相續義。많은 공덕이 쌓이지만 증장시켜서 끊어지지 않게 한다.
六者:出離義。각각의 지위를 더욱 수승하게 하여 오염된 법에서 멀리 여의게 한다.
七者:集成義。모든 수행의 방편법을 모아서 닦게한다.
八者:茂榮義。많은 수행을 이룬 공덕으로 훌륭한 장엄을 한다.
九者:具足義。等覺位에서 因行이 원만한 것이다.
十者:高勝義。묘각의 과위에 이르러 최고로 수승하고 훌륭하여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
5> 석마하연론은 5부분 50문으로 나눌 수 있으나 실은 6부분(六者迴向遍布門)으로 나눌 수가 있다. 하지만 논에서는 5분(分)법문으로 나누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각각 저 오십 문 중에서 십 문씩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확히 오 분을 건립한다.
一者:因緣分。二者:立義分。三者:解釋分。四者:修行信心分。五者:勸修利益分。六者迴向遍布門。
6> 一法界心: 일법계심이 일체 생멸문(生滅門)의 법을 다 포섭하기 때문에 일체의 세간법을 섭수하며,
일체 진여문(眞如門)의 법을 다 담을 수 있으므로 모든 출세간의 법을 섭수 한다. 그래서 이 논에서 핵심은 일법계심의
이 마음 전체가 그대로 법계가 되기에 법이라고 이름한다.
이 마음으로 두 가지 능입문(能入門)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이 마음에 의지해서’라 하였고, 두 가지 소입문(所入門)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마하연의 뜻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두가지 소입의 본법은 능입문에 의하여 명칭을 세운 것이다.
진여의 체를 문으로 삼아 들어갈 바를 삼기 때문에 체(體)라 하였고, 자상의 본각심(本覺心)을 문으로 삼아 들어가기 때문에
자(自)라 하였다. 능입의 문이 두 가지로 구별되기 때문에 소입의 본법도 두 가지가 됨을 알아야 한다.
⓵이 마음의 두 가지 문은 첫째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고, 둘째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⓶이 마음의 두 가지 본법(本法)은
첫째는 체(體)의 마하연이고,
둘째는 자체(自體)마하연과
자상(自相)마하연과
자용(自用)마하연이다.
2. 본문 해석
次說該攝安立門。諸識差別其數幾有。何等契經中各說幾種識。頌曰。
다음으로 해섭안립문(該攝安立門)을 설하겠다. 갖가지로 차별되는 식(識)에는 몇 가지가 있으며,
어떠한 계경에서 각각 식을 몇 가지로 설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석론』에서 입의분 다음으로 해석분에서 설하는 법에 대해 별문(別門)을 밝히는 내용이다.
이논에는 해석분(解釋分)에 세 가지를 세우고 설명한다.
첫째는 바른 뜻을 드러내 보이고(顯示正義),
둘째는 삿된 집착을 대치하고(對治邪執),
셋째는 대승의 도로 항해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함이다.(分別發趣道相)
논에서 ‘바른 뜻을 드러내 보인다’라는 의미는 일심법에는 두 가지 문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고,
둘째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일심에서 진여의 체인 진여문과 진여의 상, 용의 생멸문이라는 두 가지 문이 일체의 만법을
생장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은 서로의 작용에 대하여 어지럽히지 않기 때문이에 원만한 흐름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 발표를 하고 있는 부분이 약설분(略說分)에 해당한다.
이 중에는 세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네 가지 법상을 건립하는 문[建立四種法相門]이고,
둘째는 법문이 포괄하는 것이 원만한 문[法門該攝圓滿門]이고,
셋째는 문답을 일으켜 원인을 밝히는 문[發起問答顯因門]이다.
『석론』에서 입의분에서 33가지 법을 세웠지만 29가지 법은 생략하고 해석분에서는
네 가지 법을 아홉 가지 논서에서 이미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논문에 근거하여 4가지 문만을 해석하고 있다.
첫째는 체마하연(體摩訶衍),
둘째는 삼자마하연(三自摩訶衍:自體ㆍ自相ㆍ自用의 마하연),
셋째는 진여문(眞如門),
넷째는 생멸문(生滅門)이다.
두가지 법과 두가지 문은 각가 10가지의 명칭과 뜻이 있다. 첫째와 둘째는 본법이며, 셋째와 넷째는 별문이다.
1, 『일심변만론』 첫째는 일체일심(一體一心)의 마하연이요, 둘째는 삼자일심(三自一心)의 마하연이요,
셋째는 일체일심(一體一心)의 문(門)이요, 넷째는 삼자일심(三自一心)의 문이다.
2, 『융속귀진론(融俗歸眞論)』
첫째는 무량무변한 차별을 갖는 제법이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체대(體大)의 마하연이요
(無量無邊諸法差別不增不減體大摩訶衍),
둘째는 아무것도 섞인 것 없이 적정한 일미의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체대의 마하연이요
(寂靜無雜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摩訶衍), 셋째는 제법의 차별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체대 문이요
(法差別不增不減體大門), 넷째는 일미로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체대 문이다(一味平等不增不減體大門).
3, 『법계중장론(法界中藏論)』
첫째는 여래장공덕의 상대(相大) 마하연이요,
둘째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상대 마하연이요,
셋째는 여래장공덕의 상대 문이요, 넷째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상대 문이다.
4, 『비밀미묘론(袐密微妙論)』
첫째는 일체 세간의 인과를 생하는 용대(用大) 마하연이요,
둘째는 일체 출세간의 선인과를 내는 용대 마하연이요,
셋째는 세간의 인과를 내는 용대 문이요,
넷째는 출세간의 선인과를 내는 용대 문이다.
5, 『중명합일론(衆命合一論)』
첫째는 무량무변하게 차별되는 제법이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마하연이요,
둘째는 아무것도 섞인 것 없이 적정한 일미로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마하연이요,
셋째는 제법차별부증불감의 문이요, 넷째는 일미로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문이다.
6, 『진여삼매론(眞如三昧論)』
첫째는 여래장공덕의 마하연이요,
둘째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마하연이요,
셋째는 여래장공덕의 문이요,
넷째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문이다.
7, 『심성청정론(心性淸淨論)』
첫째는 일체 세간의 인과를 생하는 마하연이요,
둘째는 일체 출세간의 선한 인과를 내는 마하연이요,
셋째는 세간의 인과를 내는 문이요,
넷째는 출세간의 선한 인과를 내는 문이다.
8, 『부동본원론(不動本源論)』과 『심심현리론(甚深玄理論)』 의 두 가지 논은 다른 32의 문은 생략을 하고
오직 하나의 문인 ‘불이(不二)의 마하연법’이다.
10가지의 본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본법은 각각이 공통된 열 가지 명칭을 갖지만 뜻이 다르다.
1, 광대신왕(廣大神王): 첫째는 구나야신왕(鳩那耶神王)은 금강산(金剛山)에 머물며 오로지 길하고 상서로운 신중(神衆)을 탄생시킨한다. 둘째는 차비거라신왕(遮毘佉羅神王) 큰 바다에 머물며 갖가지 모든 길하고 상서로운 신중과 허물되고 근심스러운 신중을 가림 없이 출생한다. 일체본법(一體本法)은 오로지 진여의 정법(淨法)만을 출생하며, 자체에서 나오는 삼자본법(三自本法)은 갖가지 모든 청백품(淸白品)의 법과 염오품(染汚品)의 법을 가림 없이 출생하기 때문이다.
진여일심(眞如一心)으로 표현되는 금강신왕은 오직 청정한 정법(淨法)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해신왕은 큰 바다에 머물 때 다양하고 거칠고 악한 권속과 선하고 신묘한 권속을 발생시키듯이, 생멸일심(生滅一心)의 주해신왕도 마찬가지로 모든 염법과 정법을 출생하기 때문이다.
2, 태허공왕(太虛空王): 첫째는 공자재공왕(空自在空王)은 공을 통해 수용하는 것으로 자재를 삼는다. 둘째는 색자재공왕(色自在空王)은 색을 통해 수용하는 것으로 자재를 삼는다. 일체공왕(一體空王)은 무주처(無住處)로 자재를 삼고 삼자공왕(三自空王)은 유주처(有住處)로 자재를 삼기 때문이다.
3, 출생용왕(出生龍王): 첫째는 광명을 내는 용왕은 청정한 광명을 의지로 삼는다. 둘째는 바람과 물을 내는 용왕은 바람과 물의 공덕을 의지로 삼는다. 일체본법은 순정법(純淨法)으로 체(體)를 삼고 삼자본법은 염법과 정법으로 덕(德)을 삼기 때문이다.
『무시계경(無始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비유하면 큰 바다에 살면서 바람과 물을 일으킨다는 대용왕과 같다. 그 용왕은 머리로는 깨끗한 물을 내고 꼬리에서는 바람을 낸다. 이 용왕 때문에 큰 바다에는 물과 바람이 끊기지 않고 항상 계속된다. 일심용왕도 그러하여 갖가지 모든 차별법과 갖가지 모든 평등한 법을 내어 끊김 없이 항상 계속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 경전의 내용은 『대종지현문론』에서 공덕장과 과환장의 용왕으로 보여주는 4가지 작용을 비유하는 대목과 유사하다.
4, 여의주장(如意珠藏): 첫째 금주여의(金主如意)로 오직 금강(金剛)만을 낸다. 둘째는 만주여의(滿主如意) 선한 것[物]과 선하지 않은 것을 가리지 않고 낸다. 일체여의(一體如意)는 오직 정법(淨法)만을 생하고 삼자여의(三自如意)는 염법과 정법을 가리지 않고 생하기 때문이다.
5, 방촌(方寸): 여기에도 첫째는 백호방촌(白毫方寸)은 천상(天像)만을 현전해 보인다. 둘째는 난색방촌(亂色方寸)은 오취(五趣)를 가림 없이 현전해 보인다. 이 두 가지[毫]를 통해 중생의 몸[身]과 분수[分]가 마치 밝은 거울에 비추었을 때와도 같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6, 여래장(如來藏): 첫째는 점점 더 유전하고 점점 더 묶이는 여래장이고, 둘째는 행(行)과 상(相)을 갖춘 여래장이다. 『실제계경(實際契經)』 “여래장에는 오직 각자(覺者)만 있고 오직 여여(如如)만 있다. 유전(流轉)의 인(因)을 떠났고 사려와 지식의 속박을 떠나 하나하나가 흰색처럼 깨끗하기에 여래의 창고[如來之藏]라 한다.”
7, 일법계(一法界): 첫째는 순백(純白)의 일법계는 공겁(空劫)의 시분[時]과 같다. 둘째는 무진(無盡)의 일법계는 주겁(住劫)의 시분과 같다.
8, 마하연(摩訶衍):두 가지로 설명 할 수 있다. 하나는 법(法)이고 다른 하나는 뜻[義]이다. 법은 중생심(衆生心)을 말하는데 이 중생심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을 포괄하므로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마하연의 뜻[義]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마음의 진여상[心眞如相]이 마하연의 체(體)를 나타내며, 마음의 생멸인연상[心生滅因緣相]이 마하연의 자체(自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에서 [義]에 대한 세 가지 의미를 더 설명한다.
첫째는 체대(體大)이며, 일체법의 진여는 평등하여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둘째는 상대(相大)며, 여래장(如來藏)은 무량한 성품의 공덕을 온전하게 담고 있어서이다.
셋째는 용대(用大)며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한 인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9, 중실(中實): 첫째는 평등하게 머무는 중실이며 단일한 명주[獨明珠]에 비유할 수 있다. 둘째는 각기 다르게 머무는 중실이며 다른 빛에 순응하는 명주[順明珠]에 비유할 수 있다. 『명중실계경(明中實契經)』에서 “치유침을 떠난 진심(眞心)은, 진여를 의지로 삼을 때는 차별 속에 동일성을 갖는 구슬과 같고 생멸을 의지로 삼을 때는 동일함 속에 차별성을 갖는 구슬과 같다”
10, 일심(一心): 첫째는 하나가 하나인 일심(是一是一一心)이며 소작(所作)을 기준으로 세운 명칭이다.
둘째는 일체가 일체인 일심(是一切是一切一心)이며 능작(能作)을 기준으로 세운 명칭이다.
『일심법계경(一心法契經)』에서는 “(중략) 심법(心法)이란 하나가 아니다. 소작(所作)이 하나일 경우에는 그에 따라 하나라고
임시로 이름붙일 뿐이다. 그렇다고 심법이란 일체도 아니다. 소작이 일체가 될 경우 그에 따라 임시로 일체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다. 그러나 일체심이라 말하지 않고 굳이 일심이라고 하는 이유는, 능작심(能作心)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다.”
심진여문(心眞如門): 모든 부처님의 일체 ‘해장보전(海藏寶殿)’인 평등한 의리와 법문을 빠짐없이 열 가지 명칭으로 구족 한다.
1, 여래장문(如來藏門)의 이름이니, 잡되게 뒤섞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2, 불이평등문(不二平等門)의 이름이며,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3, 일도청정문(一道淸淨門)의 이름이며, 다른 갈래가 없기 때문이다.
4, 불기부동문(不起不動門)의 이름이며, 작위와 업을 떠났기 때문이다.
5, 무단무박문(無斷無縛門)의 이름이며, 장애를 대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6, 무거무래문(無去無來門)의 이름이며, 아래도 없고 위도 없기 때문이다.
7, 출세간문(出世間門)의 이름이며, 사상(四相)이 없기 때문이다.
8, 적멸적정문(寂滅寂靜門)의 이름이며, 어디로 향하고 가고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9, 아홉째는 대총상문(大摠相門)의 이름이며, 별상(別相)이 없기 때문이다.
10, 진여문(眞如門)의 이름이며, 허망과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심생멸문(心生滅門): 모든 부처님의 일체 해장보전(海藏寶殿)’이 갖가지로 차별되는 법문을 빠짐없이 담고있는 열 가지 명칭이 있다. 중요한 특징은 두 가지 문이 있는데 먼저는 하전문(下轉門)으로 모든 염법이 힘을 가지고 모든 정법이 힘을 갖지 못할 때 청정한 마음의 근본을 위배하여서 아래로 아래로 전전하여 그릇된 훈습의 영향이 커져서 윤회의 업이 커진다. 다른 문은 상전문(上轉門)으로 모든 정법이 바르고 청정한 힘을 가지고 모든 염법이 힘을 잃어서 발현하지 못할 때 청정한 법체의 근원을 향해 위로
위로 수행지위의 점차가 전전하여 높아진다.
1, 장식문(藏識門)의 이름이며, 모든 염법과 모든 정법을 다 거두어들여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 여래장문(如來藏門)의 이름이며, 여래법신의 체(體)를 덮어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기동문(起動門)의 이름이며, 끊임없이 업을 짓기 때문이다.
4, 유단유박문(有斷有縛門)의 이름이며, 장애를 대치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5, 유거유래문(有去有來門)의 이름이며, 위도 있고 아래도 있기 때문이다.
6, 다상분이문(多相分異門)의 이름이며, 염법과 정법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기 때문이다.
7, 세간문(世間門)의 이름이며, 사상(四相)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8, 유전환멸문(流轉還滅門)의 이름이며, 생사와 열반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9, 상대구성문(相待俱成門)의 이름이며, 자체적으로 법을 성립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10, 생멸문(生滅門)의 이름이며, 무상(無常)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생멸문을 깨달아 들어가는 수순이 두 가지가 있다.
1, 향상(向上)의 수순이며, 신위[信]로부터 금강지[金剛]에 이르기까지, 보리과를 향해 수순하는 방편을 말한다.
2, 향하(向下)의 수순이며, 청정하고 묘한 자성의 장(藏)으로부터 최초[第一]의 염인 신(信)에 이르기까지
야야지(耶耶地)를 향해 수순하는 방편을 말한다.
10가지의 마음(心量): 이 논에서는 아래의 열 가지 마음 중에서 아홉 가지 심은 진리를 연하지 못하고,
마지막 심 한 가지만이 진리를 연하여 경계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안식의 심[眼識心],
둘째는 이식의 심[耳識心],
셋째는 비식의 심[鼻識心],
넷째는 설식의 심[舌識心],
다섯째는 신식의 심[身識心],
여섯째는 의식의 심[意識心],
일곱째는 말나식의 심[末那識心],
여덟째는 아뢰야식의 심[阿梨耶識心],
아홉째는 다일식의 심[多一識心],
열째는 일일식의 심[一一識心]이다.
牟尼大覺尊 一代聖說中 總集有十種 各異說契經
謂一種為始 十種而為終 歸本等契經 分明顯說故
석가모니(牟尼) 대각존께서 평생토록 설하신 성스런 가르침 중에서 총제적으로 모으면 식(識)은 열 가지의 종류로 되어 있으니
인연된 경전에서 조차 각각이 다르게 설하고 있다.
말한다면, 한 가지 종류에서 시작하여서 결국에는 열 가지 종류로 끝맺을 수 있다. 귀본(歸本)류 등의 계경(契經)들에서 분명히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0611a08] 論曰。凡集一代諸聖說中異說契經。總有十種。謂從一種識乃至十種識。云何為十種差別經。
논하여 말하길 무릇 일대에 걸쳐 식(識)에 대해 많은 성인이 설하신 경전의 말씀을 모아 보면 다해서 열 가지가 있다.
즉, 한 가지 식으로부터 열 가지 식에 이른다. 어떤 것이 열 가지 다르게 설하는 경인가?
<1> 一者: 立一種識總攝諸識。此中有四。云何為四。
첫 번째는 한 가지 식을 건립해서 모든 식을 다 포괄한다는 설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1) 一者: 立一切一心識總攝諸識。所謂以一心識遍於二種自在無所不安立故。一心法契經中作如是說。爾時文殊師利承佛威神之力。即白佛言。世尊說幾種識。體相如何。當願為我分別開示。爾時世尊告文殊言。善哉善哉文殊師利。為諸大眾當問此事。諦聽諦聽善思念之。我當為汝分別解說。於是文殊白佛言。善哉世尊願欲樂聞。佛告文殊言。我唯建立一種識。所餘之識非建立焉。所以者何。一種識者多一一識。此識有種種力。能作一切種種名字。而唯一識終無餘法。是故我說建立一種識。所餘之識非建立焉故。
첫째는 일체가 되는 하나의 심식[一切一心識]을 건립해서 모든 식을 포괄한다. 하나의 심식이 두 가지 자재에 두루하여 무엇이든 안립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심계경(一心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 문수사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몇 가지 식을 설하시며, 그 체상(體相)은 어떠합니까?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여 주소서,’
이때 세존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문수사리여, 모든 대중을 위해 이런 물음을 던지는구나. 잘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내 이제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해 주겠다.’ 그러자 문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운 마음으로 듣기를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식만을 건립할 뿐, 그 밖의 식은 건립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한 가지 식이란, 무수하게 많지만 하나뿐인 유일한 식[多一一識]이다. 이 식은 갖가지 힘을 가지며 갖가지 모든 명자를 지어내는데, 오직 한 가지 식일 뿐 결코 다른 법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한 가지 식만을 건립할 뿐, 그 밖의 식은 건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 二者: 立阿梨耶識總攝諸識。所謂以阿梨耶識。具足障礙義無障礙義無所不攝故。阿梨耶識契經中作如是說。
爾時觀自在菩薩即白佛言。世尊云何名為通達總相識。以何義故名為總相。佛告觀自在菩薩言。所言通達總相識者。
即是阿梨耶識。此識有礙事及非礙事。具一切法備一切法。譬如大海為水波等作總相名。以此義故名為總相故。
둘째는 아리야식(阿梨耶識-범어 ālaya-vijāna의 음역으로서 8식(識) 가운데 제8식이며, 유정의 근본적인 식체(識體)이다.
ālaya는 저장ㆍ집착ㆍ무몰(無沒)의 의미이다.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제7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근본식ㆍ본식ㆍ장식(藏識)ㆍ이숙식(異熟識)ㆍ일체종자식ㆍ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한다. 진제는 아리야식(阿梨耶識)ㆍ아려야식(阿黎耶識)으로 음역하고 무몰식(無沒識)으로 의역하였다.) 하나를 건립해서 모든 식을 다 포괄한다. 아리야식이 장애(障礙)와 무장애(無障礙)의 뜻을 구속하여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야식계경(阿梨耶識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이때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통달총상식(通達摠相識)이라고 하며, 무슨 이유로 총상(摠相)이라는 명칭을 붙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통달총상식이란 아리야식을 말한다. 이 식에는 막힘[礙事]과 막히지 않음[非礙事]이 있어서 일체법을 빠짐없이 갖춘다. 마치 큰 바닷물이 물과 파도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한다는 뜻에서 총상이라는 이름을 얻듯이, 이런 의미에서 총상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3) 三者: 立末那識總攝諸識。所謂以末那識具足十一種義無所不攝故。顯了契經中作如是說。種種心識雖有無量。唯末那轉無有餘法。所以者何。是末那識具足十一義。無所不作故。
셋째는 말나식(末那識) 하나를 세워서 모든 식을 다 포괄한다. 말나식이 열한 가지 뜻을 갖추어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현료계경(顯了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갖가지 심식(心識)은 한량없이 많지만 오직 말나(末那)의 전변(轉變)일 뿐 그 밖의 법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이 말나식은 열한 가지 뜻을 갖추어, 하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4) 四者: 立一意識總攝諸識。所謂以意識有七種轉變自在。隨能作其事故。七化契經中作如是說。譬如幻師唯是一人。 以幻術力變化七人。愚人見之謂有七人。而智者見唯有一人無餘七人。意識幻師亦復如是。唯是一識能作七事。凡夫見之謂有七事。而覺者見唯有意識無餘七事故。是名建立同一種識四種契經。
넷째는 의식(意識) 한 가지를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한다. 의식에는 자재한 일곱 가지 전변(轉變)이 있어서 그에 따라 맞는 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칠화계경(七化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다. 요술을 부리는 마술사는 하나뿐이지만 요술의 힘으로 일곱 사람을 만들어 낸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보고 일곱 사람이라고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것을 보고 한 사람일 뿐 나머지 일곱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안다. 의식(意識)이라는 마술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오직 하나 뿐인 식이 일곱 가지 일[事]을 지어내는데, 범부들은 그것을 보고 일곱 가지 일이라고 하지만 깨달은 이는 그것이 오직 의식일 뿐 나머지 일곱 가지는 없음을 안다.” 이상이 동일한 한 가지 식만을 건립하는 네 가지 계경이다.
<2> 二者: 立二種識總攝諸識。云何為二。一者:阿梨耶識。二者:意識。
阿梨耶識者。總舉業轉現三識故。意識者。總舉七種轉識故。楞伽契經中作如是說。大慧廣說有八種識。略說有二種。
何等為二。一者:了別識。二者:分別事識。乃至廣說故。
두 번째는 두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두 가지 식인가? 첫째는 아리야식이고 둘째는 의식이다. 아리야식이라는 이름에 업식(業識)ㆍ전식(轉識)ㆍ현식(現識)의 세 가지가 다 따라오기 때문이며, 의식이라는 이름에 일곱 가지 전식[七轉識]이 다 따라오기 때문이다. 『능가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대혜여, 자세히 설하면 여덟 가지 식이 있고, 간략하게 설하자면 두 가지 식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요별식(了別識)이고, 둘째는 분별사식(分別事識)이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하였기 때문이다.
<3> 三者: 立三種識總攝諸識。云何為三。一者阿梨耶識。二者末那識。三者意識。
阿梨耶識者: 總舉三相識故。末那識者: 直意根故。意識者: 總舉六種轉識故。慈雲契經中作如是說。復次敬首廣說有十種識。總說有三種識。何者為三。一者: 細相性識。二者: 根相性識。三者: 分離相性識。乃至廣說故。
세 번째는 세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세 가지 식인가? 첫째는 아리야식(8식, 심식)이고, 둘째는 말나식(7식, 의식)이고, 셋째는 의식(6식)이다. 아리야식이라는 이름에 세 가지 식이 다 따라오기 때문이며, 말나식이라는 이름이 의근(意根)을 직접적으로 의미하기 때문이며, 의식이라는 이름에 여섯 가지 전식[六轉識]이 다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운계결(慈雲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한편 경수(敬首)여, 자세히 설하면 열 가지 식이 있는데 그 모두를 세 가지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미세한 양상을 갖는 성질의 식[細相性識]이고, 둘째는 근의 양상을 갖는 성질의 식[根相性識]이고, 셋째는 분위에 따라 격리되는 양상을 갖는 성질의 식[分離相性識]이다.”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하였기 때문이다.
<4> 四者: 立四種識總攝諸識。云何為四。謂前三中加一心識故。無相契經中作如是說。識法雖無量不出四種識。
云何為四。一者: 所依本一識。二者: 能依持藏識。三者: 意持識。四者: 遍分別識。乃至廣說故。
네 번째는 네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앞의 세 가지에 일심식(一心識)을 더한 것이다. 『무상계경(無相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식법(識法)은 셀 수 없이 많으나 네 가지 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소의가 되는 하나의 근본식[所依本一識]이고, 둘째는 의지와 장의 공능을 갖는 식[能依持藏識]이고, 셋째는 의가 지탱하는 식[意持識]이고, 넷째는 빠짐없이 분별하는 공능을 갖는 식[遍分別識]이다.”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하였기 때문이다.
<5> 五者: 立五種識總攝諸識。云何為五。謂前四中加隨順遍轉識故。大無量契經中作如是說。復次有識。非彼彼識攝。遍於彼彼識。所謂隨順遍轉識故。
다섯 번째는 다섯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앞의 네 가지에 수순변전식(隨順遍轉識)을 더한 것이다. 『대무랑계경(大無量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또 하나의 식이 있으니, 이 식은 저러저러한 식에 속하지 않으면서 저러저러한 식 어느 것에나 두루하다. 어디든 거슬리지 않고 순종해서 전전하는 식[隨順遍轉識]이기 때문이다.”
<6> 六者: 立六種識總攝諸識。云何為六。所謂眼等五種別識。及第六意識故。四聖諦契經中作如是說。佛告樹王。我為小根諸眾生故。以密意趣作如是唱。但有六識無有餘識。而實本意。為欲令知六種識中具一切識。於大眾中作如是唱故。
여섯 번째는 여섯 가지 식을 건립해서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안식(眼識) 등 다섯 가지 별식(別識)과 제육의식(第六意識)이다. 『사성제계경(四聖諦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부처님께서 수왕(樹王)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근기를 가진 모든 중생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밀한 취지를 가지고 이와 같이 설한다. 단지 여섯 가지 식뿐 그 밖에 다른 식은 없다고, 이것이 실제로 나의 본뜻이다. 여섯 가지 식에 모든 식이 다 들어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설하는 것이다.’”
<7> 七者: 立七種識總攝諸識。云何為七。謂前六中加末那識故。法門契經中作如是說。復次文殊師利識法有七種。云何為七。所謂六識身及末那識。如是七識或一時轉或前後轉。復次第七識有殊勝力故。或時造作持藏之用。或時造作分別之依故。
일곱 번째는 일곱 가지 식을 건립해서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앞의 여섯 가지에 말나식을 더한 것이다. 『법문계경(法門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한편, 문수사리여, 식법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육식신(六識身)과 말나식을 말한다. 이 일곱 가지 식은 동시에 전전[轉]하기도 하고 전후를 갖고 전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제칠식(第七識, 말라식)은 수승한 힘을 갖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장식(藏識, 8식)을 붙들어 유지시키는 작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분별식(分別識, 6식)의 의지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8> 八者: 立八種識總攝諸識。云何為八。謂前七中加阿梨耶識故。道智契經中作如是說。心王有八。云何為八。一者眼識心王。乃至八者異熟報識心王。種種識法不出此數故。
여덟 번째는 여덟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앞의 일곱 가지에 아리야식을 더한 것이다. 『도지계경(道智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심왕(心王)에 여덟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 안식(眼識)의 심왕으로부터 여덟째 이숙보식(異熟報識, 8식)의 심왕을 말하니, 갖가지 의법이 이 여덟 가지 수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9> 九者: 立九種識總攝諸識。云何為九。謂前八中加唵摩羅識故。金剛三昧契經中作如是說。爾時無住菩薩而白佛言。尊者以何利轉。而轉眾生一切情識入唵摩羅。佛言諸佛如來常以一覺。而轉諸識入唵摩羅故。
아홉 번째는 아홉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다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앞의 여덟 가지에 암마라식(唵摩羅識)을 더한 것이다. 『금강삼매계경(金剛三昧契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 무주보살(無住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여, 어떤 예리한 전전력[利轉]이 있길래 중생의 모든 정식(情識)을 전변하여 암마라(唵摩羅)에 들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여래께서는 항상 하나의 깨달음을 통해 모든 식을 전변해서 암마리에 들게 한다.’”
<10> 十者: 立十種識總攝諸識。云何為十。謂前九中加一切一心識故。法門契經中作如是說。心量雖無量而不出十識。乃至廣說故。是名十種異說契經。
열 번째는 열 가지 식을 건립하여 모든 식을 포괄하는 설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앞의 아홉 가지에다가 일체일심식(一切一心識)을 더한 것이다. 『법문계경(法門契經)』에서 “심량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열 가지 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시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했기 때문이다. 이상이 식(識)을 열 가지로 다르게 설하는 경전의 말씀이다.
如是十種於寶冊中云何該攝。云何安立。頌曰。
이 열 가지는 보배스러운 문서[寶冊] 중 어디에 들어가며, 식을 어떻게 안립(安立) 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於本論雖明 今更作重釋 將契經散文 屬斯論總言
본론에서 분명히 설했으나 지금 거듭 해석하는 것은 계경에 흩어져 나오는 문장들이 논에 대조하여 맞추어보기 위함이라네.
論曰。於本論中。雖分明說。而今為鈍更作重釋。將契經文屬當論言。
논에서 이르길 본론인 『마하연론』에서 비록 분명하게 설했지만, 이제 근기가 둔한 자를 위해 중복해서 해석하여, 각 경의 문장이 이 논의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밝히겠다.
所謂一心法契經中。總所建立一切一心識。摩訶衍論一法界攝。義如前說。
『일심법계경(一心法契經)』에서 심식의 총체 격으로 세운 ‘일체일심식(一切一心識)’은 『마하연론』의 ‘일법계(一法界)’라는 말에 해당한다. 그 의미는 이미 설한 바와 같다.
阿梨耶識契經中。總所建立阿梨耶識。摩訶衍論總阿梨耶攝。所以者何。於本論中作如是說。所謂不生不滅與生滅和合。非一非異名為阿梨耶識。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生一切法。云何為二。一者覺義。二者不覺義故。
『아리야식계경(阿梨耶識契經)』에서 심식의 종체 격으로 세운 ‘아리야식’은 『마하연론』에서 총체 격으로 세운 ‘아리야식’에 해당한다. 어째서 그런가? 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생불멸하는 것이 생멸하는 것과 화합하여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음을 아리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식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섭수하기도 하고 일체법을 생하기도 한다. 무엇이 두 가지 뜻인가? 첫째는 각의 뜻[覺義]이고 둘째는 불각의 뜻[不覺義]이다.”
顯了契經中。總所建立大末那識。摩訶衍論總末那攝。所以者何。於本論中作如是說。
『현료계경(顯了契經)』에서 총체 격으로 세운 ‘대말나식(大末那識)’은 마하연론에서 총체 격으로 세운 ‘말나(末那)’에 해당한다. 어째서 그런가? 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復次生滅因緣者。所謂眾生依心意意識轉故。此義云何。以依阿梨耶識。說有無明不覺而起。能見能現能取境界。起念相續故說為意。此意復有五種名。
또한, 생멸의 인연이란 중생이 심(心)에 의지하여 의(意)와 의식(意識)으로 전변하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아리야식에 의지해서 무명이 있음을 말한다. 불각(不覺)이 일어나 경계를 보고[能見] 경계를 나타내고[能現] 경계를 취하는[能取] 망념을 일으켜 끊임없이 상속하므로 의(意)라고 말한다. 이 의(意)에는 다시 다섯 가지의 명칭이 있다.
云何為五。一者: 名為業識。謂無明力不覺心動故。二者: 名為轉識。依於動心能見相故。三者: 名為現識。所謂能現一切境界。猶如明鏡現於色像。現識亦爾。隨其五塵對至。即現無有前後。以一切時任運而起常在前故。四者: 名為智識。謂分別染淨法故。五者: 名為相續識。以念相應不斷故。乃至廣說故。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業識)이라는 명칭으로서, 무명의 힘으로 인해 불각의 심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둘째는 전식(轉識)이라는 명칭으로서, 움직이는 마음에 의지하여 상을 보는 공능[能見]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셋째는 현식(現識)이라는 명칭으로서, 모든 경계를 나타내는 공능[能現]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마치 밝은 거울이 색상을 나타내듯, 현식도 마찬가지로 오진(五塵)이 마주해서 다가오면 전후 없이 즉시 나타내주니,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 항상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식(智識)이라는 명칭으로서, 염법과 정법을 분별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다섯째는 상속식(相續識)이라는 명칭으로서, 염(念)이 서로 상응하여 단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했기 때문이다.
七化契經中。總所建立同一意識。摩訶衍論一分意識攝。說相雖闕具密意故。於本論中作如是說。復次言意識者。即此相續識。依諸凡夫取著轉深。計我我所種種妄執。隨事攀緣分別六塵。名為意識。乃至廣說故。
『칠화계경(七化契經)』에서 심식의 총체 격으로 건립한 ‘동일의식(同一意識)’은 『마하연론』의 ‘일분의식(一分意識)’에 해당한다. 형식면에서 보면 교설에 빠진 것도 있지만 교설이 담고자 한 비밀스런 의도는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다음으로, 의식(意識)이란 다름 아닌 상속식(相續識)을 말한다. 모든 범부가 점점 더 깊이 소유하고 집착하여 아(我)와 아소(我所)를 헤아리고 갖가지 허망한 집착으로 일[事]에 따라 반연(攀緣)하여 육진(六塵)을 분별한다는 뜻에서 의식(意識)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했기 때문이다.
如是如是彼彼諸經。隨應當處應如如配。已說該攝安立門。
이러한 갖가지 경에 나오는 식에 관한 설은 이 논의 해당하는 곳을 따라서 논리에 맞게 마땅하게 비교하여 보이겠다. 이미 다양한 경전에 나오는 식의 명칭을 이 논에서 어떻게 포괄하고 정립하는 것을[該攝安立門] 설하여 마쳤다.
次說藏識剖字門。阿梨耶識名字差別其數幾有。契經異說其相云何。何等字義屬何等處。頌曰。
다음부터는 장식이라는 명칭을 분석하는 부분[藏識剖字門]을 설하겠다. 아리야식이라는 명칭은 몇 가지로 차별되며, 경에서 어떻게 각각 달리 설하고 있는가? 경의 어떤 자의(字義)가 이 논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有十阿梨耶 契經異說故 摩訶鍵怛摽 鍵阿尸伽羅 白白唵摩羅 黑白唵摩羅
羯羅羅鍵摩 縛多提鍵摩 奢呵那鍵摩 婆阿叉尼羅 白白迦薩羅 黑白迦薩羅
如是十種識 摩訶衍論中 分明顯說故 隨應各配屬
열 가지 아리야(阿梨耶)가 있으니 계경에서 달리 설하기 때문이다.
1, 마하건달표(摩訶鍵怛摽) 2, 건아시가라(鍵阿尸伽羅) 3, 백백암마라(白白唵摩羅) 4, 흑백암마라(黑白唵摩羅)
5, 갈라라건마(羯羅羅鍵摩) 6, 박다제건마(縛多提鍵摩) 7, 사가나건마(奢呵那鍵摩) 8, 파아차니라(婆阿叉尼羅)
9, 백백가살라(白白迦薩羅) 10, 흑백가살라(黑白迦薩羅)
이상 열 가지 식을 『마하연론』에서는 명백하게 드러나게 설하여 까닭은 해당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에 맞게 배대하여 귀속시켰다.
論曰。阿梨耶識總有十種。所以者何。於契經中別別說故。云何為十。
논에서 이르길, 아리야식에는 모두 열 가지 명칭이 있다. 어째서 그런가? 관련된 경들 중에서도 확연하게 구별해서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一者: 名為大攝主阿梨耶識。所謂即是總相大識。義如前說。
첫째는 대섭주아리야식(大攝主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총상(摠相)의 대식(大識)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二者: 名為根本無明阿梨耶識。所謂根本無明別立。以為阿梨耶故。十種妄想契經中作如是說。剎奢只多提王識。直是妄法。不能了達一法界體。一切染法阿梨耶識以為根本。出生增長無斷絕時。若無提王識。黑品眷屬永無所依不能生長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所言不覺義者。謂不如實知真如法一故。不覺心起而有其念。乃至廣說故。
둘째는 근본무명아리야식(根本無明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근본무명을 별도로 세워서 아리야로서 삼기 때문이다. 『망상계경(妄想契經)』에서, “찰사지다제왕식(刹奢只多提王識)은 다름 아닌 망법(妄法)을 가리킨다. 일법계의 체(體)를 요달하지 못하므로써, 아리야식을 근본으로 염법(染法)이 출생하고 불어나서 끊어질 때가 없다. 만일 제왕식이 없다면 흑품(黑品)의 권속은 영원히 의지처를 잃어 생장하지 못한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불각(不覺)이란 무엇인가? 진여의 법이 하나인 줄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심이 일어나 망념이 있게 되지만”이라고 한 구절과 그 이하 자세한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三者: 名為清淨本覺阿梨耶識。所謂自然本智別立。以為阿梨耶故。本覺契經中作如是說。自體淨佛阿梨耶識。具足無漏圓滿功德。常恒清淨常恒決定。無受熏相無變異相。智體不動具足白品。是故名為獨一淨識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復次覺體相者有四種大義。與虛空等猶如淨鏡。乃至廣說故。
셋째는 청정본각아리야식(淸淨本覺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자연본지(自然本智)를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본각계경(本覺契經)에서, “자체가 청정한 불(佛)의 아리야식은 무루(無漏)를 구족하고 공덕을 완전히 갖춰 항상 청정하고 어디까지나 모호한 점이 없다. 훈습을 받는 상도 없고 변하거나 달라지는 상도 없으며, 지(智)의 체가 부동하여 청정한 품[白品]을 구족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유일하게 청정한 식[獨一淨識]이라 이름한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각(覺)의 체상에 네 가지 큰 뜻이 있는데, 허공과 동등하고 깨끗한 거울과도 같다”고 한 구절과 그 이하 자세한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四者: 名為染淨本覺阿梨耶識。所謂不守自性陀羅尼智。別立以為阿梨耶故。本因緣起契經中作如是說。爾時光嚴童子即白佛言。尊者以何因緣故。難入未曾有會中作如是說。隨他緣起陀羅尼智名。為楞伽王識。云何名為楞伽王。以之為喻示彼緣起陀羅尼智。於是尊者告光嚴童子言。此楞伽王常在大海摩羅山中。率十萬六千鬼神之眾以為眷屬。如是諸眷屬皆乘化宮殿遊於諸剎。皆悉承賴彼楞伽王。方得遊行。所謂諸鬼神眾作如是言。我等神眾無有威德無有氣力。於諸所作無有其能。如宜大王。我等眾中與堪能力。彼楞伽王即隨其時與殊勝力。不相捨離而共轉故。謂楞伽王雖非分身。而能遍滿諸神眾中。各各令得全身之量。於一切時於一切處共轉不離。不守自性智亦復如是。能受一切無量無邊煩惱染法鬼神眾熏。不相捨離而俱轉故。以此因緣故。我難入會中作如是說。隨轉覺智名為楞伽王識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自性清淨心。因無明風動。心與無明。俱無形相不相捨離。乃至廣說故。
넷째는 염정본각아리야식(染淨本覺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자성을 고수하지 않는 다라니의 지혜[不守自性陀羅尼智]를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본인연기계경(本因緣起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때 광엄동자(光嚴童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제껏 있지 않았던 들어가기 어려운 법회[未曾有會]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다른 연을 따라 일어나는 다라니 지혜[隨他緣起陀羅尼智]를 능가왕식(楞伽王識)이라 이름한다고, 무엇을 능가왕이라 하기에, 그것을 비유로 들어 연을 따라 일어나는 다라니의 지혜를 보여주십니까?’ 이때 존자께서 광엄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능가왕은 항상 큰 바다 속 마라산(摩羅山)에 거처하며 십만 육천 귀신들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권속들은 모두 변화궁전[化宮殿]을 타고 여러 국토를 돌아다니는데, 예외 없이 능가왕의 힘에 의지해야 비로소 돌아다닐 수 있다. 저 귀신의 무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신중(神衆)들은 아무런 위력이나 덕이 없고, 아무런 기력도 없어서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없다. 여의대왕(如宜大王)이 우리 신중에게 감당할 능력을 부여하시고 저 능가왕이 적절한 때를 보아 수승한 능력을 부여하시기에 그 분의 힘과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다니기 때문이다≻라고. 그것은 능가왕이 비록 자신의 몸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중에게 힘을 골고루 완전히 행사하여 각각에게 자신의 몸과 똑같은 분량을 얻게 함으로써 어느 때나 어느 곳에나 왕과 분리되지 않고 함께 활동한다는 뜻이다.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연에 따라 일어나는 지혜[不守自性智]도 마찬가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모든 염법과 번뇌의 귀신들의 훈습을 받아 분리되지 않은 채 동시에 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들어가기 어려운 회중에서 다른 연을 따라 움직이는 각지(覺智)를 능가왕식이라고 이름한다.’”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마찬가지로 중생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도 무명이라는 바람에 의해 움직임이 생기는데, 실과 무명은 다 같이 형상이 없고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라고 한 구절과 그 이하 자세한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五者: 名為業相業識阿梨耶識。所謂根本業相及與業識。別立以為阿梨耶故。本性智契經中作如是說。阿梨耶識無能了作無所了作。不可分析不可隔別。唯由精動隱流義故。名為鍵摩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復次依不覺故生三種相。與彼不覺相應不離。云何為三。一者: 無明業相。以依不覺故。心動說名為業。覺則不動。動則有苦。果不離因故。
다섯째는 업상업식아리야식(業相業識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근본업상(根本業相)과 업식(業識)을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본성지계경(本性智契經)』에서, “아리야식에는 능료(能了)의 작업도 없고 소료(所了)의 작업도 없다. 나눌 수도 없고 떨어뜨려 구분할 수도 없다. 오직 정밀하게 움직이고 은밀히 흐른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건마(鍵摩)라고 이름한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다음으로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가지 상이 나오지만, 세 가지 상은 저 불각과 서로 상응하여 분리되지 않는다. 무엇이 세 가지 상인가? 첫째는 무명업상(無明業相)이다.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망심이 움직이는 것을 업(業)이라 한다. 깨닫기만 하면 망념이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면 바로 괴로움이 있게 된다. 과는 인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에 해당한다.
六者: 名為轉相轉識阿梨耶識。所謂能見境界之相及與轉識。別立以為阿梨耶故。大無量契經中作如是說。阿梨耶識有見見轉無見見起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二者: 能見相。以依動故能見。不動則無見故。
여섯째는 전상전식아리야식(轉相轉識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경계상을 능견(能見)하는 것과 전식(轉識)을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대무량계경(大無量契經)』에서, “아리야식은 유견(有見)의 견(見)으로 전(轉)하고 무견(無見)의 견(見)으로 일어난다”고 설했기 때문이다. 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두 번째는 능견상(能見相)이다.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보는 것이므로, 움직이지 않으면 보는 일도 없다”고 한 구절에 해당한다.
七者: 名為現相現識阿梨耶識。所謂境界之相及與現識。別立以為阿梨耶故。實際契經中作如是說。別異別異現前地轉。相異相異具足行轉。是故名為阿梨耶識。復次此阿梨耶識。真是異熟無記之法。淨白相故或名成就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三者: 境界相。以依能見故。境界妄現。離見則無境界故。
일곱째는 현상현식아리야식(現相現識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경계의 상과 현식(現識)을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실제계경(實際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각각 다르게 현전하는 지(地)를 따라 전(轉)하며 서로 다르게 행을 구족하며 전하기 때문에 아리야식이라 이름한다. 한편 이 아리야식은 순수한 이숙무기(異熟無記)의 법으로서 흰색과도 같이 깨끗한 상을 갖기에 성취라고도 이름한다.”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세 번째는 경계상(境界相)이다. 보는 공능에 의지하기 때문에 경계가 망령되이 나타나니, 보는 일을 떠나면 경계도 없다”라고 한 구절에 해당한다.
八者: 名為性真如理阿梨耶識。所謂正智所證清淨真如。別立以為阿梨耶故。諸法同體契經中作如是說。有識是識非識識攝。所謂如如阿梨耶識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所謂清淨般若質境真如攝故。
여덟째는 성진여리아리야식(性眞如理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정지(正智)로써 증득한 청정한 진여를 별도로 세워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제법동체계경(諸法同體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모든 식(識), 즉 시식(是識:妄識)과 비식(非識:智)도 다 식에 소속되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은 이른바 여여아리야식(如如阿梨耶識)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리야식은 『마하연론』의 “청정반야의 본질 경계[質境]는 진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에 해당한다.
九者: 名為清淨始覺阿梨耶識。所謂本有清白始覺般若。別立以為阿梨耶故。果圓滿契經中作如是說。佛告菩提樹王言。自然始覺阿梨耶識。當常不離清淨本覺。清淨本覺當常不離始覺淨識。隨是彼有。隨彼是有。或非同種或非異種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本覺義者對始覺說。以始覺者即同本覺故。
아홉째는 청정시각아리야식(淸淨始覺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본유(本有)의 청정한 시각반야(始覺般若)를 독립시켜 아리야로 삼기 때문이다. 『과원만계경(果圓滿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왕(菩提樹王)에게 말씀하셨다. ‘자연시각아리야식(自然始覺阿梨耶識)은 당연히 항상 청정본각을 여의지 않으며, 청정본각은 당연히 항상 시각의 청정식을 여의지 않는다. 이것이 있으면 그에 따라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그에 따라 이것이 있는데, 때로는 종류를 같이하며 때로는 종류를 달리한다.’”여기서 말하는 아리야식은 『마하연론』의 “본각의 의미는 시각(始覺)의 상대적 개념으로 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각의 의미는 다름 아닌 본각과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에 해당한다.
十者: 名為染淨始覺阿梨耶識。所謂隨緣始覺般若。別立以為阿梨耶故。果圓滿契經中作如是說。復次樹王。如始覺淨識及白淨本覺。說染淨始覺阿梨耶識。不守自性緣起本覺。亦復如是故。此阿梨耶識當何決擇攝。於本論中作如是說。始覺義者。依本覺故而有不覺。依不覺故說有始覺。又以覺心原故名究竟覺。不覺心原故非究竟覺。乃至廣說故。
열째는 염정시각아리야식(染淨始覺阿梨耶識)이라 이름하니, 연을 따르는 시각 반야를 독립시켜 아리야식으로 삼기 때문이다. 『과원만계경(果圓滿契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그리고 보리수왕이여, 시각의 청정한 식과 청정한 본각을 염정시각아리야식이라고 하듯이,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연에 따라 일어나는 본각(本覺)도 그렇기 때문이다.”이 아리야식을 『마하연론』의 설에 배대해 본다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논의 “무슨 뜻으로 시각의 측면[始覺義]을 말하는가? 본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불각(不覺)이 있게 되고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설한다. 한편, 마음의 근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究竟覺)이라 이름하고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구경각이 아니라고 한다”고 한 구절과 그 이하 자세한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如是等義至自決擇自當備演。十種末那六種意識。於後文中隨次釋故。今略而已。已說藏識剖字門。分相門。
이상에서 말한 내용은 본론에 들어가서 결택할 때가 되면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말나(末那)의 열 가지 뜻과 여섯 가지 의식(意識)에 대해서는 앞으로 나올 문장에서 차례로 해석하겠기에 여기서는 생략했을 뿐이다. 여기까지 장식이라는 명칭을 분석하는 부문[藏識剖字門] 및 장식의 상을 분별하는 문[分相門]에 관해 설명하였다.
次說總識攝生圓滿門。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能生一切法。云何為二。一者:覺義。二者:不覺義者。
다음으로 총식이 일체법을 거두어들이고 생하며 공덕과 허물을 원만히 갖추었다는 점을 밝히는 부문[摠識攝生圓滿門]에 관해 설하겠다. 이 식은 두 가지 측면[義]을 가지며, 그럼으로써 일체법을 다 거두어들이는 동시에 일체법을 다 생한다. 무엇이 두 가지 측면인가? 첫째는 각의 측면[覺義]이고 둘째는 불각의 측면[不覺義]이다.
而總顯示本識殊勝圓滿相故。此義云何。所謂具足二種圓滿故。云何為二。一者:功德圓滿。二者:過患圓滿。
이 두 가지 측면이 수승하고 원만한 본식(本識)의 상(相) 전체를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두 가지를 원만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공덕(功德)이 원만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허물과 근심이 원만하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현문론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1) 功德圓滿者。覺義字句。能攝一切無量無邊過於恒沙不離不斷諸功德故。能生一切無量無邊過於恒沙不離不斷。諸功德故。
공덕이 원만하다고 하는 이유는, 각(覺)이라는 자구(字句)가 모든 공덕을 여의기나 금지 않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무량무변한 일체를 다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을 여의거나 끊지 않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무량무변한 일체를 다 생하기 때문이다.
2) 過患圓滿者。不覺義字句。能攝一切無量無邊過於恒沙若離若脫諸過患故。能生一切無量無邊過於恒沙若離若脫諸過患故。
허물과 근심이 원만하다고 하는 이유는, 불각(不覺)이라는 자구가 갖가지 허물과 근심을 여의기도 하고 벗어나기도 하는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무량무변한 일체를 다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며, 갖가지 허물과 근심을 여의기도 하고 벗어나기도 하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무량무변한 일체를 다 생하기 때문이다.
如是種種攝生熏習差別之相。至彼別相決擇分中。分明顯示。
거두어들이고 생하고 훈습하는 이러한 갖가지 차별상에 대해서는 저 별상을 다루는 결택분(決擇分)에서 분명하게 밝히겠다.
다섯 가지‘非空住法’과‘虛假轉法’은 『현문』 <4권 大海部藏道路大決擇分 第七>에 자세하게 설명되어있다.
첫째는 장애를 여의어서 공이 아니지만 결정되어 머무는 법이다.
둘째는 실제가 있어서 공이 아니지만 결정되어 머무는 법이다.
셋째는 성품이 화(火)라서 공이 아니지만 결정되어 머무는 법이다.
넷째는 본래부터 광명이 나서 공이 아니지만 결정되어 머무는 법이다.
다섯째는 깊은 이치가 드러나서 결정되어 머무는 법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장애를 여읜 것이고, 실제가 있는 것이며, 성품이 화(火)이고, 본래 광명이 나는 것이며, 아울러 깊은 이치가 드러난 지장대용왕(地藏大龍王)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다섯 종류의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움직여 일어남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다.
둘째는 그치고 간직함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다.
셋째는 변하는 것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다.
넷째는 흩어져 무너지는 것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다.
다섯째는 큰 힘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거짓으로 유전하는 법이다. 이것을 다섯 종류라 이름한다.
3. 결론
『석마하연론』과 『대승기신론』 《해동소》를 비교해서 보면 전체적인 흐름은 거의 비슷해서 하나의 논서로 볼 수 있을 만큼 비슷하다는 것을 짐작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중요한 문을 세울 때는 범어와 경전의 인용으로 이 논서가 권위 있고 법통을 이어져 내려온 점을 많이 드러낸 점이다.
이 논서의 특이점은 <修行信心分>에 나오는 5가지 수행문 중에 ‘지관문’을 중심하는 것은 원효소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며, 다라니 진언 수행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많이 익히고 외었던 『금강명최승왕경』의 흐름과 내용과는 무관하나 수행을 할 때 ‘진언수행’으로 25방편을 세우고 마장의 경계를 벗어나도록 권했음을 살펴볼 수 있어서 그 당시의 수행관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연분’에서 ‘권수이익분’까지 5가지 분의 문을 세워서 논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하자만 마지막 10권의 부분에 더 추가된 문이 6의 <六者迴向遍布門>이 그 후에 추가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래서 이 논서는 총 6부분의 문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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