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논리다. 만 명을 설득하는 것은 심리다. 백만 명을 움직이는 것은 물리다. 명망가 한 명을 논파하여 명성을 얻었다가 만 명의 군중심리에 깨지는게 지식인이다. 만 명을 선동하여 권력을 얻었다가 백만 명을 움직이는 전쟁의 물리에 깨지는게 정치판이다.
논리는 심리를 이길 수 없고 심리는 물리를 이길 수 없다. 부분은 전체를 이길 수 없다. 한 명은 개인이고 만 명은 집단이며 백만은 거기에 환경을 포함한다. 마지막에는 물리로 승부가 난다. 물리는 극단이다. 불은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서 꺼지고 전쟁은 공세종말점에서 역전된다.
논리는 개인, 심리는 집단, 물리는 집단의 액션이다. 집단의 액션에는 비용이 든다는 점이 각별하다. 군중의 심리적인 기동은 현장에서 실천될 때 자연의 최소작용의 법칙에 무너지는 것이 지정학이다. 논리는 무엇이 옳은가, 심리는 무엇이 가능한가, 물리는 무엇이 불가능한가다.
논리 - 개인의 옳고 그름, 무엇이 옳은가?
심리 - 집단의 가능성.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리 - 액션의 에너지 방향성. 무엇을 못하는가?
변혁은 논리로 시작하고, 심리로 흥했다가, 물리로 결판난다. 혁명은 한 사람의 생각으로 시작되어 집단을 흥분시키고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카드를 차례로 꺾고 먹히는 하나에 올인한다. 변혁이 극좌로 시작되어, 극우로 변했다가, 중도로 정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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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가 선동하여 10만 군중을 모을 수는 있어도 식량과, 무기와, 훈련과, 장교단의 부족은 해결할 수 없다. 이때 쓰는 카드는 상대방의 자멸을 유도하는 허장성세다.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고 허세용 세불리기에 집착하므로 식량, 무기, 훈련, 장교단의 약한 고리가 추궁되어 파멸한다.
논리로 이기고, 심리로 흥하다가, 물리에 막히는 공식이다. 세력이 팽창하다가 지리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국경은 산과, 강과, 바다에 그어진다. 그곳은 극단이다. 극단을 등졌을 때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 닫힌계에 가둬져야 외부 영향이 차단되고 내부 자발성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사고실험은 지정학과 같다. 사건을 단순화 시키면 물리적 한계가 드러난다. 닫힌계 안에서 내부의 자발성이 작동하므로 사건을 추적할 수 있다. 지리적 극단에서 외부요인이 차단되어 내부모순이 드러난 것이 지정학이다. 사고실험은 복잡한 논리나 심리를 단순한 물리로 환원시킨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대칭은 거르고 비대칭만 남는게 엔트로피 증가다. 51과 50이 충돌하면 50 대 50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로 걸러지고 1만 남는다. 짝수는 걸러지고 홀수만 남는다. 배수는 걸러지고 소수만 남는다. 대칭은 깨지고 코어만 남는다. 짝수>소수의 방향이 드러난다.
전쟁은 갈때까지 간다. 요원의 불길은 재만 남긴다. 전쟁은 최후에 산맥과 바다에서 막힌다. 모두 불태우고 바다와 산맥만 남으면 그곳에 국경이 만들어진다. 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 지정학은 산맥으로 막고 항구로 연결한다. 지정학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통과한 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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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계 안에서 내부 모순에 의한 자발적 변화는 작아진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로 거르면 소수만 남는다. 복잡성이 제거되어 단순해진다. 복잡은 중복과 혼잡이다. 중복은 같은 것의 반복이고 혼잡은 외부의 이질적인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면 구조가 남는다.
구조는 단순하다. 단순하면 명백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사고실험은 닫힌계를 걸고 내부의 자발성을 추적하여 복잡한 논리를 단순한 물리로 환원시킨다. 물리학은 지정학과 통한다. 전쟁의 한계는 공세종말점이다. 공세종말점에 국경이 만들어지므로 지정학은 믿어도 된다.
동굴 미로에서 탈출하려면 좌수법을 써야 한다. 한쪽 손을 벽에 붙이고 계속 걸으면 미로의 모든 구간을 지나가므로 결국 탈출한다. 위상수학은 계 내부를 단순화 시킨다. 열역학도 단순화 시킨다. 열은 전도와 대류와 복사에 의해 계 내부를 빈틈없이 확인하므로 복잡성이 제거된다.
하지부동으로 인해 한쪽 다리가 긴 사람이 직진을 계속하면 크게 원을 그리며 언젠가 제 자리로 돌아온다. 내부를 51 대 50으로 만들어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로 거르고 1을 남기는 패턴을 반복하면 복잡성의 수렁에서 탈출하게 된다. 왼발과 오른발의 차이인 1이 누적되어 원이 된다.
사고실험은 극단의 법칙, 지정학, 오컴의 면도날, 최소작용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같다. 단순화 시키면 소수가 남는다. 대칭이 공유하는 점점만 남는다. 전쟁을 계속하면 산과 강만 남는다. 들불이 지나가면 재만 남는다. 살이 제거되고 뼈만 남은 것이 구조다. 답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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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는 깔때기다. 깔때기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벼랑끝에 매달려 한가지 결정만 가능하다. 북극의 북쪽은 없다. 지정학은 국경까지 몰려서 더 물러설 곳이 없다. 몽골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석탄을 수출할 수 없고 아일랜드는 영국을 경유하지 않고 세계와 연결할 수 없다.
강대국이 지정학적 관문을 걸어잠그면 약소국은 빠져나갈 수 없다. 영국이 지브롤터 해협과, 수에즈 운하와, 희망봉과, 말라카 해협을 걸어잠그고 식민지를 연결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이 완성된다. 지구는 크지만 강대국이 약소국을 잡아먹고 지정학적 요충지만 남는다.
늑대한테 쫓기는 사슴은 방향전환을 못한다. 러시아에 쫓기는 우크라이나는 대선을 치르지 못한다. 하마스에 쫓기는 이스라엘은 네타냐후를 자르지 못한다. 달리는 말의 기수를 바꾸지 않는 법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못한다. 전쟁은 갈데까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전쟁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고, 전쟁은 지리적 극단에서 멈춘다. 지정학은 자명한 운명을 따라 필연의 구조를 작동시킨다. 반집 차 승부가 벌어지는 바둑판에서 두어야 할 곳은 명백하다. 축에 몰리면 끝까지 몰린다. 승부의 현장에서 언제나 벼랑끝 선택을 강요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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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살벌하다. 안철수나 심상정은 자신이 극단에 몰려 있는 사실을 모르고 여유부리다가 망했다. 윤석열과 이재명을 교착시켜 둘을 동시에 잡아먹을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그것은 중간에 낀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을 교착시켜 둘을 동시에 털어먹겠다는 망상과 같은 것이다.
독일과 소련의 원교근공은 지정학적 필연이다.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중국을 털어먹으려고 한다. 시진핑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국이 협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약한 고리가 발견되면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자유주의는 소련과 대결하던 미국이 동맹국을 털어먹기로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호랑이가 사슴의 약점을 봤는데 그냥 지나가겠는가? 소련이라는 더 큰 적을 막기 위해 잠시 한국과 일본을 봐주다가 결국 발톱을 드러내고 만다. 멀리있는 러시아는 놔두고 가까운 일본을 털자.
심리학은 사람을 동원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국가의 운명은 물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정치는 심리학을 믿다가 물리학에 깨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약소국이 주변국의 동정심에 호소해서 잠시 연명하지만 결국 강대국의 발톱을 피하지 못한다. 물리적 균형을 만들어야 산다.
옐친 시절에 러시아인은 미국에 환상을 품었다. 부자 미국이 가난한 러시아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돌아온 탕자가 대접받는 스토리를 꿈 꾼다. 옐친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서구는 러시아를 털어먹었다. 약점을 봤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없잖아. 국제관계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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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착한 사람이 오지만 나중에는 나쁜 사람이 온다. 먼곳까지 오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한 명이 오지만 나중에는 집단이 몰려온다. 집단은 집단에서 가장 나쁜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진다. 집단의 의견통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집단이 흥분하면 답이 없다. 한번 만들어진 에너지는 물리적 장벽에 의해서만 저지된다. 손해를 감수하고 궁지를 피하여 중원으로 기어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살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눈앞의 작은 이득을 꾀하여 변방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서 말라죽는 패턴이 반복된다.
혼자일 때는 그렇지 않은데 집단이 되면 벼랑끝에 내몰린다. 혼자일 때는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데 가족들이 개입하면 무조건 의대를 가야 한다. 혼자일 때는 애들싸움인데 집단이 되면 어른싸움이 되어 돌이킬 수 없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무슨 수를 써보려고 꾀를 낼수록 수렁으로 빠져든다. 궁지에 몰려 압박을 받으면 지금 이 순간을 모면하려고 할 뿐 예정된 결말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념은 상상이고 지정학은 현실이다. 정치인은 이념을 내세워 프레임을 걸고 언플로 연명하지만 결국 차가운 현실에 내몰린다.
가만 있으면 모르되 움직이면 물리학이 작동한다. 움직이는 것은 밸런스가 있고 밸런스의 균형점은 북극과 같다. 북극의 북쪽은 없다. 0 밑으로는 숫자가 없다. 균형점에서는 오직 전진할 수 있을 뿐 후퇴가 없다. 전쟁이 터지면 외국인과 매국노는 모두 빠져나가고 단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