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동순 교수(국어국문학)가 걸어온 전 생애에 걸친 문학적 여로를 적은 산문집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2025년 1월 3일, 문학동네, 412쪽)을 발간했다.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은 ‘그리움’을 씨실로 ‘복원’을 날실로 삼아 직조해낸, 이동순의 전 생애에 걸친 문학적 발자취를 집대성한 산문집이다. 회고록이자 자서전으로 불리기에도 손색없는 이번 저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망팔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의 생을 촘촘히 묶어냈다. 장강대하와 같은 긴 세월이 담겨 있지만 짧고 간결한 단장 형식으로 쓰였기에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사진 앨범으로 화한 소회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이번 산문집은 한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일화들을 써내려간 듯 보이지만, 조금만 떨어져 보노라면 한 시인이 탄생하고 우뚝 서기 위해 거의 필연적으로 추동되고 있는 개인사와 역사의 결속이 함께 읽힌다는 데서 또다른 의미와 여흥이 발생한다. 그를 시인이자 연구자로 만든 시대와 사람, 그리고 그가 시인이자 연구자가 되어 만들어낸 인물과 삶.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은 작가 이동순이 문학으로 만난 지난 반세기의 인연들을 총망라한 글이자, 지난 세월 만나온 사물, 작품, 지명, 노래 등의 고유명사들을 하나씩 재생(再生)하는 애틋한 복원 작업에 다름 아니다.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의 1부는 작가의 유소년기와 원가족에 관한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1부를 여는 첫 글이 독립투사 조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지주 자본가이지만 구국 사업에 헌신하다 끝내 순국한 조부의 삶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동시에 훗날 작가의 삶과 창작의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작가를 낳고 불과 열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작품 곳곳에 배음처럼 흐르며 애틋함을 자아낸다. ‘꽃씨’를 유산으로 남겨준 아버지, ‘연필 한 다스’를 선물해준 숙부의 마음 씀씀이도 빛난다. 작가는 이런 토막토막의 기억을 되살려 산문으로 풀어내는 것은 물론 같은 자리에서 발아한 시편들도 곳곳에 심어두었다. 오직 타인을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던 부재하는 이들은 그의 글 속에서 몇 번이고 되살아나는 존재-모티프이자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2부는 작가의 10대 시절을 집약적으로 그려낸다. 1960년대의 대구·경북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창 시절의 일화는 6·25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격동하는 시대의 보고서이자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향토 문화사의 역할까지 넉넉히 수행한다. 검은색 완행열차 ‘미카’, 해충 구제(驅除), 방성(榜聲)소리, 눈병 고치는 할머니 등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때 그 시절의 풍물과 풍속을 작가는 생생한 필치로 눈앞에 부려놓는다. 때로는 단어 하나에 의탁해서 때로는 한 장의 스냅 사진에서 시작해 쏟아져나오는 그 시절의 풍경은 작가 이동순의 글이 아니라면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친구네 집 장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여성 가수의 목소리에서 어머니를 발견한 경이는 원체험이 되고, 농장 장학생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간 도서실에서 신석정의 시를 만나며 시에 눈을 뜬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시를 읽으며 옮겨 적고 암송하고,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채록하며 소년은 이렇게 예술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한다.
3부는 문학의 열병을 앓던 문청의 나날, 신참 교사 시절, 그리고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첫발을 내디디기까지의 젊은 날을 다룬다. 학교 도서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은백양나무의 미동하는 잎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존재를 온통 빛나도록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고뇌하던 청년은 긴 성찰 끝에 시인이 되리라는 결심에 이른다. 그러나 1970년대, 파쇼적 군사문화의 광기는 캠퍼스라 할지라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에 반목하며 때로는 동시대와 호흡하며 자신만의 가치관과 시세계를 다져나간다. 그러나 삼엄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그 시절 문단의 풍경은 낭만적인 데가 있다. 특히 동인들과 대구 일대의 술집을 유랑하는 에피소드인 「1970년대 대구의 술집 이야기」는 한 시인의 풋풋한 나날을 엿보는 기분이 드는 동시에 문단의 야사로도 읽혀 자못 흥미롭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시작한 교사 일에서 맺은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가정교사 자리를 마련해준 교수, 등록금을 몰래 납부해준 주인 마담, 위문편지를 보내준 제자들까지. 작가는 “이렇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곁에서 도와준 여러 은혜로운 분”들의 고마움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그 마음들을 하나하나 되새긴다.
4부는 교수로 임용된 이후 안동에서 보낸 나날, 본격적으로 문단의 작가들과 교유하며 깊은 인연을 맺어가는 시절, 그리고 정년퇴임 이후 ‘쾌활당’에서 집필에 전념하는 현재까지를 담아냈다. 이육사 시인의 고향 안동에서 교수직을 시작하고, ‘농민들의 사제’라 불리는 안동교구의 정호경 신부와 막역한 사이가 된 일은 그의 인생 역정 속에서도 특히나 운명적인 데가 있다. 시인에게 안동은 ‘민족’과 ‘진보’가 만나는 하구와도 같은 곳으로 작용했던 것. 시간은 흘러 1980년대, 작가는 백석 시인에 푹 빠져들어 가랑잎처럼 흩어진 그의 작품을 모으고, 해설 「민족시인 백석의 주체적 시정신」을 집필해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의 시전집을 펴낸다. 뒤이어 김자야 여사와 만나 『내 사랑 백석』을 펴내는 일화도 그들의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시인은 만년에 이르러서도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내실 있는 성과를 선보이는 동시에 디아스포라 세미나에도 참석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작가는 “망각의 소중함”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그런 가운데서 나는 오늘도 내 그립고 살뜰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고 그 모습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소중한 것은 잊지 않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은 불멸함을 알기에 시인은 오늘도 살뜰한 이들을 몇 번이고 불러내는 것이 아닐까? 간절한 그리움과 각고의 복원은 부재가 부재하도록 두지 않는다.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 속에서, 시인 이동순의 필생의 쓰기 앞에서, 그 이름들은 불후할 것이다. (‘예스 24’에 소개된 김봉곤 기자의 보도자료 중에서 발췌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