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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독일어: Walter Benjamin, 1892년 7월 15일 ~ 1940년 9월 27일)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발터 베냐민의 파사주(Passage)론은 그의 필생의 미완성 역작인 『파사주 프로젝트』(Das Passagen-Werk, 흔히 『아케이드 프로젝트』로도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는 19세기 근대 자본주의 도시, 파리의 독특한 건축 공간인 파사주(유리 천장으로 덮인 상업 통로)를 통해 근대 자본주의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당대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분석하고자 한 방대한 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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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자 베냐민의 파사주 연구는 '꿈과 깨어나기'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그는 파사주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환상(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의 변혁을 위한 역사적 인식을 얻으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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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시장 오스만의 대대적인 파리 재개발은 1853년부터 1870년까지 나폴레옹 3세의 지휘 아래 추진한 파리 도시 대정비 사업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1853년 파리 시장에 오스만 남작을 임명하고 파리의 도시 구조 개혁을 명하였습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중세 시대의 비좁은 도로를 걷어내고 넓은 대로와 공원, 공공시설을 건설하여 위생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 경관을 현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세기 중반, 제2제국이 들어서고 나폴레옹 3세의 통치기간 동안 오스만(Haussmann) 남작의 파리 도시구조개혁이 이루어졌다.
오스만은 좁고 미로와 같은 길을 넓혀 넓은 대로와 직선도로를 개설하고 박물관, 백화점과 같은 큰 건물을 건설하고 기존의 건물들을 확장하여 근대 파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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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파사쥬들이 파괴되었고 남아있는 파사쥬들도 대형 백화점이 등장하며 인기를 잃고 서서히 잊혀져 갔다.
낡고 버려진 파사쥬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밀 통로와 같은 낭만적인 파사쥬는 프랑스인들과 관광객의 관심을 끌었고 파리 시청과 프랑스 문화부는 파사쥬들의 복원 그리고 보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1970년대부터 새로운 상점, 식당들이 파사쥬에 입점하였고 패션, 사진, 문학 등 특정분야를 대표하는 파사쥬들도 생겨났다. 골동품과 옛날 서적을 파는 파사쥬부터 명품 패션브랜드가 늘어져 있는 파사쥬까지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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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의 의미와 상징
물리적 공간: 파사주는 19세기 초 파리에 등장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좁은 골목길로, 철골 구조와 유리 천장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실내 쇼핑 공간입니다.
이는 백화점의 전신으로, 당시 새로운 소비 문화와 도시 경관을 상징했습니다.
꿈의 공간 (판타스마고리아): 베냐민은 파사주를 "꿈의 집들" 또는 환상적인 공간인 '판타스마고리아'로 묘사했습니다.
상품들이 화려하게 진열된 이곳은 사람들에게 환상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자본주의 초기 단계의 매혹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역사적 유물: 파사주는 나폴레옹 3세 시절, 파리 시장 오스만의 대대적인 파리 재개발 과정에서 점차 쇠퇴하고 폐허의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베냐민은 이러한 '시대의 유물'에서 역사의 흔적을 읽어내고자 했습니다.
베냐민의 파사주론 핵심 개념
유물론적 역사관: 베냐민은 파사주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그곳의 상품, 패션, 광고 등을 통해 19세기 자본주의의 '원역사(原歷史)'를 탐구했습니다.
이는 추상적인 역사 서술이 아닌, 일상생활 속의 파편화된 사물과 공간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입니다.
'깨어나기'의 변증법: 베냐민의 파사주 연구는 '꿈과 깨어나기'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그는 파사주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환상(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의 변혁을 위한 역사적 인식을 얻으려 했습니다.
산책자 (플라뇌르, Flâneur): 베냐민은 파사주와 도시 거리를 배회하는 '산책자'의 시선으로 대중의 집단 무의식과 근대 도시의 풍경을 관찰하고 분석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발터 베냐민의 파사주론은 단순한 건축 비평을 넘어, 19세기 파리의 물리적 공간을 매개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파헤치고 분석한 독창적인 사회철학적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사주론』(Pasaggen-Werk)으로 알려진 저작은 벤야민의 기념비적인 텍스트인데, 1940년 9월에 그가 자살했을 때에는 미완성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사후 42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간행됐다.
1982년 아도르노의 제자 롤프 티데만 등의 손에 의해 편집되고, 주어캄프판의 전집 5권에 수록됐다(프랑스어로는 1989년, 장 라코스트에 의해 번역됐다).
발터 베냐민의 파사주(Passage)론
통로, 복도: 건물의 '통로'나 '복도'를 의미하는 파사주(Passage)
아케이드(arcade)의 통로(Passage)는 로마 제국주의를 모방한 자본주의의 상징물
(통로 양측면에는 자본주의 상가가 즐비)
아ː케이드, arcade
1.아치(arch)를 연속적으로 기둥 위에 가설한 것. 또는, 그 공간
2.아치형의 지붕이 있는 통로. 특히, 양쪽에 상점이 있는 통로. 순화어는 `연쇄 상가', `연립 상가'.
역사인식이론에 있어서 정신분석의 흔적 :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론』에서 운명과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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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발터 베냐민의 파사주론은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Passage) 공간을 중심으로 현대성(모더니티)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벤야민은 파사주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19세기 자본주의의 소비문화, 환상, 그리고 역사적 단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모더니티의 원역사"이자 "도시의 꿈"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텍스트를 통해 19세기의 부르주아적 삶과 그것의 붕괴를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며, 과거를 현재와 연결해 재해석하려 했습니다.
파사주론의 주요 내용
모더니티의 아케이드: 벤야민은 파리의 아케이드를 "모더니티의 아케이드"라고 부르며, 이곳을 통해 당시의 사회, 경제, 문화적 특징들을 분석합니다.
소비문화와 환상: 아케이드는 화려한 상품들이 전시된 소비 공간이자 동시에 대중적인 환상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도시의 꿈과 붕괴: 벤야민은 아케이드가 19세기의 부르주아적 꿈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사회적 붕괴를 예견하는 "폐허"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보았습니다.
역사적 파편: 벤야민은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파편화하여 아케이드라는 거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했는데, 이는 특정 역사적 시기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의미의 단편'들을 분석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관계: 파사주 프로젝트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넘어, 과거의 파편들을 현재의 맥락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미메시스(모방)와 상징: 벤야민은 파사주를 통해 인간의 감각 지각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했으며, 아케이드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경험과 인식을 변화시켰는지를 탐구했습니다
■ Passage(파사주, 패시쥐)
'Passage'는 문맥에 따라 '통로', '복도', '구절', '통행', '경과' 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 내부의 '통로'나 '복도'를 의미하기도 하고, 책이나 글의 '한 구절'을 가리키기도 하며, '시간의 경과'나 특정 행위의 '통행'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주요 의미
통로, 복도: 건물의 '통로'나 '복도'를 의미합니다.
예시: "We entered the castle through a narrow stone passage." (우리는 좁은 돌 통로를 통과해서 성에 입장했다.)
구절, 문구: 책이나 글의 한 부분을 의미합니다.
예시: "She read a passage from the novel." (그녀는 소설의 한 구절을 읽었다.)
통행, 통과: 어딘가를 지나가는 행위나 통행을 의미합니다.
예시: "He was guaranteed safe passage to the border." (그는 국경까지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았다.)
시간의 경과: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때도 쓰입니다.
벤야민의 『파사주론』
『파사주론』(Pasaggen-Werk)으로 알려진 저작은 벤야민의 기념비적인 텍스트인데, 1940년 9월에 그가 자살했을 때에는 미완성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사후 42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간행됐다.
1982년 아도르노의 제자 롤프 티데만 등의 손에 의해 편집되고, 주어캄프판의 전집 5권에 수록됐다(프랑스어로는 1989년, 장 라코스트에 의해 번역됐다).
이 책의 제목은 벤야민에 의해 착상된 것이며, 이미 1927년에는 이 기획에 대한 최초의 언급 속에 “파리의 파사주 : 변증법의 요정의 나라”(1928년 1월 30일, 게르숌 숄렘에게 보낸 편지)라고 적혀 있다.
■ 파리 파사쥬(Les passages couverts de paris)
파사쥬(‘passage’)는 19세기의 프랑스에 등장한 새롭고 특이한 건축 양식이다. 파사쥬는 건물 사이로 난 또는 건물을 통과하는 길고 개방된 통로공간으로 아치형 또는 반원형의 철조물이나 나무구조물이 유리지붕으로 덮혀있어 빛을 통과시키고 우천에 상관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프랑스 파사쥬는 갤러리(‘galerie’)라고 불리기도 한다(여기서 ‘갤러리’는 예술품을 전시하는 ‘화랑’이 아닌 ‘파사쥬’의 종류이다). 갤러리의 경우 파사쥬와 별 차이가 없으나 파사쥬에 비해 규모가 조금 더 큰 것과 고급스러운 것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갤러리의 통로가 더 넓으며 내부에 장식이 더 많고 사용한 자재도 더 비싸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들에게 몰수한 많은 토지와 건물이 개조되었다. 건물을 통과해 길과 길을 잇는 파사쥬는 보행자들의 이동성을 개선하였다. 또한 깨끗한 바닥이 깔리고 유리로된 지붕이 덮힌 파사쥬는 더럽고 냄새나던 당시의 파리의 거리에서 벗어나 우천시에도 산책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로 떠올랐다. 1850년 파리에는 총 150개의 파사쥬-갤러리가 생겨났다. 파리의 파사쥬는 프랑스의 지방도시 그리고 해외 다른 국가에도 전파되었다. 파리 파사쥬의 대부분이 세느강 우안 지구(Rive droite) 그랑 불르바르(Grands Boulevards) 대로 부근에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당시 그곳이 부유한 손님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찾던 파사쥬의 내부에는 다양한 상점, 극장, 식당 등이 발달하여 파사쥬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고 쇼핑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파사쥬 소유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집세를 받고 상인들에게 내부 공간을 임대한 것도 이곳에서 상업이 발달하게 된 하나의 이유다.
19세기 중반, 제2제국이 들어서고 나폴레옹 3세의 통치기간 동안 오스만(Haussmann) 남작의 파리 도시구조개혁이 이루어졌다. 오스만은 좁고 미로와 같은 길을 넓혀 넓은 대로와 직선도로를 개설하고 박물관, 백화점과 같은 큰 건물을 건설하고 기존의 건물들을 확장하여 근대 파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파사쥬들이 파괴되었고 남아있는 파사쥬들도 대형 백화점이 등장하며 인기를 잃고 서서히 잊혀져 갔다.
낡고 버려진 파사쥬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밀 통로와 같은 낭만적인 파사쥬는 프랑스인들과 관광객의 관심을 끌었고 파리 시청과 프랑스 문화부는 파사쥬들의 복원 그리고 보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1970년대부터 새로운 상점, 식당들이 파사쥬에 입점하였고 패션, 사진, 문학 등 특정분야를 대표하는 파사쥬들도 생겨났다. 골동품과 옛날 서적을 파는 파사쥬부터 명품 패션브랜드가 늘어져 있는 파사쥬까지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1. Galerie Vivienne (4 rue des Petits-Champs 75002 Paris)
1823년에 지어진 갤러리 비비엔은 파리 파사쥬-갤러리 중 가장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다. 리슐리유 도서관(bibliothèque Richelieu) 뒤 팔레 로얄(Palais Royal) 가까이 위치한다.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갤러리에 걸맞은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높은 유리지붕, 대리석과 목재가 섞인 고풍스러운 기둥과 건물을 자랑하며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사쥬’의 자태를 뽐낸다. 기둥과 벽면은 ‘성공, 풍요, 상업’을 상징하는 장식이 수놓아져 있다. 갤러리의 내부에는 제과점, 와인 창고, 헌책방, 찻집 등 다양한 상점이 있다. 1970년대 이후 장 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와 같은 명품 패션브랜드도 입점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2. Passage des Panoramas (11 boulevard Montmartre, Paris, 75002)
1799년에 지어진 파사쥬 데 파노라마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둘러보는 곳이라고 한다. 역사적 기념물로 등재된 파사쥬 데 파노라마는 옛날 활발하던 상업 지구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다. 파사쥬 데 파노라마에 있는 오래된 상점들의 진열장은 파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파리 주식거래소(Bourse de Paris) 부근부터 그랑 불르바르(Grands Boulevards)까지 이어지는 133미터 통로의 내부에는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장인들의 공예품 가게와 옛날 동전, 엽서, 우표 수집 상점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활자인쇄기업 Stern과 Marquis 쇼콜라티에의 간판이 아직까지 장식으로 남아있어 빈티지한 멋을 더한다. 1807년 개장된 바리에떼 극장(Théâtre des Variétés)에서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3. Passage Jouffroy (10-12 boulevard Montmartre, Paris, 75009)
1836년에 지어진 파사쥬 주프로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파사쥬이다. 그랑 불르바르에 위치한 파사쥬 데 파노라마와 바로 이어지는 파사쥬 주프로와는 통로 내부의 다양한 관광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는 그레뱅(Grévin) 밀랍인형 박물관과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중 하나인 쇼팽 호텔(Hôtel Chopin), Valentin 찻집 등이 유명하다. 또한 종이 전문점, 지팡이 전문점과 같이 특이하고 재미있는 상점이 많아 진열장이 볼 만하다.
4. Passage du Grand-Cerf (145 rue Saint-Denis, Paris, 75002)
몽토르고이(Montorgueil) 지구에 위치한 파사쥬 뒤 그랑 세르프는 1825년에 지어졌다. 파리에서 규모가 가장 큰 파사쥬 중 하나로 12미터의 높이의 멋진 유리지붕을 자랑한다. 높은 유리지붕 덕분에 2층에서 3층짜리 건물이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공중 전시도 가능하다. 수공예품, 장신구, 가구, 전등 전문 가게가 있어 특별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가구 애호가나 전등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