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제오강정(題 烏江亭)』은 '오강정(烏江亭)에 쓰다'라는 뜻으로, 항우가 마지막 자결을 한 오강(烏江)이라는 나루터의 정자(亭)에서 시를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권토중래"이다
제오강정(題 烏江亭)
勝敗兵家不可期(승 패 병 가 불 가 기)
包羞忍恥是男兒(포 수 인 치 시 남 아)
江東子弟多才俊(강 동 자 제 다 재 준)
捲土重來未可知(권 토 중 래 미 가 지)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으니
부끄러움을 참는 것도 사내의 일이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았으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라.
羞 : '부끄러울 수'라는 한자로, '부끄럽다'를 뜻한다.
두목(杜牧)은 경조부 만년현(京兆府 萬年縣), 현 산시성 시안시 출생으로 당나라의 학자이자 통전(通典)을 쓴 대역사학자 두우 (杜佑) 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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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할아버지 두우(杜佑)가 쓴 통전(通典)에는 고구려의 강역에 대해 마치 매도당하는 환단고기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땅은 후한 시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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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권 제185, 변방1, 동이 하, 고구려
基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東西六千里).”
두우는 학술적으로도 당대에 사마천 이후 제일가는 역사가로 인정받았다.
통전을 저술하였는데, 상고로부터 당 현종시기까지의 제도사(制度史)를 자세히 서술하였다. 역대 정사뿐 아니라 기전, 잡사, 경자(經子), 당대의 법령, 개원례등을 참고하여, 식화(食貨, 경제.)·선거(選擧:관리의 등용)·직관(職官)·예(禮)·악(樂)·병(兵)·형(刑)·주군(州郡)·변방(邊防)의 9부분으로 나누어 실었다. 이로서 당대의 제도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저서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