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단순한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게 환원주의다. 단순한 것은 원자다. 그러나 원자의 집합은 단순하지 않다. 원자가 아니라 집합이 단순해야 한다. 인류의 2500년 시행착오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원자는 복잡하다. 원자번호 118번까지 너무 많다. 소립자도 복잡하다. 물질과 반물질에 색전하까지 최대 61개가 거론되고 있다. 숫자가 많으면 안 된다.
세상은 단순한 구조로 설명되어야 한다. 단순한 것은 구조다. 자원들이 결합하는 방식이 단순한 것이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 단순하다. 시계의 부품이 복잡해도 원리로 보면 진자의 등시성 하나로 설명된다. 물질이 복잡해도 밸런스의 복원법칙 하나로 전부 설명되어야 한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 단순해야 진짜다. 형태가 아니라 변화가 단순해야 진짜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단순해야 한다. 눈으로 보는 색깔이 아니라 간섭하는 색소가 단순해야 한다. 백만가지 색깔은 삼원색에 밝기를 더하여 다섯으로 정리된다. 우리가 원인 측이 아닌 결과 측을 보므로 혼선이 빚어진다. 결과 측은 노이즈다. 그것은 오염된 것이다. 세상이 복잡한 것은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오염은 같은 것의 중복과 다른 것의 혼잡이다.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고 보면 구조가 드러난다. 구조는 단순하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밖에 없다. 원자는 오랫동안 하나로 생각되었는데 구조는 처음부터 다섯이 있다. 다섯인 이유는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단계가 다섯이다. 변화는 시간과 공간 상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원인, 결정, 결과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더하여 다섯 단계를 거친다.
변화는 밸런스의 변화다. 다섯은 밸런스를 구성한다. A의 변화가 B의 변화를 복제하므로 다섯이 된다. A와 A의 변화 그리고 B와 B의 변화가 서로를 공유하는 C를 통과하므로 다섯이 된다. 우주에 결국 변화가 있을 뿐이며 변화는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주에 부러짐 밖에 없다. 원자론과 관점이 정확히 반대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사상인데 구조는 쪼개지는 절차를 논한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을 반대로 알고 있었다. 세상은 쪼개지지 않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쪼개지는 절차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부러짐 밖에 없으므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는 작은 것이 모여서 커진 것이 아니라 큰 것이 쪼개져서 잘아졌고 많아졌다.
구조론은 원자론을 정확히 뒤집어 반대로 보는 관점이다. 세상은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의 집합이 아니라 쪼개지는 방식이다. 무엇이 다른가? 원자론은 알갱이 뒤에 집합이 따라붙어야 한다. 집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뭉갠다.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에서 조종사가 그려준 상자와 같다. 설명해야 할 것은 집합이라는 상자 안에 집어넣고 뭉갠다.
원인과 결과가 있다. 모래시계의 2층에서 떨어지는 모래가 1층에 쌓인다. 2층의 원인만 설명하면 된다. 1층의 결과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쪼개지는 원인만 설명하면 된다. 합쳐지는 결과는 설명하지 않는다. 엔진은 쪼개지는 2층에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가면 바퀴자국이 남는다. 자동차가 가는 원인만 설명할 뿐 바퀴자국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쏘는 활만 설명할 뿐 맞은 과녁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화살이 과녁과 만나는 과정에 바람의 영향을 받아 노이즈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 현상이 아니라 본질, 물질이 아니라 성질, 불변이 아니라 변화로 설명한다. 결과 측의 화살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지만 원인 측의 활은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지극히 단순한 밸런스의 복원력 하나로 전부 설명된다. 우주 안에 오로지 결맞음과 결 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변화가 결이 맞으면 밸런스를 이루고 나란해진다. 변화가 나란하면 우리는 그것을 단단한 물질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내부에 활발한 변화를 감추고 있다. 물질은 깨져서 에너지로 돌아간다. 결맞음은 깨져서 결어긋남으로 돌아간다.
존재는 단어가 아니라 문법이다. 단어는 적당히 가져다 쓰는 것이다. 꼬끼오 하면 닭이고 음메 하면소다. 문법은 약속이므로 어길 수 없다. 원자가 단어라면 구조는 문법이다. 단어가 모여서 문법이 되는게 아니고 문법이 분해된게 단어다. 단어중심적 사고에서 문법중심적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단어는 그냥 있지만 문법은 어순에 영향을 받는게 다르다.
우주에 하나의 문법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밸런스다. 밸런스는 깨지고동시에 복원된다. 우리는 태양과 충돌하여 깨진 물이 밸런스를 복원하여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에 에너지를 빼먹는다. 물레방아다. 밸런스는 언제나 깨진다는 사정과 언제나 복원된다는 사정이 있다. 내부 질서는 언제나 복원되고 겉보기 형태는 언제나 깨진다.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깨지는 것이다. 모래는 언제나 깨질 뿐 합쳐지지 않는다. 모래가 합쳐지는 것은 사람이 모래시계를 뒤집었을 때다. 구조의 모순에 따라 모래알이 떨어지고 남은 모래알은 밸런스를 이룬다. 비바람에 깎여나가고 남은 산은 밸런스를 이룬다. 세상의 모든 것은 깨지고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은 복원된다.
변화의 방향을 알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깨지는 것이며 복원되는 것이다. 질에서 깨진 것은 입자로 복원되고, 입자가 깨진 것은 힘으로 복원되고, 힘이 깨진 것은 운동으로 복원되고, 운동이 깨진 것은 량으로 복원된다. 언제나 한 단계 낮은 차원에서 복원되므로 전체적으로는 깨져서 엔트로피 증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