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의 어휘 연구] 19. '할례', '무할례', '손할례'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 성경 강단 오늘 어휘 연구를 시작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휘를 연구하는 목적은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찾아서,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참된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19번째 시간으로서 '할례'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할례라는 말과 함께 무할례라는 말도 있고, 딱 한 번밖에 안 나오지만 '손할례'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이 단어들에 대해 연구해 보겠습니다.
먼저 할례와 관련된 단어가 성경에 굉장히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제가 주로 쓰는 개역한글판 성경을 기준으로 조사를 해보면 '할례', '할례자', '할례당', '할례를 주다', '할례를 베풀다', '할례를 행하다', '할례를 받다' 등이 나옵니다. 그다음 '무할례', '무할례자', '무할례당'도 수십 번 나오고, '할례산'이 한 번, '손할례당'이 한 번 나옵니다. 할례와 관련된 표현을 다 합치면 구약 성경에 총 53구절(횟수로는 61회)에 나타납니다. 한 절에 두세 번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총 48구절(횟수로는 77회)에 나옵니다. 도합 구약과 신약을 합치면 101구절에 걸쳐 총 138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례와 관련된 글자가 포함된 말이 이처럼 자주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면 할례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다 아십니다만 오늘 연구하는 입장에서 다시 확인해 보면, 남자의 포피(표피), 즉 성경에서 '양피'라고 부르는 부분을 자르는 의식입니다. 일반 생물학이나 의학에서는 포피라는 말을 쓰지만 성경에서는 양피라고 부르며, 이 포피를 자르는 예식이 바로 할례입니다. 이 관습은 고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민족들 가운데 행하여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히브리인, 아라비아인, 모압인, 암몬인, 에돔인, 그리고 애굽인들 사이에 행해졌으나, 바벨론인과 앗수르인, 가나안인, 블레셋인 중에서는 할례가 행해졌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고대 애굽인들의 벽화에는 할례를 주는 그림이 자주 나올 정도로 많은 지역과 민족들이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와 관련된 단어들을 원어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로 '할례하다'와 관련된 단어를 보면 '오를라(orlah)'라는 말이 양피 혹은 포피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를 자른다고 할 때 '물(mul)' 혹은 '카라트(karath)'라는 동사를 씁니다. '카라트'는 영어의 컷(Cut)처럼 자르다, 베어내다라는 뜻입니다. 즉 양피를 자르다, 양피를 베어내다라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경에 오면 헬라어로 할례를 '페리토메(peritome)'라고 합니다. '페리(peri)'라는 말은 '주변에, 둘러서(around)'라는 뜻이고 '토메'는 자른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 성기의 끝부분 표피를 둥글게 돌아가면서 끊어내는 예식이기 때문에 주위를 잘라낸다는 뜻의 '페리토메'라고 부릅니다. 그다음 '무할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크로비스티아(akrobystia)'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는 포피나 양피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Uncircumcision'이라고 표현합니다. '무할례자'는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 즉 어릴 때 포피를 끊어내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입니다.
그다음 '할례산'이라는 단어가 여호수아서에 딱 한 번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기브앗 하아랄롯(Gibeah ha-araloth)'이라고 하는데, '기브아'는 언덕이나 산이라는 뜻이고 '아랄롯'은 양피들의 복수형입니다. 직역하면 '양피들의 언덕', '양피들의 산'이라는 뜻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할례를 베푼 산이라는 의미로 '할례산'이라 번역되어 여호수아 5장 3절에 나타납니다.
그다음으로 무할례나 할례산 외에 '손할례'라는 단어가 빌립보서 3장 2절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신약 성경이므로 헬라어로 '카타토메(katatome)'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신체의 일부에 상처를 입혔다는 뜻입니다. 신체를 잘라내거나 절단시키다, 혹은 몸에 손상을 입히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이를 '손할례'라고 번역했고, 그 후에 나온 개역개정판 성경은 '몸을 상해하는 일'로, 공동번역 성경은 '형식적인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길게 설명하여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의미가 더 빨리 다가옵니다. 한자어로 '손(損)' 자는 손상시킨다는 뜻이므로 손으로 했다는 뜻이 아니라 몸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를 뜻합니다. 개역한글판 빌립보서 3장 2절을 보면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되어 있고, 개역개정판은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공동번역은 "형식적인 할례를 지정한 자들을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이 '카타토메'라는 단어는 성경에 딱 한 번 언급된 단어인 '하파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입니다.
자주 사용되는 양피라는 말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자의 표피 가죽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할례를 행하거나 베풀 때 양피를 베다, 절단하다라고 표현하여 출레굽기 4장과 레위기 12장 등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할례는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 8일 만에 그 아이의 양피를 돌려내어 속살이 드러나게 하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식을 도대체 무슨 의미로 행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아주 중요합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처음으로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99세 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번성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전능한 하나님인 내가 이를 다 이룰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약속과 언약을 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이 점점 계속되고 커집니다. 가나안 온 땅을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언약 관계를 맺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후, 아브라함에게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고 명하셨습니다. 엄청난 언약을 잔뜩 선포해 놓으신 후에, 그 언약의 표징(표)으로서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표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셨습니다. 개역한글판에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번역되었지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시기 전인 12장에서부터 이미 이 큰 복을 약속하셨고 17장에서 이를 반복하신 것입니다.
여기 나타난 언약의 축복이 얼마나 거대합니까? 그 내용은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전 세계에 아주 많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에이브러햄(Abraham) 링컨처럼 에이브러햄이라 부르고, 이슬람교 사회에서도 아브라함을 이브라힘(Ibrahim)이라 부르며 자녀의 이름으로 삼는 부모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이름이 참으로 창대해진 것입니다. 셋째, 복 자체가 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넷째, 너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는 그 실체가 누구이십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의 약속에 대한 외적 표시로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대 할례의 의미와 효력을 잠시 간추려 보겠습니다.
첫째,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표징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후손인지 아닌지는 할례를 받았는지 확인하면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민족도 할례를 행하긴 했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을 부여받았다는 명확한 표시였습니다.
둘째, 메시아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무 민족에게서나 아무나 태어나서 내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면 증명할 방법이 모호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장차 메시아가 오실 텐데, 그 자손들의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유다로 이어지는 메시아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표시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 할례 받은 백성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셋째, 어린아이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얻는 위생적·의학적 유익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행된 여러 통계 조사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위생적이고 청결한 백성으로 남았습니다. 그 결과 질병을 덜 앓고 상대적으로 장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 여성들은 자궁경부암 같은 여성 질병을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적게 앓는다는 사실이 통계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저도 이와 관련된 통계와 의학 잡지 기사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의학적 유익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이의 성기 끝 포피를 잘라내기 때문에 항상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변을 본 후에 오물이 주변에 묻어 감염이 될 위험이 있지만, 이를 잘라내면 금방 깨끗해집니다. 현대 의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유대인들이 누려온 건강의 비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음경을 위생적으로 청결하게 하여 귀두포피염이나 여러 요로 감염을 방지해 줍니다. 각종 질병과 성병에 걸릴 확률을 현저하게 줄여주며, 남자의 음경암과 배우자의 자궁경부암을 예방해 준다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표시로서의 종교적 효력은 끝났고 메시아가 이미 오셨기 때문에 혈통을 보존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의학적·위생적 유익을 위해서 남자아이에게 어릴 때 할례(포경수술)를 해주는 것은 평생의 건강을 위해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할례 받지 아니한 자'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사사기 14장 3절에 삼손이 들릴라(블레셋 여자)와 사랑에 빠져 그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부모가 묻습니다. "네 형제들의 딸들 중이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상대해서는 안 될 결혼의 대상이나 이방인을 가리킬 때 할례 받지 아니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6절에서도 소년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골리앗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소년 다윗이 거대한 장군을 물리치러 나갈 때, 할례 받지 않은 자가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다고 분노하며 이 표현을 썼습니다. 또한 사무엘하 1장 20절 사울 왕의 전사 소식을 슬퍼하는 노래에서도 나옵니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하노라." 구약 시대에는 할례 받지 않은 자를 이처럼 철저히 배격하고 구별했습니다.
그다음 '할례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는 경황이 없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 5장 2절과 3절에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광야 생활 동안 잠시 게을리하고 행하지 못했던 예식을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다듬고 새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광야에서 태어나 할례를 받지 못했던 출애굽 2세대 모두에게 할례를 행한 거룩한 장소가 바로 할례산입니다.
신약 성경에 오면 할례에 대한 이야기가 대단히 많이 나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 할례에 대하여 아주 특별한 기별을 선포합니다.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라는 편지 자체가 사실은 할례 문제 때문에 기록된 책입니다. 바울이 오늘날의 터키 지역인 갈라디아 지방으로 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 수많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 후 돌아와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세운 교회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동은 왜 생겼느냐 하면,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떠난 자리에 이방인 교회가 흥왕하자 그 뒤를 따라다니며 복음을 훼방하던 '유대화주의자(Judaizers)'들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인 그들은 "이방인들이 예수 부활을 믿는 것은 좋으나,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리 믿어도 소용없고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돌아다니며 거짓 가르침을 유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의 기쁨 속에 살던 사람들이 유대화주의자들 때문에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며 번거롭고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몹시 분노하며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미혹하느냐"라고 책망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간곡히 경고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구원을 얻는 일에 할례는 전혀 필요 없다는 대책을 강하게 천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극단적으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지만, 본래 할례는 메시아의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한 외적 표징으로 주신 것이지 구원 자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례와 복음의 관계를 보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지 내가 할례를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로 구원을 얻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십자가를 헛되이 돌리는 행위라고 바울은 박박 우기며 논증합니다. 이제 언약 백성을 구별하고 메시아의 혈통을 보존하는 구약의 목적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온전히 완료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받거나 베풀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구원의 표징으로서의 할례는 끝났으며, 다만 앞서 말씀드린 의학적·위생적 효력을 위해 선택적으로 받는 것은 무방합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간단한 의학 도구를 갖추어 놓고 아기에게 엄숙하게 할례를 행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강한 어조로 할례의 구원 효력을 부인했는지 몇 구절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3장 30절입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하나님은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차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십니다. 구원의 조건으로서 할례는 무효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도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한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절부터 4절까지는 바울의 톤이 지극히 강해집니다. 제가 지금 외치는 것처럼 강력하게 말합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만약 "할례를 안 받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생각으로 할례를 행한다면, 그것은 내 행위와 율법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뜻이 되므로 율법 전체를 스스로 다 지켜야 할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서는 끊어지고 탈락하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더 이상 강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이어서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복음의 진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뿐이니라"고 하여 외적 의식이 아닌 마음의 거듭남이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골로새서 3장 11절에도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안 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믿음으로 모두가 똑같다는 뜻입니다. 디도서 1장 10절에는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라고 하여,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복음을 교란하는 할례파들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도 보겠습니다. 여기에 앞서 설명해 드린 '손할례당'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사도 바울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고 그저 육체에 상처(손상)를 입혀서 그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자랑하는 자들을 '몸을 상해하는 자들(손할례당)'이라 부르며 철저히 삼가고 멀리하라고 명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신뢰해야 할 것은 육체의 어떤 흔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나아가 성경에는 육체적 할례를 뛰어넘는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인 할례를 가르치는데, 바로 '마음과 귀의 할례'입니다. 예레미야 4장 4절에 유대인들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살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육체의 표피를 베어내는 것처럼 너희의 굳은 '마음 가죽'을 베어내고 전격적으로 거듭나 새롭게 마음가짐을 하라는 호소입니다. 예레미야 9장 25절과 26절에도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이방 민족들은 육체의 할례를 받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의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똑같이 벌을 받게 된다는 무서운 선언입니다. 아무리 육체에 흔적이 있어도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 사도행전 7장 51절에도 스데반 선지자가 설교 가운데 유대인들을 향해 외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육체의 할례만 자랑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찢어 열지 못하고 성령을 거역하는 자들을 향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무섭게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2장 28절과 29절에서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유대인이나 육체의 할례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참된 할례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행하는 것이라고 명백히 정의해 줍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언약의 백성을 구별하고 메시아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주어졌던 육체적 할례의 종교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완전히 성취되어 끝났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의 상처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죄된 정욕을 잘라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복음을 온전히 믿고 마음이 거듭나는 것이 참된 유대인이요 참된 할례파입니다. 다만 위생적·의학적 청결과 질병 예방을 위해 아이에게 포경수술을 해주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익합니다. 외적인 의식이 아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조율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할례에 대한 어휘 연구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중요한 주제로 다시 만나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할례의 어원과 성경 속 분포:
할례(割禮)는 남자의 포피(양피)를 자르는 의식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오를라(양피)'를 '물(자르다)'하는 것이며, 헬라어로는 '페리토메(peritome: 둘레를 돌아가며 자르다)'라고 합니다.
성경 전체(개역한글 기준)에서 할례와 관련된 표현은 구약 53구절, 신약 48구절로 총 101구절에 걸쳐 138회나 자주 언급되는 매우 중요한 구속사적 어휘입니다.
구약 시대 할례의 3가지 핵심 목적:
① 언약 백성의 표징: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번성과 가나안 땅의 축복을 약속하시며 그 언약을 대대로 지키겠다는 증표(사인)로 주셨습니다.
② 메시아 혈통의 순수성 보존: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로 이어지는 혈통을 구별하여,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의 라인을 철저히 보호하고 증명하는 수단이었습니다.
③ 의학적·위생적 유익: 8일 만에 행하는 할례는 성기를 청결하게 유지시켜 귀두포피염, 요로 감염, 음경암 및 배우자의 자궁경부암을 현저히 줄여주는 현대 의학적·위생적 유익을 제공했습니다.
신약 시대 '할례와 구원'의 논쟁 (사도 바울의 변증):
유대화주의자들의 훼방: 이방인 교회가 세워지자 "할례를 받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교란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특히 갈라디아 교회가 이 문제로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의 단호한 복음 선포: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해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하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짓"이라며 강력히 책망했습니다. 메시아가 이미 오셨으므로 혈통 보존의 목적은 완료되었으며, 구원은 외적 의식이 아닌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손할례당'과 '마음의 할례' (상징적 의미):
손할례당 (카타토메 - katatome): 빌립보서 3장 2절에 딱 한 번 나오는 단어로, 내적 변화 없이 육체에 상처(손상)만 입혀 의식주의를 자랑하는 가짜들을 책망하는 표현입니다.
마음과 귀의 할례: 성경(예레미야, 스데반의 설교, 로마서)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본질은 육체의 표피가 아닌 '마음 가죽'을 베어내는 성령의 거듭남입니다. 귀를 열어 말씀을 듣고 마음을 찢어 하나님께 굴복하는 내적 변화가 참된 할례입니다.
결론: 표면적 육신의 할례는 복음 안에서 아무런 구원 효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외적 형식주의를 버리고, 성령을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아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참된 영적 유대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