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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 世界一周記
(최신 最近) 세계일주기(世界一周記)
-- 이순탁 (李順鐸)
이순탁 (李順鐸)은
이상호(李祥昊), 이정립 (李正立)의 동생이다.
| <보천교 연혁사, 상(上)>(링크) |
| 이해(1925년) 동월(同月, 4월 ?) 그믐(晦)경에 이상호(李祥昊)가 내알(來謁)하다. 지난 해(去年) 갑자(甲子 1924) 8月에 이상호(李祥昊)가 혁신운동(革新運動)이 성공하지 못함으로 지나(支那)에 망명하였다 함은 위글(上文)에 이미 서술(述)한바 어니와, 그 내용 사실(事實)을 들은 즉, 당국자(當局者) 중(中)에서 이상호(李祥昊)와 친밀한 사람(人)이 있어 이상호(李祥昊)를 권고(勸告) 왈(曰), 군(君)이 조선(朝鮮) 내에서난 피신할 곳이 없으니 만주(滿洲) 방면(方面)에 넘어가 개척사업(開拓事業)에 종사(從事)하면 우리도 될수 있는데까지 원조(援助)하고 선도(先導)하겠다 하고 김응두(金應斗)를 수행케 하야 만주(滿洲)에 들어가게(入去)하라 하였다. 이상호(李祥昊)는 당국자(當局者)의 지도(指導) 후원(後援) 하(下)에 상등(上等) 양복(洋服)을 착용(着用)하고 금은보석(金銀寶石)의 장신품(裝身品)을 갖추고(俱) 그 첩(妾)인 여학생(女學生)도 극(極)히 사치적(奢侈的)으로 장식(裝飾)하야 동반(同伴)으로 만주(滿洲)에 입(入)하야 이름(名字)을 바꾸어(改) 전라남도 이모(李某)라 가칭(假稱)하고 백만장자(百萬長者)로서 만주(滿洲) 토지(土地)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宣傳)하였다. 그런대 금전(金錢)이라 하면 친자식(親子) 사이도 알지 못하는(不知) 만주(滿洲) 각 사회단체 등(等)은 이상호(李祥昊)의 내력(來歷)을 철저히 탐사(探査)한 후(後)에 그(彼)는 보천교의 금전(金錢)을 절취(窃取)하야 왔으니 그 재물을 우리(吾等)들이 나누어 먹음(分食)이 가(可)하다 하야 주야(晝夜)로 협박공갈(脅迫恐喝)하야 일방(一方)으로난 지나(支那) 관헌(官憲)의게 불량분자(不良分子)로 고발(告發)하야 이상호(李祥昊)를 포박(捕縛) 수금(囚禁)하였다. 이상호(李祥昊)의 친제(親弟)인 순탁(淳鐸)이 경성(京城)에서 그 형(兄)이 붙잡혔다(捕捉)는 말을 듯고 경무당국(警務當局)에 교섭(交涉)하야 당국(當局)의 소개장(紹介狀)을 얻어 만주(滿洲) 일본(日本) 영사(領事)의게 교섭하고 영사(領事)는 지나(支那) 관청(官廳)에 교섭(交涉)하야 이상호(李祥昊)를 석방(釋放)하니 이상호(李祥昊) 형제(兄弟)는 만주(滿洲)를 벗어나(脫) 을축(1925) 정월(正月)에 경성(京城)에 도착(倒着)하야 (이성영은 입지가 없음을 알고 지나로 다시 건너가 1928年에 귀국) 자신(自身)의 전도(前道 전에 걸은 길)을 고려(考慮)한 즉 보천교(普天敎)에서 고소(告訴)한 것이 기소중지(起訴中止) 중(中)에 있으니, 조선(朝鮮) 내(內)에서는 활동이 부자유(不自由) 하겠고 외국(外國)을 갈나 하니 신변(身邊)이 위험(危險)한지라 |
이순탁 (李順鐸 1897.11.07~1950. 07.02 ?):
본명/호: 자는 성집(成集), 호는 효정(曉亭). 한자는 '淳鐸' 자(字)를 혼용하기도 함.
주요 행적: 형들과 달리 종교계에 몸담지 않고 학문의 길을 걸었다.
일본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서구 근대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초대 기획처장(현 기획재정부 장관 격)을 역임하였으나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
1897년 11월 7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아버지 이희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 3월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해남군청 고원(雇員)으로 근무하였다.
1914년 7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1917년 4월 도쿄도 세이조(成城)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후 졸업하였다.
1919년 4월 고베고등상업학교 예과에 진학하였으나 그해 9월 중퇴하였고,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하여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 교수에게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배웠다.
1922년 3월 졸업한 후 그해 4월 조선으로 귀국하여 경성방직에서 근무하였고,
1924년 9월에는 조선상업은행으로 이직하였다.
1923년 4월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25년에는 연희전문학교 상과 과장이 되었고,
1927년 신간회 창립에 참여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연희보명학교 교장직을 역임했다.
한편 1933년 4월 24일 경제 상태, 상업 교육 시찰을 위해 일본 도쿄에서 세계여행을 시작하였다.
요코하마, 상하이를 거쳐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 싱가포르, 콜롬보에 도착했다.
이후 이집트를 경유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보며 파시즘이 일상을 옥죄는 모습과 파시즘이 하는 사상 탄압의 현실을 서술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사회 기강과 질서가 바로잡힌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독일의 나치즘에 대한 설명과 히틀러 정권의 경제정책을 서술했다.
영국에 대한 평가도 했다. 그는 영국의 민주주의 정치, 사상의 자유를 감탄하면서도 영국 런던 거리의 빈곤과 기아 언급했다.
영국을 지나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때마침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국가경제회복기구 행사를 보았다.
그렇게 미국을 끝으로 다시 일본에 돌아와 9개월간의 세계여행을 마무리지었고,
1934년 세계일주 기록을 쓴 『최근 세계일주기〔(最近)世界一周記)〕』발행했다.
세계일주를 끝낸 후 다시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1937년 육상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학내 적화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구속되었다.(조선사정연구회사건)
해방 후 1945년 9월 16일 한국민주당에 가입했지만 같은 해 10월 10일 곧바로 탈당하였다.
이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지냈다.
1948년 8월 8일 초대 대한민국 기획처장으로 임명되어 1949년 7월까지 활동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무소속 윤기섭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6.25 전쟁 당시 1950년 7월 2일 경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납북당했다.
(1990년 독립유공자)
| 目次 | 목차(目次) |
| 鄭爲堂 序文 ‧‧‧ 1 自序 ‧‧‧ 3 一. 나그네되는 마음 ‧‧‧ 1 京城에서 東京에 二. 關釜 連絡船의 一夜 ‧‧‧ 3 三. 舊師 河上 博士의 硏究室 ‧‧‧ 5 四. 『팟쇼』化의 日本 ‧‧‧ 7 五. 『메이데이』의 東京 ‧‧‧ 8 六. 大 東京의 兩面相 ‧‧‧ 9 七. 日本과 一世紀 進步 博覽會 ‧‧‧ 14 橫濱에서 上海에 八. 鹿島丸上의 初夜 ‧‧‧ 14 九. 海商國 日本 ‧‧‧ 17 十. 玄海를 지나면서 ‧‧‧ 18 十一. 中國의 咽喉인 上海 ‧‧‧ 20 十二. 日 中 戰跡을 찾고 ‧‧‧ 22 十三. 朝鮮人과 上海 ‧‧‧ 24 十四. 中國은 어대로 ‧‧‧ 26 上海에서 香港 新嘉坡 거처 彼南에 十五. 香港의 一日 ‧‧‧ 28 十六. 蛋民族의 寄風 ‧‧‧ 32 十七. 赤道 直下의 新嘉坡 ‧‧‧ 34 十八. 世界에 자랑하는 植物園 ‧‧‧ 37 十九. 彼南의 夜景 ‧‧‧ 40 二十. 馬來半島의 産業 ‧‧‧ 43 彼南에서 古倫母 亞丁 지나 蘇土에 二十一. 日 印 通商條約 破棄問題 ‧‧‧ 44 二十二. 印度 國民運動의 成功을 祝하면서 ‧‧‧ 49 二十三. 印度洋上의 月夜 ‧‧‧ 52 二十四. 錫蘭島와 古倫母 ‧‧‧ 54 二十五. 佛足山과 佛牙寺 ‧‧‧ 57 二十六. 亞丁 지나 蘇土에 ‧‧‧ 61 二十七. 『레셉스』의 偉勳과 蘇土運河 ‧‧‧ 65 埃及 들려 地中海에 二十八. 埃及 訪問의 難關 ‧‧‧ 67 二十九. 世界의 母 『카이로』 ‧‧‧ 69 三十. 埃及의 救國主『싸구룰·파샤』 ‧‧‧ 81 三十一. 神秘한 『나일』河의 經濟力 ‧‧‧ 88 三十二. 地中海와 文化的 貢獻 ‧‧‧ 91 伊太利 三十三. 『나폴리』의 風景 ‧‧‧ 93 三十四. 死都 『폼페이』 ‧‧‧ 98 三十五. 古都 羅馬에 ‧‧‧ 101 三十六. 『플로런스』지나 『밀라노』에 ‧‧‧ 109 三十七. 伊太利의 印象 ‧‧‧ 113 三十八. 『팟쇼』治下의 伊太利 ‧‧‧ 116 瑞西 三十九. 風光 明媚한 瑞西 山川 ‧‧‧ 122 四十. 西 首府 『베른』 ‧‧‧ 125 四十一. 外交의 中心地 『지늬버』 ‧‧‧ 127 四十二. 國際聯盟 本部 ‧‧‧ 130 四十三. 이름 좋다 軍縮會議 ‧‧‧ 134 佛蘭西 四十四. 花都 巴里 ‧‧‧ 136 四十五. 巴里의 街頭 ‧‧‧ 139 四十六. 藝術의 巴里 ‧‧‧ 141 四十七. 『센트·헬리너』에서 울든 拿巴崙 ‧‧‧ 147 四十八. 『바스츄』와 『콘코르드』 ‧‧‧ 148 四十九. 巴里의 夜景 ‧‧‧ 150 五十. 不景氣 모르는 佛蘭西 ‧‧‧ 153 白耳義와 和蘭 五十一. 白耳義의 印象 ‧‧‧ 155 五十二. 和蘭의 野景 ‧‧‧ 158 五十三. 平和의 都 海牙 ‧‧‧ 161 獨逸 五十四. 海牙에서 伯林에 ‧‧‧ 164 五十五. 伯林 雜觀 ‧‧‧165 五十六. 『프레데리크』大王 像과 『윌헤름』一世 紀念碑 ‧ 168 五十七. 比斯莫과 『몰트케』의 紀念像 ‧‧‧ 169 五十八. 『벨사이유』본뜬 『폿스담』 宮殿 ‧‧‧ 171 五十九. 伯林의 朝鮮留學生 ‧‧‧ 173 六十. 秦 始皇帝 獨逸에 更生 ‧‧‧ 175 六十一. 『나치스』의 經濟政策 ‧‧‧ 178 六十二. 第二次 大戰의 危機 ‧‧‧ 184 北海 지나 英國에 六十三. 波 高한 北海 ‧‧‧ 185 六十四. 故國인듯한 英國 ‧‧‧ 188 六十五. 乞人 많은 英國 ‧‧‧ 189 六十六. 英國은 女人國인가 ‧‧‧ 191 六十七. 煤煙의 都 론敦 ‧‧‧ 194 六十八. 自由의 나라 英國 ‧‧‧ 196 六十九. 無料 公開하는 英國의 博物館 ‧‧‧ 200 七十. 貧弱한 英國 議院 ‧‧‧ 208 七十一. 寺院 많은 론敦市 ‧‧‧ 211 七十二. 『넬슨』과 『웰링턴』의 神化 ‧‧‧ 213 七十三. 宮城 많은 英國 ‧‧‧ 215 七十四. 倫敦塔 ‧‧‧ 218 七十五. 同業者 集中한 론敦市의 商業 ‧‧‧ 221 七十六. 世界 經濟會議場 ‧‧‧ 223 七十七. 世界 經濟會議 決裂의 原因 ‧‧‧ 227 七十八. 學問의 都 劍橋 ‧‧‧ 232 七十九. 牛津大學과 沙翁의 故地 ‧‧‧ 236 八十. 英國의 第二 港市 『리버풀』 ‧‧‧ 239 八十一. 綿業으로 有名한 『맨치스터』 ‧‧‧ 241 八十二. 『랭커숴』의 綿業은 어대로 ‧‧‧ 244 愛蘭 들려 大西洋을 건너가 八十三. 愛蘭의 政情 ‧‧‧ 247 八十四. 愛蘭의 風景 ‧‧‧ 250 八十五. 大西洋을 건너면서 ‧‧‧ 254 北米合衆國 八十六. 米國의 NRA 運動 ‧‧‧ 257 八十七. 建國 偉人의 面影 ‧‧‧ 260 八十八. 米國의 文明과 文化 ‧‧‧ 263 八十九. 米國의 大學敎育 ‧‧‧ 269 九十. 米國의 朝鮮留學生 ‧‧‧ 271 九十一. 米國의 蘇聯 承認 ‧‧‧ 274 九十二. 巴里 본뜬 華盛頓 ‧‧‧ 278 九十三. 偉大한 『나이애거러』瀑布 ‧‧‧ 283 九十四. 世界 大 博覽會 ‧‧‧ 286 九十五. 米國 社會 片片相 ‧‧‧ 290 九十六. 『갱』의 市 『킫내프』의 都 市俄古‧‧‧ 295 九十七. 羅市 지나 桑港에 ‧‧‧ 298 [桑港에서 橫濱에] 九十八. 常春園 布哇 ‧‧‧ 303 九十九. 『호널룰루』에서 橫濱에 ‧‧‧ 305 〔附錄〕 一. 揷畵 ‧‧‧ 60 二. 世界地圖 ‧‧‧ 1 | 정위당(鄭爲堂) 서문(序文) 자서(自序) 1. 나그네되는 마음 [경성(京城)에서 동경(東京)에] 2. 관부(關釜) 연락선(連絡船)의 일야(一夜) 3. 구사(舊師) 하상박사(河上博士)의 연구실(硏究室) 4. 『팟쇼』化의 일본(日本) 5. 『메이데이』의 동경(東京) 6. 大 동경(東京)의 양면상(兩面相) 7. 일본(日本)과 일세기(一世紀) 진보박람회(進步博覽會) [Yokohama(橫濱)에서 상해(上海)에] 8. Kashima(鹿島丸) 상(上)의 초야(初夜) 9. 해상(海商國)국 일본(日本) 10. 현해탄(玄海灘)를 지나면서 11. 中國의 咽喉인 上海 12. 日 中 戰跡을 찾고 13. 朝鮮人과 上海 14. 中國은 어대로 [上海에서 香港 新嘉坡 거처 彼南에] 15. 香港의 一日 16. 蛋民族의 寄風 17. 赤道 直下의 新嘉坡 18. 世界에 자랑하는 植物園 19. 彼南의 夜景 20. 馬來半島의 産業 [彼南에서 古倫母 亞丁 지나 蘇土에] 21. 日 印 通商條約 破棄問題 22. 印度 國民運動의 成功을 祝하면서 23. 印度洋上의 月夜 24. 錫蘭島와 古倫母 25. 佛足山과 佛牙寺 26. 亞丁 지나 蘇土에 27. 『레셉스』의 偉勳과 蘇土運河 [이집트(埃及 애급) 들려 지중해(地中海)에] 28. 埃及 訪問의 難關 29. 世界의 母 『카이로』 30. 埃及의 救國主『싸구룰·파샤』 31. 神秘한 『나일』河의 經濟力 32. 地中海와 文化的 貢獻 [이태리(伊太利)] 33. 『나폴리』의 풍경(風景) 34. 사도(死都) 『폼페이』 35. 古都 로마(羅馬)에 36. 『플로런스』지나 『밀라노』에 37. 伊太利의 印象 38. 『팟쇼』治下의 伊太利 [스위스(瑞西)] 39. 風光 明媚한 瑞西 山川 40. 西 首府 『베른』 41. 外交의 中心地 『지늬버(Geneva)』 42. 국제연맹(國際聯盟) 본부(本部) 43. 이름 좋다 군축회의(軍縮會議) [불란서(佛蘭西)] 44. 화도(花都) 파리(巴里) 45. 파리(巴里)의 시가지(街頭) 46. 예술(藝術)의 파리(巴里) 47. 『센트·헬리너』에서 울든 拿巴崙 48. 『바스츄(Bastille)』와 『콘코르드(Concorde)』 49. 파리(巴里)의 야경(夜景) 50. 불경기(不景氣) 모르는 불란서(佛蘭西) [벨기에(白耳義)와 네덜란드(和蘭)] 51. 벨기에(白耳義)의 인상(印象) 52. 네덜란드(和蘭)의 야경(夜景) 53. 평화(平和)의 도시(都市) 헤이그(海牙) [독일(獨逸)] 54. 헤이그(海牙)에서 베를린(伯林)에 55. 베를린(伯林) 잡관(雜觀) 56. 『프레데리크』大王 像과 『윌헤름』一世 紀念碑 57. 비스마르크(比斯莫)과 『몰트케』의 紀念像 58. 『벨사이유』본뜬 『폿스담』 宮殿 59. 베를린(伯林)의 조선유학생(朝鮮留學生) 60. 秦 始皇帝 獨逸에 更生 61. 『나치스』의 경제정책(經濟政策) 62. 第二次 大戰의 위기(危機) [북해(北海) 지나 영국(英國)에] 63. 波 高한 北海 64. 故國인듯한 英國 65. 乞人 많은 英國 66. 英國은 女人國인가 67. 煤煙의 都 런던(倫敦) 68. 自由의 나라 英國 69. 無料 公開하는 英國의 博物館 70. 貧弱한 英國 議院 71. 寺院 많은 런던시(倫敦市) 72. 『넬슨』과 『웰링턴』의 神化 73. 宮城 많은 英國 74. 런던탑(倫敦塔) 75. 同業者 集中한 런던시(倫敦市)의 상업(商業) 76. 世界 경제회의장(經濟會議場) 77. 世界 經濟會議 決裂의 原因 78. 學問의 都 Cambridge(劍橋) 79. Oxford대학(牛津大學)과 Shakespeare(沙翁)의 故地 80. 英國의 第二 港市 『리버풀』 81. 면업(綿業)으로 有名한 『맨치스터』 82. 『랭커숴』의 면업(綿業)은 어대로 [아일랜드(愛蘭) 들려 대서양(大西洋)을 건너가] 83. 愛蘭의 政情 84. 愛蘭의 風景 85. 대서양(大西洋)을 건너면서 [북미합중국(北米合衆國)] 86. 미국(米國)의 미국총기협회(NRA) 운동(運動) 87. 建國 偉人의 면영(面影) 88. 미국(米國)의 文明과 文化 89. 미국(米國)의 大學敎育 90. 미국(米國)의 朝鮮留學生 91. 미국(米國)의 蘇聯 承認 92. 파리(巴里) 본뜬 워싱턴(華盛頓) 93. 偉大한 『나이애거러』 폭포(瀑布) 94. 世界 大 박람회(博覽會) 95. 미국(米國) 사회(社會) 편편상(片片相) 96. 『갱』의 市 『킫내프(Kidnap)』의 都 시카고(市俄古) 97. LA(羅市) 지나 San Francisco(桑港)에 [샌프란시스코(桑港)에서 Yokohama(橫濱)에] 98. 상춘원(常春園) 하와이(布哇 포왜) 99. 『호널룰루』에서 Yokohama(橫濱)에 〔부록(附錄)〕 1. 삽화(揷畵) 2. 세계지도(世界地圖) |
(最近) 세계일주기(世界一周記)
서(序)
인사(人事)는 참으로 빠르게 흐르는 것이다.
학우(學友) 이순탁(李順鐸) 교수(敎授)의 세계일주(世界一周)의 길을 떠나 보내는것이
바로 오늘 아츰 일 같은데 발서 광망(曠茫)한 행정(行程)을 고로 고로 지나고
붓대로 좇아 섭취(攝取)한 과영(過影)이 어느듯 판각(登梓 등재)의 기(期)를 고(告)하게되니
이교수(李敎授)의 형형(炯炯)한 쌍안(雙眼)이 빛우는 곳마다
그 심절(深切)한 필치(筆致)가 이를 따를것은 다시 말할 필요(必要)도 없거니와
열국(列國)의 현하(現下) 정세(情勢)와 각지(各地)의 학술(學術) 종교(宗敎) 이외(以外)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종종상(種種相)을 종비(綜批) 공판(公判)하되
능(能)히 부언(浮言) 람사(濫詞)가 없음도 학자(學者)의 서술(敍述)다웁고
그중에도 한경(閑境) 운어(韻語) 같은것은 시인(詩人) 소객(騷客)의 독천(獨擅)할것이어눌
이것까지 검처잡아 월채(月彩)의 조란(照爛)함과 해색(海色)의 황양(滉洋)함이
그대로 지상(紙上)에 영동(映動)하는 것을 볼 때 실체(失體)의 말로 각금 각금 놀래지 아니할수 없었다.
이교수(李敎授) 양행(洋行) 후(後) 얼마되지 아니하야서 나도 금강(金剛) 길을 하였음으로
조선일보(朝鮮日報) 일지면(一紙面)에 미사(美詞)와 졸문(拙文)이 때때 공재(共載)하였었다.
나는 스사로 부끄러웁다고하여야 옳겠지만
이것도 두 사람의 반려(伴侶) 행정(行程)인듯이 저윽히 위로(慰勞)도 되였었고
간혹(間或) 산중(山中) 우편(郵便)으로 좇아 이교수(李敎授)의 기행(紀行)을 보게될 때
곤로(崑盧) 명월(明月)과 만폭(萬瀑) 수성(水聲)에
이교수(李敎授)의 족음(足音)을 뒤세운듯한적도 많았었다.
이교수(李敎授)는 명철(明哲) 통랑(通郞)한 학자(學者)인 동시(同時)
전면(纏綿) 다감(多感)한 정인(情人)이오 또 풍운(風韻)으로 남의 뒤설분이 아니다.
이 기행(紀行)을 읽은이 누구나 다- 알것을
이같이 여러말하는것이 도로혀 다사(多事)할 줄도 안다.
그러나 내가 좀 더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것도
나를 좋아하는 이교수(李敎授)로서는 혹(或) 과책(過責)하지 아니하리라한다.
한 두장만 보고 말하는이들은 특색(特色)이 적음을 말하기도하나
일부러 긍긴(肯緊)을 적발(摘發)하여 일점(一點) 독조미(獨照味)를 발휘(發揮)하였담하면
이는 특저(特箸)할 일서(一書)요 선차중(船車中) 수필(隨筆)에서 구(求)할것이 아니다.
사람의 진정(眞情)을 허물없이 노는 때에 잘 알수 있는것 같이 일필(一筆) 무가(無假)한 수록(隨錄)이
도로혀 어떠한 지진(至眞) 지실(至實)한것을 싸고돌지 아니할른지도 모른다.
섬밀(繊密)한것이 좋고 한만(閑漫)한것까지 뺀것 없는것이 좋다.
그러나 이 일권(一卷) 기행(紀行)을 들고 이교수(李敎授)의 과적(過跡)을 밟아 보았으면
기행(紀行)의 묘절(妙絶)함을 더 한층 감탄(感歎)할수도 있을것이나 나로서 이 양우(良友)의 서록(敍錄)을 믿는것으로 말하면
하필(何必) 이 기행문(紀行文)을 보고서야
군(君)의 기행(紀行)이 잘된것을 찬탄(贊嘆)할터이 아니거든
기행(紀行)을 손에 들고서 어찌 다시 목격(目擊) 이문(耳聞)하고 아니함을 분간(分揀)할것이라.
이로써 서(序)를 대(代)함이 초솔(草率)치 아니함은 아니나
구차(歐車) 미선(米船)에 나도 동승(同乘)하는셈으로
수행(數行)을 적어 같이 발행(發行)되는것을 좋게 알아 스사로 졸(拙)함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누상(樓上)에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 <참고자료>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
| 정인보(鄭寅普1893.5.6.∼1950.9.7)의 아명(兒名)은 경시(景施), 자는 경업(經業), 호는 수파(守坡)⋅미소산인(薇蘇山人)⋅위당(爲當)⋅담원(薝園)⋅수파(守坡)이다. 1893년 서울 명동에서 명문가의 외아들로 출생했으며 유명한 학자인 이건방에게서 사사했고 1913년 상하이로 건너가 박은식,신규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했다. 1932 동아일보 객원사원 1936 연희전문학교 한문학⋅국사학⋅국문학 교수 1945년 8월 광복 후에 국학대학(國學大學)의 초대 학장을 지냈으며 1946년 신강회(新强會) 결설, <조선사 연구>를 저술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에 의해 1951년 초대 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으나, 임영신의 독직 사건을 두고 대통령 이승만과 갈등을 빚고 물러났다 1950년 6⋅25가 일어난 그해 7월 31일 서울에서 공산군에 의하여 납북된 이후, 북행 직후 황해도에서 폭격 피해를 당해 9월 7일 사망. |
(최근最近) 세계일주기(世界一周記)
자서(自序)
〔★ 여행기간: 1933년 4월 24일 부산 출발 ~ 1934년 1월 20일 부산 도착〕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의 호의(好意)로 인(因)하여
저자(著者)가 세계일주(世界一周)의 뜻를 세우고
경성(京城)을 출발(出發)하기는 작년(昨年) 춘삼월(春三月)이였다.
떠난후(後) 약(約) 십개월(十個月) 동안에
나는 실(實)로 해륙(海陸) 붕정(鵬程) 삼만리(三萬里)의 17개국(十七箇國)의 땅을 밟었다.
이 동안에 나는 각국(各國) 각지(各地)의 구구(區區)한
인정(人情) 풍속(風俗) 습관(習慣) 언어(言語) 문명(文明) 문화(文化) 등(等)
실제(實際)로 견문(見聞)한바를 가급적(可及的) 여러사람과 같이 알기 위(爲)하여
간곳마다 조선일보(朝鮮日報)의 지면(紙面)을 통(通)하여 기행문(紀行文)을 쓸 일이 있다.
더러는 삭제(削除)된 곳도 있지마는 대체(大體)로는 게재(揭載)되었는데
여행중(旅行中)에 집필(執筆)한것인 만큼
여러가지에 소루(疏漏)한 점(點)이 많은것은 불득이(不得已)한 일일것이다.
따라서 이러한것을 단행본(單行本)으로 간행(刊行)하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귀국후(歸國後) 수삼(數三) 우인(友人)의 간절(懇切)한 권고(勸告)도 있고
학교(學校)에 복명(復命)할 필요(必要)도 있어서 간행(刊行)에 뜻을 두고
그에 일일(一一)히 눈을 주어 정정(訂正)과 첨삭(添削)에 힘을 썼다.
물론(勿論) 이것은 기행문(紀行文)에 속(屬)할것이지마는
내용상(內容上)으로 보면 단순한 기행문(紀行文)이 아니오,
저자(著者)의 일지(日誌)며 수상(隨想)이며 논문(論文)이며
동시(同時)에 이것들은
지리(地理) 역사(歷史) 인정(人情) 풍속(風俗) 종교(宗敎) 예술(藝術)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社會) 등(等)
다방면(多方面)에 의(宜)한것으로서
요(要)컨대 저자(著者)의 여행(旅行)하는 동안의
세계(世界)의 정태도(靜態圖)를 그린것이며 사회(社會)의 단층면(斷層面)을 보인것이다.
이러한 종류(種類)의 저서(著書)가 나 알기에 아직도 조선(朝鮮)에 없는것은 불행(不幸)이지마는
그때문에 이 저서(著書)는 어느 의미(意味)로 보아서 가치(價値)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것이 저자(著者)로하여금 간행(刊行)의 용기(勇氣)를 더하게 한것이다.
이리하야 이미(旣爲) 단행본(單行本)으로 간행(刊行)하는 이상(以上)에는
체재(體裁)와 미(美)와 충실(充實)을 기(期)할 필요(必要)가 있으므로
조선문(朝鮮文) 철자(綴字)는 가급적(可及的) 신(新) 철자법(綴字法)에 의(依)하야 통일(統一)하였고
외국어(外國語) 음(音)의 표기(表記)는 조선어(朝鮮語)로 표기(表記)할수 있는 한(限)에는
확실(確實)한 본지방(本地方) 어음(語音)을 제(除)하고는
성음학상(聲音學上)의 부호(符號)에 의(依)하여 이를 통일(統一)하였는데
이 때문에 표기(表記)한 외국어음(外國語音)에는 다소(多少) 서투른 점(點)도 있을것이나
외국어음(外國語音)의 표기(表記)를 통일(統一)할 필요가 있는 이상(以上)에는
이것은 불가피(不可避)한 일이다.
예(例)컨대 Israel은 보통(普通) 『이스라엘』이라하나
성음학상(聲音學上)의 부호(符號)에 의(依)하면
Izriəl 혹은 Izreiəl 임으로 이에 좇아서 『이즈리얼』이라고 표기하였으며
Renaissance(文藝復興)는 보통(普通) 『루내산스』라하나
그것은 rəneisəns 임으로 이에 좇아서 『러네이선스』라고 표기하였다.
이것은 오직 일이(一二)의 예(例)를 든것에 불과(不過)하지마는
차종(此種)의 외국어음(外國語音) 표기(表記)는 심(甚)히 많다.
따라서 이점(點)에 대(對)하여 특(特)히 독자(讀者)의 주의(注意)를 끄을고저한다.
그리하야 이에 관(關)한 방면(方面)에는 학우(學友) 정인섭씨(鄭寅燮氏)의 노(勞)를 청(請)하였고,
사실(事實)에 대(對)하여는 백낙준씨(白樂濬氏)의 교정(校正)을 얻었으며
문장(文章)에 대(對)하여는 정인보씨(鄭寅普氏)의 교시(敎示)를 받었다.
그리고 독자(讀者)의 취미(趣味)를 도웁기 위(爲)하야는
군데군데 명소(名所)의 사진(寫眞)을 삽입(揷入)하여 그것이 60매(六十枚)의 다수(多數)에 오른다.
시간(時間)과 노력(勞力)을 써주신 이상(以上) 제우(諸友)의 후의(厚意)를 사(謝)하며
이 간행(刊行)은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 전무취체역(專務取締役) 한규상씨(韓奎相氏)의 호의(好意)와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동문회(同門會) 상무간사(常務幹事) 노재명씨(盧在明氏)의 조력(助力) 때문에
속(速)히 완성되었다는데 대(對)하여 또한 만강의(滿腔의) 사의(謝意)를 표(表)한다.
마즈막으로 이 기행문(紀行文)의 완성(完成)에 대(對)하야는
고인(故人) 이관용(李灌鎔) 박사(博士)의 직접(直接) 간접(間接)의 조력(助力)이 많었는데
박사(博士)는 불행(不幸)히 저자(著者)가 런던(倫敦)에 있는 동안에 불귀(不歸)의 객(客)이되였다.
이 소식(消息)을 뉴욕(紐育)에서 비로소 듣고 섭섭한 마음을 억제(抑制)하기 어려웠다.
이 소책자(小冊子)의 간행(刊行)에 제(際)하여
거듭 박사(博士)의 영전(靈前)에 드림으로써 고인(故人)의 영(靈)을 위(慰)하고저한다.
갑술(甲戌 1934) 5월(五月) 10일(十日)
효정(曉亭)
(최신 最近) 세계일주기(世界一周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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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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