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평면 장평에서
2009년 5월 9일은 봉평으로 가는 날이다
5월 10일 총동문 체육 행사겸 오후에는 기수 모임을 하는 날이기에 미리 가는 것이다
전날 저멀리 부산에서 사는 희준 친구가 봉평으로 카풀하여 동행하여 가자고 600 오옴을 하여 그리 하자고 하여 같이 가기로 하였다
9일 희준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버스를 타고 오는데 원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오후 2시 30분에 도착 한다 하여 매장문을 유리문만 잠그고 셔터는 네리지 않고 터미널에 20분 먼저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20분후 희준 친구는 어김없이 내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왔다
봉평으로 가는 길에 원주시 태장동을 지나서 o색막국수에서 막국수를 먹기로 하였다
들어 가자 마자 그 집은 장사가 잘되는 지는 모르겠으나 그집 종업원이 상당히 먼 거리에서 몇명이냐 하고 물어 보았다
본시는 물쟁반 컵에다 컵 및 물을 갖다가 주면서 하는것이 예의 인데 저멀리 10m이상 거리에서 몇명이냐 하는 것은 조금은 실례라 아니 할수가 있지 않은지?
손님도 크게 많지가 않던데 국수도 한참후에 나오니 말입니다
원래 국수 장사는(짜장면집 포함) 주문하면 빨리 나오고 신속하게 배달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중국집 사장이 언젠가 나에게 웃으면서 자랑한 적이 있언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곤 합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온 국수를 먹고 이제 고향 친구 들이 기다리는 봉평으로 가기 위하여 00호 국도를 타고 새말로 해서 영동 고속도로를 긴터널 작은 터널을 수개를 거치면서 장평 IC에 접어들게 되였읍니다
위에서 아래에서 00이라 함은 잘-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표시하니 이해들 바랍니다
장평하면 길목에서 항시 건강원 외 장사 하느라 바쁜 태환집이 생각이 나서 들리곤 합니다
오늘도 예외 없이 태환집을 방문하여 적절히 이야기를 나누고 봉평으로 향하기 위하여 국도로 해서 오늘 1차 모임인 영동네 집에 무사히 도착 하였읍니다
도착하니 영길 석봉 00이 주방에서는 덜그럭 덜그럭 하는 소리가 들렸고 서로가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으며 위에 00이는 사후 인사 결과 형찬이 였던 것이 였읍니다
학교 졸업한지 수십년에 처음 보는 친구라 본인은 상대를 알아 보지를 못했지요
그렇게 해서 인사를 나누고 너 오랫만에 학교 동창 모임에 나왔으니 농담조로 500백만원 내라 하였더니 상대방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음???
그 덜그락 대던 사람 아줌마가 설겆이 하느라 그려너니 했는데 오늘 모임에 책임자인 성찬이가 설겆이 하느라 그랬던 것입니다
공식 회의 시간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희준과 함께 영민네 집으로 방문하여 영민이 와이프가 산에서 직접 뜯어주는 누리대를 한묵음 받아 가지고 모임 장소로 왔읍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전국에서 삼삼오오 1-2명씩 동창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읍니다
예전에는 누가 몇번째 오는지 죄다 기억을 할수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하루를 지나면 생각이 잘떠오르지 않아서 그 순서는 나열하지 않겠읍니다
참석자를 보면 대충 이러했고 실명으로 기록하겠읍니다
남자 1,성찬 2,영길 2,준우 4,화순 5,영민 6,희준 7,종록 8,강열 9,하영 10,석봉 11,형찬 11,건원 12,수균 13, 창화 14,영동 15,수남 16,상봉 17,태환 18,재천 19,주봉 20,문규 21,영석 22,
여자 1,춘남 2,정수 3,복례 4,영숙 5, 남순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 생각이 나는 데로 추가 기재 하겠읍니다 *
이럴게 해서 오후 7시에 모임은 공식으로 진행이 되였으며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 했으나 이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오랜 세월전 그 모임을 운영 하였던바 참석 인원은 매년 20-30명 이내 이므로 회비가 많이 모이지를 않아 그저 그날 저녁 먹고 쓰고 하면 딱맞던가 약간 모자르는 것이 통상 이치인데 그런점을 탈피 하기 위하여 회비 추가 납부 제의 영원히 오지를 아니하는 동창에게 에게 어쩌고 저쩌고 하여 그렇다면 적은 회원들이 회비를 갹출하여 나오지 않는 회원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재정 상태상 매우 힘들다고 봅니다
집행부에게 미안한 말은 본인이 그날 개정을 할려고 하던 것을 건건히 반대 하였는데
실현 불가한 사안 이기에 반대를 하였던 것입니다
현회비에서 회비를 올리면 회원들의 참석이 더욱더 저조할 것입니다
또한 참석 하지도 않는 동창에게 회비를 징구 한다면 과연 누가 돈을 내겠냐 이말입니다
적은 숫자의 회원이 회비를 모아서 80여명이 넘는 회원들의 경 조사시 화분값을 대납 할수는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러해서 임원진 들이 어렵다고 하니
수균 봉평 후계 양성을 위하여 100만원 자진해서 낸다고 한다니 약속 이행 하시고
처음 인사 과정에서 열받은 형찬이 정식 회의 석상에서 본인(종록)의 이름을 거론하며 열받게 하여 50만원을 낸다고 공언 하였으니 소중한 약속 이행들 하시기 바랍니다
정식 회의는 끝이 나고 식사와 술 파티가 시작 되는데 본인은 술을 많이 먹으나 적게 먹으나 신경성 궤양으로 어떠한 모임 및 술자리 장소에 가면 무척 고통 이랍니다
그날 태환이가 여성회원 들에게 평창산 드릅을 보내 주어서 잘-먹었읍니다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노래방으로 향하게 되였는데 본인외 2명은 노래방으로 늦게 출발하였읍니다
늦게 출발하여 노래방 유리 틈으로 빼꼼히 들여다 보니 더이상 들어갈 틈이 없었읍니다
회의때 많은 말을 하였는지라 목도 잠기고 하여 노래방 대기실에서 약20분 대기 하고 있다가 3명이서 밖으로 나오게 되였지요
나오다가 숙소로 향 하던중 강열이네 사무실에 가서 유리로 들여다 보니 강열이가 있어서 사무실에 들어가서 음료와 차를 얻어 마시고 숙소로 왔읍지요
숙소에와 약간의 술과 과일 고기를 먹고 노래방에 간 일행과 함께 작은 방을 차지하여 내일을 위하여 취침에 들어 갔읍니다
취침 할려고 하는데 새벽 2시가 넘었는데 고스톱을 친다고 난리들을 치길래 본인 은 빠졌읍니다
옆에서 워낙 쎄게 떠들어 대니까 신경이 예민한 본 인은 한잠도 잘수가 없었읍니다
어설프게 잠이 들어 있는데 호박이??? 넝쿨채 굴러 들어와서 나의 오른쪽 팔을 이용해 팔베게를 하여 곤히 잠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본인은 잠이 확 달아 나면서 일어 났지요
영숙,화순이가 술에 떨어져 나가고 멤버가 없어서 본인 어쩔수 없이 한시간쯤 고스톱을 쳤는데 2,000원정도 딴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벽 5시가 되여 먼동이 서서히 트길래 남순,영민 나와 셋이서 산으로 가자고 하였지요등산겸 나물 체취 할겸 약 2시간에 거쳐서 무이리 산을 넘어서 면온으로 나와 코뚜레에 들러 주봉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식사가 되지를 않는다 하여 다시 석봉과 넷이서 영동 식당으로 향하였읍니다
식당에서 조식후 산에서 체취한 나물들을 흙으로 잘 보호해 가지고 차량에다 실어놓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여 그날의 주된 체육 행사를 30분정도 참관후 지루하여 다시 숙소로 와 차량으로 이동하여 장평으로 나가던중 인동네 집에 들러서 인동, 명동과 인사후 한30분후 태환네 집으로 왔읍니다
태환과 함께 장평 예식장으로가 호선의 장남 결혼식 피로 연으로 가던중 영진외 초교 동창들이 수명이 있길래 인사후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조그만 벗나무 그늘에서 초교동창들과 사진도 찍고 수시간 동안 동창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환네 집에서 몇명은 나물을 구입 하였고 향후 모임도 논의하기 위하여 장소 및 일정을 물색 논의차 회를 먹으러 가자 하였더니 죄다 바쁘다 핑게를 대길래 서너명이 빠지고 하여 원주로 나오고 말았읍니다 (나오는 길에 희준,금옥,선자,옥선이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줌)
원주에 도착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규모 농장에다가 봉평에서 이동한 꽃과 나물을 심어 놓고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쇼파위에서 한참을 자다가 밖을 내다 보니 밖은 어느덧 어두 컴컴한 밤이 오기시작 하는 것입니다
정말 피곤한 일박 이틀간 나들이 였지요
2009년 05월 11일 원주시 최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