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국 생활 2
타보에서의 생활이 두 달이 지나가는 군요.
밤이면 작은 도마뱀들이 짝을 찾는다고 요란히 내 귀를 울립니다.
나도 집을 그리워하는 한 인간이거늘
내 마음을 이 밤 도마뱀(찡쪽이라함)들의
오케스트라 소리에 편승하여 몇 자 적어 보냅니다.
화, 수요일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로사리오학교에 자전거타고 가서(13키로) 2시간 태국어
공부하며 선생님들과 대화를 합니다. 금요일은 신부님과 병자 방문하여 봉성체를 하러 가고요.
오후에는 격주로 가정미사(공소 지역)를 갑니다. 토요일은 본당에서 약 2시간 떨어진
나 머엉타이란 공소에 가고 저녁에는 본당에서 미사를 합니다.
일요일은 본당 미사 후 씨치양마이란 공소에 가서 미사를 합니다.
공식적인 저의 일과는 이렇게 진행이 되는데요.
기타시간에는 본당 신자들과 친교 겸 태국어를 배우려고 가정방문이나 신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기타 제가 느낀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장래풍습이 한국과 전혀 다르네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아이들도 관 옆에서 이야기를 하며 놀아요. 우리처럼 장막을 치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세 상갓집을 방문했는데 특히 돌아가신지 3~4시간 후에 간 집을 말씀드리자면 방에 시신이 그대로 있고 그 옆에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있어요. 신부님과 가니 신자들도 오고 관도 들어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입은 옷 그대로 입관을 해요. 수의도 없어요. 장례기간도 길고 매일미사를 상갓집에서 해요. 미사 전에 묵주기도 5단 바치고 미사를 시작하고 끝나면 일반 문상객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상주들이 울지 않아요. 처음부터 공동묘지 묻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더라도 울거나 애도 하는 것을 보지를 못했어요. 아마도 불교의 오랜 영향인지 모르겠어요.
둘째는 시골의 조그마한 공소 축일이었는데 교구장님과 인근의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총 출동해서 공소신자보다 성직자 수가 더 많았어요. 라오스와 국경지역이라 주민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계이고 공소 신자는 전부 베트남계입니다. 축일에 전통 베트남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으며 잔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사 중 마침성가는 꼭 베트남 성가를 불러요. 그리고 잔치가 정말 성대했어요. 음식도 풍족하고 오신 손님들께 선물도 다 나눠 받았지요.
셋째는 공소에 갈 때 신부님은 먹을 것을 차에 가득 싣고 가서 성당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신부님 말씀이 밥 얻어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합니다.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본당에서 독일 신부님께서 하시던 방법과 같아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더군요.신부님께서는 저보고 항상 나눠 주라고 하셔서 나누어주면 아이들이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당은 약 45가구정도 되는 조그마한 성당입니다 국경지방으로 우리나라의 군소재지 정도입니다. 본당신자 대부분이 베트남계라 어른들은 대개 태국어를 읽지 못 합니다. 그래서 본당에 신심단체가 단 하나 여성 레지오 하나만 있어요. 심지어 평일 미사 있는 것 조차 아무도 몰라요. 요즘 제가 가정 방문하며 남성 레지오와 평일 미사 선전하고 다니지요. 지금 저를 포함해서 4명이 일요일 6시에 남성 레지오 주회를 시작 했습니다. 아직은 시작이고 다들 부정적입니다. 내가 떠나면 안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계속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제가 태국어 실력이 부족하니 설명에 한계는 있지만 평일에도 신자들이 성당에 놀러오라도 오게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신자들과는 많이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것 같아요. 다음 주에는 복사 교육을 시켜볼 예정입니다. 아직은 본당 신부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계획을 세워서 말씀드리고 격식을 갖춘 미사 예절(한국식이라 볼 수 도 있음)을 신자들에게 보임으로서 좀 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은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의 생활은 좀 어려우나(특히 모기) 삶은 보람있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구속주회 평신도 협력자로서의 본분을 생각하며 하느님과 성모님께 해가 안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