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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愈의 祭十二郞文
韓愈 (한유,768~824)
자 退之(퇴지). 시호 문공(退之).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河南省) 출생. 하북성 昌藜 사람으로 송나라 때
昌藜伯에 追封되어 한창려 또는 창려선생으로도 불리워졌다.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의 속관을 거쳐 803년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을 때,
수도(首都)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陽山縣:廣東省)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國子監)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憲宗皇帝)가 불골(佛骨)을 모신 것을 간하다가 조주(潮州:廣東省)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올랐다.
문학상의 공적은
첫째, 산문의 문체개혁(文體改革)을 들 수 있다.
종래의 대구(對句)를 중심으로 짓는 변문(騈文)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형의 고문(古文)을 친구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창도하였다.
고문은 송대 이후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졌다.
둘째, 시에 있어 지적인 흥미를 정련(精練)된 표현으로 나타낼 것을 시도,
그 결과 때로는 난해하고 산문적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제재(題材)의 확장과 더불어 송대의 시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사상분야에서는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송대 이후 성리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祭十二郞文에 대한 설명
諸葛亮의 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충신이 아니고,
李密의 陳情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한유의 제십이랑문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우애가 없는 사람이라 하며 세상에서 이를 3대 명문이라 말해왔다고 한다.
십이랑이라 함은 한유 집안의 형제와 종형제를 합하여 항렬의 순위가 열두 번째임을 뜻한다.
한유는 이 제문에서 약속한대로 조카의 아들 한상(韓湘)을 자기 아들 한창(韓昶)보다 일 년 먼저
과거에 급제시키고 20년 뒤에 59세로 죽었다.
唐代의 문호로 唐宋八大家 중에 第一人者인 한유의 名文을 감상해 보십시오.
祭十二郞文
年月日(연월일) 모년 모월 모일
季父愈聞汝喪之七日(계부유문여상지칠일) 숙부인 나 유는 너의 부음을 듣고 칠일 만에
乃能銜哀致誠(내능함애치성)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해
使建中遠具時羞之奠(사건중원구시수지전) 건중으로 하여금 제철 음식 제수를 갖추고
告汝十二郞之靈(고여십이랑지령) 너 십이랑의 영에게 고하노라.
嗚呼 吾少孤(오호 오소고) 슬프다. 내 어려서 홀로 되고
及長不省所怙(급장불성소호) 크면서 의지할 곳을 살피지 못할 때
惟兄嫂是依(유형수시의) 오직 형수에게 의지하였다.
中年兄歿南方(중년형몰남방) 중년에 형이 남방에서 돌아가셨는데
吾與汝俱幼(오여여구유) 나와 네가 모두 어려서
從嫂歸葬河陽(종수귀장하양) 형수를 따라 하양에 장사 지냈고
旣又與汝就食江南(기우여여취식강남) 그리고 나서 너와 강남에서 객지생활을 할 때
零丁孤苦(영정고고) 외로운 사내끼리 함께 고생하여
未嘗一日上離也(미상일일상리야) 일찍이 하루도 서로 헤어진 적이 없었다.
吾上有三兄(오상유삼형) 내게 위로 형이 셋 있었지만
皆不幸早世(개불행조세) 일찍 불행하게 모두 세상을 떠나고
承先人後者(승선인후자) 조상의 혈통을 이어야 할 자손으로
在孫惟汝(재손유여) 손자로서 유일하게 네가 있고
在子惟吾(재자유오) 아들 대로는 내 혼자 있을 뿐이니
兩世一身(양세일신) 양 대에 모두 한 사람씩이니
形單影隻(형단영척) 형체가 하나이니 그림자도 하나로써 의지할 곳 없어
嫂常撫汝指吾而言曰(수상무여지오이언왈) 형수님은 늘 너를 어루만지며 나를 가리켜
韓氏兩世惟此而已(한씨양세유차이이) “한씨 두 대에 걸쳐 오직 이 둘이 있을 뿐”이라 하셨는데
汝時尤小(여시우소) 너는 당시 너무 어려서
當不復記憶(당불부기억) 당연히 기억이 없을 것이고
吾時雖能記憶(오시수능기억 나도 비록 그 때를 기억은 하지만
亦未知其言之悲也(역미지기언지비야) 나 역시 그 말씀이 그렇게 슬픈 줄 몰랐다.
吾年十九(오년십구) 내 나이 열아홉에
始來京城(시래경성) 처음 장안으로 왔고
其後四年而歸視汝(기후사년이귀시여) 그 후 4년 뒤에 돌아가 너를 보았고
又四年(우사년) 또 4년 뒤에
吾往河陽省墳墓(오왕하양성분묘) 내가 하양으로 돌아가 성묘할 때
遇汝從嫂喪來葬(우여종수상래장) 형수의 운구를 따라 장사 지내던 너를 만났고
又二年(우이년) 다시 2년 뒤에
吾佐董丞相於忭州(오좌동승상어변주) 내가 변주에서 동승상을 보좌할 때
汝來省吾(여래성오) 네가 나를 찾아와
止一歲(지일세) 1년을 머물고
請歸取其孥(청귀취기노) 돌아가 처자식을 데려오겠다 하여
明年丞相薨(명년승상훙) 다음 해 승상이 타계하고
吾去忭州(오거변주) 내가 변주를 떠나니
汝不果來(여불과래) 너는 결국 올 수 없었고
是年 吾佐戎徐州(시년 오좌융서주) 같은 해 나는 서주에서 융사를 보좌할 때
使取汝者始行(사취여자시행) 너를 데려올 사람을 비로소 가게 했으나
吾又罷去(오우파거) 나는 또 관직을 그만두어
汝又不可來(여우불가래) 너는 또 올 수 없었고
吾念汝從於東(오념여종어동) 내 생각에 네가 동쪽으로 따라 온다고 해도
東亦客也不可以久 (동역객야 불가이구) 동쪽 역시 객지라 오래 있을 수 없으니
圖久遠者莫如西歸(도구원자 막여서귀) 오래 머물려면 서쪽으로 돌아감만 못하여
將成家而致汝(장성가이치여) 집안을 이루어 너를 데려 오려 한 것이었는데
嗚呼 孰謂汝遽去吾而歿乎(오호 숙위여거거오이몰호) 오호라 네가 나를 버리고 갈 줄 뉘 알았으랴.
吾與汝俱年少(오여여구년소) 나와 나의 소년 시절
以爲雖暫相別(이위수잠상별) 비록 잠시 서로 헤어져도
終當久相與處(종당구상여처) 결국 당연히 서로 함께 살 것이라 생각하였고
故捨汝而旅食京師(고사여이여식경사) 그래서 너를 버려두고 장안에서 객지생활을 하며
以求斗斛之祿(이구두곡지록) 열 말의 봉록을 구하였건만
誠知其如此(성지기여차) 참으로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雖萬乘之公相(수만승지공상) 비록 천자나 승상 자리가 생긴다 하더라도
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오불이일일철여이취야) 나는 하루라도 너를 버리고 가지 않았으리라.
去年孟東野往(거년맹동야왕) 지난 해 맹동야가 갈 때
吾書與汝曰(오서여여왈) 내가 네게 글을 보내며 말하기를
吾年未四十(오년미사십) 내 나이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而視茫茫(이시망망) 눈이 침침하고
而髮蒼蒼(이발창창)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而齒牙動搖(이치아동요) 이도 흔들리니
念諸父與諸兄(염제부여제형) 아버님 형제 분 들과 형들을 생각할 때
皆康强而早世(개강강이조세) 모두 건강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如吾之衰子(여오지쇠자) 나같이 쇠약한 사람이
其能久存乎(기능구존호) 어찌 오래 살 수 있으리오.
吾不可去汝不肯來(오불가거여불긍래) 내가 갈 수 없고 네가 즐겨 오지 않으니
恐旦暮死(공단모사)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
而汝抱無涯之戚也(이여포무애지척야) 네가 한 없는 슬픔을 안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孰謂少者歿而長者存(숙위소자몰이장자존) 젊은이가 죽고 늙은이가 살아 남으며
强者夭而病者全乎(강자요이병자전호) 건강한 사람이 요절하고 병자가 온전할 줄 뉘 알았으리요.
嗚呼 其信然邪其夢邪(오호기신연사 기몽사) 오호라 참말인가 꿈인가
其傳之非其眞也(기전지비기진야) 그 기별이 진실이 아니지 않는가
信也吾兄之盛德(신야오형지성덕) 참이라면 우리 형님의 성덕으로
而夭其嗣乎(이요기사호) 그 후사를 어찌 요절하게 하리요.
汝之純明(여지순명) 너의 순결함과 총명함으로
而不克蒙其澤乎(이불극몽기택호) 그 은혜를 입을 수 없단 말인가
少者强者而夭歿(소자강자이요몰) 젊고 굳센 이가 요절하고
長者衰者而存全乎(장자쇠자이존전호) 늙고 쇠약한 이가 남아 온전하니
未可以爲信也(미가이위신야)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夢也 傳之非其眞也(몽야전지비기진야) 꿈인가, 전하는 것이 진짜가 아닌가
東野之書耿蘭之報(동야지서경란지보) 동야의 글과 경란의 소식이
何爲而在吾側也(하위이재오측야) 왜 내 곁에 있는가.
嗚呼其信然矣(오호기신연의) 오호라 그것을 믿으란 말인가.
五刑之盛德奈(오형지성덕내) 우리 형님의 훌륭한 덕으로도
而夭其嗣矣(이요기사의) 그 후사를 요절케 했으며
汝之純明宜業其家者(여지순명의업기가자) 너의 맑고 총명함으로 마땅히 집안을 빛나게 할 사람이
不克蒙其澤矣(불극몽기택의) 그 은택을 입을 수 없었다.
所謂天者誠難測(소위천자성난측) 소위 하늘이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고
而神者誠難明矣(이신자성난명의) 신이란 정말 밝히기 어려운 것
所謂理者不可推(소위리자불가추) 이른바 이치란 추측할 수 없는 것이고
而壽者不可知矣(이수자불가지의) 목숨이란 알 수 없는 것
雖然吾者今年來(수연오자금년래) 비록 그러해도 나도 올해부터
蒼蒼者或化而爲白矣(창창자혹화이위백의) 희끗희끗하던 머리도 변하여 희게 되기 시작했고
動搖者或脫而落矣(동요자혹탈이락의) 흔들리던 치아도 더러 빠져나가게 되었다.
毛血日益衰(모혈일익쇠) 체력이 날마다 더욱 쇠약해지고
志氣日益微(지기일익미) 의지와 원기가 날로 미약해지니
幾何不從汝而死也(기하불종여이사야) 너를 따라 죽을 날이 무릇 그 얼마이겠으며
死而有知其幾何離(사이유지기기하리)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면 그 떨어짐이 얼마나 되겠으며
其無知悲不幾時(기무지비불기시) 죽어서 지각이 없다면 슬픔은 길지 않을 것이고
而不悲者無窮期矣(이불비자무궁기의) 슬픔을 느끼지 않는 것이 무궁할 것이다.
汝之子始十歲(여지자시십세) 네 아들은 겨우 열 살이고
吾之子始五歲(오지자시오세) 내 아들이 다섯 살인데
少而强者不可保(소이강자불가보) 젊고 강건한 사람도 목숨을 보전할 수 없으니
如此孩提者(여차해제자) 이런 어린 아이가
又可冀其成立耶(우가기기성립야)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嗚呼哀哉嗚呼哀哉(오호애재오호애재) 아 슬프고 슬프도다.
汝去年書云(여거년서운) 네가 작년 편지에 말하기를
此得軟脚病往往而劇(차득연각병왕왕이극) 근래에 각기병에 걸려 가끔씩 심하다 했다
吾曰是疾也(오왈시질야) 나는 이르되 이 병은
江南之人常常有之(강남지인상상유지) 강남에 사는 사람은 늘 걸리는 병이라며
未始以爲憂也(미시이위우야) 처음엔 그것을 근심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嗚呼(오호) 아 슬프도다
其竟以此而殞其生乎(기경이차이운기생호) 마침내 이것으로 너는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抑別有疾而至斯乎(억별유질이지사호) 아니면 다른 병이 있었단 말이냐
汝之書六月十七日也(여지서유월십칠일야) 네 편지에는 유월 열 이렛날 썼다는데
東野云汝歿以六月二日(동야운여몰이유월이일) 맹동야는 네가 6월 2일에 죽었다고 말하며
耿蘭之報無月日(경란지보무월일) 경란이의 보고에는 날짜도 없었다.
蓋東野之使者(개동야지사자) 아마 맹동야의 하인은
不知問家人而月日(부지문가인이월일) 가인들에게 죽은 날짜를 묻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汝耿蘭之報(여경란지보) 너의 경란이의 보고서에는
不知當言月日(부지당언월일) 마땅히 날짜를 말해주어야 함을 몰랐을 것이다.
東野與吾書(동야여오서) 맹동야가 내게 글을 보낼 때
乃問使者(내문사자) 하인에게 물었더니
使者妄稱以應之耳(사자망칭이응지이) 하인이 함부로 말하니 그리 대답했을 것이다.
其然乎其不然乎(기연호기불연호) 그런 것이냐 아니 그런 것이냐.
今吾使建中祭汝(금오사건중제여) 오늘 내가 건중에게 너를 제사 지내게 하고
弔汝之孤與汝之乳母(조여지고여여지유모) 너의 아들과 너의 유모를 조문하게 하였다.
彼有食(피유식)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可守以待終喪(가수이대종상) 상청(喪廳)을 지키며
則待終喪(즉대종상) 즉 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而取以來(이취이래) 데려올 것이고
如不能守以終喪(여불능수이종상) 만일 상기를 마칠 때까지 지킬 수 없다면
則遂取以來(즉수취이래) 즉시 데리고 오되
其餘奴婢(기여노비) 나머지 노비들은
竝令守汝喪(병령수여상) 모두 너의 상기를 지키게 할 것이다.
吾力能開葬(오력능개장) 나의 힘으로 개장할 수 있다면
終葬汝於先人之兆(종장여어선인지조) 끝내는 너를 선영에 장사 지낼 것이다.
然後惟其所願(연후유기소원) 그렇게 해야 바라는 바를 다하게 될 것이다.
嗚呼 汝病吾不知時(오호 여병 오부지시) 오호라 네가 병든 것을 나는 그 때를 알지 못하고
汝歿吾不知日(여몰오부지일) 네가 죽은 것도 내가 그 날짜마저 모르고
生不能相養以共居(생불능상양이공거) 살아있을 때도 서로 봉양하며 함께 살지 못하고
歿不能撫汝以盡哀(몰불능무여이진애) 죽어서도 너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다하지 못하고
斂不憑其棺(염불빙기관) 염을 할 때도 그 관에 기대지 못하고
窆不臨其穴(폄불림기혈) 하관할 때도 너의 무덤에 가보지 못하고
吾行負神明(오행부신명)내 행실이 천지신명께 죄를 지어
而使汝夭(이사여요) 너를 요절하게 했고
不孝付慈(불효부자) 내가 효도도 못하고 사랑도 주지 못하여
而不得與汝相養以生(이부득여여상양이생) 너와 함께 서로 봉양하며 살면서
相守以死(상수이사) 서로를 지키며 죽지도 못했고
一在天之涯(일재천지애) 한 사람은 하늘 끝에 있고
一在地之角(일재지지각) 한 사람은 땅 끝에 있으니
生而影不與吾形相依(생이영불여오형상의) 살아서 네 그림자가 내 몸과 함께 서로 의지하지 못하고
死而魂不與吾夢相接(아이혼불여오몽상접) 죽어서도 혼이 내 꿈과 더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구나.
吾實爲之其又何尤(오실위지기우하우) 내가 실로 그리 했으니 그 또한 무엇을 탓하리오.
彼蒼蒼者天曷其有極(피창창자천 갈기유극) 푸르고 푸른 하늘이시여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自今以往吾其無意於人世矣(자금이왕오기무의어인세의) 이제부터 나는 세상살이 의욕이 없을 듯
當求數頃之田於伊潁之上(당구수경지전어이영지상) 마땅히 밭 몇 이랑 이수와 영수 위에 마련하여
以待餘年(이대여년) 여생을 보내리라.
敎吾子與汝子幸其成(교오자여여자행기성) 너와 내 아들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長吾女與汝女待其家(장오녀여여녀대기가) 너와 내 딸들을 키워 시집가기를 기다리겠다.
如此而已(여차이이) 다만 이와 같을 뿐이다.
嗚呼言有窮而情不可終(오호언유궁이정불가종) 슬프다 말은 다 했지만 정은 끝이 없도다.
汝其知也邪其不知也邪(여기지야사 기부지야사) 너는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도다.
尙饗(상향) 歆饗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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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愈(한유)가 아들에게 준 勸學詩(권학시)
韓愈(한유)는 중국 初唐(초당)시대의 문인, 작가, 정치인으로 시문의 대가이다.
字(자)는 退之(퇴지). 韓文公(한문공)이라고도 한다.
중국과 일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후대 性理學(성리학)의 원조이다.
어려서 고아였고,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낙방했다.
그 후 25세에 진사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吏部侍郞(이부시랑)까지 지냈다.
사후에 禮部尙書(예부상서)로 추증되었다. (768 -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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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城南(독서성남)-성남으로 공부하러 가는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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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之就規矩 목지취규구 나무가 각재나 원형이 되는 것은
在梓匠輪輿 재재장륜여 목수에게 달려 있고
人之能爲人 인지능위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由腹有詩書 유복유시서 머리에 시서(詩書)가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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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書勤乃有 시서근내유 학문은 부지런하면 얻게 되고
不勤腹空虛 불근복공허 부지런하지 않으면 텅 비게 된다.
欲知學之力 욕지학지력 학문의 힘을 알아보면,
賢愚同一初 현우동일초 어려서는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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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其不能學 유기불능학 배우지 못한다면
所入遂異閭 소입수이려 마침내 들어가는 문이 다르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兩家各生子 양가각생자 두 집에 각각 아들을 둔 경우에
提孩巧相如 제해교상여 안아주고 어를 때는 묘하게도 서로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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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長聚嬉戱 소장취희희 좀 커서 함께 놀 때에도
不殊同隊魚 불수동대어 떼 지어 노는 물고기 무리 같이 같았다.
年至十二三 연지십이삼 열 두 서너 살이 되면
頭角稍相疏 두각초상소 두각이 서로 달라지기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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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漸乖張 이십점괴상 스무 살이 되면 점점 벌어져서
淸溝映汚渠 청구영우거 맑은 물에 비치고, 더러운 물에 비치는 것 같다
三十骨格成 삼십골격성 삼십이면 골격이 다 이루어져서
乃一龍一猪 내일룡일저 마침내 한명은 이고, 다른 한명은 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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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黃騰踏去 비황등답거 준마인 황비로 박차 오르며
不能顧蟾蜍 불능고섬서 두꺼비 같은 둔한 말은 돌아도 안 본다.
一爲馬前卒 일위만전졸 한 사람은 말 앞의 마부가 되어
鞭背生蟲저 편배생충저 등에 채찍 맞아 아물 날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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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爲公與相 일위공여상 한 사람은 재상이 되어
潭潭府中居 담담부중거 크고 넓은 관청에서 일한다.
問之何因爾 문지하인이 왜 그럴까? 무슨 이유인가 ?
學與不學歟 학여불학여 배우고 배우지 않은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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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璧雖重寶 금벽수중보 금과 구슬은 비록 귀중한 보배지만
費用難貯儲 비용난저저 써버리면 저축하기 어렵다.
學問藏之身 학문장지신 학문은 몸에 지니게 되니
身在則有餘 신재즉유여 몸이 있는 한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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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與小人 군자여소인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不繫父母且 불계부모저 부모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니니
不見公與相 불견공여상 귀한 벼슬에 있는 재상이,
起身自犁鋤 기신자리서 쟁기와 호미로 농사짓는 곳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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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見三公後 불견삼공후 삼공의 후손이라도,
寒饑出無驢 한기출무려 춥고 굶주려 외출 할 때 나귀도 없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文章豈不貴 문장기불귀 문장이 어찌 귀하지 않은가?
經訓乃치여 경훈내치여 경서의 가르침은 곧 전답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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潢潦無根源 황료무근원 물이 넘쳐나도, 장마 물은 근원이 없으니
朝滿夕已除 조만석이제 아침에 찼다가 저녁에 없어진다.
人不通古今 인불통고금 사람이 고금의 지식에 통달하지 못하면
馬牛而襟裾 우마이금거 마소에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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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身陷不義 행신함불의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빠지기 쉬운데
況望多名譽 황망다명예 하물며 명예가 많기를 바라겠는가?
時秋積雨霽 시추적우제 네가 떠나는 때는 가을이라 장마 비 개고
新凉入郊墟 신량입교허 새로 시원한 바람 교외에서 불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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燈火稍可親 등화초가친 등잔불을 점차 가까이 하고
簡編可卷舒 간편가권서 책을 열고 읽어볼 만하다.
豈不旦夕念 기불단석염 어찌 아침저녁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爲爾惜居諸 위이석거제 너 자신을 위해서 세월을 아까와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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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義有相奪 은의유상탈 은혜와 의리는 둘 다 지키기 어려워
作詩勸躊躇 작시권주저 내가 시를 지어 너의 망설임을 권면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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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韓昌黎集(한창려집) 6권에 실려 있다.
符(부)는 韓愈(한유)의 아들의 어릴 때 이름이다.
한유의 아들 符(부)가 城南(성남)으로 공부하러 갈 때 이 시를 지어 주면서 勸勉(권면)하기를,
‘배우면 君子(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小人(소인)이 된다.‘ 하였다.
이 시 가운데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의 두 시구는 시원한 가을철이 독서하기 좋은 계절임을 강조하는 시구로
여기서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로 燈火可親(등화가친)이란 말이 시작되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한 번쯤 들려줄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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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懷詩(추회시) - 韓愈(한유)
가을에 쓰는 시
秋夜不可晨 (추야불가신) : 가을밤엔 새벽이 멀기만 한데
秋日苦易暗 (추일고역암) : 가을 해는 쉽게도 어두워 진다
我無汲汲志 (아무급급지) :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何以有此憾 (하이유차감) : 무슨 까닭으로 가을을 타야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