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적 심리평가보고서 예시(배정규, 2004).hwp
오늘 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10년쯤 전에 제가 작성했던 <정신과적 진단을 위한 종합심리평가보고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부록으로 당연히 첨부되어 있어야할 검사자료들은 누락된 채 보고서만 달랑 남아있지만,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11년 전에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휴학생이었는데, 진단이 정확히 잡히지 않아서, 가족들이 수소문 끝에 제게 연락하여 진단을 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사례입니다. 저는 심리검사 강의는 계속해서 해왔지만, 직접 심리검사를 시행하거나 보고서 작성을 하지 않은지 이미 10년이나 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득이 제가 심리검사를 하고 진단적 평가보고서를 작성해준 사례입니다.
저는 심리평가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보고서를 받아보는 사람이 내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쉽고 정확한 용어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고 친절하게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보고서가 당사자의 치료, 재활, 재기와 관련된 개입계획수립에 도움이 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진로선택과 구체적인 생활목표수립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점만이 아니라, 강점도 찾아서 명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보고서는 저의 다른 보고서들과 비교할 때, 절반 정도의 분량입니다. 아마도 제가 전문상담교사들에게 심리평가보고서에 대해 설명할 때 예시로 제시했던 보고서인 듯한데, 이런 이유로 길고 자세한 보고서보다는 간명한 보고서를 예시자료로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제 실수로 모든 파일들이 삭제되었지만, 이 보고서는 엉뚱한 곳에 남아있어서, 공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심리평가보고서의 구성항목을 간단히 제시하고, 이어서 제 보고서를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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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보고서의 구성
․신상정보 : 이름, 성별/연령, 직업, 기/미혼 여부, 보고서 날짜, 평가자 이름
1. 평가사유 (또는 의뢰사유, 평가목적)
2. 실시된 검사 (또는 평가절차, 검사절차)
3. 검사태도 (또는 행동관찰)
4. 배경정보--포함할 수도 있고, 생략할 수도 있음.
5. 평가결과--세부적인 항목은 필요에 따라 구성을 달리함. 중요항목부터 서술.
1) 지능 및 인지기능
2) 정서 및 대인관계
3) 진단적 소견 및 제언
6.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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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보고서 (예시)
○ ○ ○, 여자, 20세, 전문대 휴학 중
검사일: 2003. 12. 27(화)
보고서 작성일: 2004. 1. 15(목)
1. 평가사유
고등학교 2학년 때 종례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내가 공부를 너무 잘해서 아이들이 날 싫어하나 봐”라고 헛소리를 하여, 담임교사의 권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R/O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으며, 최근까지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해 왔다. 올해 3월부터 ○○신경정신과(주치의 ○○○)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최근 주치의로부터 “정신분열병이 아닌 것 같다. 성격장애는 있는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고, 1개월 전부터 주치의의 처방으로 항정신병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신경증 계통의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본인과 보호자(母)가 정확한 진단이 무엇인지, 즉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성격장애 중 어떠한 것인지를 궁금해 하여, 진단적 목적으로 심리평가를 시행하였다.
2. 실시된 검사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주치의로부터 1주일 전 시행한 결과를 받음),
SCT(문장완성검사), BGT(벤더게슈탈트검사), HTP(집-나무-사람 그림검사),
Rorschach(로르샤하 잉크반점검사), K-WAIS(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
MBTI(성격유형검사), 진단적 면접(본인 및 어머니),
참고자료 : 보호자(母) MMPI, SCT, MBTI
3. 검사태도
검사를 받기 위하여 본인과 어머니가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다”고 말하면서도 검사에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로 임하였다. 검사는 BGT, HTP, Rorschach, K-WAIS, SCT, 진단적 면접 순으로 시행하였다. 검사 시간 동안 검사실 옆집에서 굴착공사를 하여 소음이 심하였다. 비록 본인은 이에 대한 불평 없이 검사에 몰두하였으나, 소음으로 인하여 주의집중에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
BGT에서는 점이 찍혀 있는 도형들(1번, 2번, 5번 카드)에서 점의 수를 세는 모습을 보였고, 점의 수를 맞게 하는데 신경 쓰느라 전체적인 형태를 다소 간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HTP에서는 나무를 그릴 때 세부적인 묘사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고, 열매를 그리려다가 그만두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사람을 그릴 때는 가로선과 세로선의 구도를 먼저 잡고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자신감의 부족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람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세요.”라고 지시하였으나, 상체만 그렸고, 재차 동일한 지시를 하였으나, 여자 그림의 경우 발끝 부분을 그리지 않고 치마로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지시문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듣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Rorschach와 K-WAIS에서는 자신감이 없는 듯 끝말을 흐리거나, 종종 질문형태(예로서 “바이올린? 여우?”와 같은 방식)로 응답하였다. 문제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이며, 쉽게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제한이 있는 검사들의 경우, 어려운 문제에서는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Rorschach 검사 후의 소감으로는 “정신이 없었고, 애매모호한 그림들이 있었고, 헷갈리는 것도 많았어요.”라고 응답하였고, K-WAIS 검사 후의 소감으로는 “정신없네요.”라고 하였다.
4. 평가결과
1) 지능 및 인지기능
비록 체계화된 신경심리검사를 시행하지는 않았으나, BGT를 비롯한 전반적인 검사에서 두뇌의 기질적 손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sign은 발견되지 않았다.
K-WAIS 결과, 수치상으로는 전체 IQ 82(언어성 IQ 81, 동작성 IQ 83)였으나, 소음과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영향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IQ 85 내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00명 중 하위 16% 정도에 해당하는 지능으로서, 보통하 수준에 속한다.
피검사자의 인지기능에서 가장 취약한 점은 추상적인 사고능력의 부족이다. 즉 피검사자는 추상적인 단어들에 대한 어휘력과 개념형성능력이 부족하고, 속담과 비유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피검사자의 사고방식은 매우 concrete하다. 이는 피검사자가 구체적으로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이해력과 개념형성능력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음을 의미한다.
피검사자의 단기기억력은 자신의 지능수준에 해당하지만(BGT recall=2), 사람의 이름은 지능수준에 비하여 상당히 잘 기억하는 편이다. 또한 피검사자는 자신의 지능수준에 비하여 양호한 철자법과 문장구성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초등학교 때 이에 대한 학습이 철저히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기할 점은 피검사자의 정신운동속도(psychomotor speed)가 상당히 우수하다는 점이다. 이는 피검사자가 단순작업을 매우 민첩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피검사자는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양호한 철자법과 문장구성능력을 갖고 있고, 정신운동속도가 우수하기 때문에, 타인들로부터 보통수준 또는 그 이상의 지적 능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 능력이상의 수행을 요구받을 수 있다. 피검사자의 취약한 추상적 사고능력을 감안할 때, 특히 그러한 과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피검사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피검사자는 Rorschach에서 때로 부적절한 개념형성을 보인 경우도 있었으나(예로서 card II에서의 “두 손을 맞잡은 닭”), 이는 연상의 이완 때문이기보다는, 지엽적인 자극특성에 집중한 결과, 전체적인 맥락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BGT에서 점의 수를 맞게 하느라 전체적인 도형의 형태를 다소 간과하는 듯한 검사행동에서도 나타났는데, 피검사자의 지능수준을 고려할 때, 사고장애라기보다는 concrete한 사고양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정서 및 대인관계
피검사자는 성격이 활달하고, 외향적이며, 인정욕구와 친애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현재 대인관계에서 타인의 의도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고, 불만, 분노, 피해의식이 많으며, 사회적 부적응으로 인한 불편감을 경험하고 있다. 피검사자의 불만과 분노는 때로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감정으로 표현되기도 하나, 대체로는 수동-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즉 화가 나면 고의적으로 꾸물대거나 개기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화를 돋구는 경향이 있다.
피검사자는 자신의 능력수준에 비하여 포부수준이 높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수준 이상의 과업이 요구될 때, 쉽게 자신감을 잃고, 당황하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그간의 좌절경험들로 인한 열등감 및 자존심 손상과 관련이 있다.
비록 피검사자가 불안감을 호소하지는 않고 있으나, 내적으로는 불안과 긴장이 많아 보이며, 이는 일상생활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즉 일상생활에서 지엽적인 것에 신경 쓰거나, 지나치게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오히려 일의 효율성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3) 진단적 소견 및 제언
비록 간헐적으로 다소 부적절한 반응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는 사고장애 때문이기보다는 추상적 개념형성능력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단적으로 정신분열증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발병 당시(고 2 때) 본인이 열등감이 심하고 자존심이 상해 있었고, 이 때문에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쉽게 오해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따라서 정신분열증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병원에서 진료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서 정신분열증으로 오해받았던 것 같다.
현재의 피검사자의 문제는 보통하 수준의 지능(IQ 85 내외)으로 인한 사회적 적응 곤란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피검사자는 추상적인 개념형성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여 대학에서의 학업수행과 교우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피검사자는 열등감, 자존심 손상, 장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심하고, 대인관계에서 불만, 분노, 피해의식이 많으며, 신경질적이고 수동-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상담에 있어서, 본인의 열등감과 분노를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ventilation 기회의 제공, 자신의 불만과 분노, 요구사항 등을 적절히 표현하는 자기주장훈련, 그리고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진로상담 등이 특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상담 시에 피검사자의 취향과 강점을 고려할 수 있는데, 예로서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특성, 단순작업시의 민첩성, 구체적인 개념에 대한 지식습득능력,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 등에서의 강점을 고려할 수 있다.
5. 요약
1) 진단적으로 정신분열증, 조울증, 우울증 등에 해당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 현재의 주요 문제는 보통하 수준의 지능(IQ 85 내외)으로 인한 대학생활에의 적응곤란인 것으로 보인다.
3) 지속적인 상담(특히 ventilation, 주장훈련, 진로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004. 1. 15.
임상심리전문가(59호) 배 정 규